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에서 드라마 ‘마오안잉’(毛岸英)이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 드라마는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장남 마오안잉의 일생을 그린 것으로 중국군의 한국전쟁 참전 60주년을 기념해 제작됐다. 중국 드라마에서 마오쩌둥 부자의 이야기가 등장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주춘렬 세계일보 베이징 특파원


최근 중국에서 드라마 ‘마오안잉’(毛岸英)이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 드라마는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장남 마오안잉의 일생을 그린 것으로 중국군의 한국전쟁 참전 60주년을 기념해 제작됐다. 중국 드라마에서 마오쩌둥 부자의 이야기가 등장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때문에 ‘마오안잉’은 지난해 10월 20일 중국중앙방송(CCTV)에서 방영되기 시작할 때부터 큰 관심을 모았고 한때 시청률이 사상 최고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34부작으로 CCTV 1채널에서 오후 8시에 방영됐다. 이 시간대는 한국 TV의 9시 뉴스 격인 ‘신원롄보’(新聞聯播)가 끝난 직후로 중국에서 광고료가 가장 비싼 황금시간대로 불린다. 물론 중국 시청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중국 최대의 포털사이트 시나닷컴에 개설된 드라마 홈페이지에는 1월 20일 현재 1만 개에 육박하는 댓글이 올라왔다. 그 내용도 ‘마오안잉의 인생이 감동적이다’, ‘드라마가 심금을 울린다’, ‘연기가 뛰어나다’는 식의 긍정적 반응이 봇물을 이뤘다. 이 드라마는 지난해 11월 4일 방영을 마쳤다. 그러나 폭발적인 반응 탓에 이 프로그램은 작년 11월 25일부터 CCTV 8채널에서 다시 방영된 데 이어 올해 1월 9일부터는 CCTV 1채널에서도 재방송되고 있다.

북・중 관계의 상징적 인물, 마오안잉

주목할 대목은 마오안잉이 북・중 간 동맹관계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마오안잉은 중국 공산혁명 과정에서 숱한 우여곡절을 겪다 젊은 시절 생을 마감한 비극적 인물이다. 그는 1922년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에서 마오쩌둥과 둘째 부인 양카이후이(楊開慧)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마오쩌둥이 봉기에 실패하면서 아버지와 헤어진 마오안잉은 8살 때 어머니가 국민당에 붙잡혀 처형당하자 공산당의 보호를 받으며 상하이에 숨어 살기도 했다. 이어 그는 15살 때인 1936년 소련으로 건너가 공부하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소련군 탱크부대에 자원입대해 독일군과 싸웠다.

마오안잉은 2차 대전이 끝나자 귀국했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인민지원군에 지원해 펑더화이(彭德懷) 총사령관의 러시아 통역으로 일하다 미군의 폭격으로 1950년 11월 25일 28살을 일기로 숨졌다. 그는 다른 중국군 전사자들과 함께 북한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는 인민지원군 열사묘에 묻혀 있다. 마오쩌둥은 아들의 사망 소식을 3개월 후에야 펑더화이로부터 전해 들었지만 다른 전사자들과 차별을 할 수 없다며 마오안잉의 시신을 중국으로 가져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중국 지도자들은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마오안잉의 묘를 찾곤 한다. 지난 2009년 10월 북한을 방문한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도 그의 묘 앞에서 “이제 조국은 강해졌고 인민은 행복해졌습니다. 편히 쉬십시오”라고 위로했다.


교차하는 드라마와 현실

드라마 감독인 류이란(劉毅然)은 지난해 11월 방영을 마치고 잡지인 ‘예술평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마오안잉은 인민과 나라를 열렬히 사랑했고 지도자의 아들이면서도 국난을 당했을 때 혼신을 바쳤다”고 말했다. 류 감독은 이어 “그에게 체현된 우수한 품성은 우리 중화민족 수천 년 동안 물려내려 온 큰 사랑과 아름다움”이라고 강조했다. CCTV도 이 드라마와 관련해 마오안잉의 아내 류쓰치(劉思齊)의 증언 등을 통해 철저히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제작했고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전 총리 등 중국의 1세대 혁명 원로들의 인간적인 면모도 조명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공산당 서열 5위인 리창춘(李長春) 정치국 상무위원도 1월 4일 열린 전국 선전부장회의에 참석해 이 드라마를 공개적으로 호평했다. 중국 정부와 관영언론이 ‘마오안잉’ 영웅 만들기에 공을 들이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실제 중국 당국은 작년 10월 드라마 제작 때 최고 지도부가 모여 사는 권력의 심장부인 중난하이(中南海)에 있는 옛 마오쩌둥의 거처에서 처음으로 촬영을 허가하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전쟁의 영웅으로 떠오른 마오안잉은 드라마에서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미국에 맞서 북한을 지원한 전쟁)은 정의로운 것”이라며 “미 제국주의에 항거해 중국의 주권과 영토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결연히 말한다.

이로부터 약 60년이 지나 다시 이 말은 중국 지도자의 말로 현실 세계에서 되살아난다. 중국의 차기 최고지도자로 낙점된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은 60주년 기념일인 지난해 10월 2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항미원조전쟁 참전 60주년 좌담회’에서 “위대한 항미원조전쟁은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밝혔다. 시 부주석은 이 자리에서 “중•조(중국과 북한) 양국 인민과 군대가 단결함으로써 항미원조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며 “이는 세계 평화와 인류 진보를 지켜낸 위대한 승리”라고 말했다. 신화통신을 비롯해 중국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이 발언은 한국과 미국이 즉각 반발에 나서면서 국제적 논란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이는 한반도 긴장을 둘러싼 갈등의 서곡에 불과했다.

드라마 같은 현실이… 

이로부터 한 달 남짓 흘렀을까. 지난해 11월 23일 전쟁을 방불케 하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이 벌어졌다. 한반도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초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마치 ‘마오안잉’ 드라마 속에서 재연된 한국전쟁의 장면이 연평도에서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도발 행위를 일제히 비난했지만 북한과 중국의 동맹관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중국 언론들은 북한의 연평도 도발을 남북한 교전으로 규정하면서 북한의 주장을 빠짐없이 보도했다. 중국 정부도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남북한 모두에 냉정과 자제를 요구하면서 6자회담의 재개를 촉구했다. 중국은 지난해 3월 천안함 침몰사건 때처럼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의 진실을 외면했다. 더 나아가 중국과 북한은 한국과 미국의 서해 군사훈련 등에 대해 긴장을 유발하는 행위로 맹렬히 비난하기도 했다.

때맞춰 북한과 중국은 굳건한 동맹관계를 대내외에 과시했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마오안잉의 사망 60주년을 맞아 지난해 11월 25일 평안남도 회창군 ‘중국 인민지원군 열사묘’에 안장된 그의 묘에 화환을 보냈다. 화환은 당 중앙정치국 위원인 김영춘 인민무력부장과 북중우호협회장인 최창식 보건상 등이 직접 찾아가 헌화했다. 화환 리본에는 ‘마오안잉 동지 영구불멸하라’는 문구가 새겨졌으며 김영춘 부장은 “김정일 총서기의 명을 받고 마오안잉 열사의 영혼을 추모하기 위해 묘를 찾았다”고 말했다고 신화통신이 전했다. 김 부장은 특히 “60년 전 많은 중국 젊은 남녀가 이곳에서 고귀한 생명을 희생하고 마오 주석의 아들도 참가한 은혜를 조선 인민은 영원히 잊지 않을 것”고 말했다. 이때 참배와 헌화에는 북한을 방문 중이던 CCTV의 ‘마오안잉’ 드라마 제작팀도 참가했다.

 
새해에도 계속된 드라마

새해 들어서도 북・중 간 끈끈한 동맹관계는 변함이 없었다. 1월 19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문제와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 등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지만 북한을 감싸온 중국의 태도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방미에 앞서 지난 1월 17일자 미 워싱턴포스트 및 월스트리트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은 남북한이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기를 일관되게 지지해 왔다”면서도 연평도 도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후 주석은 또한 “중국은 대화와 협의를 통한 평화적 방법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며 관련 당사국들이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고 여건을 창출할 것을 기대한다”며 종전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 공개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북한은 작년 11월 12일 영변을 방문한 미국의 핵 기술자 지그프리트 헤커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에게 2,000기의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를 보여 줬다. 이는 얼마든지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어서 국제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와 관련해 추이톈카이(崔天凱) 외교부 부부장은 후 주석의 방미를 앞둔 지난 1월 14일 베이징의 한 포럼에 참석해서 한 “중국은 아직 (농축 관련 시설을) 본 적이 없고 미국 전문가들이 본 것이며 미국 전문가들도 (북한 핵시설을) 제대로 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일은 현재로서는 완전히 명확하지는 않다”는 발언이 신화통신을 비롯한 중국 언론에 소개됐다.

새해 들어서도 ‘마오안잉’ 드라마는 CCTV 채널 1과 8에서 오전과 오후 번갈아 가며 방영되고 있다. 그동안 마오안잉은 상당수 중국인에게 한국전쟁에서 숨진 마오쩌둥의 장남으로 기억될 뿐 항미원조전쟁 혹은 공산혁명의 영웅으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한다. 전쟁과 혁명에서 주목할 만한 업적이나 공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반도 정세가 지난해 천안함 침몰 사건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격랑 속으로 빠져드는 사이 중국 정부와 언론이 북・중 동맹의 상징적 인물 ‘마오안잉’ 영웅 만들기에 나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성싶다. 
 
 

Posted by inhana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