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신문 ‘월정사 템플스테이 체험’

조용준 기자 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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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기를 가르며 퍼지는 법고소리가 절을 병풍처럼 감싼 오대산에 부딪혀 산울림을 만든다. 전나무 숲의 상쾌한 초록과 기운찬 대지도 용트림을 시작하며 새 생명을 깨운다.

숲에 안기듯 자리한 월정사에서 맞는 새벽이 더없이 고요하고 평화롭다. 포행(布行; 느리게 걷는 산책)에 나선 수행자는 맑은 전나무향내에 마음을 뺏긴다.

어느새 봄날의 포근한 햇살이 안개를 뚫고 숲에 가득 피어오른다. 만물이 깨어나는 어느 봄 날의 산사가 나를 깨운다.


‘비움의 여행’을 떠나다


생명이 움트는 자연과 교감하고 겨우내 잠들었던 몸과 마음을 깨우기 위해 ‘비움의 여행’을 나섰다.

숨 가쁘게 살아가는 도심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스스로 낮추는 마음(下心)을 느껴보는 것이 ‘템플스테이’ 바로 비움의 여행이다.

으레 템플스테이하면 참선과 수행을 떠올리며 겁을 먹거나 종교가 다른데 가도 되는지를 염려한다. 그러나 종교와 상관없이 불교문화와 다도, 명상 등을 경험하는 짧은 여행으로 보면 된다.

평창 오대산 월정사로 가는 길은 수백 년의 향이 난다. 전나무는 하늘을 가릴 듯 우거져 청량감을 주고, 새들의 소리에 계절의 변화를 실감한다. 도시에 지친 이에게 산사로 향하는 발걸음은 더없이 가볍다.

월정사 법륜전.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수련복으로 갈아입고 입제식에 참가했다. 속가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수행자의 법복을 입으니 마음부터가 새로워진다.

저녁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은은하게 경내에 울려 퍼진다. 적광전에 모였다. 부처 앞에 선 스님을 따라 절을 올린다.

예불 순서와 독경 등이 낯설어 얼굴에는 긴장된 표정이 역력하지만 법요집을 앞에 두고 열심히 따라한다. 예불이 끝나고 차담(茶談)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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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고찰의 고즈넉한 밤, 스님과 차를 마시며 세상사를 이야기한다. 템플스테이 참가자가 가장 관심을 갖는 프로그램이다.

“절에 무언가를 배우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편안한 분위기에서 마음을 비우고 그 안에 자신의 새로운 마음을 담아가시면 됩니다.”

차담을 맡은 각음 스님의 한마디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수행자가 말한다.

“스님,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지요. 나부터 사랑해야 세상이 행복해집니다.”

알 듯 모를 듯한 선문답이 계속된다. 찬바람이 선방의 문을 때리지만 차담 속 세상사는 열기를 더해간다. 밤 9시 30분, 산사는 달빛 하나 없는 어둠에 빠졌다.

바깥세상은 휘황한 네온사인 아래 빛을 발할 테지만 수련자는 하루를 정리한다. 명상을 통한 마음의 평정 때문인지 어느 순간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새벽 4시 장엄한 종소리가 오대산을 깨운다. 방사(수련자의 방)에서 나와 별빛을 길잡이 삼아 새벽예불에 나선다. 따끈한 온돌방에 쏟아지는 잠.

제아무리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을 다해 부처에게 귀의하겠다는 뜻)’를 되뇌어도 작고 소박한 속세의 행복은 떨치기가 힘들다.

그것도 잠시 적광전에 들어 가부좌를 틀고 앉자 제법 수행자의 티가 난다. 전날 한 차례 경험했기 때문인지 졸음은 어느새 달아나고 한결 평온한 마음에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다.

108배와 참선이 시작됐다. 수행원 원감인 해욱스님이 딱딱딱 죽비를 세 번 내리치자 순간 선방이 무거운 정적에 빠진다. 108배를 하면서 자신을 되돌아 본다.

나는 누구인가 끝없는 질문과 답 속에서 나를 찾는다. 침묵은 끝 모르게 이어졌다. 마지막절을 끝냈다. 땀으로 얼룩진 수련자의 얼굴엔 해냈다는 자부심과 뿌듯함이 묻어났다.

곧바로 참선이다. 방석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수련자들과 마주한 채 눈을 감았다. 복잡한 도시의 삶이 침범해 들어온다. 정적 속에서는 침 넘기는 소리, 몸을 움직이는 소리마저 천둥소리 같았다.
 
자꾸만 졸리고 곧게 뻗었던 등이 구부러진다. 끝을 알리는 스님의 죽비소리가 반갑다. 번뇌로 가득한 중생의 참선은 실패로돌아갔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집중을 한다는 것이 정말 어려웠어요.” “비워내고자 할수록 다른 생각들이 생겨나 머리가 터질 듯 했습니다.” 수련자가 던지는 한 마디에 참선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스님이 말한다. “참선은 어려운 게 아닙니다. 명상을 통해 생각의 다이어트가 필요합니다. 수많은 잡생각을 하나씩 정리하고 집중하는 것이 바로 참선입니다.”

오전 7시, 아침 식사가 준비됐다. 발우(拔羽)공양이다. 발우는 스님이 걸식할 때 사용했던 식기다. 네 개의 서로 다른 크기의 그릇이 수저와 함께 보자기에 싸여 있다.

스님의 지도로 발우공양이 시작됐다. 보자기를 펴고 그릇 네 개를 순서대로 놓은 뒤 밥과 국, 반찬을 덜었다. 쌀밥에 반찬은두부조림과 나물, 김치다.

공양 때 지켜야 할 사항은 첫째 묵언(默言), 둘째 30분 동안 천천히 먹기였다. 한 톨, 한 톨 밥알을 씹을 때마다 이 음식이 내게 오기까지 수고한 이들을 생각하며 먹으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천천히 먹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옆사람과 얘기도 할 수 없으니 결국 밥을 먹는 것도 수행의 한 방법이었다.

마지막은 발우 닦기였다. 국과 밥, 반찬 그릇에 물을 붓고 식사 개시 전 미리 받아놓은 단무지 한 조각을 이용해 싹싹 닦은 뒤 그 물을 마신다.

이 숭늉문화는 익숙지 않은 사람에겐 다소 비위가 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참가자 대부분은 훌쩍 들이켠다. 꺼릴 것이라는 예상이 멋지게 빗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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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우공양을 마치고 전나무 숲길 걷기명상에 들었다. 포행이라 부르는 이 명상법은 말없이 스님의 뒤를 따라 걸으며 수행하는 방법이다.

코가 뻥 뚫릴 정도로 맑은 공기를 느끼고, 얼음이 녹으면서 흘러가는 계곡 물소리에 잡념을 씻어낸다.

물안개가 피어나는 전나무 숲길은 아침햇살을 받아 싱그럽다. 돌아서는 길은 속세의 티끌을 조금이라도 벗어던지고 마음이 정화된 듯 발걸음이 가볍다.

정적과 평화로움이 깃든 산사에서의 하루가 지나간다. 단 하룻밤의 짧은 일탈이었지만 속세를 떠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하나둘 비워낸 마음에 또 다른 채움이 살며시 싹튼다. 그것은 마음의 쉼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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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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