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성 보도 시 주의할 점

양재규
언론중재위원회 정책연구팀장·변호사


아는 방송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용인즉 최근 자신이 취재, 보도한 방송에 대해 음성권 침해 등을 이유로 이의가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자에게 항의 전화를 한 사람은 대학교수였다.교수가 지도하는 대학생들이 농어촌 지역 집 고쳐주기 봉사활동을 진행했던 모양이다. 사업의 취지는 좋았지만 문제는 결과였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학생 중심으로 일이 진행되다 보니 여러 가지 하자가 발생했던 것이다. 심지어 집을 고친 것이 아니라 망쳐 놓았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이 와중에 일부 지도교수는 현장조차 찾지 않았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이에 기자는 지도교수의 태만을 지적하고자 교수와의 통화 내용을 방송에 내보냈다.

“(현장은 못 나가 보신 거죠?) 저는 구체적으로 나가 보지 못했어요. 몇 집 선정되고 어디 부분, 그렇게 난 소개만 해 주고 말았지.”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음성권 침해가 문제 되곤한다. 상대방이 통화나 대화 녹음하는 것을 승낙했을 리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위 사안에서는 몰래녹음이었음에도 음성권 침해 문제가 없었다. 상대방의 육성을 그대로 내보내지 않고 변조했기 때문이다. 영상 보도에서의 모자이크 처리 문제도 그렇지만 음성 보도 시 변조하는 것을 기자들은 못마땅하게 여긴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보기에 아름답지 않고 듣기에도 불편하다. 변조 없는 육성 그대로가 자연스럽다. 그러나 위 사안의 경우 편집 단계에서 음성을 변조한 것은 법적인 측면에서 잘한 일이다. 교수가 현장에 가 보지 않았다는 내용만 전달하면 되는 일에 굳이 당사자의 육성을 내보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처럼 몰래녹음의 경우 음성권 침해 논란을 피하려면 음성을 변조하는 것이 안전하다. 음성권 침해와 관련된 최근의 경향이 어떠한지 ‘서울고등법원 2010. 7. 1. 선고 2009나102614’ 판결을 통해 함께 살펴보기로 하자.

◉ 사건의 개요

2007년 한 방송사의 소비자 피해 고발 프로그램에서는 제멋대로인 미용요금 문제를 제기하며 미용실의 부당한 상술로 인한 피해 사례를 보도했다.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은 관련 소비자피해 사례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원고가 운영하는 미용실이 연루된 제보를 받게 됐다.

제보자는 자신의 부인이 원고의 미용실에서 커트를 하는 동안 요금표를 보지 못했고, 계산 과정에서 고액의 커트비를 요구받고서야 비로소 요금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프로그램 제작진은 피해 당사자와 제보자인 피해자의 남편, 그리고 미용실 운영자인 원고를 차례로 취재했다. 이외에도 원고가 운영하는 미용실 및 다른 미용실들의 가격 책정, 가격표 게시 여부, 소비자들의 불만사항 등에 대한 취재까지 모두 마치고 이를 바탕으로 ‘파마값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방송을 내보냈다.

방송에서는 일부 미용실이 가격표를 게시하지 않거나 잘 보이지 않는 곳에 게시한 다음 고액의 요금을 요구하여 소비자의 불만이 크다는 내용을 보도하면서 다음과 같은 원고 관련 내용을 내보냈다.

▷ 내레이션 : 파마값 5만 원은 그래도 양반, 이번에는 커트비가 5만 원이시란다. 금가위로 자르시기라도 하신 건가요?(벤치에 앉아 있는 남자(김○○)와 인터뷰하면서)

▷ 김○○ :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곳에 가격표를 붙여 놓고 머리를 자르고 난 다음에 무조건 5만 원이라고 하는 건 솔직히 부당하다고 생각하거든요?(같은 내용을 자막으로도 처리) 그래서 전화를 해서 말씀을 드렸더니 소비자보호원에서도 뭐 어떻게 경고 조치도 못 하고, 시정 조치는 할 수 있는데….

▷ 내레이션 : 소비자는 억울하다.(이 사건 미용실의 외관 중 주위의 간판이나 거리 풍경은 그대로 두고 이 사건 미용실 간판 중 원고 이름 부분만을 모자이크 처리한 영상을 방영하면서)

▷ 원고 : 난 경력이 20년이야, 공부도 얼마나 많이 했는데. 커트 한 번 하면 두 달 정도 가지 않나요? 두 달에 커트비 5만원이 뭐가 비싸? 난 100만 원에도 잘라 봤는데.(원고의 얼굴은 방영되지 않았으나, 음성 변조가 되지 않은 채 원고의 음성이 그대로 방송됨)

▷ 피디 : 100만 원요?

▷ 원고 : 그럼요.(원고의 미용실이 아닌 ‘준오 미용실’의 내부를 방영하면서)

▷ 내레이션 : 말 그대로 주인 마음이다. 어디에도 가격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미용실. 소비자는 미용 가격을 모른다.


이러한 방송 내용에 대해 원고는 2007년 9월 10일 해당 방송사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조정을 신청했다. 언론중재위원회는 같은 해 10월 5일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을 명하는 직권조정 결정을 내렸다(2007서울조정344). 이러한 언론중재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원고와 피고 모두 불복, 이의를 신청하여 자동으로 소송이 시작됐다.

재판에서 원고는 먼저 방송사 측이 자신에 대한 허위 사실을 보도하여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의 동의도 받지 않고 대화 내용을 음성 변조 없이 그대로 방영함으로써 초상권과 음성권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원고는 방송사에 명예훼손으로 인한 위자료 3,500만 원, 초상 및 음성권 침해로 인한 위자료 500만 원, 도합 4,000만 원의 위자료와 허위 보도에 따른 정정보도를 청구했다. 이러한 원고의 청구에 대해 1심 법원은 일부를 인용하여 방송사에 정정보도를 명하고 명예훼손으로 인한 위자료 1,000만 원, 초상권 침해 등으로 인한 위자료 100만 원, 도합 1,100만 원을 지급할 것을 명령했다(서울남부지방법원 2008. 7. 24. 선고 2007가합 21642 판결). 원·피고는 1심 판결 중 각자의 패소 부분에 대해 항소했다. 항소심 법원의 판단은 1심 법원과 동일했다. 원·피고의 항소는 모두 기각됐다(서울고등법원 2009. 6. 3. 선고 2008나80052 판결). 이러한 항소심 판결에 대해서는 피고(방송사)만이 상고했는데 대법원은 피고 측의 주장을 상당 부분 받아 들여 기존의 원고 승소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항 소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대법원 2009. 10. 29. 선고 2009다49766 판결).

파기 환송심 재판부는 정정보도 및 명예훼손으로 인한 위자료와 관련해 “이 사건 방송 보도 내용은 원고가 미용 가격표를 게시하지 않았다는 취지는 아니고, ○○○(피해자)이 이 사건 미용실에 들어가 커트를 하는 동안 앉아 있던 미용의자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미용 가격표가 붙어 있었는데 원고가컷, 크리닉컷, 디자인컷과 일반컷을 구별함이 없이 커트를 마친 후 위 미용 가격표가 게시되어 있음을 이유로 컷, 크리닉컷 내지 디자인컷의 가격인 5만 원을 일방적으로 지급받았다는 점을 압축, 강조하거나 수사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이 사건 방송 보도는 그 내용 전체의 취지를 살펴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어 진실성이 인정된다”며 기각했다. 또 초상권 침해로 인한 위자료와 관련해서도 원고의 얼굴이 직접적으로 방영된 바 없다며 기각했다. 그러나 음성권 침해로 인한 위자료와 관련해서는 원고의 음성권 침해 주장을 인정해 해당 방송사에 위자료 100만 원을 지급하도록 판결을 내렸다.

◉ 판결의 요지

(1) 사람은 자신의 음성이 자기의 의사에 반하여 녹음·재생·방송·배포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고 할 것이고, 타인의 음성을 본인의 동의 없이 녹음하여 공중에게 공표하거나, 공표에 동의한 경우라도 본인이 예상한 것과 다른 방법과 용도로 공표한 경우 이는 타인의 음성권을 침해한 것으로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2) 살피건대 피고가 원고의 음성을 변조하지 않은 채 그대로 방송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고, 원고의 음성이 방송된 부분이 비록 짧기는 하나 그 내용이 방송 전체의 취지에 비추어 원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거나 원고의 영업에 악영향을 미치는 등 부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원고가 자신에게 불리한 위 인터뷰 내용을 음성변조 없이 그대로 방송하는 데 동의하였다는 증거도 없는 이상 피고가 원고의 음성을 변조 없이 그대로 방송한 것은 원고의 음성권 침해로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피고는 이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3) 또한 이 사건 방송 보도의 내용 및 목적에 비추어 볼 때, 원고의 인터뷰는 그 내용이 전달되면 충분할 뿐 위와 같이 원고의 음성을 변조 없이 그대로 방송하는 것이 방송 목적의 달성에 반드시 필요했다거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불가결했다는 사정 등도 인정되지 않으므로 달리 위법성조각 사유도 인정되지 않는다.

◉ 기사 쓰기 적용

초상권이나 성명권과 마찬가지로 음성권은 비교적최근 들어 인정되기 시작한 권리다. 언론 보도와 관련된 법원의 판결 동향을 분석한 한 논문에 따르면 1980년대 후반 들어 언론보도 관련 분쟁을 민사적으로도 다투기 시작했고, 1990년대 들어서는 명예훼손소송의 활발한 제기로 관련 법리가 정교하게 발전했다고 한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면서 생긴 주목할 만한 언론분쟁 양상의 변화로는 명예훼손으로 국한됐던 인격권의 대상이 초상권, 사생활의 비밀, 음성권 등으로 다양하게 펼쳐졌다는 점을 들었다.

사실 초상이라든가 음성, 성명 등이 개인의 인격적 가치를 구성하는 일부분이라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형성돼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 근거가 명확하지 않았을 뿐이다. 초상권 침해를 다룬 종전의 판결문을 살펴보면 초상권에 대한 근거 조문으로 헌법 제10조와 제17조, 민법 제751조 등을 들고 있지만 이들 규정에 ‘초상권’ 내지는 ‘초상’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 2005년 언론중재법이제정된 이후 초상권을 비롯한 음성권·성명권 등 기타 인격권의 법적 근거가 한층 더 명확해졌다. 언론중재법 제5조 제1항에서는 사람의 명예,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초상·성명 등과 더불어 ‘음성’을 인격적 가치로 규정하고 있다. 이제는 기자들도 사람의 초상·성명·음성 등이 법적으로 보호받는 인격적 가치임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위 사건에서 원고는 음성권 침해 외에도 초상권침해, 명예훼손을 함께 주장했다. 그런데 법원은 원고의 명예훼손, 초상권 침해 주장을 모두 배척하면서도 “원고의 인터뷰는 그 내용이 전달되면 충분할 뿐 위와 같이 원고의 음성을 변조 없이 그대로 방송하는 것이 방송 목적의 달성에 반드시 필요했다거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불가결했다는 사정 등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여 음성권 침해만은 인정했다. 또 음성권이 자기 결정권의 일종으로 음성에 대한 녹음·공표 등 처분행위 전반에 당사자의 의사가 중요하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녹취록에 나타난
음성권 침해 관련 방송 분량이 많지 않은 것을 보면 원고의 육성이 나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성권 침해를 인정했으니 시간의 길이는 음성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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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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