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_ flickr by Antonio Tajuelo



로봇이 기사를 쓰는 시대가 왔습니다. 신문 읽기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로봇 저널리즘’이라는 용어를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컴퓨팅 알고리즘(computing algorithm, 컴퓨터가 특정 문제를 해결할 때 인식하는 규칙과 절차)에 의해 기사가 자동 생성되는 것이죠. 시각과 주관이 없으므로, 기계는 보다 신속하게 사실(fact)을 전달해줄 수 있을 법도 합니다. 실제로 올해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진도 2.7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가장 빨리 1보를 내보낸 기자는 로봇이었습니다. LA타임즈가 온라인 보도용으로 활용하고 있는 지진 기사 전문 로봇 ‘퀘이크봇(Qualkebot)’이었죠. 기사 작성부터 발행까지 소요된 시간은 8분. 확실히 빠르기는 합니다.

기자의 자질을 단지 ‘신속 보도’로만 따질 수 없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 로봇 저널리즘의 한계에 대해서는 굳이 부언하지 않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지요. 인간 기자와 비교해서, 기계가 못 가진 것은 시각과 주관 뿐만은 아닙니다. ‘스토리텔링’ 역시 할 줄 모르니까요. 다소 의아해 하실 분들도 계실 듯합니다. 기자가 스토리텔링, 즉 ‘이야기를 꾸며내는’ 일을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야기를 ‘꾸미기’보다는, 이야기를 ‘입히기’가 적당한 표현일 것입니다. 건조한 스트레이트 기사를 내러티브(narrative, 일련의 사건들을 이야기 형태로 서술하는 기법) 형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이죠. 이 같은 기사 작성 방식을 ‘내러티브 저널리즘’이라 부릅니다. 


LA타임즈 저널리스트 스티브 로페즈(오른쪽)는줄리아드 음대 출신의 노숙자 나다니엘 아이어스(왼쪽)의 사연을 칼럼으로 연재하여 큰 관심을 얻었습니다. 이 칼럼은 후에 <솔로이스트>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죠. 훌륭한 저널리스트는 뛰어난 스토리텔러이기도 하나 봅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내러티브 저널리즘 형태의 기사는 작성 과정이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속보성 보도에는 맞지 않고, 1보 기사에 대한 후속 보도에 적합합니다. 종이 신문과 온라인 뉴스 모두를 접하는 수용자로서, 내러티브 저널리즘 형식을 취한 기획 기사(탐사 취재, 인터뷰 등)를 읽고 있으면 훨씬 부드럽고 깊이 있으면서, 감성적으로 다가오더군요. 

가난은 ‘실험’하고 싶지 않다. “가난은 냄새만으로도 끔찍하다”는 말에 동의할뿐더러, 한 달 번 돈이 적다 하여 가난해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공장 일을 시작하면서 경기 안산으로 거주지까지 옮겼다. 무엇보다, 공장 노동자이자 독거 노총각으로서의 욕망과 실제의 수지타산이 어떻게 맞아떨어질 수 있는지 알고자 했다.

위 인용문은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서 2009년 9월부터 시작한 ‘노동OTL'이라는 연재 기사의 첫 회 발문입니다.(기사 읽기) 이 기획물은 현직 기자 네 명이 각각 난로 공장, 감자탕집, 가구 공장, 대형 마트에 취직하여 한 달간의 체험기를 내러티브 저널리즘으로 기사화한 것인데요. 발문에서 알 수 있듯, “공장 노동자이자 독거 노총각”이라는 주인공 등장하여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또한, 생생한 현장감―기자들이 직접 취직하여 보고 체감한 ‘팩트들’―으로 강력한 흡인력을 갖습니다.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절망적인 실생활을 표현하는 ‘노동OTL’이라는 제목 역시 눈길을 끕니다. 이 기사를 함께 작성한 네 명의 기자들(임인택•임지선•전종휘•안수찬 기자)은 2010년 제41회 한국기자상 시상식에서 기획보도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2012년 2월 17일 아침 로스앤젤레스. 서늘한 거리에 경찰차의 불안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경찰차는 시내 중심에 자리한 웨스트 할리우드 호텔 앞에 멈춰 섰다. 긴장한 표정의 호텔 직원들은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경찰들을 한 객실로 인도했다. 문을 연 그곳에 눈을 감은 체이가 있었다고, 체이와 함께 출장길에 올랐던 나의 동료는 말했었다. (…) 유독 푸른 하늘이 시렸던 2012년 겨울날 그렇게 한국, 아니 세계 디지털 디자인 업계에서 가장 소중했던 체이를 허망하게 잃었다. 최(Chey) 씨 성의 영문명을 특이하게 써서 대표님이란 호칭 대신 체이라 불렸던 사람. 체이의 소리가 울리지 않는 고요한 회사 풍경이 나는 오늘도 생경하다.

소설의 한 대목을 읽는 기분이 들지 않으셨나요? 지난해 10월 동아일보에 게재되었던 <꿈을 베고 잠든 거인 ‘디지털 왕국’ 꽃을 피우다>라는 기사의 인상적인 서두입니다.(기사 읽기) ‘한국의 스티브 잡스’라고 불렸던 기업인 고(故) 최은석 디스트릭트 대표를 다룬 인물 기사인데요. ‘고 최은석’, ‘고 최은석 대표’ 대신, ‘체이’라는 인칭 주어를 사용함으로써 기사 전체를 내밀한 회상담처럼 풀어냈습니다. 이 글은 동아일보가 부정기적으로 연재하는 ‘내러티브 리포트’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고 최은석 대표의 측근이 작성한 회고록을 기자가 재구성한 것입니다. 

체이는 오늘도 직원들의 책상 앞 곳곳에 붙어 있다. 내 책상 근처 이 선임은 가끔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체이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대표님, 저희 이만큼 왔어요. 살아나고 있어요. 잘되고 있어요."라고. 체이는 인사팀의 프로그램에서도 삭제되지 않았다. 체이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 회사의 일부다.

이런 문단을 읽다 보면 어느새 눈가가 젖어들기도 하는데요. 신문 기사를 읽고 감동하게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죠. 인물 기사의 경우, 그 사람의 ‘스토리’를 잘 담아낸다 하더라도 일반 대중의 관심을 얻기란 쉽지 않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해줄 독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이때 내러티브 저널리즘 구성은, 기사와 독자 사이의 거리를 좁혀줄 수 있을 겁니다. ‘감성’을 자극하는 것만큼 유용한 거리 좁히기도 없을 테니까요.

 

출처_ 이미지 비트




저소득층 가정, 외국인 노동자, 홀로 사는 노인,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 등 사회 소외 계층에 대한 소식은 지금도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되고 있습니다. 뉴스 콘텐츠 소비자로서 아쉬운 점은, 그들에 대한 보도가 단지 그들의 삶을 ‘관찰’하는 데에서만 그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하루라는 시간 동안 수많은 뉴스가 쏟아지고 있는데, 그 속에서 보이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는 다른 많은 뉴스와 마찬가지로 휙휙 지나가고 맙니다. 눈으로만 보고 머리로만 이해하는 기사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는 기사 한 편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러티브 저널리즘은 보이지 않는 이들을 위한 ‘내레이터’로서 기능해줄 수 있지 않을까요. 다만 목소리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감정까지 전달해주는 내레이터로서 말입니다.  




ⓒ 다독다독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미디어정보팀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