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술이나 한잔 하시죠”라면서 자리를 마련할 테니 술값을 내라고 노골적으로 부르던 후배들도 어느 날 자기들끼리 모여 앉기 시작했고, 다음날 출근해 전날 밤 술자리에서의 에피소드를 저희들끼리 얘기하며 웃어대는 과거의 그 ‘멤버’들을 보면서 묘한 배신감이 들기도 했다. 뿐만이 아니다. 점심이나 저녁을 먹을 때도 슬그머니 저희들끼리 나가버리는 경우도 수시로 생겼다.


요즘 당신에게 술이란?






유병욱 강원일보 경제부장
newybu@kwnews.co.kr


내가 MBC의 ‘라디오스타’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이유는 전혀 짜이지 않은 것 같은 구성 때문이다. 출연한 게스트들이 4명의 MC들과 말싸움에 가까운 언쟁을 벌이고 나서 “이거 정말 방송될 수 있는 거냐?”하고 물을 정도이니 리얼방송 중에서도 센 편이 아닌가 싶다.
 막가는(?) 듯 한 이 프로에서도 출연자 누구에게나 묻는 공식 질문이 하나 있다. “000에게 음악이란?” 혹은 “000에게 연기란?” 이라는, 좀 식상한 듯 한 이 물음에 출연한 가수와 연기자들의 대답은 천차만별이지만 그 사람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말이기도 한다.
 만약, 기자들이 이 프로에 나간다면 MC들은 어떤 질문을 할까? “기자에게 기사란?”, “기자에게 특종이란?”, “기자에게 마감시간이란?” 등등의 진짜 공식질문은 그리 재미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럼 이것은 어떨까. “기자들에게 술이란?” 아마도 웃음거리로 치자면 대박날 것이다. 수백, 수천가지의 답변과 에피소드들이 쏟아질 테니까 말이다.
 실제로 일반인들도 ‘기자와 술’이라고 하면 불과분의 관계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기자라 함은 직업적 특성상 만나는 사람들이 많고 그러면 약속도 많을 것이고, 만나는 자리가 생기면 당연히 술은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연관관계 때문이다.
 요즘 들어 이런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지만 그래도 기자와 술은 아직까지 친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기자가 친한 것은 ‘술’ 그 자체보다 ‘술자리’다. 출입처 관계자들과 인간관계를 더 수월하게 할 수 있고 가끔은 꽤 쓸 만한 정보도 얻어 특종을 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런 자리를 피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그 어떤 술자리보다 회사 동료들과 함께 할 때보다 편한 자리는 아직 가져보지 못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같은 공간에서 있다 보니 공감대도 많고 수다 떨 거리도 많아 한번 시작된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자연스럽게 ‘멤버’도 구성되고 그들과 시작한 술자리는 아침에 해장국을 먹은 후 집에 갔다가 옷만 갈아입고 곧바로 출근으로 이어지곤 했다. ‘씹을 사람’도 많았고 ‘논쟁할 것’도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자리가 줄었다. 그렇다고 편집국내에서 술자리 자체가 준 것도 아니다. 아주 가끔은 내 스스로가 피곤해서, 아니면 다른 약속이 있어서 못 간적도 있지만 그 보다는 아예 처음부터 불러주지 않는 상황이 더 많았다.
 툭하면 “술이나 한잔 하시죠”라면서 자리를 마련할 테니 술값을 내라고 노골적으로 부르던 후배들도 어느 날 자기들끼리 모여 앉기 시작했고, 다음날 출근해 전날 밤 술자리에서의 에피소드를 저희들끼리 얘기하며 웃어대는 과거의 그 ‘멤버’들을 보면서 묘한 배신감이 들기도 했다. 뿐만이 아니다. 점심이나 저녁을 먹을 때도 슬그머니 저희들끼리 나가버리는 경우도 수시로 생겼다.
 처음엔 내가 뭘 잘못했나 싶기도 했지만 나중에 깨달았다. 승진 탓, 아니 세월 탓이었다.
 기자에서 차장을 지나 부장이 되고 난 후 나는 그들에게 술자리를 함께 할 사람이기 보다는 술자리에서 ‘씹혀야 할’ 대상이 되어 있었다. 옛날 같은 술자리 멤버였지만, 어느 덧 편집국 중간간부가 된 사람을 앉혀놓고 저희들끼리 말하기가 편치 않았던 것이다.
 후배들의 눈치를 보면서 어렵게 끼어들었던 한 술자리에서 그런 뉘앙스의 말을 듣고 “이것들이 내가 계산한 술값만 따져도 집 한 채는 샀을 텐데 이제 와서 왕따를 시켜?”하는 생각에 ‘울컥’하기도 했지만 어찌하랴. 이미 분위기는 그렇게 되어버린 것을.
 그러고 보면 나 역시 그맘때 그랬던 기억이 난다. 웬만하면 부장급 이상 선배들과는 공식적인 회식 자리 말고는 자발적으로 함께 한 적이 별로 없었다. 솔직히 나도 불편했기 때문이다.
 이제 내가 그들과 같이 ‘불편한 사람’이 되다보니 누굴 탓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고민도 생겼다. “자, 그럼 이제부터 어떡하지? 후배들에게 그런 자리 있으면 끼워달라고 애원해봐? 아니면 부장 끗발로 강제로 후배들을 불러 모아 버려?”
 그러다 문득, 내 뒷자리 부국장과 편집국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보니 저 선배들과 술자리 한 지도 무지무지 오래됐다. 오늘은 저 분들과 한잔해야 겠다. 술자리 멤버도 뒤바꿔놓는 ‘지나간 세월’을 씹으면서 말이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5월호 에세이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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