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활동 중 ‘참바보’를 만나 귀한 인연을 맺고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의 인생 궤적을 좇다 보면 ‘바보 도예가 이종수’란 표현이 딱 맞는다. 말과 행동, 생활, 생각, 사고, 질박하고 넉넉함이 배어 있는 작품 경향까지 ‘바보 철학’으로 똘똘 뭉쳤다.

 

‘바보 도예가 이종수 이야기’




 

                                                                  

                                                                      변상섭 대전일보 논설위원



‘바보’의 의미가 헷갈린다. 좋은 뜻인지 아니면 욕인지 혼란스럽다. 사전적 의미는 젖혀 두더라도 바보는 흔히 엉뚱하게 분위기 파악 못하고 썰렁한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을 통칭한다. 자신은 물론이고 자식이 ‘바보 같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언짢아지고 격하면 대들고 언성을 높이는 게 다반사였다.
그런 부정적 의미의 ‘바보’가 김수환 추기경 선종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180도 변했다. 80년대 어떤 대중 가수가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히트시켜 바보가 친근하게 다가왔던 적도 있었지만, 요즘의 ‘바보 트렌드’와는 다르다. 원칙주의자이며 남 배려 잘하고, 속 깊고, 우직하고, 욕심 없고 등 온갖 미사여구를 다 갖다 붙여도 소통이 될 정도다. 이러다 국어사전에 긍정적 의미의 ‘바보’ 뜻풀이를 새롭게 추가해야 할 것 같다.
필자도 취재활동 중 ‘참바보’를 만나 귀한 인연을 맺고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추기경과 노 전 대통령이 ‘국민 바보’가 됐지만, 그분도 두 분 못지않은 ‘고수 바보’, ‘골수 바보’다. 지난해 여름 73세의 일기로 홀연히 저승 여행을 떠난 ‘도예가 이종수’ 선생이다. ‘메이저리티’를 거부하고 70평생을 ‘마이너리티’로 살다간 조선 도공의 후예다. 한국을 대표하는 도예가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다. 대전에서 활동해 중앙에 덜 알려진 도예가지만 작품의 내공은 짱짱하다. 서울의 문화 권력에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했다. 작은 체구였지만 거인의 틀을 갖췄다. 그런 모습에 끌려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후배들이 많았다.
그의 인생 궤적을 좇다 보면 ‘바보 도예가 이종수’란 표현이 딱 맞는다. 말과 행동, 생활, 생각, 사고, 질박하고 넉넉함이 배어 있는 작품 경향까지 ‘바보 철학’으로 똘똘 뭉쳤다.
그분은 장래가 보장된 전도유망한 작가로 예술계에 데뷔했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서울 명문 사립여자대학 교수가 됐다. 하지만 선망의 대상인 교수직을 4년 만에 미련 없이 던져 버렸다. 몇 날 며칠을 고민했지만, 자신의 능력으로는 작품 활동과 학생 가르치는 일, 두 가지 모두를 잘해 낼 자신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가르치는 일이 완벽하지 못하면 학생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고, 반대로 작업을 못하면 평생 후회하면서 살 것 같아 양심을 속이면서 이중생활을 도저히 할 수 없었다고 필자와 어느 비 오던 봄날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속내를 얘기해 알게 됐다. 당시는 이해가 안 됐지만 그 후 선생을 자주 접하면서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공감을 하게 됐다. 그리고 대전 변두리 강가에서 가마를 짓고 치열하게 도자기를 빚고 굽는 데 일생을 바쳤다. 오죽했으면 절친한 친구인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가 “그를 가리켜 남들은 모두 서쪽으로 가는데 혼자서 동쪽으로 가는 사람”이라고 했을까.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지만 늘 당당하고 비굴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추상같았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서울에서 개인전을 하는데 국립 현대미술관장이 와서 작품을 본 후 “전시기간에 내방에 한번 들러 달라”고 했는데 가지 않았단다. 작품을 구입하려면 전시장에서 결정하고 갈 일이지 오라 가라 거들먹거리는 것 같아 자존심이 용납되지 않더란다. 벌써 소장 작가 반열에 올라야 할 비중 있는 작가인데도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아직 선생 작품이 없다.
미술관 작품 거절 사건(?)은 대전에서도 있었다. 1998년 대전시립미술관 개관 후 대부분 지역 작가 작품을 구입했다. 하지만 선생은 10년간 거절로 일관했다. 이유는 작고 작가와 더 훌륭한 작가부터 구입하는 게 옳은 순서라는 주장을 폈다. 주변의 권유와 미술관 측의 요청에 선생이 돌아가시던 해인 지난해 비로소 대전시립미술관에 두 점의 작품이 소장됐다.
개인전 때 이런 일도 있었다. 관람객으로부터 전시작품 일체를 구입하겠다는 제의를 받았었다. 한편 고마우면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퍼뜩 들어 작품이 다 팔렸다고 거짓말을 한 후 이런 방법의 작품 컬렉션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좋아하는 작품을 한 점, 두 점 구입해 모으는 게 이상적인 컬렉션이라고 한 수 지도를 했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지나칠 정도로 철저하고 욕심 없는 행동에 혀가 절로 내둘러진다.
중국 양주팔괴(揚州八怪)의 한 사람인 서예가 정판교는 그의 저서 ‘바보경’에서 바보 철학을 설파했다. 정판교의 바보 철학은 성공과 명리를 위해 자신을 철저하게 낮추는 처세술이다. 지혜롭지만 어수룩한 척하고, 기량이 뛰어나지만 서툰 척하고, 언변이 뛰어나나 어눌한 척하는 게 정판교의 바보 철학이다. 성공을 위해 의도적으로 바보처럼 말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바보의 경지가 이종수 선생과는 비견할 바가 못 된다.
도예가 이종수 선생은 의도된 바보는 철저하게 경계했다. 어눌한 언변과 어수룩해 보이는 모습, 나서기보다는 조용하게 뒤에서 자리를 지키고 그러면서 할 말을 다하는 게 선생의 본모습이었다. 전통 도예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자신만의 아이덴디티가 있다. 균형이 덜 잡힌 듯하지만, 눈에 거슬리지 않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고고한 품격이 있으며 인위적이지 않아 질리지 않는 작품 경향에도 그의 고집스러운 성품이 풍긴다.
정직보다는 거짓이, 원칙보다는 약삭빠름이 생존의 법칙인 현 시대에 추기경과 노 전 대통령의 바보상이 사람의 마음을 끌리게 한다. 도예가 이종수 선생의 삶 역시 정직함과 원칙을 가벼이 여기는 우리에게 무언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진보와 보수로 갈려 반목 갈등하는 우리 사회, 서로 인정하지 않고 당리당략에 몰입하는 우리 정치권, 전직 대통령까지 나서서 혼란을 부추기는 형국이다. 작금의 어지러운 세상을 돌파할 열쇠가 세 분의 바보 철학 속에 있을 것 같아 뜬금없이 바보 얘기를 해 보았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7월호 에세이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