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취재 아이템을 정하면 취재를 진행하면서 실험을 의뢰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방송을 하는 시스템을 취하게 되지만, 이번 취재는 사실상 전문가와 제작진을 비롯해 그 누구도 전혀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던 실험적인 주제였던 탓에 실험을 먼저 의뢰하고 그 분석결과를 토대로 취재를 하는 형식을 취했다.

심지어 도움을 주신 전문가들께서도 “베이비파우더에서 석면이 검출됐다”는 사실 자체를 믿어 주지 않았다. 대부분의 반응이 “에이, 설마요? 잘못 아신 것 아니에요?”였다. 자꾸만 쌓여 가는 부정적인 의견들 때문에 이미 확실한 실험결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출된 것이 석면이 맞는지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파장이 이렇게 커질 것은 예상치 못했지만 그래도 의미 있었던 점은 사회적 약자인 동시에 소수자였던 소비자들이 마침내 권리의 주체로 나섰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과 소비자들이 ‘1급 발암물질’인 ‘석면’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제도적인 인프라를 구축해 사회적 안전망의 켜를 두텁게 한 점이다.

 

불편한 진실과 대면하자
특종의 기쁨보다 한숨이…


KBS 소비자고발 ‘충격 ! 베이비파우더에서 석면 검출’

전수영 KBS 시사정보팀 PD



4월 1일 오전 11시(소비자고발 90회 방송 당일)  KBS 신관 7층 소비자고발 사무실.
  “뭐라고요? 도대체 지금 그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전화통화를 하던 프로그램의 CP 최석순 선배님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더니 격양된 목소리가 사무실을 휘감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후 식약청) 대변인과의 전화통화였다. 식약청이 3월 30일과 31일 이틀 동안 자체적으로 29개의 베이비파우더 제품과 1개 원료 총 30종의 제품을 수거해 석면검출시험을 한 결과 11개의 제품과 1개의 원료에서 석면이 검출되었으며 이를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밝히겠다는 것이었다.
 최초로 석면검출 사실을 확인한 소비자고발 제작진이 식약청에 공문을 통해 이 사실을 알리고 인터뷰 요청을 한 것은 3월 27일, 석면관리기준에 대해 인터뷰를 한 것이 3월 30일이었다. 3월 초부터 한 달여를 공들여 취재해온 프로그램이 식약청의 불순한 의도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버릴지도 모른다는 긴장감과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제작진이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했지만 결국 식약청은 그날 오후 6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실을 공표했다. 불과 본 방송을 5시간 앞두고 말이다.

소비자고발을 말한다

소비자고발은 철저하게 소비자의, 소비자에 의한 소비자를 위한 프로그램이다. 제작진이 소비자의 입장에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소비자의 제보와 참여를 통해 만들어진다. 
 4,700만 모두가 시청자이며 소비자인 시대에 생산자에 대한 건전한 비판과 감시를 통해 선진국보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소비자 보호 시스템을 프로그램 형식으로 구현한 프로그램이다. 기존 프로그램과 소비자고발이 차별화되는 점은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째, 최초로 전문 PD제를 도입해 각자 맡은 분야에서 아이템을 찾고 그 분야의 전문지식과 경험을 쌓고 있다. 둘째, 다양한 실험과 분석, 밀도 있는 취재를 통해 확실하게 검증된 정보와 사실을 전달한다. 셋째, 아이템으로 채택한 주제에 대해서는 후속 방송을 통해 개선이 될 때까지 끝까지 책임을 진다. 
 4월 20일로 봄 개편을 한 소비자고발팀은 MC이자 프로그램을 총괄, 기획하는 1명의 CP 아래 공무 법률 1명, 먹을거리 3명, 유통 4명, 의료·환경 1명, 주거·교통 1명, 여성·육아·교육 1명 등 총 11명의 PD와 8명의 작가, 6명의 VJ가 “소비자가 웃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프로그램의 모토 아래 불철주야로 뛰고 있다. 
 제작기간은 평균 4주가 소요되는데, 기획 및 자료조사 1주, 편집 및 후반작업 1주를 제외하면 실험과 촬영에 2주 정도가 걸린다. 프로그램 구성은 담당 CP가 스튜디오 MC를 맡아서 2~3개 ENG 촬영물의 주제와 내용을 소개하고 평소에 궁금했던 점들을 현장실험을 통해 보여 주는 스튜디오 실험실을 비정기적으로 추가하는 종합구성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우연이 가르쳐준 불편한 진실

우연한 기회에 한 선배로부터 “아이들이 쓰는 베이비파우더에 석면이 들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전문가(‘석면 : 침묵의 살인자’의 저자 안종주 박사)에게 전화로 물었더니 1987년 일본에서 석면이 검출된 사례가 있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된 사례가 있는지 여쭈어 봤더니 “국내에서는 한번도 조사를 해본 전례가 없어서 잘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베이비파우더의 주원료인 탤크(활석)라고 불리는 광물에 자연적으로 석면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초자료조사를 통해 석면의 치명적인 위험성을 확인한 후, 아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베이비파우더에는 절대 있어서도 안 되고 절대 있을 리도 없겠지만, 설마(?)하는 심정으로 실험을 의뢰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아이들이 바르고, 마시고 때로는 먹기까지 하는 베이비파우더에서 1급 발암물질인 석면이 검출된 것이다. 믿기 힘든 불편한 진실을 통보받은 순간 특종의 기쁨보다는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두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차마 믿고 싶지 않은 대한민국의 암울한 현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상실감 때문이었다.

침묵의 살인자 석면! 그 실체를 찾아

이번 취재는 소비자고발 내부의 일반적인 룰과 조금 상반된 방법에 의해 이루어졌다. 일반적으로 취재 아이템을 정하면 취재를 진행하면서 실험을 의뢰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방송을 하는 시스템을 취하게 되지만, 이번 취재는 사실상 전문가와 제작진을 비롯해 그 누구도 전혀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던 실험적인 주제였던 탓에 실험을 먼저 의뢰하고 그 분석결과를 토대로 취재를 하는 형식을 취했다.
3월 초 기초적인 자료조사를 끝내고, 3월 중순 시중에 유통되는 베이비파우더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3종을 수거해 석면전문분석연구소에 1차로 샘플검사를 의뢰 했다. 실험 결과 “3개 제품 중 1개에서 석면이 검출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서둘러 백화점과 마트, 화장품 전문점을 돌면서 시중에서 판매 중인 7개 회사 12종의 제품을 구입해 2차 실험을 의뢰했다. 그 결과 의뢰했던 12개 제품 중 무려 5개 제품에서 석면이 검출됐다. 더욱 믿기 힘들었던 것은 검출된 회사의 제품들이 어린이 용품의 대표적인 회사들이었다는 점과 검출된 석면의 추정치가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현재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그 위험성 때문에 건축자재에서조차도 석면이 0.1% 이상 함유된 제품의 제조·사용·유통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발견된 베이비파우더 내 석면의 추정치는 일부 제품의 경우 3~5%까지 이르는 충격적인 수치였다).
먼저 검출된 결과를 토대로 예상되는 피해자 즉 베이비파우더를 사용하는 주요 대상이 누구인지 취재했다. 뜻밖에도 다양한 계층에서 베이비파우더를 쓰고 있었는데 어린아이들을 비롯해 중고생, 심지어 성인 여성들까지 광범위하게 쓰고 있었다. 다음 순서로 석면검출 실험을 담당했던 석면분석전문연구소를 찾아 검출된 석면의 형태와 양, 그리고 실험방법 등을 검증(이번 석면 검출시험은 공정시험법 US EPA 600/R-93/116에 준거하여 편광현미경(PLM), 전자현미경(FE-SEM), 성분분석기(EDS)를 통한 종합적인 검증방식을 택했다)해 검출된 것이 석면이 맞는지, 재실험을 통해 확인을 했다. 다음 순서로 석면이 나오게 된 원인을 추적했다. 전문가와 함께 한 광산으로 가서 주원료인 탤크의 실체를 확인하고, 석면 전문가들을 수소문해 석면이 인체에 미치는 악영향을 취재했다. 그리고 석면의 위험성을 실제로 확인하기 위해 현재 석면으로 인해 피해를 입고 고생하고 있는 충남의 집단피해 사례를 취재했다. 또 석면이 든 베이비파우더를 사용했을 때 아이들과 성인들이 과연 얼마나 석면에 노출될 위험이 있는지 측정하기 위해 여의도 성모병원 산업의학센터와 공동으로 석면이 검출된 베이비파우더를 이용해 대기 중 석면노출 실험을 진행했다. 다음 단계로 석면이 함유된 베이비파우더가 실생활에서 어떤 문제점을 일으킬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 가정에서 베이비파우더의 실제 쓰임과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관찰했다. 마지막 단계로 베이비파우더를 판매한 업체들과 식약청에 석면 검출 사실을 전화와 공문을 통해 알리고 공식일정을 잡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번 촬영에는 몰래카메라와 ENG, 6㎜, 로보틱 카메라가 사용되었다. 몰래카메라는 촬영협조가 안 되는 상황(물건 구입과 상담, 취재 및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상황촬영 등)에 사용되었고 6㎜는 이동성과 기동성이 필요한 장면(광산, 식약청 긴급기자회견 등), ENG는 세밀한 화면 묘사와 정확도를 요하는 장면(석면검출 실험과정, 대기노출 실험, 실생활 내 베이비파우더 사례 관찰 ,전문가 인터뷰 등), 마지막으로 특수촬영에 사용하는 로보틱 카메라는 정교한 이미지 샷(구입한 제품들과 세밀한 탤크 분말 묘사 등)에 각각 사용되었다.

계속되는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

먼저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본래 이 아이템은 4월 중순 방송예정이었다. 그런데 실험결과가 나온 그 주에 갑자기 프로그램에 석연치 않은 광고가 접수됐다. 바로 석면이 검출된 모기업이었다. 예감이 좋지 않다고 판단한 CP께서 방송을 2주 앞당겼다. 촬영 편집 방송까지 남은 시간은 오직 1주…. 일촉즉발 그야말로 치열한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두 번째 어려움은 취재와 관련한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 탤크와 석면은 전문영역이어서 전문가 그룹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야 했는데 의외로 국내에 석면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가 많지 않았고, 찾더라도 조언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 기업과 관리감독기관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편해하는(?) 프로그램의 성격상 전문가들이 도움을 주는 데 많이 부담스러워했다.
 지금은 에피소드로 기억되지만 심지어 도움을 주신 전문가들께서도 “베이비파우더에서 석면이 검출됐다”는 사실 자체를 믿어 주지 않았다. 대부분의 반응이 “에이, 설마요? 잘못 아신 것 아니에요?”였다. 자꾸만 쌓여 가는 부정적인 의견들 때문에 이미 확실한 실험결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출된 것이 석면이 맞는지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혹시 모양이나 성질이 석면과 유사한 다른 물질은 아닐까? 석면이 맞더라도 인체에 유해하지 않은 ‘Nonasbestic Form’의 석면이 아닐까?”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여의도 성모병원 산업의학센터에서 2차 검증을 시도했다. 다행스럽게도 결과는 인체에 치명적인 독성을 지닌 ‘Asbestic Form’의 유해한 석면인 트레모라이트가 맞았다. 하지만 더 큰 어려움이 남아 있었다. 석면이 검출된 회사들을 찾아가 시인과 함께 다짐을 받아내야만 하는데 해당 회사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과 유명 브랜드의 회사들이었기 때문이다.
 팀에서는 아직까지도 모 중소기업의 소송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법적 소송에 대한 부담감은 더 커져만 갔다. 취재 형식과 방법에 대한 고민은 경험 많은 선배님들의 조언과 도움으로 의외로 쉽게 풀렸다.  오로지 정확한 사실만을 전달하고, 원칙을 논리 있게 설득하는 정면돌파를 택하기로 한 것이다.
 결과는 순조로웠다. “그럴 리가 없다”며 강력히 부인하던 업체도 있었고 “억울하다. 소송을 할 수도 있다”는 업체도 있었지만, 계속되는 진실게임 끝에 결국 세 곳 업체 모두에서 잘못된 점을 시인 받고 문제의 제품을 모두 리콜하겠다는 다짐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힘과 자본의 논리 앞에서 원칙과 진실은 생각 이상의 큰 울림이 있었다. 

눈덩이처럼 커지는 ‘석면 파동’ 그리고…

방송 이후 후폭풍이 몰아쳤다. 소비자고발 홈페이지에는 500여 건이 넘는 시청자 글들이 쏟아졌고 석면이 검출된 베이비파우더를 판매한 업체들은 소비자들에게 사죄의 뜻을 담은 사과문을 게시함과 동시에 문제가 된 제품을 전량 판매금지?회수 조치했다. 식약청은 방송 바로 다음날 단 하루 만에 “베이비파우더의 원료인 탤크에서 석면이 검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무검출 기준’을 마련했다.
 급기야 탤크를 원료로 하는 모든 제품이 문제가 되면서 사회전반에 걸쳐 이른바 ‘석면파동’으로까지 일이 확대되었다. 제작진은 다음 주에 후속방송을 통해 화장품과 제약업계로 이어지는 석면 탤크의 문제점 등을 보도했고 식약청은 석면이 함유된 원료를 사용한 화장품과 제약품들에 대해 모두 판매금지 및 회수조치를 취했다. 방송 이후 한 시민단체에서는 관리감독에 소홀했던 관리주체와 판매업체를 형사고발하였다. 1,700명이 넘는 소비자들은 자체적으로 소송모임을 결성해 식약청과 판매업체를 상대로 피해보상을 위한 집단소송까지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방송 이후 이렇게 파장이 커질 것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의미 있었던 점은 사회적 약자인 동시에 소수자였던 소비자들이 마침내 권리의 주체로 나섰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과 소비자들이 ‘1급 발암물질’인 ‘석면’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제도적인 인프라를 구축해 사회적 안전망의 켜를 두텁게 한 점이다.

식약청장의 눈물과 소비자의 눈물

얼마 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석면 파동’으로 곤경에 처한 식약청장이 흘린 눈물이 화제가 되었다. 그 자리에서 식약청장은 “너무 괴롭다. 나무라지만 말고 좀 도와 달라”고 읍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22년 전부터 베이비파우더 내 석면을 관리하고 있었던 일본의 경우와 유럽 선진국 등의 사례를 고려하면 정작 읍소를 해야 할 사람은 소비자들이다. 관리감독기관인 식약청은 지난 2004년과 2006년 두 차례에 걸친 용역보고서를 통해 탤크의 위해성을 알면서도 아무런 대책마련을 하지 않다가 소비자고발 제작진의 방송 취재 이후 제품회수·조사·발표까지 2일, 관련 대책 마련?공표까지 1일, 이렇게 단 3일 만에 관련 기준과 대책을 마련했다. 우리나라 보건행정의 후진성을 보여 주는 극단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일부 어른들의 무관심과 무지로 인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 입고 말았다. 부디 이번 일을 계기로 관계당국은 수장이 흘린 눈물보다는 수많은 소비자들이 흘린 눈물을 더욱 가슴 아프게 기억해야 할 것이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5월호 언론현장 제작기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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