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같이 가야 멀리 간다’ 시리즈

한상준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지난해 경제·산업계의 화두는 단연 ‘동반성장’이었다. ‘압축적 고도성장’이라는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는 지난 40년간의 한국경제가 초래한, 어찌 보면 필연적인 결과물이었다.

초고속 성장을 위해 정부 지원속에 대기업이 협력업체를 발판 삼아 이윤을 극대화하는 모델이 구축되었다는 사실에 이견을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전처럼 보도하려면 시작도 마라”


이 같은 모델의 장점도 있었다. 한국이 빠른 시간 안에 세계 경제의 주류로 편입하는 지름길이 되었지만 폐해도 컸다. ‘갑을(甲乙) 관계’로 표현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수직적인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지난 40년 동안 형성된 경제 구조로는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됐다. 2011년 많은 언론사는 동반성장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기사를 그야말로 ‘쏟아 냈다’.

하지만 동반성장이 왜 필요한지, 현실이 어떠한지, 바람직한 방향이 무엇인지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것이 동아일보의 ‘같이 가야 멀리 간다’ 시리즈 시작의 계기가 됐다.

필자가 당시 속한 팀이 자동차·중공업·중소기업 분야를 담당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자동차와 중공업은 산업의 특성상 수많은 협력업체를 거느린다.

자동차만 해도 차 한 대에 투입되는 부품이 2만~3만 개에 육박한다. 대형 자동차기업과, 그곳에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이 모두 출입처였다. 을의 입장인 중소기업을 취재하다 보면 중소기업이 겪는 어려움에 눈길이 갔다.

특히 지난해 4월부터 7월까지 동아일보에서 연재한 ‘뿌리기업’ 시리즈 취재 과정에서는 다양한 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갑의 입장인 대기업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출입처인 자동차·중공업 분야 대기업 가운데는 동반성장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곳도 있었고, 일방적인 ‘대기업 때리기’ 분위기를 안타까워하는 곳도 있었다. 무조건 ‘대기업이 잘못했다’라는 식의 보도가 주류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동반성장 시리즈를 위해 꾸려진 특별취재팀은 어느 한쪽에게 일방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보도보다는, 동반성장을 위한 방향을 보여주는 기사를 쓰는 데 힘을 모으기로 했다.
 
‘지적’보다는 ‘발전’에 방점을 두기로 한 것이다. 본격적인 취재에 앞서 국내 동반성장의 발전방향 모색을 위한 전문가의 조언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위원회 구성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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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가야 멀리 간다’ 시리즈의 첫 번째 기사가 보도된 것은 2011년 8월 12일이었는데,전문가와 동아일보 특별 취재팀이 처음 한 자리에 모인 것은 6월 말이었다.

전문가로 구성된 ‘대-중소기업 상생위원회’를 꾸리기로 하고, 위원 모시기에 나섰다. 섭외는 쉽지 않았다.

한 경영학과 교수는 “이미 언론에서 동반성장과 관련된 기사가 많이 나오지 않았느냐.”라고 완곡한 거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또 다른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그런 시리즈를 왜 하려고 하느냐?”라고 물은 뒤 “기존의 보도와 비슷한 식이라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마라.”라고 했다.

당시까지 국내 언론이 쏟아낸 동반성장과 관련된 보도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확산 가능한 성공 모델을 찾는 데도 중점을 두겠다.”라는 말로 설득에 나섰다. 냉담했던 전문가들도 설명을 듣고 나니 태도가 달라졌다.

“그걸 왜 하느냐.”라고 핀잔을 준 교수도 결국 “그런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참여하겠다.”라고 밝히며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이장우 경북대 경영학과 교수, 김승일 중소기업연구원 전략경영연구실장, 주현 산업연구원 중소벤처기업연구실장, 송창석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 동학림 IBK 기업연구소 소장, 조유현 중소기업중앙회 정책개발본부장 등 6명을 위원으로 하는 ‘대-중소기업 상생위원회’가 꾸려졌다. ‘같이 가야 멀리 간다’ 시리즈의 첫 걸음이었다.


중소기업, 정부 동반성장 정책에 ‘4.5점’


상생위원회와 특별취재팀은 첫 번째 회의에서 큰 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위원들은 “동반성장은 결국 중소기업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많이 담아야 한다.”라고 했다.

특별취재팀도 같은 방향을 생각했기 때문에 회의는 급진전됐다. 가장 중요한 것은 중소기업의 현실이 어떠한지, 그들이 심각하다고 느끼는 문제는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이 교수는 “단발적으로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소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라며 “중소기업이 처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하기로 했다. 질문지는 상생위원회의 감수를 받았다.

전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면 좋겠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협의체인 협동조합 이사장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36곳의 협동조합이 설문에 응했다.

예상은 했지만 중소기업의 불만은 상당했다. 이들은 현 정부의 동반성장 정책에 대해 4.5점(10점 만점)이라는 박한 점수를 줬다.

설문조사보다 충격적인건 주관식 답변이었다. 36곳의 설문은 모두 특별취재팀이 전화로 진행했다. 객관식 답변보다 주관식 답변을 통해 풍부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탐욕의 먹이사슬”, “소나기 피하는 식”, “1년 안에 다시 과거로 돌아갈 것” 등의 격한 표현이 쏟아졌다.

한 조합장은 “예전에는 대기업이 직접 나서서 납품단가를 후려쳤지만, 최근 들어 동반성장 분위기가 확산되니 대기업 대신 1차 협력사가 총대를 메고 납품단가를 깎는다.”라는 최신 트렌드(?)를 전해주기도 했다.

이 같은 조사로 가장 시급한 과제를 추려낼 수 있었다. 불합리한 납품단가, 기술 탈취, 중소기업 영역 침범, 인력 빼가기, 납품단가 연동제, 2·3차 협력업체의 소외, 어음 결제, 불합리한 유통 구조 등이 바로 그것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과제들은 시리즈 10번의 보도에서 매번 주요 주제로 다뤄졌다.

그렇다면 질타 받는 대기업은 어떤 입장일까. 국내 10대 그룹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도 병행했다.
 
상생위원회 위원도 “대기업이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조건 매도해서는 안 된다.”라며 “대기업 가운데 동반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곳도 있고, 그들 나름대로의 애로사항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동반성장위부터 시작해 온갖 부처에서 자료를 요구하는 바람에 똑같은 자료를 7곳에 보낸 적도 있다.”라며 “온갖 동방성장 관련 행사에 불려 다니느라 업무를 못 볼 지경”이라고 털어놨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지금까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지적만 하면 뭐하느냐.”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정말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미래 지향적인 방향을 모색해 달라.”라고 당부했다.

특별취재팀이 의도했던 바도 바로 그것이었다.


‘현실 - 대안 - 확산 모델’ 제시


특별취재팀의 광범위한 취재와 상생위원회 위원의 적극적인 협조로 기초 데이터는 충분히 수집했다. 문제는 보도를 어떤 식으로 전개하느냐였다.

특별취재팀은 여러 문제가 퍼져 있는 현실과, 그에 대한 대안, 마지막으로 대안의 확산 방법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보도하기로 합의했다. 상생위원회 위원도 적극 동의했다.

송창석 교수는 “기존의 보도와 차별화되는 것은 물론이고, 동반성장이라는 취지에도 부합한다.”라며 취재팀의 결정에 힘을 실어줬다.

특별취재팀은 전국을 다니며 대안으로 삼을 수 있는 대-중소기업 협력사례를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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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일 열린 제 6회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 시상식에서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장인 김상수 산업부 차장이 상패를 수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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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금 결제 우수 사례로 선정된 제일정밀 공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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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납품 단가 현실화를 통해 기술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테크노 힐의 모습.


결국 어느 분야 기업이든지 대-중소기업 협력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는 곳은 상생을 위한 대기업의 의지와, 대기업에만 의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뛰는 중소기업의 노력이 공통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동반성장이 대기업의 변화만을 촉구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했다.

시리즈가 보도되면서 특별취재팀 메일로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다. 한국 기업 생태계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지적도 있었고, 중소기업이 처한 어려움에 대한 절절한 하소연도 있었다.

많은 중소기업 관계자는 동반성장에 대한 건설적인 반응을 보여줬다. 이들의 조언과 의견을 ‘같이 가야 멀리 간다’ 시리즈에 최대한 많이 담으려 노력했다.

특별취재팀의 설문조사와 취재 내용을 동반성장 연구를 위해 제공해줄 수 있느냐고 학계에서 문의도 해왔다.

동아일보의 ‘같이 가야 멀리 간다’는 제6회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 언론상 신문보도부분 대상을 수상했다.

특히 심사위원장인 안병훈 KAIST교수는 “대-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다룬 동아일보의 시리즈는 단순한 문제 지적에 그치지 않고 현실, 대안,확산이라는 큰 차원의 고민을 했다.”라며 “현실감, 균형감, 깊이 있는 분석과 함께 해결방안까지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라고 밝혔다.

수상도 수상이지만, 특별취재팀이 의도한 바를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다.

더 중요한 것은 동반성장이 진정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언론 본연의 기능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번 시리즈에 대한 격려의말은 앞으로도 계속 뛰어 달라는 요청일 것이다.

시리즈가 마무리될 즈음 상생위원회 위원과 특별취재팀의 회의에서 “동반성장이라는 말이 아예 사라질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라는 말이 나왔다.

동반성장이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를 내려 더 이상 언급될 필요가 없어지는 상황이 와야 한다는 의미다. 그 시점이 조금이라도 앞당겨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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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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