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사실에 대한 보도 시 주의할 점


양재규
언론중재위원회 정책연구팀장·변호사


기자도 전문가 시대다. 의학전문기자, 경제전문기자라는 말은 이미 익숙하고 이 외에도 책전문기자, 등산전문기자, IT전문기자, 스포츠전문기자, 자동차전문기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기자들이 있다.

과학 역시 전문기자를 필요로 하는 분야 중 하나다. 과학적 주제를 다룰 경우 전문적 식견과 안목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과학저널리즘을 전공한 한 교수는 ‘사실에 대한 파악이 부족하면 정보는 왜곡될 수 있다. 온갖 추측과 유언비어가 난무하게 되고 오해를 바탕으로 한 분란을 낳게 되며, 결과적으로 사회 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해당 분야는 과학기술 전문가들의 관점을 통해 보도돼야 하며, 정확한 용어와 정보를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썼다(진달용, ‘사이버 범죄 첨단화 전문기자 양성 서두르자’, <신문과방송> 2011년 6월
호 50쪽).

흔히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표로 하는 것이 ‘과학’이고 ‘과학적’이라고 하면 정확성이나 타당성이 당연히 담보돼 있는 것 같지만 과학 분야에서 다루어지는 문제 중에는 불확정적이며 논쟁적인 것들이 많다. 이러한 과학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한 기사가 보도될 경우 아무리 불확정적이거나 논쟁적인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일단 ‘과학적 연구 결과’라는 이유만으로도 기사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는 상대적으로 높아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과학적 사실을 보도하거나 과학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보도할 경우 어떤 면에서는 보다 신중히 접근할 필요
가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과학적 사실을 보도하는 경우 기자가 주의할 점은 무엇인지 지난 9월 2일 대법원에서 선고된 MBC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관련 민사 판결을 통해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 사건의 개요

2008년 4월 18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이 우리에게 불리한 쪽으로 개정됐다. 개정 전에는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살코기의 수입만 허용됐다. 그러나 개정된 수입위생조건은 30개월이 넘은 쇠고기(뼈와 내장도 포함)의 수입도 허용했다. 나아가 30개월미만의 경우에는 광우병을 일으키는 물질(변형 프리온 단백질)이 다량 함유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부위(뇌·눈·척수·척추·머리뼈·편도·회장원위부) 중 일부 마저도 수입할 수 있게 됐다.

이 와중에 MBC는 같은 달 29일 ‘PD수첩’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편을 방송함으로써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를 공론화했다. 방송의 주된 취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의 불리한 개정으로 국내에 수입할 수 있게 된 미국산 쇠고기 때문에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MBC는 이 보도를 통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에 임한 정부의 태도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PD수첩’ 방송 내용에 대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 생조건 개정을 주도한 농림수산식품부가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농림수산식품부에서는 MBC ‘PD수첩’ 내용 중 상당 부분이 허위임을 주장하면서 같은해 5월 6일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 및 반론 보도를 구하는 조정을 신청했다. 사건은 조정으로 마무리되지 못하고 법원 재판으로 이어졌다.

한편 다른 쪽에서는 MBC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형사 절차가 개시됐다. 또 미국산 쇠고기 수입업자 및 국내 유통업자들이 MBC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MBC와 ‘PD수첩’ 제작진이 민·형사상 각종 소송으로 포위된 형국이었다<표>.

재판은 대체적으로 MBC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흘러갔지만, 농림수산식품부가 제기한 정정 및 반론 보도 청구 소송에서만큼은 MBC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는 판결이 연거푸 선고됐다. 마침내 2011년 9월 2일 대법원에서 사실상 관련 재판에 종지부를 찍는 판결 두 건을 선고했다.

형사재판은 무죄였지만, 민사재판의 결과는 역시 일부 패소였다. 다만 대법원은 항소심이 정정보도를 명했던 세 가지 쟁점 중 두 가지(미국에서 인간 광우병이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의 대응조치에 관한 보도 부분 및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합의와 관련한 우리 정부의 협상 태도에 관한 보도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적 주장이 아니라 의견의 표명일 뿐이므로 정정보도가 필요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결과만 놓고 보면 MBC는 관련 재판 대부분을 이긴 셈인데, 유독 한 가지 쟁점에서 보도의 허위성이 인정됐다. 바로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한국인의 유전자형과 인간광우병 발병 사이의 상관관계 문제였다.

이 점에 관한 MBC의 보도는 다음과 같다.

“한국인 500여 명의 유전자 분석을 실시한 결과 유전적으로 광우병에 몹시 취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프리온 유전자 가운데 129번째 나타나는 유전자형은 총 3가지. 이 중 지금까지 인간광우병이 발병한 사람 모두가 메티오닌 엠엠(MM)형이었습니다. 즉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섭취할 경우 인간광우병이 발병할 확률이 약 94%가량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섭취할 경우 광우병이 발병할 확률이 약 94%가량 된다’는 주장은 진위를 떠나 충격적이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 내지는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MBC가 이러한 주장을 대담하게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영국에서 발병한 광우병 환자 135명을 대상으로 한 과학적 조사 결과가 있었다. 해당 조사 결과에 따르면 환자의 약 96%가 엠엠(MM)형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관련 논문에서는 ‘엠엠(MM)형 유전자와 광우병 발병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MBC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인의 94%가 엠엠(MM)형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한국인이 광우병에 취약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그러나 대법원은 영국인 광우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만으로는 엠엠(MM)형 유전자와 광우병 발병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일반화하기에 부족하다고 보았다. 광우병 환자 중에는 엠엠(MM)형 유전자를 보유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엠엠(MM)형 유전자를 보유하지 않았지만 광우병이 발병한 사례가 보고됐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 대한의사협회,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역시 인간광우병의 발병에 다양한 유전자가 관여하고 하나의 유전형만으로 인간광우병 발병 위험성이 높아진다거나 낮아진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견해를 표명하고 나섰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대법원은 MBC의 해당 보도부분을 허위의 사실로 보아 ‘특정 유전형만으로 인간광우병의 발병 확률을 단정할 수 없고 따라서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섭취할 경우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약 94%에 이른다고 할 수 없다’는 취지의 정정보도를 명한 항소심의 판단이 정당했다고 판시했다.



◉ 판결의 요지

(1) 과학적 이론은 언제나 정당한 것이거나 증명이 가능한 것이 아니고, 과학은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므로 불확실성은 과학의 정상적이고 필수적인 특성이다.이렇듯 불확실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는 과학적 연구를 다루는 언론으로서는 과학의 불확실성을 확신하고 그 과학적 연구의 가정과 전제를 잘 살펴서 신중한 자세로 보도하여야 한다. 그리고 과학적 불확실성은 그 과학적 연구가 첨단과학이거나 논쟁적인 과학적 주제에 관한 것일수록 높아지는 것이므로, 언론은 보도 과정에서 과학적 연구의 한계를 언급하지 아니하거나 근거 없이 그 의미를 확대하여 보도하는 것을 경계하여야 한다.

(2) 현재까지의 과학 수준이나 연구 성과에 의하여 논쟁적인 과학적 사실의 진위가 어느 쪽으로든 증명되지 아니한 상태에 있음이 분명하고, 아직 그러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 학계에서 일반적·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경우 언론이 논쟁적인 주제에 관한 과학적 연구에 근거하여 그 과학적 연구의 한계나 아직 진위가 밝혀지지 아니한 상태라는 점에 관한 언급 없이 과학적 연구에서 주장된 바를 과학적 사실로서 단정적으로 보도하였다면 과학적 사실에 관한 언론 보도는 진실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3) 따라서 그 언론 보도의 내용에 관한 정정보도를 청구하는 피해자로서는 과학적 사실이 틀렸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증명할 필요 없이 위와 같이 과학적 사실의 진위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 있다는 점을 증명함으로써 그 언론 보도가 진실하지 아니하다는 데에 대한 증명을 다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 기사 쓰기 적용

그동안 법원은 언론 보도의 진실성 문제와 관련해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아 보도 내용의 중요 부분이 진실에 합치한다면 그 보도의 진실성은 인정된다”고 줄곧 판시해 왔다. 이런 식의 판단 기준에 비추어 보면 해당 보도상의 문제점(한 가지 예를 들자면 ‘지금까지 인간광우병이 발병한 사람 모두가 엠엠(MM)형이었다’는 부분)은 사소한 부분에 오류가있거나 수치를 다소 과장한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볼 수도 있었다. 이것은 개인적인 의견일 뿐만 아니라 대법관 세 사람의 의견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다수 대법관들은 이번에 조금은 다른 관점을 취했다.

판시 사항에 자세히 나와 있는 것처럼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는 과학적 연구 주제를 언론에서 다룰 때는 반드시 신중한 자세로 보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보도 과정에서 과학적 연구의 한계를 언급해야하며 근거 없이 그 의미를 확대해석해서도 안 된다. 좀 더 간단하게 말하자면 과학적 사실을 보도할 때 함부로 단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연구의 한계에 대한 언급 없이 단정적으로 보도하면 그 언론 보도는 진실하지 아니한 것으로 보겠다는 것이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숨은 요지라고 본다.

동시에 이번 대법원 판결에는 ‘입증책임의 배분’이라는 좀 더 난해한 법리적인 쟁점 또한 포함돼 있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볼 때 인간광우병 발병과 엠엠(MM)형 유전자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지 혹은 없는지 알 수 없다. 어떤 연구 결과를 보면 상관관계가 있어 보이지만 학계에서는 아직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 이럴 때 일반인은 “잘 모르겠다”, “알수 없다”고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재판은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일단 소송이 제기되면 법원은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려야 한다. “모르겠다”, “알 수 없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이런 재판의 속성으로 인해 필요한 것이 ‘입증책임’이다.

‘입증책임’이란 어떤 사실을 증명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관한 문제인데 입증책임이 효력을 발휘하는 결정적인 경우가 바로 ‘사실의 진위를 확인할수 없는 때’이다. 사실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으면?입증책임을 지는 사람이 불이익을 받게 된다.

그러면 이번 사건처럼 보도가 허위임을 주장하며 정정보도를 청구하는 경우 ‘보도의 허위성’에 대한 입증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보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자, 즉 원고 측에 입증책임이 있다. 만일 보도의 허위성을 원고 측이 증명하지 못하면 언론사 측은 정정보도 청구 소송에서 쉽게 승소할 수 있다.

문제는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이 보도의 허위성에 관한 입증책임을 피해자에게서 언론사로 전환시키는 것과 같은 결론을 내린 데에 있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언론 보도에 제시된 과학적 사실이 틀렸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증명할 필요 없이 그 진위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 있다는 점만을 증명하면 보도의 허위성 입증책임을 다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이번 판결대로라면 정정보도 청구 소송의 입증책임에서 다소 유리한 위치에 있었던 언론사가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다만 이러한 식의 입증책임 전환이 모든 경우에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며 과학적 사실에 관한 보도에 국한돼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고
Posted by inhana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