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에 ‘조갑제’를 검색어로 쳐 넣으면 100만 건 이상의 글이 뜬다. 조갑제닷컴을 시작한 이후 내가 쓴 기사 분량은 200자 원고지로 환산할 때 약 10만 장이다. 이는 그전 약 20년간 쓴 기사 총량의 거의 곱절이다. 나는 농담으로 “긴 기사를 가장 빨리 쓰는 대회가 있다면 내가 1등 할 거야”라고 말한다.




이 글을 쓰는 2009년 6월 16일 조갑제닷컴(chogabje.com)에는 22건의 기사가 새로 올랐다. 그 가운데 21건이 시국(時局) 관련 글이었다. 내가 쓴 기사는 ‘노무현과 함께 자살한 한국 언론’ ‘이란사태를 외면한 3大 보수신문 인터넷판’ 등 여섯 건이었고 나의 강연 동영상이 두 건이었다. 나머지는 기사 교환을 하는 우파 매체와 단골 기고자(寄稿者)들의 글이었다.
이날 조갑제닷컴에 접속한 사람은 약 1만 4,000명, ‘페이지 뷰’로는 1인당 23페이지씩 쳐서 약32만이었다. 다른 인터넷 매체의 경우 1인당 페이지 뷰가 평균 10 정도라고 한다. 접속자를 세기 시작한 것이 5년 전부터인데 6월16일 현재 누계는 약810만 명이다. 페이지 뷰로는 약 1억7000만.
2000년 2월 26일에 도메인을 등록, 문을 연 지 9년 반, 게재된 총 기사 건수는 2만 6,410건이다. 하루 평균 8건 정도의 새 기사가 올라간 셈이다. 2002년 대선(大選)을 기점으로 하여 접속자가 많아진 것과 함께 기사 건수도 많아져 요사이는 매일 10건 이상이 새로 실린다.
9년 반 동안 내가 써서 올린 기사는 약 8,000건이다. 하루 평균 2.5건인데 2002년 이후로 치면 하루 평균 3.5건이다. 200자 원고지로 환산하면 매일 40장 정도 쓰는 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한 지난 5월 23일 이후 6월 3일까지 12일간 조갑제닷컴에 올랐던 관련 기사를 모아 ‘또 하나의 國民葬’이란 책을 냈는데, 238페이지였다. 이 가운데 필자가 쓴 글은 전체의 약 60% 분량이었다.

1996년까진 컴맹


접속자 수는 늘어가는 추세이다. 처음 2년간은 하루 수백 명 수준이었는데, 2002년 대통령 선거 기간 중 수천 명 선으로 늘어 점차적으로 증가하더니 지난 국민장 기간엔 수만 명으로 폭증(暴增)하였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결, 북한의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총선(總選), 대선(大選) 같은 사건이 생기면 접속자가 갑자기 늘어난다. 방금 일어난 사건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하여 조갑제닷컴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큰 사건이 나면 나는 30분 안에 해설 기사를 써 올린다.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다. 판단이 서지 않는 사람들에게 입력되는 최초의 정보가 선입견(先入見)을 형성하여 여론에 영향을 주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하였다.
‘노무현 서거가 과연 맞는 표현인가’라는 글이 인터넷상에서 화제(話題)가 된 지난 5월 23, 24일엔 하루 접속자 수가 4만 명을 넘어 신기록을 세웠다. 요사인 1만 3000~2만 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필자는 1971년 부산 국제신문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하였다. 문화부 기자 4년, 사회부 기자 생활 5년을 하는 동안 두 번 강제해직을 당하였다. 1981년 서울에 올라와 월간 마당 편집장을 거쳐 1983년 10월부터 조선일보 월간조선부(月刊朝鮮部)에서 일하게 되었다. 1991년 3월 호부터 월간조선 편집장, 1996년 9월부터 1년간 미국 하버드 대학 니먼 펠로 과정을 연수하였다. 1998년에 다시 월간조선(月刊朝鮮) 편집장이 되었고, 2001년부터는 분사(分社)한 월간조선의 편집장 겸 대표로 일하다가 2005년에 퇴직, 지금은 사외(社外) 편집위원으로서 매달 긴 기사를 기고한다.
필자는 미국으로 연수를 떠나기 전까지 컴맹이었다. 니먼 펠로 과정 연수가 없었더라면 지금도 볼펜으로 기사를 적고 있을 것이다. 대중교통이 발달된 보스턴 지역에서 사는 바람에, 또 친구가 운전사 역할을 해 주는 바람에 미국에 가서도 운전을 배우지 않아 지금도 차를 몰지 못한다. 기계를 싫어하는 나는 한때 “글은 기계로 쓰면 맛과 멋이 없어진다”라는 허황된 억지를 부리기도 했었다. 그때 미국에서 컴퓨터 글쓰기를 익히지 않았더라면 나의 기자 수명(壽命)은 짧아졌을 것이다.

화가 나서 쓴 글이 많아

필자가 조갑제닷컴을 만들겠다고 생각했을 땐 지금처럼 뉴스 사이트를 목표로 하지 않았다. 써놓은 글이 200자 원고지로 7만 장쯤 되니 이를 디지털화하여 공개하자는 뜻이었다. ‘최신정보 파일’이란 항목을 만들어 놓고도 며칠에 한 건씩 기사를 올렸을 뿐이다. 조갑제닷컴이 뉴스 및 해설 중심의 인터넷 매체로 발전한 것은 좌파 정권 하에서 울분에 쌓여 있던 보수층의 열화와 같은 욕구(慾求)가 그렇게 만든 측면이 강하다. 좌파 정권의 역설적인 수혜자(受惠者)인 셈이다.
조갑제닷컴은 한자(漢字)와 한글을 혼용한다. 필자는 한국 언론의 가장 큰 과오는 한글전용으로 가버림으로써 자신들의 생존기반인 한국어(韓國語)를 파괴하고 독서력에 기초한 국민교양을 약화시키고 있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한자(漢字) 때문에 접속자가 줄지 않았고, 글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불평도 듣지 못하였다. 한국 언론의 한글전용은 게으른 기자들을 위한 자기기만(欺瞞)일 뿐이다.
조갑제닷컴은 인터넷 매체임에는 분명한데, 개인 홈페이지나 ‘웹진’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름 때문일 것이다. 내가 쓰는 기사의 비중이 높은 점도 사적(私的) 매체라는 인상을 줄 것이다. 조갑제닷컴은 ‘朴正熙 전기’와 ‘金大中의 正體’ 등 단행본을 한 달에 한 권꼴로 출판한다. 서점과 조갑제닷컴의 인터넷 쇼핑몰을 통하여 판매하고, 애국단체의 집회현장에서 직접 팔기도 한다. 조갑제닷컴에선 나를 포함, 세 명의 직원이 일하는데 책 판매 수입이 주(主)이다.
조갑제닷컴은 특종을 하기도 한다. 김정일의 처 고영희 사망, BBK 사건과 관련하여 이장춘 대사가 이명박(李明博) 당시 회장으로부터 받은 명함을 공개한 것, 최근의 김현희 인터뷰 등이다. 작년의 촛불난동, 최근의 자살정국(自殺政局) 때는 보수 신문까지 겁을 먹고 언론의 정도(正道)를 이탈하였으나 조갑제닷컴은 ‘사실보도’의 원칙을 고수하여 ‘진실의 불씨’와 건전한 여론을 지켜냈다고 자부한다.
조갑제닷컴이 자랑하는 자료는 한국 현대사 관련이다. 내가 쓴 13권의 박정희(朴正熙) 전기, 박 대통령 면담 일지(日誌)도 사이트상에 유료(有料)로 공개하여 놓았다. 6·25 남침전쟁, 이승만(李承晩), 북한의 실상 관련 자료도 많다. 야구, 영화,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여행기나 관전평, 영화평을 써 올릴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
필자는 한 달에 평균 15회 정도의 강연을 한다. 매주(每週) 월요일 오후 2시 문화일보 빌딩에서 하는 ‘한국 현대사 강좌’는 지난 6월 15일 현재 109회를 기록하였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엔 부산일보 강당에서 시국(時局) 강연을 한다. 이런 자료들이 유튜브 전문 참깨방송(대표 김종환)에 의하여 동영상으로 편집되어 유튜브(youtube.com)에 올라 있다(약 300건).
구글에 ‘조갑제’를 검색어로 쳐 넣으면 100만 건 이상의 글이 뜬다. 조갑제닷컴을 시작한 이후 내가 쓴 기사 분량은 200자 원고지로 환산할 때 약 10만 장이다. 이는 그전 약 20년간 쓴 기사 총량의 거의 곱절이다. 나는 농담으로 “긴 기사를 가장 빨리 쓰는 대회가 있다면 내가 1등 할 거야”라고 말한다.
많은 글은 화가 난 상태에서 쓴 글이다. “언론은 보도기사문에서 노무현 자살이라고 써야지 ‘서거’라고 해선 안 된다”는 너무나 당연한 글을 비방하는 기자들이 있는 세상이니 화가 자주 나고 그때마다 글자판을 두드린다.

언론자유를 남용하는 기자들

한국에서 용감하다는 칭찬을 듣기는 매우 쉽다. 상식대로 행동하면 용자(勇者)가 되는 세상이다. “태양은 동쪽에서 뜬다”는 것과 같은 뻔한 진실을 말하면 왼쪽에선 ‘거짓말’이라고 하고 중간에선 ‘과격하다’고 하고 오른쪽에선 ‘용감하다’고 말한다.
나처럼 호기심 많고 약간의 정의감(正義感)이 있고 건강이 나쁘지 않은 사람이 기자생활을 하기엔 한국이 천국이다. 나는 39년간 기자생활을 하면서 네 가지 원칙에서 멀리 떠나지 않으려 했다. 두 가지는 수습기자 교육을 받을 때 한 선배 기자로부터 들었던 말이고 세 번째, 네 번째는 내가 터득한 원리이다.

1. 기자는 시장(市長)을 만날 때나 시청 수위를 만날 때나 같은 태도를 취하여야 한다.
2. 기사 문장은 정확하고, 짧고, 쉬워야 한다.
3. 사실이 신념보다 우선(優先)해야 한다.
4. 좋은 기자는 많이 쓰는 기자이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7월호 미디어포럼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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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deira plastica 2012.04.12 2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이것은 정말 좋은 게시물되었습니다. 생각에서 나는 또한 이렇게 서면으로 보관하고 싶은데요 - 시간과 좋은 기사를 만들기 위해 실제 노력을 복용하지만 무엇을 말할 수 .. 많이 procrastinate없이 수단으로 뭔가를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