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말로 예정된 칙허장 갱신을 앞두고 영국 보수당 정부와 BBC 사이의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보수당 정부가 정책제안서의 초안격인 ‘녹서’를 발표하며 시작한 공개협의는 지난 10월에 종료 된 상태다.

ITV가 BBC의 부정적인 시장 영향력을 비판하는 보고서를 정부 측에 제출하면서 그 협의 결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BBC트러스트는 녹서 이후 논란이 되어 온 ‘BBC의 부정적인 시장 영향력’을 반박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BBC와의 싸움에 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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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BBC 저녁뉴스가 경쟁 방송사인 ITV보다 두 배가 넘는 시청자 수를 기록했다는 내용을 트위터에 올려 구설에 오른 BBC ‘뉴스 앳 텐’의 앵커 휴 에드워드..


BBC는 10년마다 영국 국왕으로부터 칙허장을 갱신 받는다. 일종의 재허가를 받는 셈인데 실제로 갱신 과정에서 BBC와 협상을 벌이는 주체는 국왕이 아닌 영국 정부다.

영국 정부는 녹서 발표를 시작으로 약 3개월에 걸쳐 공개협의를 진행하며 광범위하게 공중 의견과 전문 연구, 자문단으로부터 의견을 수렴한다.

이 과정에서 녹서가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관계자들의 서면이 정부 측에 전달되기도 한다. 최근 영국 언론은 ITV와 BBC트러스트가 녹서의 내용에 대한 보고서를 각각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먼저 ITV의 보고서는 녹서 공개 이후 논란이 되어 온 BBC의 ‘부정적인’ 시장 영향력에 대한 산업 내 경쟁사로서의 입장을 담고 있다.

지난 7월 16일에 공개된 보수당 정부의 녹서는 공적 서비스를 하는 BBC의 규모가 지나치게 확대된 점을 지적하며, 이것이 신문과 방송 산업 내부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지난 11월 5일 영국의 미디어 전문지인 브로드 캐스트는 ITV가 영국 정부에 제출한 서면에서 33번이나 BBC의 ‘독창성(distinctive)’을 문제 삼았다고 보도했다.1

공교롭게도 녹서 역시 해외 판권 구입과 영국 내 경쟁 방송사에 대해 부정적인 시장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문제 삼을 때, BBC가 보다 ‘독창적인 공적 서비스’가 되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BBC의 최대 경쟁사라 할 수 있는 ITV가 직접 그에 대한 입장을 밝힌 셈이다.

정부에 제출한 서면보고서에서 ITV는 BBC1 채널의 “고정된 낮시간 편성” 전략과 “장수 프로그램들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을 비판하며 BBC가 의도적으로 시청률을 극대화할 수 없는 콘텐츠를 “주변화하거나 제거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는 지난 3월 ITV의 애덤 크로지어 사장이 에든버러 국제텔레비전 축제에서 BBC1 채널의 거대 예산과 공격적인 편성 전략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면서 한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보다 이번 보고서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최근 토니 홀 사장의 주도하에 이뤄지고 있는 BBC의 자체 제작 할당량제 폐기와 제작부서를 독립적인 상업기구로 분리하는 방안에 대한 ITV의 입장이다.2

ITV는 ‘BBC스튜디오’라는 새로운 브랜드의 상업기구를 만들겠다는 제안서 내용에 강력히 반발, 그 제안은 “불필요하고 희생이 필요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반대 입장임을 표시했다.

또한 ITV 대변인은 “그동안 ITV는 이러한 논쟁들에 깊게 연루되지 않으려 해왔지만 최근 BBC는 (ITV에게) 매우 공격적이었다”며, 이번 보고서는 “싸움에 응하겠다는 메시지”라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BBC, “우리는 잘못 없어”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BBC는 BBC1 채널의 프라임타임 시간대에 외부 제작 콘텐츠의 비중은 4.5%밖에 되지 않는다며 편성과 관련한 문제 제기에 대응했다.

하지만 ITV가 낮시간에 방영되는 콘텐츠의 상당수가 해외에서 포맷을 사온 경우라고 지적한 것과 관련, 일각에서는 이러한 해명이 완벽하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브로드캐스트는 같은 보도에서 익명의 엔터테인먼트 제작자의 말을 인용해 “엄청난 수신료 납부자의 돈”이 외국의 포맷 사용료로 지출되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 제작자는 BBC의 자체 제작과 관련해서도 “만약 BBC가 자체의 고유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을 충분히 창조하지 않는다면 그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ITV의 서면보고서 제출이 언론에 알려진 11월 5일, 공교롭게도 BBC트러스트는 홈페이지를 통해 일반에 BBC의 시장 영향력에 대한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BBC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이자 감독기관인 BBC트러스트는 미디어 전문 연구기관인 KPMG의 보고서를 첨부하며 ITV와 지역신문사들로부터 제기된 비판과 달리 실제로 BBC가 시장 질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보고서는 정부 쪽에도 제출된 상태다.3

이번 연구가 이뤄진 배경은 녹서에 등장한 BBC의 규모에 대한 비판이 실효성이 있는가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BBC트러스트의 판단 때문이다.

독립된 연구기관이 직접 녹서의 주요 내용을 바탕으로 BBC의 엔터테인먼트, 방송 뉴스, 온라인 뉴스의 콘텐츠가 유관 산업의 시장 질서를 침해하는지 그 여부를 신문과 방송 산업의 다양한 지표들을 이용해 분석했다.

그 결과 전술한 세 가지 영역모두에서 BBC의 시장 영향력이 ‘부정적이지 않다’는 결론이 도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논란이 되고 있는 BBC 뉴스의 웹 사이트 및 모바일 유통이 영국 내 지역신문사들의 콘텐츠 유통 활동이나 상업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지역신문 서비스와 BBC 뉴스의 웹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지역뉴스 서비스의 유형 사이에는 제한된 수의 ‘겹침(overlap)’이 있었지만, 이로 인해 지역신문사의 수입이 감소될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예측됐다.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의 경우 ITV와 같은 경쟁사들과 BBC의 프로그램 소비 패턴을 조사한 결과 이 역시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영국 내의 모든 방송사들을 대상으로 각각의 콘텐츠 수용에 있어 성장세와 감소세를 분석한 결과, 오히려 BBC보다 경쟁 방송사들의 콘텐츠 소비에서 뚜렷한 성장세가 확인됐다.4

마찬가지로 BBC TV 뉴스가 상업방송사들의 TV 뉴스 소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녹서의 문제 제기와 관련해서도, 어떠한 경험적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BBC 뉴스 프로그램의 최근 몇 년간 시청 시간을 경쟁사와 비교한 결과, 오히려 BBC 뉴스에 대한 소비는 다른 방송사들에 대한 소비와 비슷한 수준에 머무르거나 줄어드는 추세였다.

또한 보고서는 전체적으로 BBC TV의 예산이 경쟁 방송사들의 수입 감소에 영향을 준다는 문제 제기에 대한 근거도 연구과정에서 찾을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BBC가 2004년부터 텔레비전 제작 예산을 감축해온 것과 달리 경쟁사들은 1999년부터 관련 예산을 65% 이상 증대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BBC의 자신감 또는 거만함?

ITV와 BBC트러스트의 보고서들이 공개되고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토니 홀 BBC 사장은 영국 하원의 문화미디어스포츠위원회에 직접 출석, 칙허장 갱신 협상을 앞두고 BBC에게 제기되고 있는 비판들에 대해 답변했다.5

이날 토니 홀 사장은 ITV와 정부로부터 해외 판권을 구입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보이스’가 내년 1월에 방영되는 시즌5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BBC에서 방영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홀 사장은 “‘보이스’의 방영권이 ITV로 넘어갔다”며, “ITV가 그 프로그램을 잘 운영해 성공시켰으면 한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녹서 이후 계속 제기되어 온 뉴스의 편성 문제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녹서 발행 주체인 존 위팅데일 문화부 장관은 지난 9월 BBC 저녁뉴스의 10시 편성이 경쟁 방송사들의 저녁 뉴스 소비에 부정적인 영향력을 준다며 편성 시간대를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ITV 역시 BBC 저녁뉴스 앵커인 휴 에드워드가 ITV보다 두 배가 넘는 시청자 수를 기록했다는 트윗을 남기자, 이러한 행동이 “BBC의 거만함”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동일 시간대 편성에 대해 비판의 강도를 높여왔다.6

하지만 홀 사장은 이러한 비판 자체가 “다소 의아하다”며 수용자들이 동일 시간에 방영되는 두 개의 뉴스 프로그램들 중 “최고로 서비스되는 것을 선택할 것”이라는 단호하게 대응했다.

홀 사장의 이처럼 자신감 있는 행동은 수신료 인상에 대한 확신에서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 11월 6일 라디오타임스와 텔레그래프는 BBC 간부급 인사의 말을 인용, BBC가 보수당 내각으로부터 수신료 인상에 대한 확실한 ‘보증’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보수당 정부가 그동안 복지지금으로 지급해 온 75세 이상 노령인구에 대한 수신료 변제금을 향후 BBC가 부담하는 조건으로 소비자 물가 지수 상승에 맞춰 수신료가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난 7월 현지 언론들은 녹서 이후에 정부와의 수신료 거래가 무산될 공산이 크다고 보도했지만, 이번 보도에 따르면 위팅데일 문화부 장관으로 추측되는 내각 일원이 “거래는 거래”라고 확언을 준것으로 알려졌다.

김지현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1 http://www.broadcastnow.co.uk/news/itvs-attack-on-bbcdistinctiveness-proves-divisive/5096413.article

2 토니 홀 사장의 ‘BBC스튜디오’ 출범안은 지난 호 < 신문과 방송 >의 ‘미디어월드와이드’ 영국편을 참조할 것.

3 http://www.bbc.co.uk/bbctrust/news/press_releases/2015/market_impact

4 KPMG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4년에 BBC의 경쟁 방송사들은 BBC보다 14배나 더 많은 상업적인 성격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들을 공급했다. 또한 이들 콘텐츠들에 대한 시청시간들은 BBC보다 1.58배 많았다.

5 http://www.theguardian.com/media/2015/nov/10/bbcdirector-general-hints-itv-has-poached-the-voice

6 http://www.theguardian.com/media/2015/nov/04/itv-bbcnews-at-ten-huw-edwards-tom-brad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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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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