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제주해양리포트 : 제주바당 조간대를 가다’ 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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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온도 상승으로 미역과 청각 등 유용해조류는 사라지고 대신 아열대종인 거품돌산호, 분홍멍게가 제주바다에 확산되고 있다.)


1980년대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바닷속에 들어가 보면 검은 현무암 사이에 우거진 감태와 미역 숲 사이에서 뭔가 불쑥 튀어나올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여름방학이 되면 아버지가 이끄는 자전거 뒤에 올라타고 바다로 향했다. 지렁이 미끼를 단 대나무 낚싯대를 바다에 드리우면 어랭이(어랭놀래기)가 쉼 없이 올라왔다.

바다에서 갓 잡은 어랭이로 만든 어머니표 어랭이 물회는 여름철 별미였다. 썰물이 돼 바닷물이 빠져나가 낚시가 안 되면 밀물 때 잠겨 있다가 모습을 드러낸 조간대(간조 때 노출되고 만조 때 잠기는 연안의 일부 지역)에서 톳과 청각, 군부를 채취했다. 군부와 톳도 냉국의 재료이다.


어린 시절 추억을 가득 안겨준 제주바다

마을사람들은 썰물때 바다에서 보말과 톳, 청각, 군부, 미역 등 해산물을 채취해 가난하지만 소박한 밥상에 풍성함을 더했다.

해녀들은 거친 숨비소리(해녀들이 물질을 마치고 물 밖으로 올라와 가쁘게 내쉬는 숨소리)를 내며 자연산 전복과 소라, 성게 등을 채취해 생계를 이어갔다.

제주바다에 대한 나의 유년시절의 기억이다. 이처럼 늘 풍요로움을 주던 제주바다가 언제부터인가 변하기 시작했다.
 
어릴 적 풍성한 해조류 때문에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바닷속은 무절석회조류가 수중암반을 덮는 갯녹음 현상이 나타나면서 미역과 청각 등 유용해조류는 사라졌고 대신 아열대종인 거품돌산호, 분홍멍게가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원인에 대해 수년 전부터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수온 상승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11년 6월부터 12월까지 지구온난화에 의한 해수온도 상승이 도내 마을어장에 미치는 해양생태계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연안생태연구소와 공동으로 마을어장에 대한 수중탐사(수심 5 ~ 20미터)를 진행했다.

6개월간의 탐사 결과 하천과 육상양식장의 배출수가 유입되고 있는 도내 마을어장은 대부분 황폐화되고 있는 반면, 이런 영향을 받지 않는 차귀도와 우도 등 부속도서의 조간대와 수중해양생태계는 청정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황폐화 주범이 수온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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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삶을 꾸려 살아가는 제주 해녀들의 모습.(위쪽) 제주도의 풍요로운 해저 풍경.(아래쪽))


여기서 탐사대는 의문을 가졌다. 제주바다 황폐화의 주범을 기후변화에 따른 수온상승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탐사대를 구성하고 조간대를 통해 바다의 오염원이 어떻게 유입되고 있는지 집중적으로 탐사하기로 했다.

제주 조간대에는 상수도가 보급되기 이전 제주도민들의 생명수 역할을 했던 용천수와 불턱, 원담, 연대, 환해장성 등 선조들의 고유의 문화가치가 담겨 있는 해양문화유산들이 분포해 있어 해양문화유산에 대한 조사도 병행하기로 했다.

2012년 5월 본격적인 탐사에 앞서 1월부터 취재팀을 꾸리기 시작했다. 도내 지질과 고생물 분야, 해양, 조류, 해양문화, 용천수 분야, 수중촬영 전문가들이 기획취지에 공감, 조간대 탐사에 기꺼이 동참했다.

탐사대 구성 후 지난해 4월부터 12월 말까지 9개월 동안 제주시 동귀리를 시작으로 구엄, 중엄, 신엄, 귀덕1·2리, 금능, 금등, 두모, 신창, 고산, 신촌, 조천, 김녕, 행원, 하도, 종달, 시흥, 성산, 고성, 신양, 우도, 표선, 가마, 남원, 중문, 사계, 대정읍 신도2리 조간대까지 제주해안 640리를 돌면서 조간대 30여 곳을 탐사했다.

첫 탐사대상지인 제주시 애월읍 동귀리 조간대는 육상에서 담수가 바다로 들어가 바닷물과 서로 섞이는 제주의 대표적인 기수역으로 육상에서 유입되는 오염원의 영향이 적어 비교적 다양한 생물이 분포하고 있었다.

제주 올레길 16코스에 위치한 제주시 애월읍 구엄리 ~ 중엄 ~ 신엄리 조간대는 뛰어난 해안절경을 자랑하고 있었고, 좁고 넓은 암반평지를 이용해 소금을 생산해 냈던 소금빌레는 척박한 해안환경에 적응하고 살아온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조간대 탐사와 해양문화유산 조사 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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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번식한 구멍 갈파래로 뒤덮인 애월리 앞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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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우도 바닷속을 헤엄치는 벵에돔 무리.)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 조간대는 유독 용천수가 많았고 용천수에 얽힌 신화도 많았다. 이 중 굼둘애기물은 인어의 전설이 있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귀덕 앞바다에서 지내고 있던 인어가 어느 날 큰 물고기의 습격으로 심한 상처를 입었는데 도망간 인어는 용천수에 몸을 던져 상처를 씻어내다가 빨래를 나온 마을사람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인어를 모른 척 해줬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인어는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바닷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이처럼 귀덕리 조간대에 전설과 신화가 담겨 있는 용천수가 많이 남아 있지만 대부분 용천수는 오염으로 활용가치를 상실하고 있었다.

도내 육상양식장이 밀집해 있는 금등리 조간대는 양식장 배출수로 해양생태계가 몸살을 앓고 있었다. 특히 옛 선인들이 원시적인 방법으로 고기를 잡았던 원담들은 양식장 침전조로 변해 있었다.

육상양식장 배출수에 섞인 부유물질들이 물 흐름이 원활한 먼 바다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원담 안에 고스란히 쌓이고 있었다.

꽃해변말미잘류는 수중암반을 가득 덮어 톳 등 다른 유용해조류의 부착을 방해하고 있으며 말청각과 구멍파래는 이상 성장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관찰된 말청각의 크기는 평균(15 ~ 50센티미터)보다 큰 70 ~ 80센티미터급이었다.
 
1미터가 넘는 구멍 갈파래도 관찰됐다. 원담은 제주 해안가에서 만을 이룬 자연적인 지형을 이용하거나 인공적으로 돌담을 쌓아 둘러막아 놓고 밀물을 따라 들어온 고기가 썰물이 되어 바닷물이 빠져나갈 때 자연히 그 안에 갇히므로 쉽게 잡을 수 있게 장치해둔 곳이다.

이후 탐사대와 같이 현장조사를 한 제주해양수산연구원 전문가들도 이러한 현장을 처음 본다고 놀라워했다. 그동안 육상양식장 배출수가 해양생태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행정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지구온난화 위험 고스란히 드러난 현장

금성천 하부는 하천 정비로 인해 매년 여름철 집중호우 시 다량의 빗물과 토사가 한꺼번에 바다로 유입되면서 조간대와 조하대는 구멍갈파래의 이상 번식으로 유용 해조류와 해양생물들이 살 수 없는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고산리 조간대는 갯녹음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지만 천연기념물 제422호인 고산리 앞바다에 있는 차귀도 조간대와 조하대는 풍부한 해조류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조천리 조간대는 한반도를 비롯해 시베리아 일대에서 번식을 끝낸 도요류, 물떼류, 갈매기류, 백로류가 겨울을 보내기 위해 따뜻한 남쪽나라로 이동하다가 쉬어가는 중간 기착지로 이용되고 있었다.

섬 속의 섬인 우도봉 아래 조하대도 원시의 해양생태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우도의 톨칸이 해안 조하대에 톳과 감태 등으로 덮인 암초지역에는 몸길이 30센티미터가 넘는 벵에돔 무리를 비롯해 쏨뱅이와 놀래기 등 정착성 어종과 대형 게, 성게들이 관찰됐다.

서귀포시 안덕면 용머리 해안 조간대는 지구온난화로 해수면 상승의 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지구온난화로 수온이 86년 전보다 1.94도 높아지면서 제주 해수면도 지난 1970년 1월부터 2007년까지 22.8센티미터 상승했다.

이에 따라 지난 1987년 용머리 해안을 따라 조성된 450미터의 산책로는 현재 밀물 때면 조금이나 사리와 무관하게 바닷물에 잠기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16일 남제주군 대정읍 신도리 조간대를 끝으로 9개월에 걸친 탐사를 마무리하자 지나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수온이 올라가면서 해조류가 녹기 시작한 5월 제주 바다 조간대는 해조류의 풍성함을 보여주었고 여름철은 해양생물들의 활기가 넘쳐났다.


발품 팔아 쓴 기사, ‘환경지침서’ 되길

기온이 낮아지면서 다소 쌀쌀했지만, 뭉게구름이 걸린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가을바다는 제주의 전형적인 가을정취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눈이 내린 겨울 조간대는 은잉어와 민꽃게 등 해양생물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 주었다. 5월의 봄비가 조간대 암반을 흥건히 적셔 탐사 중에 미끄러져 넘어지기도 하고 여름철 소나기로 조간대 바위틈에서 비를 피하기도 했다.

태양이 작열하는 무더운 여름날 너울성 파도로 바닷속이 탁해지면서 만족할 만한 수중촬영의 성과물을 건지지 못하고 돌아오기도 다반사였다. 수중탐사팀은 보강촬영을 위해 개인휴가를 이용하여 바닷속의 생태를 찍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제주바다 조간대의 해양생태계와 문화유산의 가치를 재확인했고 이를 지키는 것이 세계자연유산,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지질공원 등 유네스코 트리플 크라운의 명성을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임을 도민들에게 각인시켜주었다.

물론, 도민들 뿐만 아니라 각 지자체 단에서 제주 해양환경을 보전하기 위한 적극적인 협조가 절실했다. 그동안 제주바다를 이용과 착취의 대상으로만 생각했던 행정당국의 변화도 이끌어냈다.
 
제주특별자치도와 해양수산연구원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에 걸쳐 연구비 3억 원을 투입해 하천정비와 해안도로 개설 등이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 해결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마을어장 내 자연생산력 증가를 위한 종합연구를 목적으로 별도의 국가연구과제도 신청키로 했다.

탐사대원들이 발품을 팔아 만든 2012년 제주바당 조간대 기록은 현재 책자로 발간되었다.
 
제주바당 조간대 기록은 앞으로 지질공원과 해안 올레길, 해양생태관광자원 활용 방안을 수립하는 기초자료와 해양생태해설사교육과 초 · 중 ·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환경교육지침서로 활용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고대로 / 한라일보 정치부 차장

 
Posted by 미디어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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