출처_Flickr by seanosh


여름 하면 생각나는 우리네 풍경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남녀노소 모두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던 ‘전설의 고향’ 같은 납량특집극을 이불을 뒤집어 쓰고 본다거나 친구들끼리 모여 서로 무서운 이야기를 주고 받던 일. 눈과 귀를 막고 심지어 울기까지 했지만, 이런 괴담들은 묘하게 사람 마음을 끄는 매력이 있습니다. 이렇게 여름은 무서운 이야기의 계절이 된지도 아주 오래인데요.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신문에도 실리고 실제 목격자들도 많았던 진짜 같은 괴담도 있었죠.


사실인지 거짓인지 의견이 분분하고, 확인되지 않았지만 단순히 괴담으로만 넘길 수 없었던 떠들썩했던 그 이야기들을 모아봤습니다. 오늘 다독다독과 함께 잠시나마 무더위를 잊고 가시는 것은 어떠세요? 그럼 마음 단단히 먹으시고,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괴담이라 하면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전해진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야기가 전파되는 속도가 상상 이상으로 빠르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상한’ 혹은 ‘괴이하고, 무서운’ 이야기에 쉽게 매력을 느낀다는 것을 말하는데요. 사실인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거짓이라고 가볍게 넘기기 힘든 유명한 괴담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대학가 귀신 소동


지난 1976년 서울대관악캠퍼스에서는 때아닌 귀신 소동에 학생들이 공포에 떨었습니다. 이런 소동이 확산되자 결국 대학당국에서 조사까지 나서기도 했는데요. 어떤 이야기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출처_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소문의 내용은 지난 8월말, 한 경비원이 캠퍼스 후문 쪽에 있는 댐 근처를 순찰하다가 잔디밭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남학생을 발견, 통성명을 한 뒤 함께 술까지 마셨으나 잠깐 한눈을 판 사이 홀연히 사라져 다음날 그 학생의 이름을 조회해 보니 지난해 여름 댐에서 수영하다가 익사한 학생이었다는 것.

지난 봄에도 겨울방학 동안 똑같은 일이 있었다는 소문과 함께 이 유령 괴담은 많은 학생들 사이에 퍼져나가 결국 학교 당국이 진상조사에 나서기까지 한 것.

-경향신문, 1976. 09. 28 ‘서울대에 유령소동’ 기사 중-


호텔에 퍼졌던 괴담


지난 1982년 2월 8일 도쿄 도 치요다 구 나가타 쵸에 있는 호텔 ‘뉴재팬’에서 대형 화재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영국인 투숙객이 무심코 던진 담배가 원인이 돼 한국인 8명을 포함한 33명이 비명 속에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던 참사였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폐허가 된 호텔 속에서 괴이한 현상이 일어나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이 2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화재가 일어난지 6일 째인 지난 2월 14일 새벽 5시가 조금 지나 작업원 한 사람이 지하2층 기계실 화장실에 들어가 있는데, 환기통 속에서 일본말로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라는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는 것.

또다시 6일 후인 지난 2월 20일 밤10시께 경비원 두 명이 비상계단을 6층까지 올라갔을 때 수명의 남자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이들 두 명은 무서움에 그대로 도망쳐 내려왔으나 속삭인 소리가 분명히 일본말은 아닌 것 같았다고.

동아일보, 1982. 04. 03 ‘화재 난 뉴저팬호텔 유령소동’ 기사 내용 중




예전에도 그렇고 최근에도 있지도 않은 사실이 마치 진실처럼 받아들여진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목격한 사례는 있다지만 그 출처가 불분명하고 작은 사건에서 비롯된 괴담이 과장되면서 진짜 괴담으로 진화(?)하기도 했죠. 이런 괴담의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홍콩할매귀신’이나 ‘빨간마스크 여인’과 같이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킨 괴담이 있습니다.


어린 학생들을 공포로 몰아 넣었던 ‘빨간마스크’와 ‘홍콩할매귀신’


1990년대 초반, 대표적인 도시괴담이 전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빨간마스크’와 ‘홍콩할매귀신’이죠. 워낙 유명하니 별도의 설명은 필요 없겠지만, 잠시 그 때의 기억을 되짚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출처_네이버 영화 ‘나고야살인사건’ 스틸컷


한때 부산과 포항지역에서 아이들의 등교 거부 소동까지 벌어졌던 원인은 바로 빨간마스크 때문이었습니다. 붉은색 코트에 빨간 마스크를 쓴 여인이 아이들에게 “나 예뻐?”라고 물어보면, “예쁘다”고 대답하면 “나랑 똑같이 만들어줄게”라며 낫 혹은 가위로 입을 귀까지 찢고, “못생겼다”고 하면 화가 나서 역시 입을 찢는다는 이야기인데요. 빨간 마스크를 만났을 때의 대응법(‘포마드’를 세 번 외치거나, 모호한 답변으로 도망갈 시간을 번다는 등)까지 전해졌기에 아이들은 마치 그 사실이 진짜인 것처럼 믿었던 거죠.


또한 홍콩할매귀신 역시 아이들에겐 호환마마, 전쟁보다도 무서운 대상이었습니다.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를 탄 한 할머니가 추락사고로 목숨을 잃어 반은 고양이 반은 할머니의 얼굴을 하고 아이들에게 해코지를 한다는 괴담의 여파는 정말 엄청났습니다. 이야기가 전국으로 전파되고 더욱 구체적인 사례까지 붙으면서 아이들은 화장실의 네 번째 칸에 가면 안 된다 거나 밤에 전화기가 네 번 이상 울릴 때까지 받으면 안 되고, 창문에서 누군가 자기 이름을 부르면 절대 문을 열지 말라는 등의 금기사항까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조폐공사의 공식 발표까지 이어진 ‘김민지 괴담’


이 괴담은 어떻게 보면 그 상상력이 재미있기도 한 괴담입니다. ‘김민지 토막살인사건’으로 유명한 괴담, 기억하시나요? 한국조폐공사 사장의 납치된 딸 아이를 찾지 못하자 한을 품은 아버지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화폐 곳곳에 암호와도 같은 흔적을 남겼다는 이야기입니다.


출처_한국경제, 2008. 03. 27


10원짜리 동전의 다보탑 하단부에 ‘ㄱ ㅣ ㅁ’이라는 글자를, 50원짜리 동전에는 아이를 살해한 도구인 낫을, 100원짜리 동전의 이순신 장군 수염에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500원짜리에는 아이의 가느다란 팔을 학의 다리인 것처럼 그려 넣었다는 거죠. 또한 천원 지폐의 항아리 막대 끝에 아이의 이름 가운데 자인 ‘민’을 영어로(min) 써 놓고, ‘지’자는 5천원 지폐에 ‘갈 지’자로 썼다는 이 이야기는 아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결국 한국조폐공사에서는 ‘단지 떠도는 이야기일 뿐’이라는 발표까지 있었습니다.




이런 괴담이 떠돌던 90년대는 그야말로 납량특집과 공포물의 전성시대였습니다. PC통신의 발달로 전국의 혹은 해외의 무서운 이야기들이 급격하게 전파가 되었고, 이런 트렌드를 반영해 납량특집극을 꾸며 공포 분위기를 더욱 조성해가기도 했는데요. 급기야 90년대 후반에는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이런 납량물에 대한 제재를 가하면서 방영을 중단해야 하는 프로그램도 등장했습니다.


이중 한국 공포 드라마의 새장을 열었던 MBC에서 방영한 1994년 작품 ‘M’을 기억하시나요? 그동안 우리 드라마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첨단 영상과 독특한 스토리로 무장하며 메디컬 미스터리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기도 했습니다. 또한 특수분장 기술도 십분 활용해 섬뜩한 장면을 자주 연출해 그야말로 우리의 안방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이때부터 여름이면 납량특집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공포물이 자주 방영되기 시작했습니다.

 

출처_납량특집 드라마 ‘M’ 방송 화면 스틸컷


1997년부터 1999년까지 매주 토요일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프로그램 다들 기억하시나요? 바로 SBS의 ‘토요미스테리극장’이에요.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는 첫 시도된 공포체험 재연 프로그램이라는 타이틀로 국내외를 막론하고 직접 겪었던 기이한 이야기나 떠도는 괴담, 미스터리한 현상 등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재연하면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지금 봐도 소름 돋는 무서운 에피소드들이 많았을 정도로 그 자극성과 유해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죠. 결국 이런 여론과 시민단체의 항의에 의해 1999년 1월 30일 71회를 끝으로 폐지되었습니다.

  

출처_SBS 홈페이지



지금까지 소개해드린 괴담들의 공통점은 잘 들여다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자살한 모범생이 자주 등장하는 학교괴담이나 빨간마스크와 같은 성형괴담은 성적우선주의와 성형에 대한 다양한 가치충돌과 불안감이 괴담에서 분출되고 있는 것이지요. 최근의 장기매매 관련 괴담 역시 우리의 불안감이 괴담으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풍기괴담(Fan death)’를 아시나요? ‘밀폐된 방에서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면 질식해 죽을 수 있다’는 내용은 위키피디아 영문판에서 ‘한국에서 내려온 도시전설(it remains a widely believed urban legend in South Korea.)’이라고 명시하고 있는 명백한 괴담이지만 지금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진실로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괴담은 뜻하지 않은 부작용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불안감을 더욱 키운다는 것이죠. 하지만, 올바르게 세상을 판단하고 더욱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어쩌면 괴담에서 배울 수 있는 세상을 보는 지혜 아닐까 싶습니다.


ⓒ 다독다독



Posted by 미디어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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