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세계 블로그 현황

찻잔 속 태풍 같은 블러거의 외침

김익현 · 아이뉴스24 글러벌팀장

블로그가 확산되면서 풀뿌리 민주주의가 한층 더 무르익을 것이란 기대감이 높다. 실제로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에서는 블로거들이 주류 언론의 저널리스트 못지않은 활약을 하면서 '1인 미디어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타임’은 지난 2004년 '올해의 인물'과 함께 '올해의 블로그'를 선정하면서 이런 블로그 열풍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언론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쿠바를 비롯한 제3세계 국가의 블로거들은 자유로운 언론 활동을 상상도 못한다. 블로그에 반정부적인 내용을 올렸다가는 바로 잡혀 가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제3세계 국가들에서는 아직도 자유로운 블로그 활동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블로그를 활용해 자국의 암울한 현실을 외부에 알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극심한 탄압을 받으면서도 블로그를 이용한 1인 미디어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쿠바 : 정부와 숨바꼭질 하는 블로거들
피델 카스트로와 사탕수수 그리고 야구로 유명한 쿠바는 지구상에서 몇 안 되는 1인 장기집권 국가다. 당연히 강도 높은 언론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어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듣는 것이 쉽지 않은 편이다. 쿠바에서는 지난 2월 장기 독재 정책을 이끌었던 피델 카스트로가 물러나고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가 국가평의회 의장 자리에 올랐다. 라울은 국가평의회 의장이 된 뒤 제한된 수준의 개혁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Y세대(Generacion Y)'란 블로그를 운영하는 요아니 산체스(Yoani Sanchez)는 쿠바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올리면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산체스는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펼치는 개혁 정책의 한계를 매섭게 꼬집고 있다. 이를테면 휴대폰 및 컴퓨터 구입 허용, 외국인 전용 호텔 투숙 허용 같은 내용들을 담은 그의 블로그는 서방 세계에서 쿠바의 현실을 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통로 중 하나로 꼽힐 정도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4월 처음 개설된 'Y세대'는 불과 1년 여 만에 방문자가 400만 명을 넘길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 덕분에 블로그 운영자인 산체스도 덩달아 유명 인사로 떠올랐다. 지난 5월 스페인 최대 신문인 엘파이스가 주는 오르테가 이 가세트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 산체스는 또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꿈꾸는 버락 오바마,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 골프 여제 로레나 오초아 등과 함께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뽑은  ‘2008년 100대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이 그가 블로그를 통해 쿠바 현실을 비판적으로 전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쿠바에서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이 상당히 힘든 편이다. 인터넷 접속 자체가 정부 관리 및 외국인들에게만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인 아바나 전체를 통틀어 인터넷 카페가 2개에 불과할 정도로 '인터넷 무풍지대'나 다름없다. 독일 서버를 이용한 산체스의 'Y세대' 역시 걸핏하면 접속 차단 조치를 당하면서 나름대로 핍박을 받고 있다. 산체스는 지난 5월 오르테가 이 가세트상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쿠바 정부가 출국 금지 조치를 풀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체스는 지금도 쿠바 정부와 숨바꼭질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체스가 쿠바에 거주하면서 힘들게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면 미국의 쿠바 망명자 가정에서 태어난 아나타시오 블랑코(Anatasio Blanco)는 또 다른 방식으로 쿠바 정부에 대한 비판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쿠바 감시(Cubawatch)'란 그의 블로그에는 '카스트로주의자들을 지구상에서 추방하자(Outing Fidelistas across the Globe)'란 문구가 적혀 있다. 블랑코는 기자라는 자신의 신분을 이용해 비교적 자유롭게 쿠바를 오가면서 블로그를 이용해 반카스트로 운동을 주도한다.

아직 언론 자유가 제대로 꽃피지 못하고 있는 쿠바에선 산체스처럼 얼굴을 드러내 놓고 블로그 활동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외국 서버를 이용해 익명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은 편이다. 대표적인 쿠바 블로그 커뮤니티인 바발루블로그에 링크된 것만 줄잡아 200여 개에 이른다. 이들은 쿠바 정부의 감시망을 의식하면서 조심스럽게 풀뿌리의 목소리들을 전해 준다.

이집트 :  시위 주도 블로거 200여명 구속
북부 아프리카에 자리 잡고 있는 이집트에서도 몇몇 블로거들이 활발하게 활동한다. 특히 지난 4월 야당과 시민운동 단체를 중심으로 고물가와 저임금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을 때는 수많은 블로거들이 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한편, 시위 소식을 수시로 전해 줬다. 경찰의 원천봉쇄로 당초 예상됐던 카이로에서의 대규모 시위와 총파업은 무산됐지만, 당시 시위는 2차 대전 이후 최대 규모이자 최장 기간 계속됐다. 이때 블로거들이 현장 모습을 그대로 전해 주면서 주류 언론들의 빈자리를 메웠다. 이에 화가 난 이집트 당국은 인터넷을 통해 총파업 참여를 주도한 야당 인사와 블로거 등 200여 명을 구속해 버렸다. 또 지난해에는 카림 아메르란 블로거가 이집트 대통령과 이슬람 문화를 비판하였다가 체포당해 4년의 실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다. 또 지난해 4월에는 대통령을 비난한 압델 카림 술레이만이란 청년이 이슬람 모독죄로 4년형을 받기도 했다.
이집트에서는 또 여성들의 인권 향상을 위한 투쟁에 앞장서는 여성 블로거가 맹활약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다리아 지아다(Dalia Ziada)란 26세 여성. 지아다는 자신의 블로그(daliaziada.blospot.com)를 통해 여성 할례를 비롯한 여성들의 인권을 말살하는 각종 제도에 저항하는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여성들의 정신 구조부터 바꾸겠다"고 주장한다. 지아다는 지난해 구속된 블로거 카림 아메르(Kareem Amer) 구명 운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런 운동 덕분에 지아다 역시 자신이 구명 활동을 하고 있는 아메르와 마찬가지로 이집트 정부로부터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 지아다는 현재 CIA의 스파이란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이란 : 국가원수 모독죄로 14년형 선고
이란에서는 아라시 시가르치란 블로거가 한때 인터넷상의 언론 자유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그는 지난 2005년 이란 경찰에 체포된 뒤 스파이 행위 및 국가원수 모독 혐의로 징역 14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복역 중이다. 그런가 하면 중국의 인권 운동가 후자는 지난해 자신의 블로그에 “2008년은 중국인뿐 아니라 세계인들에게 ‘중국 인권의 해’가 돼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올렸다가 체포돼 3년형을 선고 받았다. 베이징 올림픽 직전 중국 정부는 인터넷 검열을 완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블로그 공간을 통한 자유로운 소통은 여전히 먼 이야기로 남아 있다.

제3세계라고 모두 블로그를 철저하게 탄압하는 것은 아니다. 모로코는 이슬람권 국가 중 비교적 블로거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나라로 꼽힌다. 실제로 모로코의 블로그에서는 이슬람 제도에 대한 비판도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모로코 정부나 왕조에 대한 비판과 논쟁까지도 거침없이 이루어진다. 현재 모로코에는 3만 개가량의 블로그가 개설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언뜻 보기엔 그다지 많지 않은 숫자처럼 보이지만 모로코의 전반적인 경제 수준을 감안하면 상당한 편이다. 이처럼 모로코에서 블로그 활동이 비교적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정부가 신문, 방송 통제에는 적극적인 편이지만 블로그 활동에 대해서는 큰 간섭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모로코 같은 예외가 있긴 하지만 쿠바를 비롯한 제3세계 국가들에서의 블로그 활동은 제약 요건이 굉장히 많은 편이다. 자칫하면 잡혀가 장기간 투옥 생활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미국 워싱턴 대학이 지난 6월 발표한 세계정보접근(WIA)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전 세계에서 구속된 블로거의 수가 전년보다 3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 5명에 불과했던 블로거 구속 건수는 2006년 10건으로 늘어난 뒤 2007년엔 36건으로 대폭 증가한 것이다. 특히 중국, 이집트, 미얀마 같은 나라에서 블로거 구속 사례가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료는 또 지난해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블로거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미얀마에서 구속자 수가 많을 것으로 추정했다.

제3세계 블로거들을 압박하는 것은 육체적인 위협뿐만이 아니다. WIA 보고서에 따르면 30여 개국 정부는 기술적으로 온라인 활동 일부를 제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블로그 접속을 차단하거나 금칙어를 적용하기도 하며, 그도 아니면 아예 검색 서비스 제공업체들을 압박해 검색에 걸리지 않도록 하기도 한다. 로렌스 레식(Lawrence Lessig)이 이야기했던 '코드 규제'를 통해 블로거들의 입을 막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정부나 권력 기관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제3세계의 블로거들은 침묵하지 않는다. 익명으로 혹은 외국의 서버를 통해 자신들의 암울한 현실에 대해 발언한다. 이들의 발언은 아직 찻잔 속의 태풍처럼 미약한 외침에 머물고 있다. 자국 내에서는 마음대로 블로그에 접속할 수 있는 사람들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내는 목소리는 전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가면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서방 세계의 일부 블로거들을 중심으로 연대 움직임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를 연결하는 거대한 블로고스피어의 위력이 조금씩 힘을 발휘하고 있다. '개방'과 '공유'라는 블로그 특유의 장점이 잘 결합될 경우엔 멀리 장막 저편에 가려져 있는 많은 외침들이 세계를 향해 널리 메아리를 몰아올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 자료>
* 윤지로, 쿠바에 '풀뿌리 민주화운동' 싹튼다, 세계일보, 2008년 7월 1일.
* BBC Online, Blogger arrests hit record high, 2008년 6월 16일.
* Bill Law, Egypt: Women at the forefront for change, BBC Online, 2008년 3월 19일.
* Stephan Franklin, The hunger: Egypt's bloggers want to be journalists, Columbia Journalism Review, 2008년 7/8월호.
* Yoani Sanchez, Lost in Cyberspace: Is there a way out?, Global Journalist, 2008년 8월호.

월간 <신문과방송> 2008년 10월 미디어월드와이드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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