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군기지 기사로 돌아본 갈등보도의 과제

황치성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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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전통적으로 ‘갈등이 없다면 뉴스도 없다.’ 라고 할 정도로 갈등을 중요한 요소로 다룬다. 언론이 사회갈등 이슈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갈등의 전개과정과 그 결과가 갖는 중요성 때문이다.

또 갈등은 한 사회의 극적인 요소를 담고 있기 때문에 언론의 보도 틀에 적합한 소재가 된다. 이런 이유로 신문이나 방송뉴스 기사에서 갈등 관련 기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정확한 해설 대신 ‘편들기’만 난무


갈등을 강조하는 언론의 속성을 그대로 반영하듯 최근 제주 해군기지 건설 문제를 둘러싸고 언론의 관심은 크게 달아올랐다.

경향신문과 조선일보 두 신문이 3월 한 달간 보도한 제주 해군기지 관련 기사건수가 총 115건에 이를 정도였다.

특히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 해안 발파가 시작된 직후인 3월 8일부터 13일까지 5일간은 두 신문이 하루 평균 6~7건을 게재할 정도로 비중 있게 다뤘다.

또 기사유형에서도 스트레이트 기사가 53.9%인데 반해 복합형 기사와 해설 기사가 14%, 의견 기사가 32.2%의 분포를 보였다.

과거 신문의 갈등보도에서 사건 중심의 스트레이트 기사가 최소 80% 이상 차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두 신문이 이번 제주 해군기지 건설문제에 관해 진지하게 접근했음을 알 수 있다.

사회 갈등보도와 관련해서 외양 면에서 진일보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기사내용 면에서는 여전히 문제점을 드러냈다. 먼저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많이 다루었음에도 사건의 쟁점이나 배경을 다루는 문제는 소홀히 했다.

갈등 이슈를 둘러싼 합리적인 토론의 기초는 정확한 사실 이해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사건의 핵심내용과 그 배경에 관한 상세한 보도는 갈등해결의 접점을 찾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경향신문과 조선일보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 이슈를 보도하면서 상대적으로 의견 기사를 많이 게재한 대신 해설형 기사는 각각 5건과 3건씩 보도하는 데 그쳤고 그나마 해설 기사의 요건인 전문성과 심층성 수준도 미흡했다.
 
예컨대 조선일보의 경우 3월 9일자 “연산호, 말똥게, 맹꽁이, 구럼비… 끝없는 반대 구실 찾기” 기사에서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측의 주장을 비교적 자세히 소개했지만 미리 결론을 내놓고 반박하는 형태일 뿐이었다.

경향신문 역시 같은 날짜의 “제주 해군기지 쟁점” 기사에서 핵심쟁점을 찬반 양측으로 나누어 자세히 소개했지만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입장을 재확인하는 방식으로 결론을 맺었다.

쟁점이나 배경을 깊이 있게 다룬 기사는 적은 반면, 해군기지 건설 문제의 본질과 거리가 있는 ‘해적녀 발언’이 논란의 중심이 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해적녀에 관한 언급은 특히 조선일보에서 두드러졌는데 3월 10일부터 13일까지 제목에 ‘해적’을 언급한 기사가 무려 10건에 달할 정도로 이 사건을 비중 있게 다뤘다.

어떤 이유에서건 해적이라는 표현은 부적절했지만 사건의 본질과 거리가 있는 발언을 10회나 제목으로 올린 것은 문제가 있다.

둘째, 대립과 불일치를 강조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이런 현상은 경찰과 시위대가 대치하고 있는 사진에서뿐만 아니라 제목에서도 드러났다.

예를 들면 조선일보의 “시위대 30여 명 장도리로 펜스 뚫고 난입”(3월 10일), “해군을 해적으로 몰고 ‘정권 잡으면 하고’ 윽박지르는 야당”(3월 10일), “제주 해군기지 반대는 종북 선전선동”(3월 21일) 기사와 경향신문의 “반대한 목소리 제주도와 밀어붙이는 중앙정부 정면충돌”(3월 8일), “구럼비와 함께 폭사한다는 주민 생길까 걱정”(3월 9일), “공지영, 시민 때리고 물속에 처넣은 사람 해적 맞다”(3월 12일) 기사 등이다. 다분히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표현이다.

드라마틱한 표현이 제목 편집의 묘미이자 관행이라 할 수 있으나 사회적 갈등을 다루는 뉴스에서 제목 편집은 신중해야 한다.

특히 제목에 나타난 자극적이고 감정적인 언어는 갈등 당사자와 일반 국민에게 ‘갈등과 폭력의 등식화’라는 인식을 낳고 더 나아가 집단 간 극단화된 대립감정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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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갈등 상황에서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 공론장 역할이 미흡했다.

사회적 갈등이 일정한 객관적 상황에 대한 개인 또는 집단의 주관적 인식을 통해 전개·발전한다고 볼 때 갈등 당사자의 상황 인식은 갈등을 완화시키거나 증폭시키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적 갈등 사안이 발생했을 때 갈등의 중재자이자 공론장으로서 언론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지만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관한 사안을 다룰 때 이런 역할이 극히 미흡했다.

우선 해군기지 건설 문제를 놓고 지면을 통해 토론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의견 기사가 많았지만 의견 제시의 주체는 해당 신문사의 편집방향과 일치하는 사람으로만 채워졌다.
 
예컨대 해군기지 건설 문제와 관련하여 조선일보에 등장한 외부 칼럼니스트의 면면을 보면 전 해군작전 사령관,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육군본부 정책실장 등 정부와 해군측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뿐이었다.

경향신문의 외부 필진 또한 강정사랑제주사름 공동대표, 평화네트워크 대표, 한예종 영상원생 등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경향은 쟁점을 상세하게 다루는 해설기사에서도 드러났다.

조선일보는 3월 9일자 “연산호, 말똥게, 맹꽁이, 구럼비… 끝없는 반대 구실 찾기” 기사에서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측의 주장과 전문가의 반박을 쟁점 비교 형식으로 소개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야당이나 반대측의 주장을 먼저 제시하고 그에 대한 대답형식으로 전문가나 정부쪽 의견을 완결 형식으로 제시한다.

이런 식으로 쟁점을 비교하면 후자, 즉 ‘전문가나 정부쪽 의견은 항상 타당하다’는 결론이 나게 마련이다. 기사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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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이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이라 반드시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니었다.

김진표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8일 국회에서 “국내 유일의 바위습지이고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인 구럼비 해안 폭파 작업을 당장 중단하고 연행자를 즉각 석방하라”고 말했다.

유네스코 한국지부는 이날 본지에 “강정마을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강정마을은 생물권 보전지역으로부터 600m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의 쟁점 비교도 이와 유사했다. 다음은 경향신문 3월 10일자 “제주 해군기지 쟁점” 제하의 기사 일부다.

… 국방부는 사업부지 내 구럼비 바위가 제주 전역에 흔하게 보이는 해안 노출암이라며 평가절하하고 있다. 강정 앞바다 역시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과 관련 없어 해군기지로 만들어도 무방하다는 입장이다.

제주환경운동연합 이영웅 사무국장은 “육상 습지의 생태환경이 바닷가 암반에 조성된 곳은 구럼비가 제주에서 유일하다”고 말했다.

구럼비 일대 10만 5,295㎡는 2004년 제주특별법에 의해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 고시됐다. 매립이나 개발이 금지되기 때문에 군사기지 건설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사건의 핵심에 대해 전문적이고 객관적으로 다뤄야 할 해설 기사에서조차 논의다운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일방적인 결론으로 끝나고 만 것이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대해 대화와 토론의 공간을 제공하고, 공적인 사안을 두고 합리적인 의견을 이끌어내는 공론장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은 언론의 정파성 문제


갈등은 시대나 지역을 막론하고 항상 발생했다. 외국의 인종·민족·종교적 갈등은 오래됐을 뿐만 아니라 시위나 폭동을 넘어내란·전쟁으로 이어질 정도로 강도 높게 표출돼 왔다.

이를 보도하는 외국 언론 역시 전통적인 갈등보도 방식에 편승해서 갈등의 중재자로서, 이슈의 공론장으로서 역할을 방기한 사례가 많았다.

그 과정에서 시민사회단체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와 언론단체 및 언론인의 자성에 힘입어 ‘구체적인 보도 가이드라인의 제정과 실천’, ‘새로운 갈등보도 기법의 개발과 교육’ 등 전통적 갈등보도 관행 극복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전개해왔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 상황은 숱하게 비판받아온 관행을 아직껏 답습하고 있다. 그에 더해 언론의 정파성 때문에 동일한 사건이 전혀 상반되게 보도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언론계 내부에서조차 ‘갈등을 부추기는 주범이 바로 언론’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갈등보도 관행이 갈등을 더 증폭시키고 국가적으로 소모적인 논란을 확산시킨다는 질책도 거세지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더해가는 언론에 대한 불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언론의 갈등보도 관행에 대해 ‘사실에 기초한 정확한 보도’, ‘저널리즘원칙 회복’ 등 다양한 처방이 제시되긴 한다. 물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인 치유가 되기는 어렵다.

바로 한국 언론에 고질화되어 있는 정파성 때문이다. 정파성이 상존하는 한 사실은 ‘어느 한쪽의 사실’이고 저널리즘의 원칙 또한 ‘어느 한쪽의 원칙’에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언론계 내부의 치열한 고민과 토론, 합의의 룰을 만드는 데서 찾아야 한다. 이것은 흑백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미국 언론에서 적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내 언론계가 문제점의 심각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 해법을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의 언론관련 토론회에서 이 주제가 자주 언급되는 것이 그 증거다.

언론계 내부에서 사회 갈등을 생산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합의의 룰을 만들고 실행하기를 기대해본다.


* 제주 해군기지 건설 추진경과 개요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1992년 연안항 기본계획으로 화순항 해군부두 계획이 최초로 논의되었고 2007년 이후 제주 강정마을이 대상지로 부각되면서 제주도민의 찬반 논란이 지속된 사안으로 2007년 5월 ‘김태환지사 제주 해군기지 유치 결정’, 2008년 9월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세계적인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개발방안 발표’(환경영향평가 실시 논란), 2012년 2월 총리실 ‘기술검증위원회 결과보고서 공개’(설계 오류 논란), 2012년 3월 도지사 및 지역 국회의원 ‘공정하고 객관적인 검증’ 촉구 공동 기자회견 개최, 2012년 3월 ‘해군기지 공사 재개’(발파)와 ‘제주도의 공유수면매립공사 정지 행정명령’ 등의 과정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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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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