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 서울신문 어문팀 차장·한국어문기자협회장

‘때문’이라는 단어는 특이하다. 의존명사가 갖는 일반적인 쓰임새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의존명사 앞에는 흔히 관형어가 온다.

‘낡은 것’,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었다’에서 ‘것, 만큼’ 앞이 모두 관형어다. 그런데 ‘때문’ 앞에 관형어가 오면 어색하다. ‘낡은 때문에’, ‘노력한 때문에’ 라고 하지 않는다. ‘낡았기 때문에’, ‘노력했기 때문에’가 자연스럽다.

또 ‘간 때문에’, ‘사랑때문에’처럼 앞에 명사가 와야 자연스럽다. 즉 ‘때문’ 앞에는 명사나 명사형이 와야 한다. 따라서 다음의 기사 문장은 어색하다.

“각종 질환으로 인한 사망 등이 줄어든 때문이다.”, “해외파 거물들이 연이어 돌아온 때문이지만…”, 각각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돌아왔기 때문이지만’이라고 해야 자연스럽게 읽힌다.

그럼에도 ‘때문’ 앞에 관형형이 나타나는 이유는 뭘까. 1924년에 발표된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에는 ‘열흘 전에 조밥을 먹고 체한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1937년 이상의 ‘종생기’에는 ‘변호하는 때문에 어렵다는 것이다’라고 나온다. 같은 시기 신문기사에서도 ‘발표한 때문에’처럼 앞에 관형어가 있다.

그러나 이전의 독립신문(1896~1899)에서는 이러한 형태가 보이지 않는다. 어떤 학자는 이를 ‘것’의 생략으로 본다. ‘체한 것 때문’, ‘변호하는 것 때문에’인데 독립신문 시절 이후 생략하는 형태가 일부 나타났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때문’ 앞에 다른 형태의 생략이 보인다. “독도 잘 쓰면 약이 되는 법이다. 때문에 복어의 강력한 독을 이용한 신약 연구가…”, “라쿠텐 소속으로 일본 2군 리그에도 있었다.

때문에 실전 경험이 가장 큰 문제다.” 의존성을 지닌 ‘때문’ 앞에 아무것도 없다. ‘이’를 생략한 것이다. 이러면 낯설게 느껴진다. 모두 ‘이 때문에’라고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래서’를 대신 써도 좋겠다.

이렇게 형식상 까칠한 ‘때문’은 의미상 ‘유연한’ 모습을 보인다. 긍정적 상황에서 쓰이는 ‘덕분’과 부정적 상황에서 오는 ‘탓’ 모두를 대신할 수 있다. ‘때문’은 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고 중립적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덕분에 모바일 카드 급성장”에서 ‘덕분’ 대신 ‘때문’이 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전세난 탓에 전세자금 보증 공급액이 올해 처음 9조 원을 넘어섰다”에서 ‘탓’은 ‘때문’으로 대체해도 된다.

“근면과 창의성 덕분에 성공”, “발렌시아 덕분에 우승의 가능성이 커져” 등 ‘덕분’을 부정적인 상황에서 쓰는 예는 거의 없다.

그러나 ‘탓’은 적절치 않게 쓰이는 예가 있다. “말투부터 눈빛까지 결연했다. 4년 전 베이징올림픽의 아쉬웠던 기억이 아직 생생한 탓이다.”
 
여기서는 ‘탓’보다 ‘때문’이 적절하다. ‘결연’했는데 ‘탓’이라고 하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때문’ 앞에 관형형 ‘생생한’이 오면 어색하니 ‘생생하기 때문이다’라고 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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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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