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해당 언론사에 소속돼 있다는 제약과 그날 반드시 써야할 이슈가 있고 때로는 건조하게 사실만 전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블로그는 이런 제약이 없다. 기자들의 글이 비교적 딱딱하고 재미가 없는 반면 블로거들의 글이 자유분방하고 재밌는 것은 이 때문인 것 같다.





처음 블로그를 접한 것은 2005년 초였다. 오라일리미디어의 창업자인 팀 오라일리(Tim O’Reilley)의 유명한 글 ‘What is Web 2. 0’을 그의 블로그에서 읽었는데, 사실 그때만 해도 블로그라는 것에 대해 큰 감흥은 없었다. 그의 글을 보면서 web 2. 0이라는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정도였다. IT 분야를 막 담당한 때라 호기심만 있을 뿐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은 전무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내가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2년이 훨씬 더 지난 다음이었다. 동기는 아주 단순했다.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한국경제신문사)에서 2007년 홈페이지에 새로 블로그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기자들에게 블로그 오픈을 독려했는데 그때 문득 2년 전에 봤던 팀 오라일리의 블로그가 생각난 것이다. 나는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이것의 가장 큰 매력이 장시간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라는 걸 알게 됐다.
 기자라는 직업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글을 쓰는 시간에 비해 생각할 시간이 너무나 적다는 것이었다. 블로그는 그런 아쉬움을 충분히 해결해 줬다.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에 시작하면서 한 가지 주제를 놓고 하루 종일 생각할 때가 많았다. 심한 경우 일 주일, 한 달씩 고민을 하기도 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것을 글로 옮기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사람 냄새가 나야 블로그다
블로그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07년 가을 두 명의 블로거를 만나면서부터다. ‘태우log’를 운영하는 IT전문 블로거 김태우 씨와 ‘문성실의 맛있는 밥상’을 운영중인 네이버 인기블로거 문성실씨를 만난 뒤 그야말로 블로그에 대해 ‘개안’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 사람은 블로그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성실성’과 ‘지속성’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2008년 봄 한 출판사의 제의를 받고 ‘블로그 히어로즈’라는 번역서의 한글판 부록을 집필하게 되면서 만난 블로거들로 인해 나는 나름대로 블로그에 대한 기준과 원칙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그때 나는 한국의 파워블로거라는 제목으로 ‘태우log’를 운영하는 김태우 씨, ‘3M흥업’을 운영하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최광희 씨, ‘The lab H’의 김호 사장, 그리고 태터앤컴퍼니의 노정석 창업자와 김창원 사장을 인터뷰했는데, 그때 내린 결론은 ‘블로그는 마음이다’라는 거였다.
 이것은 내가 처음에 블로그에 대해 갖고 있던 기준, 즉 블로그는 생각하는 도구라는 것과 정확히 합치했다. 나에게 있어 블로그는 생각하는 도구이고, 마음이며 그로써 나를 세상에 알려주는 하나의 창이 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미디어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블로그를 ‘1인 미디어’라고 칭하는 것을 나는 몸으로 체득한 셈이다. 나에게 있어 정보만 있고 생각이 없는, 또는 지식만 있고 마음이 없는, 대상만 있고 주체가 없는 블로그는 블로그가 아니었다. 그런 것은 흔한 기업들 홈페이지나 정부 부처의 딱딱한 홍보용 사이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블로그에는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하고 그래서 나는 내 블로그를 ‘사람 냄새가 나는 곳’으로 삼으려고 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흔히들 파워블로거들에게 성공의 비결을 묻곤 하지만 내 생각에 블로그 성공의 비결은 사실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과 큰 차이가 없는것 같다. 1)이틀에 한번 꼴로는 반드시 포스팅을 한다. 2)댓글에는 성심성의껏 답변을 단다. 3)나 자신에 대해 반드시 언급한다. 4)사람에 대해 언급할 경우 그 사람을 만났을 때 직접 할 수 없을 만한 이야기면 블로그에 쓰지 않는다 등등…. 나 역시 다른 블로거들처럼 이런 원칙을 세웠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원칙들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원칙과 크게 다르지 않다.
 블로그는 영원한 베타 버전인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작성되는, 역시 죽는 순간까지 영원히 베타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 아닌가. 실패란 없다. 다만 나 자신이 존재할 뿐이다. 순간순간을 놓고 보면 당장 트래픽이 많은 블로그가 권력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인생이 그리 단순하지 않듯, 블로고스피어 역시 그렇게 트래픽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단순한 세상이 아니다.

블로그는 신문사와

기자 모두에게 기회
나는 2008년 블로그를 통해 흥미 있는 실험을 했다. 기자가 아닌 블로거로서 IT 기업을 탐방하고 관련 포스팅을 블로그에 연재한 것이다. 가능한 기자라는 것을 알리지 않거나-알리지 않아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거기서 알게 된 내용은 기사로 쓰지 않고 철저하게 블로그에서만 다뤘다.
 이런 실험을 통해 기자로서 글쓰기와 블로거로서 글쓰기의 차이점에 대해 어느 정도 체감할 수 있었다. 기자는 해당 언론사에 소속돼 있다는 제약과 그날 반드시 써야할 이슈가 있고 나의 생각을 전달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건조하게 사실만 전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블로그는 이런 제약이 없다. 기자들의 글이 비교적 딱딱하고 재미가 없는 반면 블로거들의 글이 자유분방하고 재밌는 것은 이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결국 글쓰기의 궁극적인 목적과 원칙은 동일하다는 것이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항상 고민하는 것은 ‘누가 이 글을 읽고 반응을 보일 것인가?’인 것 같다. 어차피 아무도 읽지 않을 글이라면 집에서 혼자 일기장에 쓰면 그만이지 인터넷에 올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즉 주된 독자층이 누구이고 이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으며 이들의 관심사가 어떻게변하고 독자층의 구성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글 쓰는 이들은 항상 주시해야 한다. 동시에 이것은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위기에 처한 신문 등 기존 미디어들이 목말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야심차게 시작한 시리즈가 왜 외면을 당하는가? 딴에는 열심히 취재해서 쓴 기사나 블로그 글이 왜 관심을 끌지 못하나? 아무 생각 없이 짤막하게 올려놓은 글이 왜 폭발적인 관심을 끄는가? 독자들이 원하기 때문이다. 블로그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면 점차 독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느끼고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기자로서 글쓰기와 블로거로서 글쓰기는 유사하다.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고 나의 의견일 경우 의견임을 반드시 밝히며 인용할 경우 출처를 명시해야 하며 글을 쓴다는 전제로 상대방과 끊임없이 밀고 당기기를 해야 한다는 것도 기자로서나, 블로거로서나 동일한 부분이었다. 기자는 블로거가 되기에 가장 불리한 듯 보이지만 한편으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가 블로거가 되기 어려운 점은 바로 그 속성의 유사함에 있는 것 같다. 마치 요리사가 집에 들어오면 음식 만들기 싫은 거나 비슷하다고나 할까. 기자는 항상 글을 쓰고 글을 쓰기 위해 생각하고 준비하는 직업이다보니 하루를 마치고 나면 정신적으로 매우 지치게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집에 와서, 또는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기 전에 자신의 블로그에 새로운 글을 올린다는 것이 다른 직업 종사자들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특히 글쓰기는 항상 ‘창작의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돈도 안되는 블로그 운영에 시간을 투자하기가 아깝다고 생각하는게 당연하다. 기껏 글을 올려놨는데 수십 개의 악플로 도배가 될 경우, 또는 반대로 몇 달 동안 블로그를 해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경우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미국의 모든 기자들이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네티즌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미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가까운 장래에 블로그를 하지 않으면 기자라고 할 수도 없는 그런 날이 올지 모른다. 모든 이들이 블로그를 통해 1인 미디어화하고 있는 시대에, 기자는 여기서 가장 강력한 1인 미디어로 주목받을 수 있다. 언론사는 결국 파워풀한 1인 미디어의 네트워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블로그를 통해 세계로 나가고 싶다
블로그를 하면서 가장 큰 즐거움은 역시 나와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대화 상대를 온라인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막연히 생각하는 것보다 독자들의 수준은 훨씬 높고, 사실 그들은 이미 기존 미디어에서 생각하는 ‘독자’의 수준을 넘어서 있는 것을 알게 된다.
 2007년 가을에 한 섬유업체 사장님이 내 블로그를 통해 연락을 했다. 내가 블로그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됐을 때의 일이다. 이 분은 새로운 인터넷 서비스를 론칭하는 것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나를 직접만나 아이디어를 놓고 토론을 하고 내 의견을 듣고 싶어했다. 내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직접 그 분을 만나고 나는 깜짝 놀랐다. 70세가 다 된 분이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에 대한 이해도나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열정은 젊은 벤처인 못지않았다.
 이와 같은 일은 작년에도 반복됐고 올해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08년 한해만 돌이켜봐도 내가 인터넷을 통해 새로 알게 되거나 직접 만난 사람만 해도 수백 명에 달했다. 이들은 계속해서 나와 연락을 하며 일종의 지식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트랙백과 링크로 간접적으로 연결된 사람까지 합하면 수만 명에 달한다. 아주 민주적으로, 온라인으로 연결된 의견 교환과 토론의 장이 블로그이고, 이것은 최첨단 저널리즘의 다른 이름이다.
 나는 현재 ‘임원기닷컴’(http://limwonki.com)과 ‘임원기의 세상 바꾸는 IT이야기’(http://blog.hankyung.com/wonkis)라는 두 개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임원기의 세상 바꾸는 IT이야기’는 2007년 5월에 시작한 나의 첫 블로그이고 ‘임원기닷컴’은 2008년에 오픈한, 내 이름을 딴 독립도메인을 가진 블로그다. 현재 두 블로그의 내용은 거의 같다. 이쪽에 올라오는 내용이 저쪽에도 올라온다. 두 블로그의 독자층이 다르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서로 다른 콘텐츠를 지향하고 있다. 독자층이 다르다면 내용도 다르게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은 그에 필요한 내 역량이 부족하고 독자층에 대한 분석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2009년 1월부터 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 캠퍼스(UC Berkeley) 정보통신대에 프로젝트 연수를 하러 나와 있다. 여기서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것은 블로그를 통해 세계인들과의 접점을 더욱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은 바다인데 한국은 블로거나 언론사나 모두들 한국이라는 좁은 호수에 갇혀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상당수는 언어 문제 때문이다. 간단한 내용이라도 한국의 IT에 대해서, 한국이 처한 현실과 변화에 대해 영어로 작성하는 시도를 조금씩 한다면 상상도 못한 더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게 된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5월호 파워블로거의 세계<12>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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