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은 6중전회 폐막 후 발표한 ‘공보’를 통해 국가의 문화 소프트파워를 강화하고 중화문화의 영향력을 키우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면서 사회주의 핵심 가치 체계는 나라를 부흥케 하는 정신으로 국민교육과 정신문명 건설 과정에 녹아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지도부는 왜 이 시기에 소프트파워와 문화안보를 화두로 던졌을까?



주춘렬 세계일보 베이징 특파원


“국제 여론 판도에서 ‘서강아약’(西强我弱·서방은 강하고 중국은 약함)의 구조가 아직 변하지 않았다. 반중국 세력들은 끊임없이 중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논조를 쏟아내고 있다.(…) 의식 형태와 가치이념의 차이, 냉전식 사고 탓에 중국을 바라보는 국제 여론의 편견, 회의나 의혹은 여전하고 어떤 이들은 민감한 문제에 제멋대로 떠들며 중국의 국내 안정까지 해치고 있다.”


중국 지도부, 때아닌 문화안보 선언

중국의 언론 정책을 총괄하는 중국 국무원 신문판 공실 왕천(王晨) 주임이 지난 10월 18일 공산당 중앙당교 기관지인 학습시보(學習時報)와 가진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왕 주임은 “중국 관련 국제 여론이 상당히 복잡하고 매우 심각하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바로 보고 이에 반드시 대응해야 한다”면서 “국제 여론 투쟁은 중국의 이익과 안전, 사회 안정과 민족 단결을 수호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대내외의 전체 틀 속에서 선전정책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면서 해외 부문에 주력해야 한다”면서 그 과제로 중국 관련 여론과 이에 대응한 홍보 내용의 파악, 중화문화의 국제적 영향력과 경쟁력 강화, 신흥 매체의 능력 제고, 국제 홍보 능력과 외부 세력의 적극 활용 등을 제시했다. 중국이 선전 정책의 지평을 자국 내 매체·인터넷 검열과 통제에서 해외 부문의 여론 투쟁으로 넓히면서 서방과의 전방위 이데올로기 투쟁에 나설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중국 공산당은 10월 15일부터 18일까지 사흘간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제17기 중앙위원회 제6차 전체회의(17기 6중전회)를 열어 ‘문화체제 개혁을 심화하고 사회주의 문화 대발전과 번영을 촉진하는 중대 문제에 대한 결의’를 통과시켰다. 6중전회는 폐막후 발표한 ‘공보’(公報)를 통해 국가의 문화 소프트파워를 강화하고 중화문화의 영향력을 키우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면서 사회주의 핵심 가치 체계는 나라를 부흥케 하는 정신으로 국민교육과 정신문명 건설 과정에 녹아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왕 주임의 발언과 맥이 닿아 있는 셈이다.


전방위로 확산되는 이데올로기 전쟁

중국 지도부는 이 시기에 왜 소프트파워와 문화안보를 화두로 던졌을까? 중국 안팎에서는 엇갈린 의견이 나온다. AP 통신은 대내외 불안이 커지자 중국 지도부가 애국심에 기대 지배의 합법성 강화에 나섰다고 진단했다. 대내적으로는 빈부격차와 부패 등 고속성장의 부작용이 불거지고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 등 사회적 미디어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이집트와 튀니지 등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재스민 혁명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중국 지도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내년 가을로 예정된 권력교체가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베이징의 소식통은 “1년 남짓 임기를 남겨둔 현 지도부로서는 권력분쟁의 불씨가 될 수도 있는 정치체제나 민주개혁을 의제로 채택하기 힘들다”면서 “이 때문에 비교적 논란이 적은 문화 문제를 다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 내부에서는 유럽의 재정위기 등 글로벌 위기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부동산과 물가 등 다급한 국내 경제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는 점에 주목해 지도부가 한가하게 공허한 문화에 집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는 달리 문화개혁은 이미 오래전에 중앙위의 순차적 회의 주제로 정해져 있었다는 반론도 나온다. 통상 중앙위는 1, 2중전회 때 중앙위 총서기와 중앙위 위원 등 당 지도부를 결정하고, 3중전회에서는 경제 분야, 4중전회에서는 당 건설, 5중전회에서는 사회발전 계획의 성과, 6중전회에서는 정신과 의식 개혁을 다루는 경향을 보여 왔다는 설명이다.

17기 6중전회의 결의가 통과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지난 10월 23일. 후난성(湖南省) 난웨(南岳)에서 가급적 종교를 기피해 왔던 중국 정부가 이례적으로 도교 국제포럼을 열었다. 이 포럼에는 권력서열 4위인 자칭린(賈慶林) 전국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을 포함한 고위층과 미국, 프랑스, 스페인 등 해외의 도교 관계자 500여 명이 대거 참석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중국 정부 차원에서 도교 국제 행사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이 통신은 전했다. 자 주석은 이날 연설에서 “도교는 중국의 전통문화이자 인류 문화유산의 중요한 가치”라면서 “도교를 통해 세계 평화와 공동 번영의 길을찾자”고 주장했다.

중국에서는 문화혁명(1966~1976년) 시기에 도교 문화가 파괴되기도 했으나 1970년대 후반에 다시 복원돼 현재 중국 전역에 10만 명의 도사와 5,000여곳의 도교사원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도교협회 런파룽(任法融·73) 회장은 “‘대국은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도교 창시자 노자의 가르침은 현대의 폭력과 전쟁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 “중국이 문화개혁과 발전의 청사진을 내놓았으며 도교는 이 나라의 소프트파워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지도부도 해외의 영향력 있는 매체에 직접 기고문을 게재하며 친중국 여론몰이에 애쓰고 있다.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은 지난 9월 영국을 방문했을 때 텔레그래프에 기고했다. 다이빙궈 위원은 기고문에서 “중국이 외세의 압제를 경험했기 때문에 그런 어려움을 다른 나라에 주지 않을 것”이라면서 중국의 부상을 경계할 필요가 없음을 강조했다.

앞서 6월 23일에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유럽 순방에 맞춰 중국의 물가 억제를 자신하는 글을 파이낸셜타임스에 싣기도 했다. 관료들의 해외 기고는 중국의 소프트파워를 증대시키고 공공외교를 강화하는 캠페인의 한 부분으로 지난 2009년부터 추진돼 온 국영 매체의 해외 진출과도 관련이 깊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영국 노팅엄대의 라이훙이 교수는 “중국 당국이 최근 수년간 국제 홍보 캠페인에 주력하고 있으며 외국 주재 관리들에게 국제적인 매체들과 상호 작용을 많이 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내 미디어와 인터넷 통제 강화

대내적으로는 매체와 인터넷 검열이 강화되고 대대적인 정풍 운동도 뒤따를 듯하다. 중국 당국은 당장 웨이보 장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베이징 시 공산당위원회 기관지인 베이징일보
는 18일 베이징 시가 유언비어를 규제하기 위해 블로그 사이트 등에서 실명제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베이징 시는 또한 전문가와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온라인 보안팀을 꾸리고 정보가 퍼져 나가는 것을 규제하기 위한 평가 시스템도 구축할 것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에 따라 웨이보와 같은 마이크로블로그 사이트를 이용할 때는 실명과 신분증 번호 등에 대한 입증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쑹젠우(宋建武) 중국정법대학 저널리즘·커뮤니케이션스쿨 학장은 “당국이 실명제를 시행할 적절한 때를 기다려 왔다”면서 “실명제는 인터넷 사용자들이 글을 올리거나 다른 사용자의 글을 다시 옮길 때 책임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를 가려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당국은 또한 허위 정보 유포자에 대한 추적과 처벌을 대폭 강화한다는 입장도 분명히 하고 있다.

베이징의 소식통은 또한 “6중전회에서는 신문과 방송, 잡지 및 출판 등 매체별로 제각각인 관리감독 기구 및 제도를 통합하는 방안이 심도 있게 논의됐다”면서 중국 당국이 강도 높은 매체 단속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는 아울러 사회주의 문화 발전을 명분으로 내세워 드라마, 공연, 예술 등 문화 전반에서 상업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대한 규제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이미 위성TV 등에서 오락과 선정적인 프로그램을 축소하기로 했으며 방송 광고도 규 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17기 6중전회가 이미 사회주의 핵심 가치를 당과 사회의 보편적 지도 원리로 선언한 만큼 당국은 이 잣대를 문화 콘텐츠의 평가에 적용, 정풍 운동에 돌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문화산업에 대대적 재정 지원 예고

중국 당국은 문화 통제 및 구축과 더불어 문화산업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을 태세다. 차이우(蔡武) 중국 문화부장은 “2016년 문화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5%를 차지, 국민경제의 기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신경보(新京報)가 최근 보도했다. 중국의 문화산업은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연평균 23% 이상 성장했으며, 올해 규모가 1조 1,000억 위안으로 GDP의 2.78%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 당국이 그동안 의욕적으로 추진해 왔던 거대 미디어 그룹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의 상푸린(尙福林) 위원장은 17기 6중전회 이후 “문화 관련 기업의 상장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면서 관영 웹사이트의 상하이 증시 상장을 승인했음을 시사했다고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가 보도했다. 중국 증권가에서는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와 관영 통신사인 신화통신, 관영 CCTV가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인민일보의 웹사이트인 ‘인민망’(人民網)이 첫 번째로 상장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중국증권보(中國證券報)도 향후 문화산업 분야에 정부의 재정 및 정책 지원이 쏟아질 것이라면서 관영 매체가 가장 큰 혜택을 볼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당국이 이처럼 돈을 쏟아붓는 이유는 서방에 대응한 ‘문화의 저우추취’(走出去·해외진출)를 겨냥한 것으로 분석된다. 베이징 외국대학 동서관계센터의 톈천산(田辰山) 교수는 인민망과 가진 인터뷰에서 “문화산업은 단순히 오락 혹은 산업적 차원이 아니라 영혼 프로젝트”라면서 “중국은 자신의 고급 문화에서 저우추취 가치가 있는 콘텐츠를 찾아내야 문화적 자신감을 가지고 서방과 평등한 교류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의 거대한 영혼 프로젝트가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문화평론가인 상하이대학 주다커(朱大可) 교수는 “문화산업은 관리될 수 있지만 문화는 그렇지 않다”면서 “문화적 창의성은 자유와 개방적인 시장 환경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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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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