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6월 30일 약 30명이 모여, 한국언론학회 전신인 ‘한국신문학회’를 창립할 당시, 우리나라 대학에는 겨우 2개의 신문학과만 존재했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현재, 전국에 모두 112개 언론관계학과들이 개설되어,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언론관계학과들이 많게 되었고, 언론학회 회원수도 2008년 10월 1천명을 돌파했다.

1950년대와 60년대 초반까지 신문학은 신문·잡지 등 인쇄매체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60년대 후반부터  방송과 영화 등의 영상매체와 광고와 PR 등도 모두 다루는 동시에 사회과학적 입장에서 연구, 교육하는 매스 커뮤니케이션학으로 확대발전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70년대에는 커뮤니케이션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명칭의 변경은 곧 학문의 변화, 발전을 나타내는 것인데, 이름도 종래의 ‘신문학’에다 ‘방송’만 추가해서 ‘신문방송학’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그러다가 ‘언론학’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신문학회도 85년 4월 한국언론학회로 개칭했다. 그리고 최근 ‘정보’라는 말을 추가하여 ‘언론정보학’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30명으로 발족해 천명이 넘는 학회로 발전
한국언론학회 창립 50주년 - 한국 언론학의 과거와 현재

 차배근  서울대 언론정보학 명예교수 


우리나라 언론학계의 모(母)학회인 ‘한국언론학회’가 오는 6월 30일로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1959년 6월 30일 약 30명의 언론학 교육자와 언론인들이 모여, 현 한국언론학회 전신인 ‘한국신문학회’라는 학술단체를 창립할 당시, 우리나라 대학들에는 겨우 2개의 신문학과만 존재했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현재, 전국에 모두 112개 언론관계학과들이 개설되어,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언론관계학과들이 많게 되었고, 언론학회 회원수도 2008년 10월 1천명을 돌파했는데, 이는 실로 놀라운 발전이었다. 
 
‘신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언론학의 탄생

언론에 관한 연구가 시작된 것은 서양에서 17세기에 근대적 신문·잡지와 인쇄서적·팸플릿 등이 출현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이러한 언론현상에 관한 연구와 교육이 대학에서 ‘신문학(영어로는 journalism, 독일어로는 Zeitungswissenschaft)’이라는 이름의 독립 학문으로 성립하게 된 것은 1908년 9월 14일 미국의 미주리대학이 세계 최초로 신문학부(School of Journalism)를 창설하면서부터였다. 그러자 다른 대학들도 신문학부나 신문학과를 설치하여 1919년에는 모두 28개로, 1920년대 말에는 54개로 늘어났다.
한편 각 대학 신문학 교수들은 1912년 미국신문학교사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Teachers of Journalism, 현 Association for Education in Journalism and Mass Communication의 전신)를 창설했다. 그리고 1924년 신문학 관계 최초의 학술지 ‘저널리즘 불리틴(Journalism Bulletin)’을 창간하여 연 4회 발행하다가 1928년 제호를 ‘저널리즘 쿼털리(Journalism Quarterly)’로 바꾸었다.
독일에서도 1916년 라이프치히대학이 처음 신문학연구소를 설치했는데, 비록 명칭은 ‘신문학연구소’였지만, 미국의 신문학과나 신문학부와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독일대학의 연구소에서는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을 교육하고 학위도 수여하기 때문이다. 라이프치히대학에 이어, 1919년에는 뮌스터대학이, 1924년에는 뮌헨대학도 신문연구소를 설립하자, 다른 여러 대학들도 신문연구소를 설립하거나 신문학강좌를 개설했다.
그리하여 독일에서도 신문학 연구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미국의 신문학과 양대(兩大) 산맥을 이루었는데, 독일에서는 신문의 본질 등에 관한 이론을 중시한데 비해, 미국에서는 취재·기사작성·편집 등의 실무를 중시했다. 따라서 독일 신문학은 ‘이론신문학’, 미국 신문학은 ‘실천신문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중국·일본도 1920년대부터 언론연구

서양의 대학들에서 신문학 연구와 교육을 시작하자, 중국도 1918년 중국 최고 학부 베이징대학(北京大學)이 최초로 신문학강좌를 개설했다. 이어서 1920년 9월 상하이성요한대학(上海聖約翰大學)이 중국 최초로 신문학과를 창설했는데, 초대 학과장은 미국인 패터슨(D. D. Patterson)이었으며, 교과과정은 당시 미국 미주리대학 신문학부와 거의 같았다.
1921년 샤먼대학(厦門大學), 1923년 베이징의 핑민대학(平民大學), 1924년 엔징대학(燕京大學)도 신문학과를 신설했다. 그런가 하면, 1925년에는 상하이의 다섯 개 대학이 각각 신문학과를 신설했으며, 이들 학과의 교수들은 ‘상하이신문학회’라는 학술단체도 창립했다. 그러면서 중국에서도 신문학이 새로운 학문으로 두각을 나타나게 되었다.
한편 일본에서는 1926년 4월 동경제국대학이 문학부에 처음 신문학 강좌를 개설했으며, 같은 해 신문학연구회(현 매스컴학회 전신)를 창립하고, ‘신문학연구’라는 학술지도 발행하기 시작했다. 그 뒤 1929년 동경제국대학은 신문연구실을 설치했고, 1932년 죠지대학(上智大學)이 일본에서 처음 신문학과(전문학부 3년제)를 창설했는데, 이 학과는 당시 세계 신문학의 양대 산맥이던 독일의 이론신문학과 미국의 실천신문학을 반반씩 절충한 스위스 취리히대학 신문학과를 주로 모방하여 설립해서 운영했다.

우리나라에 언론학의 소개와 도입

이와 같이 서양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와 가까운 중국과 일본에서도 1920년대부터 신문학을 하나의 독립학문으로 대학에서 연구하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의 지배 아래 있어, 언론자유도 없었기 때문에 대학에 신문학과가 생길수도 없다. 그럼에도 1920년대부터 우리나라에도 미국과 독일의 신문학이 소개되면서 신문학과를 설치하자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신문학을 우리나라에 처음 체계적으로 소개한 사람은 김동성(金東成)이었는데, 그는 1909년 미국으로 건너가 오하이오주립대학에서 신문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귀국 후 1920년 동아일보 창간에 참여하여 기자로 활약하면서 1924년 6월 ‘신문학’이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나온 최초의 신문학 관계 전문서이자, 미국의 소위 ‘실천신문학’을 우리나라에 처음 체계적으로 소개한 저서였다.
1928년에는 김현준(金賢準)이 독일의 ‘이론신문학’도 우리나라에 소개했는데, 김현준은 1922년 독일로 유학해서 독일신문학의 선구자 칼 뷔허(Karl Buecher)가 창설한 라이프치히대학 신문연구소에서 신문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1928년 2월 우리나라 사람들 중 최초로 신문학박사 학위(학위논문은 “동양 한·중·일에서 근대신문의 생성발전에 관한 연구”)를 받았다. 그리고 그해 8월 귀국, ‘근대신문학에 대한 제고찰(大衆公論, 1929년 9월호)’ 등의 논문을 통해 독일신문학 이론을 우리나라에 소개했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에는 신문학과가 없었기 때문에 김현준은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가르쳐야만 했다.
김동성과 김현준이 당시 세계 신문학의 양대 산맥이던 미국의 실천신문학과 독일의 이론신문학을 각각 소개하자, 우리나라 언론인들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신문학에 관한 관심이 크게 고조되었다. 그러자 유광렬(柳光烈), 이서구(李瑞求), 현진건(玄鎭健) 등은 1928년 조선신문연구회라는 연구단체를 결성, 신문학을 연구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학 관계 학술지인 ‘신문연구’도 창간해서 신문학에 관한 이론들과 연구결과들을 발표했다.
한편 한기악(韓基岳), 양재하(梁在廈), 임경일(林耕一) 등은 잡지나 서적을 통해 우리나라도 신문학연구와 기자양성을 위하여 대학이나 전문학교에 신문학과를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러한 제안들은 일제의 탄압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실현되지 못하다가, 1945년 광복이 되어서야 실현을 보게 되었다.

광복 후 언론관계학과의 창설과 격증

1945년 8월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자, 수많은 신문·잡지·통신 등이 쏟아져 나오면서 언론에 관한 교육과 연구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했다. 그러자 일본 죠지대학(上智大學) 신문학과 출신 곽복산((郭福山, 당시 동아일보 사회부장)이 47년 봄 ‘조선신문학원’(1950년 ‘서울신문학원’으로 개칭)과 병설 신문학연구소를 창설했는데,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언론교육기관이었다.
한편 대학에서도 언론에 관한 학문적 관심이 고조되면서, 1950년 4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이 처음 ‘신문학개론’ 강좌를 개설했으나, 곧 6·25 발발로 중단됐다가 휴전 뒤 다시 계속했다. 그러자 연희대(현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중앙대도 각각 신문학 강좌를 개설했다.
이처럼 각 대학에서 신문학 강좌를 개설하다가 1954년 4월 1일 홍익대학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정규 신문학과를 창설했다. 이어서 57년 4월 중앙대도 신문학과를 설치함으로써, 비록 때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드디어 신문학이 대학에서 독립학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자 1960년대에는 이화여대를 시작으로 한양대, 고려대, 경희대, 성균관대, 서강대가 신문학과, 신문방송학과, 홍보학과 또는 보도예술학과 등을 설치했으며, 2년제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전신)과 부산의 한성여자실업초급대학은 각각 방송학과를 신설했다. 또한 68년 서울대가 신문대학원을 설치했다. 그러나 홍익대 신문학과가 62년 대학설치기준령 미달로 폐과됨으로서 1960년대 말 언론관계학과들의 수는 10개가 되었다.
1970년대에도 연세대가 신문방송학과, 한국외국어대는 홍보학과, 청주대는 신문학과를 신설했으며, 중앙대는 기존의 신문학과와는 별도로 74년 광고홍보학과도 신설했다. 한편 서울대는 75년 기존의 신문대학원을 서울대종합화계획에 따라 해체하고, 그 대신 신문학과를 신설하면서 학부·석사·박사과정을 동시에 설치했다. 그런가 하면, 2년제 서울예술전문대는 라디오·TV과를, 신구전문대는 인쇄학과를 신설했다. 그리하여 70년대 말에는 언론관계학과들의 수가 전국에 모두 16개에 달했다.
1980년대에는 정보화사회의 대두와 함께 언론관계학과들이 각광을 받게 되면서 21개의 4년제 대학들과 6개의 2년제 전문대에서 모두 27개의 언론관계학과들을 새로 설치했다. 또한 82년 중앙대가 신문방송대학원의 설립을 시작으로, 언론대학원·언론정보대학원·언론홍보대학원 등 특수대학원도 3개나 설치했다. 그리하여 80년대 말에는 대학의 언론학교육기관들의 수가 모두 46개로서, 70년대 말보다 2.8배나 증가했다.
1990년대에는 언론관계학과들이 지방으로 확산되면서 10년 동안에 전국의 4년제 대학들에서 새로 설치한 언론관계학과 또는 학부만도 무려 55개로서, 이는 1950년대부터 40년 동안 설치한 학과들의 수(33개)보다 1.7배나 많았다. 그리하여 90년대 말에는 전국의 4년제 언론관계 학과나 학부만도 무려 85개에 달했는데(재학생 총수는 1만4천명), 이는 99년 말 현재 우리나라 1백92개 4년제 대학들 중 약 절반에 가까운 44.3%의 대학들이 언론관계학과나 학부들을 설치한 셈이었다.
2000년대에도 언론관계학과와 대학원들이 계속 늘어나 2009년 현재 모두 112여 개 학과와 31개 전문대학원들이 존재하고 있다(한국언론재단 홈페이지). 그리하여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언론관계학과가 많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람직한 현상인지, 아니면 거품현상인지는 모르겠다.

신문학에서 언론학으로 확대 발전

우리나라 언론학은 위와 같이 양적으로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많은 발전을 이룩했는데, 대학에 처음 신문학과가 설치된 1950년대와 60년대 초반까지 신문학은 신문·잡지 등 인쇄매체를 중심으로 그에 대한 실무적이고 인문주의적 연구와 교육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6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새로운 매스커뮤니케이션학과 독일의 공시학(公示學, Publizistikwissenschaft) 등을 받아들여, 우리나라의 신문학도 인쇄매체뿐 아니라, 방송과 영화 등의 영상매체와 광고와 PR 등도 모두 다루는 동시에 사회과학적 입장에서 연구, 교육하는 매스커뮤니케이션학으로 확대 발전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70년대에는 학문영역을 또 다시 인류사회의 모든 커뮤니케이션현상으로 확대하여 커뮤니케이션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러한 학문적 추세 맞추어 학문과 학과 명칭도 바꿀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영어에 적합한 우리말을 찾지 못해, 종래의 ‘신문학’에다 ‘방송’만 추가해서 ‘신문방송학’이니 ‘신문방송학과’니 하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그러다가 곽복산이 일찍이 1971년 그의 편저 ‘언론학개론’에서 제안한 ‘언론학’이라는 명칭을 점차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신문학회도 85년 4월 한국언론학회로 개칭했다. 하지만 정보화사회의 발달로 정보와 뉴미디어 등이 언론학의 주요 연구대상이 되자, ‘정보’라는 말을 추가하여 ‘언론정보학’이라는 명칭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서울대가 종래의 신문학과를 98년 ‘언론정보학과’로 개칭했고, 같은 해 한국사회언론연구회(1988년 창립)도 한국언론정보학회로 명칭을 바꿨다.
이와 같은 명칭의 변경은 곧 학문의 변화, 발전을 나타내는 것인데, 현재의 언론학 또는 언론정보학이란 명칭이 앞으로 또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에 따라 학문영역도 계속 확대되고 분화되어 나갈 것이 분명하다. 이는 한국언론학회 연구분과들의 분화과정을 보아도 알 수 있는데, 1959년 6월 30일 현 한국언론학회의 전신인 한국신문학회의 창립 당시는 연구분과가 없었다. 그러나 74년 5월 처음으로 5개 연구분과위원회, 즉 매스컴이론 및 방법연구분과, 매스콤사연구분과, 매스콤법제연구분과, 국제커뮤니케이션연구분과, 광고 및 PR연구분과를 설치했다.
그 뒤 90년에는 연구분과들의 수가 12개로 늘어났으며, 2009년 현재는 18개에 달하는데, 이를 보면, 광고연구분과, 국제커뮤니케이션연구분과, 문화·젠더연구분과, 미디어교육연구분과, 방송 및 뉴미디어연구분과, 언론과 사회연구분과, 언론법제윤리연구분과, 커뮤니케이션과 역사연구분과, 인터렉션연구분과, 정치커뮤니케이션연구분과, 조직커뮤니케이션연구분과, 종교와 커뮤니케이션연구분과, 지역언론연구분과, 커뮤니케이션정책연구분과, 홍보연구분과, 휴먼커뮤니케이션연구분과, 과학보건커뮤니케이션연구분과, 저널리즘연구분과 등 연구영역이 매우 다양하다.
그런가 하면, 80년대 후반부터는 한국언론학회 이외에 각 분야별 독립학회도 생기기 시작해, 현재는 한국방송학회, 한국광고학회, 한국언론정보학회,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회, 한국홍보학회, 한국광고홍보학회, 한국소통학회, 한국언론법학회,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한국지역언론학연합회, 한국지역언론학회 등 10여개가 설립되었다. 그리하여 각각 해당 분야에 관한 연구 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이러한 학회들은 언론학의 변화와 발전에 따라 더 늘어날 전망이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6월호 특별기획 - 한국언론학회 50주년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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