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바닥에 깔려 있는 아주 작은 진심이라도 내가 알아줘야 했던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주인공인 유정이 연쇄살인범인 정윤수에게도 진심을 보았던 것처럼. 기자 생활이 길어지면서 기자나 언론을 이용해 무언가를 얻으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어떨 때는 알고도 속아 넘어가 주고, 어떨 때는 모른 척 하기도 했다.


진심





김미은 광주일보 문화생활부 차장
depart21@naver.com


 난 한 때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다가 교도소 이야기가 나오면 일단 한번 움찔하곤 했다. ‘사회의 냉대에 두 번 우는 전과자’ 이런 기사를 보면 더욱 더 가슴이 뜨끔했다. 이게 다 업보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 병이 좀 잦아들었다 싶었는데 며칠 전 제주도에서 열린 여기자 세미나에서 10여년도 더 전에 함께 경찰 기자로 뛰었던 기자를 오랜만에 만나면서 나의 경찰 기자 시절이 떠올랐고, 그 업보까지 자동 소환됐다.
 1995년 난 우리 신문사의 첫 번째 여자 경찰 기자였다. 지역에서도 처음이었다. 우리 회사는 당시 굉장히 보수적이었다. 입사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결혼한 여성 기자들은 회사를 그만 둬야 했다. 당시 여기자들에게는 당직 근무를 시키지 않았다. 처음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삐삐 지급도 여기자들은 제외였다. 당시에는 ‘나가요 언니’들만이 삐삐를 착용하기 때문에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편집국장의 배려 아닌 배려 덕분이었다.
 1995년 사건기자 제안을 받았을 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거부하면 다른 여자 후배들은 기회조차 잡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 있는 척하며 받아들였다. 초창기 모습은 어리바리 그 자체였다. 경찰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몰라 허둥대기 일쑤였고, 선배들에게 야단맞는 게 일이었다.
 우왕좌왕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사서함 주소가 박힌 편지를 한통 받았다. 당시 우리 신문에서는 어려운 이웃들의 사례를 소개하고 후원자를 연결하는 한판짜리 기획물을 진행 중이었고 난 팀원이었다. 난 아동복지재단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초등학생 남매의 사연을 기사로 썼었다.
 편지의 주인공은 광주교도소에 복역 중인 죄수. 내가 쓴 기사를 보고 그 아이들을 정말 돕고 싶다는 생각에 편지를 보낸다고 했다. 적은 돈이지만 홀로 되신 어머니가 보내주시는 영치금을 아이들의 통장에 넣어주고 싶다는 거였다.
 “와, 드디어 나의 기사에 감동받은 사람이, 그것도 범죄자가 이런 기특한 생각을 했단 말이야. 나의 기사가 약발을 발휘했군.”
 한 때의 실수로 범죄를 저질렀던 이가 나의 기사를 보고 ‘감화’를 받아 개과천선, 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언가 좋은 일을 하려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혼자 우쭐해진 나는 선배에게 내용을 보고했다. 아이들과 연결시켜주는 것은 물론이고, 이 내용을 기사화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건기자 생활은 힘들었지만 어디다 못하겠다는 말을 못하고, 하루하루가 죽을 맛이었던 나에게 이 편지는 단비 같았다.
 하지만 선배에게서 제동이 걸렸다. 상습적으로 이런 것을 활용해 수감 생활에서 이득을 보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였다. 나도, 아이들도, 그리고 우리 신문도 그 사람에게 이용당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선배는 우선 교도소로 연락을 취해 그 사람에 대해 알아봤다. 죄질이 나빴던 데다 무엇보다 교도소 내 생활 태도도 좋지 않은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 실망이었다. 지금 교도소 내에서 나에게 이렇게 가슴 따뜻한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라면 과거의 죄는 그렇더라도 지금은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되는 게 아닌가.
 내 자신이 그 사람에 대한 확신이 없어 선배에게 기사를 쓰자고, 아니면 아이들과 연결이라도 해주자고 우길 수도 없었다. 편지는 계속 왔다. 왜 답이 없냐는 거였다. 힘들었던 자기 과거 이야기도 막 털어놓았다. 난 가시방석이었다. 어릴 때라 이 사람이 자기 진심을 몰라줬다고, 훗날 날 원망하고 행여나 나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하는 소심한 걱정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한 달여가 지나고 교도소 내에서 문제를 일으킨 그는 대전인가, 청주인가로 이송돼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랫동안 차마 편지를 버리지 못하다 4년 전 회사가 이사를 하면서 버렸다. 글을 쓰는 지금 편지 내용은 세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펜글씨 교본에나 나올듯한 글씨체만은 정확히 기억난다.
 이후 ‘누군가의 바닥에 깔려 있는 아주 작은 진심이라도 내가 알아줘야 했던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주인공인 유정이 연쇄살인범인 정윤수에게도 진심을 보았던 것처럼.
 기자 생활이 길어지면서 기자나 언론을 이용해 무언가를 얻으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어떨 때는 알고도 속아 넘어가주고, 어떨 때는 모른 척 하기도 했다.
 지금 그 죄수에게 또 다시 편지를 받는다면, 후배가 똑같은 내용으로 나에게 판단을 맡긴다면 어떨까. 모른 척 속아 넘어가고 싶다. 그건 너무나 팍팍해진 세상에서 누군가의 아주 작은 진심이라도 믿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근데 그 사람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5월호 에세이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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