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프로젝트 6부작-인간의 두 얼굴’을 통해 전달하고자 싶은 것이 다만 재밌는 실험과 놀라운 인간심리의 내면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의 행동과 생각을 이해하길 바랐다. 그럼으로써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인간을 지배하는 건 ‘상황’
그래서 희망이 있다
제작기_EBS 심리프로젝트 ‘인간의 두 얼굴’

정성욱 EBS PD



일곱 사람이 정면에 보이는 그래프를 동시에 보고 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을 해야만 한다. ‘A, B, C 세 개의 선 중 어느 선이 제일 긴가?’ 정답은 A. 누가 봐도 A가 제일 길지만, 미리 약속한 여섯 명의 사람들은 차례로 C라는 틀린 대답을 한다. 마지막 일곱 번째 앉은 사람은 이상하다는 듯이 눈치를 보며 당황한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다른 여섯 명과 같이 C가 가장 길다며 틀린 답을 말한다. ‘인간의 두 얼굴’ 시즌Ⅰ에 나왔던 장면의 일부다. 시청자들은 ‘저 사람 바보 아니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는 장담할 수 없다. ‘나라면 안 그럴 텐데…’라는 믿음은 착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왜 저런 행동을 할까?’


이것이 ‘심리 프로젝트-인간의 두 얼굴’ 시리즈가 천착하는 물음이다. 뉴스가 전하는 끔찍한 소식을 접하면서, 아니면 일상에서 친구, 연인, 동료, 그리고 가족과 얽혀 생활하면서 누구나 한번쯤 이런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냥 ‘나쁜 사람’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뭔가 찜찜한, 이해되지 않는 인간 행동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무엇…. 2008년 ‘시즌Ⅰ’은 이런 인간행동의 원인을 외부적 요인인 ‘상황’에서, 2009년 ‘시즌Ⅱ’는 그 원인을 내부적 요인인 ‘착각’이란 키워드로 찾고자 했다.
‘인간의 두 얼굴’은 실험을 통해 인간 심리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이다. 그래서일까? 각각 3부작인 ‘시즌Ⅰ’과 ‘시즌Ⅱ’에는 엄청난 양의 실험이 보인다. 총 45가지, 1,000여 명의 참가자들이 실험에 참가하였다. 기간 역시 2007년 10월부터 2009년 4월까지 기획 포함해 총 1년 6개월이 걸린 작업이었다. 나를 비롯한 제작진은 심리학에 문외한이라 모든 실험은 국내외 교수 및 전문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인간의 두 얼굴’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대답뿐. 암담했다. 외국의 연구가 대부분인 심리실험을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새롭게 바꾸어야 했고 심리실험의 특성상 촬영 세팅 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변수(피실험자의 선택, 카메라의 노출)에 대해 고려해야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작 자체를 주저하게 만들었던 것은 ‘인간의 두 얼굴’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인간이 상황에 지배당하고 착각하는 존재라는 것을 시청자가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방송이란 이성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매체인데 시청자가 프로그램 내용에 대해 심정적인 거부감을 갖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고민은 프로그램이 완성되어 마지막 순간까지 나에게 큰 짐이었다. 그래서일까? 제작진은 프로그램과 시청자의 ‘소통’을 위해 기획, 실험촬영, 편집, 구성, 음악, 인터뷰 컷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였다.
 어떤 실험은 세팅만 2개월이었고 촬영은 2박 3일이었다. 하지만 방송은 1분. 어떤 실험은 제작진 먼저 스스로 실험을 검증하고 포기해야만 했다. 물론 촬영만 하고 아예 방송도 나가지 않은 실험도 부지기수. 편집도 마찬가지였다. 파이널 컷으로 편집을 하다 보니 구성을 바꾸는 것이 용이했다. 작가와 함께 구성안 손보는 작업만 해도 수십 차례. 토할 것 같았다. 스스로에게 물어 봤다. 꼭 이렇게 힘들게 해야만 하나? 답은 간단했다. 해야 한다는 것. 시청자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것과 보여지는 것에 대한 괴리를 줄이기 위한 제작진의 고통은 마지막 방송 일까지 계속되었다(결국 ‘인간의 두 얼굴’은 2008년 올해의 구성작가상, 2009년 한국PD대상 작가상을 수상한다).

상황은 의지보다 강하다


'인간의 두 얼굴’ 첫 실험촬영을 하던 날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2003년 192명의 사망자를 낸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실험의 진짜 목적을 모르는 피실험자들이 있는 방 안에 가짜 연기를 집어넣었다. 연기는 점점 짙어지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연기로 가득 찬 방. 그런데 10분이 지나도록 방 안을 뛰쳐나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모니터로 실험 상황을 보고 있던 제작진은 너무나 걱정된 나머지 실험을 중단시킬까 심각하게 고민했을 정도였다. 왜 사람들은 연기로 가득 차서 숨 쉬기도 어려운 방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던 것일까. 궁금했다. ‘왜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나?’라는 물음에 대한 피실험자들의 대답은 ‘남들이 다 가만히 앉아 있길래’, ‘혼자 튀는 행동을 하기가 민망해서’였다. 놀라웠다. 인간은 자신의 목숨이 걸린 순간에서조차 상황에 휩쓸리는 존재란 말인가. 지하철 화재 당시 열차 안을 휩쓴 ‘상황의 힘’을 여지없이 보여 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자신만의 원칙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고 배워 왔고 또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과 내가 머무르는 상황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나도 모르게 수만 가지 판단을 상황에 맞춰 바꿔 나가고 있다. 그것은 내가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당하지 않으려는 우리들의 욕망에서 ‘상황의 힘’이 탄생한다. 그리고 그 ‘상황의 힘’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불편한 편견, 아름다운 착각의 발견

‘시즌Ⅰ-상황’이 끝났다. 하지만 또 궁금했다. 과연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요인은 ‘상황’만 있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풀기 위한 작업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착각’이었다. 제작진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2009년 ‘시즌Ⅱ-착각’은 ‘시즌Ⅰ’ 실험의 두 배에 이르는 실험을 진행하였다. ‘심리 프로젝트’라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실험을 통해 인간심리의 내면을 드러내고자 했다. 우리의 행동이 얼마나 많은 착각 속에서 선택되는지, 그리고 삶을 바꾸는 ‘긍정적 착각’이란 무엇인지를 리얼한 실험들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 주고자 했다.
‘시즌Ⅱ’에서도 놀라운 실험은 계속되었다. ‘4부-착각의 진실’을 보면 낯선 사람이 거리를 지나던 행인에게 길을 묻는다. 이때 두 사람 사이로 커다란 간판 하나가 지나가고 순간 길을 묻던 사람이 바뀐다. 간판이 지나간 뒤에도 행인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착각 때문이다. 보는 이를 뜨끔하게 하는 실험도 많았다. ‘5부-아름다운 세상’의 내용이 그러하다. 빨간 신호등이 들어와 있는 교차로에 고급 승용차와 경차가 번갈아 정차해 있다. 모두 파란불로 신호가 바뀌었는데 움직이질 않는다. 이때 뒤에 있는 운전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고급 승용차일 때는 평균 10초 만에, 경차는 평균 3초 만에 경적이 울렸다. 겉모습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편견과 선입견, 즉 ‘사회적 착각’ 때문인 것이다.

방송 후 시청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시청자 게시판에 방송 내용, 즉 실험을 보고 씁쓸하다는 댓글도 여럿 달렸다. 대개 진실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 나타나는 반응이다. 불편한 진실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두 얼굴’은 일부러 교훈을 주거나 정답을 가르치려고 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방송을 보고 실험에서 보여지는 인간의 모습에서 그 무엇인가를 발견하기를 바랐다. ‘인간의 두 얼굴’을 보고 단 한번에 생각과 행동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보는 순간만이라도 스스로의 행동을 되돌아 보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인간의 두 얼굴’이 불편함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제작진이 ‘심리 프로젝트 6부작-인간의 두 얼굴’을 통해 전달하고자 싶은 것이 다만 재밌는 실험과 놀라운 인간심리의 내면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의 행동과 생각을 이해하길 바랐다. 그럼으로써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즉 실험을 통해 인간은 ‘상황’에 휩쓸리고 ‘착각’하는 나약한 존재를 보여 주고 있지만 이를 통해 우리 안의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상황을 지배하는 사소한 포인트를 찾아내 바꿀 수만 있다면 전체 상황을 바꾸는 기적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1부-상황의 힘’에서는 ‘3의 법칙’을 이용해 지하철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해내는 모습을, ‘2부-사소한 것의 기적’에서는 작은 화단 하나가 무단 쓰레기로 가득 찬 골목길을 깨끗하게 바꾸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부탁 한마디로 평범한 사람이 도둑을 잡으러 달려가는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또한 선행 바이러스를 이야기한 ‘3부-평범한 영웅’에서 보듯이 상황의 힘에 의해 선도 퍼져 나간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시즌Ⅱ’ 역시 착각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데 목표를 두고 있었기에 착각의 진실은 ‘긍정적 착각’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통해 뒤집힌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즉 프로그램을 통해 ‘착각’은 우리의 삶에 성공과 행복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는 우리 인간만이 가진 힘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이해하면 희망이 보여

‘사람’은 PD인 나에게 영원한 화수분이다. 이만큼 매력적이고 가슴을 설레게 하는 존재가 또 있을까? 방송에서 이러한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보여 주는 방법은 꼭 다큐가 아니어도 괜찮다. ‘예능’이든 ‘교양’이든 ‘드라마’든 ‘다큐멘터리’든 나는 ‘사람’이 보이는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사람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 프로그램이 대중의 사랑도 받는 것을 보면 내 생각이 크게 틀리지는 않은 듯하다. 그래서일까? 이번엔 ‘사람’의 또 다른 ‘진짜 모습’이 궁금했다. 그 호기심의 첫걸음이 바로 ‘인간의 두 얼굴’인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나와 타인, 그리고 우리를 이해하는 작은 희망의 조각을 찾고자 했다. 미국 출장 중 인터뷰했던 심리학자 빕 라테인이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당신이 만든 프로그램이 사람들을 바뀌게 만들 것입니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7월호 제작기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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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빠 2009.07.15 16: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찐글 잘 보고 갑니다.

  2. 김주환 2009.07.29 1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