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카나항공 MX905편. 중형 여객기 안에는 겨우 30여명 정도의 승객만 있었다. 예정시간보다 20분 정도 빨리 도착한 공항도 텅 비어 있었다. 혹시 마스크를 살 수 있을까 해서 약국 앞을 기웃거리다 돌아서는 사람들뿐이었다. 공항을 빠져나와 들어선 시내도 마찬가지였다.

멕시코 국내 언론은 물론이고 CNN을 비롯한 외신들의 특종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CNN의 경우에는 뉴욕에서 의학전문기자 샌제이 굽타가 급파됐고, 그는 도착하자마자 최초발병자(Patient Zero)로 알려진 4살 소년을 취재해 전 세계에 영상으로 내보냈다.


1인 제작 시스템,
독이 든 성배?


제작기_KBS 스페셜 '긴급보고, SI 진앙지 멕시코를 가다'

홍현진 KBS스페셜 프로듀서

 

  2009년 4월 27일 11시 ‘KBS스페셜’ 사무실, 갑자기 예정에 없던 긴급회의가 소집됐다.
3일 전인 24일(금) 멕시코 정부가 943명 감염에 45명 사망의 원인이 신종인플루엔자(H1N1)라고 공식발표했고, 25일엔 감염 1004명, 사망 62명 그리고 일요일인 26일엔 감염 1324명, 사망 81명으로 매일 그 수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미국을 비롯해 뉴질랜드, 프랑스, 이스라엘 등에서도 감염환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만 2,000여 명의 현지 교민은 물론 세계 10위의 관광대국 멕시코를 여행하는 한국인도 신종플루 감염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상태였다. 인류에게 새로운 재앙이 출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뉴스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국내에 전해지는 뉴스는 외신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상태였고 현장의 생생한 취재내용은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긴급회의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로 그 주에 방송하기로 결정하고 취재팀을 꾸리기 시작했다.

PD 1명, VJ 1명
멕시코로 급파

 멕시코 현지의 제작 시설이나 송출 기반에 대해서 아무것도 파악이 안 돼 있는 상황에서 기존의 제작 방식으로는 6일 앞둔 방송 일자까지 제작이 불가능한 상태. 직항편이 없기 때문에 멕시코에서는 취재 원본 테이프를 기한 안에 보내는 것조차 힘들다. 결국 현지에서 가편집까지 하고 그렇게 해서 줄어든 시간 분량을 한국으로 인터넷을 통해 보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이런 기술적인 여건 하에서 취재팀의 조건이 결정됐다. 그 조건엔 예산부족이라는 상수까지 더해졌다. 결국 필자가 취재/촬영/NLE편집/전송을 담당하기로 했고 재난지역 전문 VJ 1명이 취재/촬영을 맡기로 하고 단 둘이서 멕시코로 떠났다. 국내에서의 취재는 이완희 프로듀서를 중심으로 2명 이상의 프로듀서가 취재 및 편집에 참여하기로 했다.
  VJ를 수소문하고 있는 사이, 회의실에선 멕시코 현지 취재는 HDV 촬영을 기본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HD건 SD건 6㎜ 카메라로 촬영을 하는 이상 동영상의 크기는 똑같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HD 화질로 현지에서 제작을 하고, 비상상황이 발생할 경우 SD 화질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한국 내에서의 촬영도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기로 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바로 취재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급한 것은 항공권. 다행히 저녁 8시에 출발해서 멕시코 현지에 같은 날 밤 11시30분에 도착하는 비행기가 확보됐다. 오후 2시쯤 조영미 VJ가 취재에 합류하기로 결정됐고, 한쪽에서는 멕시코 현지 안내인 섭외와 자료조사를, 다른 쪽에선 비상약품과 제작 장비를 챙겼다. 멕시코로 가지고 들어갈 장비는 HDV 카메라세트 2조와 파이널 컷 프로 편집에 사용할 매킨토시 노트북 2대, 그리고 500기가 용량의 외장하드 한 대를 준비했다.

  멕시카나항공 MX905편. 중형 여객기 안에는 겨우 30여명 정도의 승객만 있었다. 예정시간보다 20분 정도 빨리 도착한 공항도 텅 비어 있었다. 덕분에 입국은 일사천리였다. 여권심사를 통과해 짐을 찾고 입국 게이트에 도착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10분 남짓. 공항에 있는 사람들이라곤 혹시 마스크를 살 수 있을까 해서 약국 앞을 기웃거리다 돌아서는 사람들뿐이었다. 공항을 빠져나와 들어선 시내도 마찬가지였다. 취재팀을 마중 나온 한인회 장인학 부회장은 멕시코시티로 들어가는 내내 시내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평소에 비해 10퍼센트도 안 된다는 말을 반복했다. 마치 도시 전체에 소개 명령이 내려진 듯한 분위기였다. 교통정체가 심각해 1시간 넘게 걸렸을 호텔까지의 도로도 15분으로 충분했다. 호텔의 리셉션 직원들은 모두 마스크와 위생 고무장갑을 끼고 우리를 맞이했다.

인터넷 속도 문제로
취재보다 전송에 발 동동

  호텔에 체크인하자마자 들어오는 길에 촬영한 내용에 대한 편집을 바로 시작했다. 한국에서 출발한 지 이미 18시간가량이 지난 상태. 멕시코 도착 직후 통화한 국내 제작팀은 멕시코 현지에 대한 정보가 궁금했고, 이곳에서의 제작상황 및 인터넷 전송에 대해서도 점검이 필요했다. 50분 분량의 원본을 캡처해 공항 상황과 멕시코시티 들어오는 길, 그리고 호텔 상황 이렇게 세 개의 장면으로 나눠 편집했다. 12분 정도의 분량으로 2GB가 조금 넘었다. 전송을 위해 호텔 인터넷을 연결했고 KBS의 웹하드 서버에 접속, 전송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전송속도는 초당 70Kbyte. 1GB 전송에 4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비상이 걸렸다. 매일 최소한 한 시간 정도의 분량으로 10GB 이상을 전송해야 하는데 이것만으로도 40시간이 걸린다는 계산이다. 하루 촬영한 내용을 보내는 데 거의 이틀이 걸리게 될 이 상태로는 방송이 불가능했다. 인터넷 속도가 더 빠른 곳을 찾을 수 없다면 영상 품질을 떨어뜨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침 멕시코시티의 주요 관광지와 병원 쪽 취재를 시작했다. 텅 빈 도시는 여전했고 단지 병원 근처만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북적였다. 재채기 한번으로도 쉽게 전염된다는 언론의 무시무시한 경고 때문에 대중교통은 빈 차로 돌아다녔다. 술집은 영업정지 명령이 내려져 모두 문을 내렸고, 식당도 배달이나 포장만 가능했다. 멕시코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들르는 태양의 신전은 개점휴업이었고, 대성당들도 실내에서의 미사가 금지되어 주차장에 천막을 치고 종교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신종플루의 타격을 직접적으로 받은 거대 도시의 이곳저곳을 취재하면서 우리는 한편으론 인터넷 속도가 나오는 곳을 찾아봐야만 했다. 하지만 컴퓨터가 있으면 부자취급을 받는다는 멕시코의 상용 인터넷은 그 이상의 업로드 속도가 아무 데도 안 나왔다.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결국 전용선을 서비스하는 서버회사를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수소문해서 찾은 곳이 스페인계의 거대 미디어그룹인 텔레비사가 운영하는 서버 빌딩. 이곳이면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속도가 나올 것을 기대했지만 미국을 거치면서 병목이 생겨 초당 300Kbyte이상은 안 나왔다. 1GB 전송하는 데 1시간이 소요되는 상황에서 촬영 원본을 그대로 전송하고 취재에 더 집중하려 했던 계획은 포기해야만 했다.
  하지만 편집으로 용량을 줄여서 보내는 것도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취재팀이 머무는 호텔에서 서버 빌딩까지는 약 40분 거리. 그곳에 도착해도 시큐리티를 통과하는 데 많게는 1시간가량 걸렸다. 즉 취재 후 편집에 걸리는 3시간에다 서버 빌딩으로 들어가는 시간과 영상을 전송하는 시간까지 최소 6시간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한국에서 영상을 받아볼 수 있었다. 국내 제작팀에서 초조해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영상에 담기고 있는지 궁금해했고, 그 영상이 방송으로 쓸 수 있을 만큼의 품질로 제때에 올 수 있을지 불안해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일차적으로 압축 영상을 보내는 것. 멕시코에서의 인터넷 사정이 불안했기 때문에 압축 영상의 품질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HD 방송에 그대로 사용해도 괜찮을 정도여야 했다. 5분짜리 동영상을 10분의 1 크기로 압축해 호텔에서 한국에 전송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5분. 한국에서는 압축 영상의 품질도 방송에 적합하다며 일단 수락했다. HDV 원본 영상은 서버 빌딩으로 이동해서 다시 전송했다.

거리는 텅 비고, 병원은 문닫고
외신과 특종 경쟁까지

멕시코 내에서의 취재는 여전히 녹녹하지 않았다. 멕시코 정부가 모든 정보를 통제하고 있어서 외신기자들도 불만이 가득했다. 그 누구도 환자를 만나보기는커녕 의사조차도 만나볼 수 없었다. 멕시코 당국에서 뿌린 보도자료를 들고 문이 걸어 잠긴 병원 밖에서 리포트하는 것 말고는 다들 방법이 없었다. 취재의 문이 조금 열린 건 한국에서의 방송이 겨우 사흘 남은 목요일부터. 전날 언론 브리핑에서 멕시코 내 신종플루 확산이 현저히 줄었고 사망자 중 공식적인 확진 환자는 7명밖에 없다는 약간은 터무니없는 발표가 난 이후였다.
  이때부터 멕시코 국내 언론은 물론이고 CNN을 비롯한 외신들의 특종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CNN의 경우에는 뉴욕에서 의학전문기자 샌제이 굽타가 급파됐고, 그는 도착하자마자 최초발병자(Patient Zero)로 알려진 4살 소년을 취재해 전 세계에 영상으로 내보냈다. 이 소년이 사는 라글로리아라는 마을은 신종플루의 진원지로 이름 지어지면서 주변에 있는 돼지농장은 전부 의심의 눈초리를 받게 되고 그중 하나인 ‘스미스필드 푸드’라는 미국 소유의 농장이 변종인플루엔자의 가장 유력한 출처로 의심된다며 멕시코 보건부가 직접 브리핑을 하기까지 했다. 멕시코시티에서 70㎞가량 떨어진 마을 소나타클란에선 신종플루로 인해 처음 사망한 사람과 가족이 국내외 언론에 등장했고, 로이터는 멕시코의 낙후된 의료체계 때문에 신종플루에 걸렸음에도 진료를 제대로 못 받고 사망했다며 정부를 비난하는 환자들의 목소리를 취재하고 있었다.
  우리도 급박하게 취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전체적인 조감도를 그려내야 하는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독자적인 발굴 취재는 물론이고 매 시간 터지는 타 언론의 보도 내용에 대한 재취재도 함께 진행해야 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도시 외곽 지역과 병원들을 뒤지고 뒤져 취재를 끝내고 들어와서는 바로 편집. 두 대의 노트북을 한국에서 가지고 나온 것 때문에 그나마 시간이 조금 절약됐다. 두 대로 동시에 캡처를 진행하고 난 후 한 대의 노트북으로 편집을 하면서 다른 하나는 서버 빌딩으로 보냈다.
  그렇게 현지 취재팀이 매일 촬영한 내용을 HDV 품질로 한국에 전송하는 것에 가까스로 성공했다. 약 30개의 장면으로 전체 분량은 3시간 정도. 멕시코의 인터넷 환경에서 35Gbyte의 동영상은 전송 중에 끊어지기 일쑤였다. 편집이 끝나고 전송을 하는 중에도 결국 계속 모니터링을 하고 있어야만 안심할 수 있었다. 결국 주간 취재와 야간 편집으로 멕시코에 머무른 6일 동안 수면시간은 10시간이 채 안 됐다. 토요일 아침 7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호텔에서 출발하기 직전까지 한국으로의 동영상 전송을 계속 해야만 했다.
  긴급 상황에서의 1인 제작은 인터넷 속도만 어느 정도 보장된다면 기술적으론 가능하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살인적인 노동이 불가피하게 되고 그에 따라서 정작 중요한 취재에 충실하지 못할 가능성이 숨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6월호 언론현장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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