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같은뉴스 다른생각 13

지방신문의 ‘그리드락’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미국에선 저작권 보호의 예외로 인정되는 ‘공정 이용’의 원칙이 사실상 사라졌다고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 법원은 식별할 수 없는 음원은 물론이고 0.5초짜리 사운드 클립조차도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므로, 샘플로 사용하기 전에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학에서 수업을 위해 사용하는 비공개 웹사이트에 논문에서 발췌한 내용을 돌리는 것은 ‘교육적인 공정 이용’으로 간주되어야 마땅하겠건만, 소송을 피하고 싶어하는 대학측은 교수들에게 학생들이 돈을 주고 자료를 사게 하라고 말한다.
미국 컬럼비아대 법대 교수 마이클 헬러(Michael Heller)는 ‘소유의 역습, 그리드락’(윤미나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09)에서 이런 문제를 지적한 뒤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정 이용은 원래 창작자들과 합의가 이루어진 부분이다. 불행히도 저작권을 소유한 대기업은 의회와 법원을 압박하면서 이러한 전통을 무시하라고 강요한다. 공정 이용을 적용할 수 있는 영역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거냐고? 저작권 보호를 확대하는 게 무슨 문제냐고? 사실 공정 이용이 확대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발생한다. 이제 우리는 그 가치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공정 이용은 문화의 그리드락을 방지한다.”(39-40쪽)
그리드락(gridlock)이란 교차점에서 발생하는 교통정체, 즉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 지나치게 많은 소유권이 경제활동을 오히려 방해하고 새로운 부의 창출을 가로막는 현상을 의미한다. ‘자유시장의 역설’인 셈이다. 헬러는 그리드락을 해결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핵심 과제라고 주장한다.(11-12쪽)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주장이지만, 우리 실정에선 착잡하다. 전반적으로 보아 우리의 저작권 의식은 매우 낙후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작권 개념을 떠나 좀 넓게 생각해보면 우리도 ‘그리드락’의 문제에 봉착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언론의 ‘그리드락’이라고나 할까? 특히 지방신문들이 그런 상황에 처해있는 것 같다.

지방신문의 가장 큰 문제는 ‘자유시장의 역설’

지방신문의 가장 큰 문제는 ‘자유시장의 역설’이다. 소유권을 기반으로 한 난립이다. 경제적으로 두세 개 정도의 신문이 겨우 살아갈 수 있는 시장에 십여 개의 신문이 뛰어들어 ‘너 죽고 나 죽고 모두가 죽는’ 상황이 수십 년째 연출되고 있다. 신문이 ‘권력상품’이라는 데에 착안한 영세 자본가들이 권력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신문을 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이런 고민은 50년대에도 공론화되었던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54년 10월 14일 ‘중대담화’를 통해 신문의 발행부수가 적어도 10만부는 넘어야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서울에 있는 신문사를 2∼3종으로 정비할 것을 제의했다. 당시 서울에서는 14개의 일간 신문이 나오고 있었지만 발행부수가 10만을 넘는 신문은 하나도 없었다는 점에 착안한 제안이었다. 이 대통령은 정리 방안으로 신문 발행진의 자진 또는 협의 폐간, 민간 지도자와의 협의를 통한 선별, 일반 시민의 투표에 의한 선별 등 3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이와 같은 신문정비론은 1950년 9월에도 김활란 공보처장이 제기했었는데, 신문들이 그런 방안을 수용할 리는 만무했다. 물론 이승만의 제안도 언론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백지화되고 말았다.
지금도 모두 다 개탄만 할 뿐 그 어떤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80년 언론통폐합이 강행한 ‘1도1사제’의 악몽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드락을 넘어서보자는 취지의 말을 했다간 “언론통폐합을 다시 하자는 거냐?”는 민주적인(?) 반론에 직면하기 십상이다.
학자들 중엔 비교적 용감한 이가 순천향대 장호순 교수다. 그는 2005년 11월 16일 국회언론발전위원회(회장 고흥길 한나라당 의원)가 국회에서 연 ‘신문 경영의 위기와 대책’이라는 세미나에서 전국지의 지방지 계열화, 신문사 간의 인수·합병 등을 허용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방신문의 그리드락이 전국에서 가장 심한 전북에선 급기야 건설사 대표가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섰다. 이진일 한백종합건설 대표는 전북일보 2009년 2월 24일자에 기고한 칼럼에서 “지역 언론 간의 통폐합 사례를 보고 싶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시장에 의한 통폐합 즉, 폐업과 실업이라는 결과가 뒤따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우리는 이 두 제안 모두 현실성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전국지의 지방지 계열화와 지방신문사 간의 인수·합병 등은 당사자들 모두가 원치 않기 때문이다. 폐업과 실업이라는 결과가 뒤따르는 것도 아니다. 무보수라도 그냥 버티겠다는 기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간 비교적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된 건 기자 최저임금제의 법제화였지만, 이는 위헌 소지가 많아 대안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지 오래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그리드락에 갇혀 지내야만 하는가? 지상으로나마 국민 대토론회라도 열어 당사자들을 포함한 모든 이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4월호 미디어포럼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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