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리스트’에 연계된 여러 다수의 정치인들보다는 ‘전직 대통령 가족’에 집중하는 보도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보도경향은 이번 사안을 ‘정계와 재계의 유착’ 사안이 아닌 ‘이전의 권력자 집안의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사안으로 의미를 변모시키고 있음을 드러내게 된다.

우리 방송은 ‘검찰’과 같은 편에 자신을 ‘우리(us)’로서 위치지우고, ‘전직 대통령’과 ‘그의 형, 부인, 아들, 조카’ 등을 ‘그들(they)’로서 타자로 위치지우면서 대상화하고 있다. 방송은 이미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위치’를 떠나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대상들을 비판하고 힐난하는 ‘비판자 내지 심판자’ 위치에 서게 된다.

방송사 스스로가 ‘탐사보도’를 하거나 특정 팀을 구성하여 사안에 대해 심층적으로 접근하려 하지 않고, 검찰의 ‘발표’와 이들 대상자들의 ‘발화’에만 주목하여 보도하는 경향으로 비롯되는 현상이다. 이른바 정보원의 ‘입’만 바라보면서 보도하고 자신의 ‘발’은 움직이지 않는 ‘게으른 보도’의 전형이다.

검찰의 편에서 심판자가 된 방송
‘박연차 리스트’ 보도 분석

백선기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우리 사회는 현재 신년 벽두부터 몰아치고 있는 권력과 특정 기업 사이의 유착과 비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들 사이 부정의 고리는 전 권력의 핵심들과 연계되어 끊임없이 확산되고 있으며, 기존 권력의 정점이었던 대통령에게까지 이어져 있다. 이른바 ‘박연차 리스트’로 불리는 이 사안은 전 권력과 유착관계에 있었던 한 기업의 회장이 벌였던 뇌물의 수수 혐의자와 규모를 둘러싼 부정과 비리로서 전 권력의 비도덕성을 보여 준다. 아울러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권력자 집안의 부도덕성에 초점

 
당연히 이같이 중요한 사안을 우리 방송은 처음부터 현재까지 거의 두 달에 걸쳐 톱뉴스의 아이템으로 다루고 있다. 본 사안은 기간이 두 달에 걸쳐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몇몇의 중요한 국면을 전후하여 사안의 성격이 변모되는 경향을 띠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사안의 성격 자체의 변모이기도 하지만, 우리 방송의 적극적인 재현과 관여를 통한 변모이기도 하다. 
   따라서 필자는 ‘박연차 리스트’가 처음 명명되었던 2009년 3월 30일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조사를 거쳐 최근 전 대통령의 자녀들에게 송금한 자금의 성격에 대해 논란을 빚고 있는 2009년 5월 14일까지를 분석대상으로 설정하였다. 이 기간 동안의 KBS, MBC, SBS 등 방송 3사 메인 뉴스 프로그램의 기사들을 수집해 KBS 기사 128건, MBC 기사 107건, SBS 기사 131건을 중점적으로 분석하였다. 분석방법으로는 최근에 필자가 독창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기호 네트워크 분석방법(Semiotic Network Analysis)’과 ‘담론분석방법(Discourse Analysis)’을 적용하였다. 기호네트워크 분석방법은 사안을 특정 기호들의 표출과 이들 기호의 연계를 구조화하여 의미를 찾아내는 방법이다. 담론분석은 이들 기호의 연계가 특정 담론으로 전개되는 과정에 주목하는 분석방법이다.
   분석 결과 첫째, 이번 ‘박연차 리스트’는 몇 가지 국면으로 전개되며, 이 국면들을 거치면서 성격이 급격하게 변하는 양태를 지니고 있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최초로 이 사안이 등장했던 것은 전 정권의 실세들과 가까웠던 한 기업의 소유자가 벌였던 로비 내지 뇌물 공여의 사안으로 통상 정권 교체기에 발생하는 사안들 중 하나로 인식되었다. 그러면서 이전 정권 실세들의 연루사항과 이들에 대한 이름들이 거론되면서 ‘리스트’라는 기호가 부여되고, 정치계 전반의 연루 사안으로 확대된다. 그러한 와중에 전직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 씨가 연루된 것이 드러나고, 전직 대통령은 물론 부인, 자녀, 조카들 전체가 연루되는 사상 초유의 ‘전직 대통령 가족 비리’ 사안으로 성격이 변모하게 된다. 다시 말해 이번 사안은 ‘리스트’라는 기호의 기의가 무색하게, ‘전직 대통령 가족의 뇌물 공여 및 은닉 사안’으로 의미가 정착되게 된 것이다.
   둘째, 우리 방송은 ‘박연차 리스트’에 연계된 다수의 정치인들보다는 ‘전직 대통령 가족’에 집중하는 보도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전직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 씨의 연루에 대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전직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씨에 대한 보도였으며, 세 번째는 전직 대통령의 아들과 조카들의 연루에 대한 것이었다. 최종적으로는 바로 전직 대통령의 연루에 대한 것이었다. 이러한 보도 경향은 이번 사안을 ‘정계와 재계의 유착’ 사안이 아닌 ‘이전 권력자 집안의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사안으로 의미를 변모시키고 있음을 드러내게 된다. ‘박연차 리스트’ 사안이 아니라 ‘전직 대통령 뇌물 수수’ 사안으로 변경되게 된 것이다.

발로 뛰지 않는 ‘게으른 보도’
  
셋째, 이 같은 사안의 성격 변화는 사안에서 내재하고 있는 갈등적 대립구조들의 변화와도 연계되게 되는데, 처음에는 ‘검찰 대 박연차’의 대립적 이중구조에서 이후에는 ‘검찰 대 전직 대통령의 형’, ‘검찰 대 전직 대통령의 부인’, ‘검찰 대 전직 대통령의 아들과 조카’ 등으로 이전되고, 급기야는 ‘검찰 대 전직 대통령’의 대립적 이중구조로 귀결되게 된다. 이러한 이항적 대결구조에서 우리 방송은 ‘검찰’과 같은 편에 자신을 ‘우리(us)’로서 위치 지우고, ‘전직 대통령’과 ‘그의 형, 부인, 아들, 조카’ 등을 ‘그들(they)’로서 타자로 위치 지우면서 대상화하고 있다. 이는 전형적인 기호의 이중 대립구조인 ‘우리 대 그들’의 포맷 양태를 지닌다. 이러한 포맷에서 방송은 이미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위치’를 떠나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대상들을 비판하고 힐난하는 ‘비판자 내지 심판자’ 위치에 서게 된다. 방송 스스로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에서 계몽적인 입장을 지니려 하고 있다. 이는 언론의 이른바 ‘십자군적 역할 및 기능(crusader role and function)’이라고 하여 언론 스스로가 도덕적인 우위에 서서 특정 사안을 비판하려고 하는 자세를 일컫는다. 이러한 역할은 때로는 언론에 기대되는 ‘사회 감시’의 중요한 역할이기는 하나 언론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훼손시킬 수 있는 역할이기도 하다. 아직 모든 사안들에 대해 법적 판단이 확정되지 않은 가운데, 방송이 먼저 이들을 비난하고 단죄하는 도덕적 입장에 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자세이다.
   넷째, 우리 방송은 이들 대상자의 발언, 언술, 언표, 행동 등 세부적인 사항들에 주목하고, 이것들을 시시콜콜하게 중계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의 형, 부인, 아들 및 조카, 나아가 전직 대통령의 주장, 해명, 논평, 부인, 반박 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여 보도하며, 이 발화들에 대한 검찰의 대응과 반박을 대립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대립적 관계를 그림이나 도표 및 그래픽을 활용하여 재구성하고 있다. 이른바 ‘사건의 재구성’ 및 ‘범죄의 재구성’ 포맷이다. 그로 인해 이 사안을 둘러싼 수많은 발화들이 생성되어 난무하고 있으나, 그 어느 것 하나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발화들만 난무하고 매듭지어지지 않은 ‘발화의 난장’이 되어 버렸다. 이는 방송사 스스로가 ‘탐사보도’를 하거나 특정 팀을 구성하여 사안에 대해 심층적으로 접근하려 하지 않고, 검찰의 ‘발표’와 대상자들의 ‘발화’에만 주목하여 보도하는 경향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이른바 정보원의 ‘입’만 바라보면서 보도하고 자신의 ‘발’은 움직이지 않는 ‘게으른 보도’의 전형이다. 
 
좌파정권의 비도덕성으로 확대

다섯째, 이번 ‘박연차 리스트’ 사안에서 보도의 정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에 관한 것이었는데, 우리 언론이 지니고 있는 각종의 보도의 파행들을 여실히 드러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봉하마을’에서부터 검찰청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해 ‘마라톤’ 중계하듯이 보도하였다. 이동의 전 과정을 ‘추적과 도피’의 포맷으로 보도하였고, 봉하마을에서의 출발 상황과 검찰청 도착 과정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과잉보도를 하였다. 그리고 검찰 내부에서의 심문과정도 심문 내용과 그에 따른 노 전 대통령의 답변보다는, 심문하는 방의 구조, 검찰과 노 전 대통령의 배치도, 식사 시간 및 음식 종류 등 별반 중요하지 않은 주변적인 사항들에 주목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른바 흥미본위나 선정적인 내용을 주로 보도하는 ‘타블로이드 식’ 보도경향을 보여 주었다. 실제로 그토록 호들갑 떨면서 보도하였던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에 대한 보도가 그 막대한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것에 비해 무엇을 전달해 주었는가에 대해 의심이 들 정도로 전혀 성과가 없는 보도라고 생각된다. 단지 호기심만 부추기는 방송보도였던 것이다. 전직 대통령의 이동 과정이 그토록 중요한 뉴스 가치를 지니고 있었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안에 대한 우리 방송 보도의 인식은 ‘정경 유착의 사안’으로서 ‘박연차 리스트’가 아니라 ‘전직 대통령 가족의 비도덕성’에 주목하고, 특히 전직 대통령의 ‘도덕적 가치의 이중성과 모순성’을 드러내며, 나아가 ‘노무현 정권의 비도덕성’을 부각시키는 사안으로 경도되어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방송 3사 전체가 보이는 일반적 인식으로 ‘도덕성’과 ‘윤리성’을 근간으로 하는 사안으로 접근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자체에 대한 비도덕성과 비윤리성은 사건의 결과에 따라 정당하게 평가받으면 될 것이지만, 노무현 정권에 대한 도덕적 평가나, 나아가 노무현 정권의 이데올로기적 지향점을 상징화하는 ‘좌파정권의 비도덕성’으로 확대 해석하고 평가하려는 자세는 피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사안은 노무현 전 대통령 가족을 둘러싼 비도덕 행위일 수는 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수행했던 업무와 그에 따른 공적에 대한 평가는 별개의 사안이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의 부도덕적 행위에 대해 실망하고 비판할 수는 있으나, 그것을 성급하게 정권의 업무수행에 대한 평가로 연계시키고 도덕적 평가를 하는 것은 언론이 지녀야 할 중립성과 객관성을 훼손시킬 수 있고, 특정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편향성을 띨 우려가 있다. 

심층보도는 없고 계몽적 질타만


이렇듯이 우리 방송은 이번 ‘박연차 리스트’ 사안을 보도하면서 우리 사회의 도덕과 윤리적 가치를 근간으로 하여 이름이 거명된 대상자들에 대해 도덕적인 비판과 평가를 내리고 있다. 특히 전직 대통령이 지녀야 할 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도덕성과 윤리성을 위반한 사안으로 인식하여 맹렬하게 비난하고 있으며 그의 부도덕한 행적에 대해 희화화하고 있다. 나아가 그의 전 가족들에 대해서도 비도덕성과 파렴치성을 질타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의 근본적 역할과 사명은 이렇듯이 비도덕적 행위에 대해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사안의 본질에 대해 보다 명확하게 규명해 주고, 사안의 속성을 적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보도하는 것이다. 그러한 보도는 모두 사실을 근간으로 해야 하며, 공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로 임해야 하는 것이다. 평가하거나 도덕적 잣대를 적용하려 하기보다는 사안에 대한 명확한 파악이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와 같이 호기심을 근간으로 하여 사실에 대한 정확한 파악 없이 추측과 추론에 근거한 보도 경향을 지속한다면, 이 사안은 소문만 난무하는 정치적 쟁점으로 남게 될 것이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6월호 방송비평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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