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처분신청 남발에 언론계 공동대응 필요
100억 소송 승소한 KBS 강희중 PD

이상헌 기자 · shlee@kpf.or.kr


“어이, 100억!”
방송국 복도에서 마주친 동료들은 인사 대신 강희중 PD를 ‘100억’으로 불렀다. 그도 그럴 것이 방송, 특히 시사보도 프로를 만들다 보면 종종 PD가 소송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100억 원이라는 금액은 2007년 당시까지만 해도 KBS에서 최고기록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방송국에서 만나는 사람들 첫마디가 ‘100억’이 됐다. 들을 때마다 당사자 가슴은 철렁하든 말든 소송이 마무리된 지금까지도 강 PD는 ‘100억’으로 불린다.

당시 최고기록이었던 100억 소송

2007년 5월 KBS 시사교양국 KBS 스페셜 팀 강희중 PD는 한 벤처기업의 신기술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방송을 준비한다. 어둠 속에서도 선명한 화면을 찍을 수 있는 나노이미지센서 개발업체인 ‘플래닛82’의 핵심기술이 조작이라는 것을 밝혀내는 방송이었다. 전문가들의 증언은 물론 직접 카메라 앞에서 이뤄진 실험을 보여주며 ‘신기술이 만든 허상’을 벗겨 보려고 했다.
 5월 20일로 방송 일정이 잡혔다. 그러나 방송을 얼마 앞두고 방송금지 가처분 소송이 들어왔다. 나노 신기술을 이전했던 전자부품연구소가 방송 내용이 ‘허위사실 유포’라며 가처분 신청을 했던 것이다. 가처분 신청이 들어오자 방송을 며칠 앞두고 밤새 편집에만 매달려도 시원치 않은 담당 PD는 밤을 새워 법원 자료를 준비해야 했다. 특히 해당 분야 전문가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나노 기술을 법조인에게 설명하는 일은 거의 ‘맨땅에 헤딩’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방송 일정이 코앞인 상황에서 담당 PD 혼자 총대를 메야 하는 고독한 싸움이었다. 그래서 아직도 강 PD에게 가처분 신청은 ‘생각만 해도 피하고 싶은 일’이다.

숙명적이고도 고독한 싸움

다행히 법원은 ‘조건부 방송’을 결정했다. 예정대로 2007년 5월 20일 KBS TV스페셜 ‘신기술이 만든 풍경, 대박과 의혹’은 공중파를 탔다. 예상대로 커다란 후폭풍이 밀려왔다. ‘제2의 황우석 사건’이라는 말이 들릴 정도였다. 전자부품연구소와 플랫닛82는 물론 당시 신기술 주에 투자했던 일반인들까지 크게 동요했다.
 그리고 방송 다음날인 5월 21일 플래닛82는 KBS와 프로그램 제작자를 상대로 10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및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내기에 이른다.
 100억짜리 소송이 들어왔다는 말을 처음 듣는 순간 강 PD도 “겁이 났다”고 한다. 주변에서도 많이 놀랐다. 소송을 건 플래닛82는 강하게 나왔고, 언론 플레이도 능했다. ‘100억 소송’이라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번지자 주위에서도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세게 나오지’ 하는 반응이었다. 물론 응원의 목소리가 더 많았다. 하지만 ‘PD가 잘못 짚었겠지’ 하는 얘기도 들렸다. 강 PD는 그런 “어중간한 주위의 시선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소송이 청구된 날은 2007년 5월 21일인데, 플래닛82측이 소송을 취하한 것은 2009년 4월 20일이다. 2년 가까운 이 기간은 강 PD에게 무척 외롭고도 힘든 시간이었다. 그러나 플래닛82에게는 기업의 운명이 걸린 소송이었다. 플래닛82가 소송에 쓴 인지대만 4,000만 원이 넘을 정도고, 변호사들의 면면을 보더라도 베테랑급들이 즐비했다. 반면 방송사 입장에서는 해결해야 할 여러 소송 중 하나였다. 방송사가 아무리 적극적으로 대응한다고 해도 “자본의 힘을 바탕으로 죽기 살기로 덤비는 기업을 법적으로 상대하기는 벅찬 일”이었다.
 회사 법조팀의 도움이 있었지만, 법적 절차의 많은 부분은 담당 PD의 몫이었다. 비록 방송 이후 강 PD는 KBS 스페셜 팀을 떠나 다른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소송은 계속 이어졌다. “방송국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법원에 제출할 자료를 만들어야하는 날도 많았다”고 한다. 강 PD는 “진실의 힘이 가장 강하다고 믿지만,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많은 시간과 물질적인 노력이 소모됐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힘들다고 사실과 달리 상대를 인정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강 PD는 끝까지 싸우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힘들 수밖에 없었던 나날들이 길어졌다.

3탄 만들어 진실 밝히겠다
 

그러나 어둠은 조금씩 걷혀 갔다. 2008년 1월 플래닛82의 윤상조 대표가 신기술 허위공시와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그럼에도 100억 소송은 민사쪽 재판으로 여전히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였다. 대표의 구속으로 나노 기술의 실체에 대한 의심은 더욱 커졌다. 이에 강 PD는 추적 60분을 통해 2탄이라고 할 수 있는 ‘혈세 100억 투자, 나노칩 신기술의 진실’을 지난 2009년 4월 17일에 방송했다. 그리고 마침내 방송 며칠 후 플래닛82 대표는 소송을 취하했다. 이것으로 2년 여의 긴 터널은 끝을 만난다.
 분명히 힘든 시간이었겠지만 강 PD는 “그래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소송 취하 소식을 들었을 때의 심정을 ‘수렁에서 탈출한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그 말은 곧 지난 2년은 수렁 속에서 허우적거렸던 시간이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실제로 소액 투자자나 업체 관련자의 협박도 있었다. “차에서 나오기 전에는 주변을 꼭 한번 살펴야만 했다”는 말이 담당 PD가 겪어야 했던 고통을 단적으로 표현해 준다.
 소송은 잘 마무리됐다. 그럼에도 강희중 PD가 고통스러운 지난날을 회상하는 시간을 굳이 갖은 이유는 동료나 후배들도 자신이 겪은 것과 같은 상황에 너무나 쉽게 노출되어 있는 현실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특히 강 PD는 “가처분 신청의 남발과 같은 현 상황은 언론계 전체 차원에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원래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의 가처분 신청을 자본력을 앞세운 강자들이 악용하면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있다”고 경험자로서 진단한다. 특히 “가처분 신청이 ‘방송을 해도 되는가?’의 판단을 넘어 ‘내용이 옳은가? 그른가?’에 대한 판단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며 “그것은 법원의 능력 밖이며 방송 이후의 문제는 제작진의 몫으로 남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원래는 사람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강 PD는 이제 비로소 운명과도 같았던 나노 기술을 떨쳐버리고 ‘다큐멘터리 3일’ 팀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사람이 좀 각박해진 것 같다”는 강 PD는 “그러나 나노 기술과 관련한 진실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고, 해야 한다면 3탄도 만들고 싶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6월호 인터뷰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민영 2009.08.12 0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걸 개발한 박사 이름이 모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