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상호비평의 기준과 건전한 상호비평 방안

남재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촛불집회 보도를 계기로 언론의 정파성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참여정부 때 진보-보수 혹은 친정부-반정부의 대립구도가 형성된 이후 언론의 이념적 양극화는 점점 심화되고 있다. 한국 언론의 발전과정이라는 거시적 틀로 보면, 이념적 양극화는 보수 일변도의 논조에서 진보 논조가 신장되면서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현재의 과도한 정파성은 저널리즘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기본적 가치를 훼손하는 위험수위에 도달해 있다. 바람직한 언론의 정치성이 일관된 정치적 관점을 갖고 기본적인 저널리즘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라면, 현재의 정파성은 정치철학에 기초한 일관된 관점의 결과가 아니라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른 결과이다. 그래서 정치적 입장에 따라 현실의 전체상이 극단적으로 달라지는 결과가 초래되고 있다.

지나친 정파성은 언론 불신임 초래
이런 사태가 지속되면 언론은 정파를 대변하는 전위로서의 입지는 강화되겠지만, 시민사회 전체의 신뢰를 받는 언론으로서의 지위는 심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언론 전체의 지위 하락을 가져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촛불집회에서 이미 그런 조짐이 보였다. 집회 초기에 조·중·동은 사옥이 습격당하고 광고 불매 운동까지 당하는 불신임의 수모를 겪었다. 그 반사 이익은 경향과 한겨레에 돌아갔다. 하지만 7월 들어 PD수첩의 과장 보도 논란이 본격화되면서 MBC가 집중적인 비판을 받고 있다. 결국 촛불집회로 조·중·동과 MBC는 이미지 손상을 입었다. 현재 진행 중인 논란이 어떻게 매듭지어지든 언론 전체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하락할 것이다.

그럼에도 언론의 이념적 양극화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냉전 이데올로기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성격을 둘러싼 진보-보수의 이념 논쟁은 계속될 것이고, 언론은 이를 반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언론은 ‘정파의 전위’와 ‘이상적 객관성’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정파의 전위로 휘둘리면 당장의 반사이익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시민사회 전체의 불신임을 받을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나는 그 절충점이 ‘일관된 정치적 관점의 느슨한 적용’과 ‘기본적인 저널리즘 가치의 준수’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언론의 ‘정치성’ 혹은 ‘일관된 관점’은 세상을 해석하는 정치철학적 관점을 의미한다. 정파성은 한 정치세력, 즉 정파의 현실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성향을 말한다. 흔히 진보-보수 대립이라는 표현은 충분한 정치적 관점을 확보한 당사자들의 논조차이를 설명할 때 적합하다. 친정부-반정부는 정파성에 의한 논조 대립일 경우 더 적합한 표현이다. 이 글은 한국 언론의 이념적 대립의 성격이 정파성 대립에 가깝다고 가정한다.) 이 기조 하에 언론이 합의하고 시민사회가 인정하는 실천의 준거를 구축해 나갈 때 언론의 사회적 지위는 탄탄하게 유지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언론이 합의하고 시민사회가 인정하는 언론 실천의 준거를 마련해 나가는 과정은 어떠해야 할까? 그 방법론으로 가장 일반적인 것이 자체비평이다. 자체비평은 개별 언론사가 자사의 언론활동을 비평하는 것으로 매체에 공표되는 형태와 내부에만 고지되는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옴부즈맨 칼럼은 공표되는 형태의 대표적인 경우이고, 노동조합 회보 등의 비평은 내부에만 고지되는 경우이다. 어떤 경우든 자체비평은 비평내용상 한계가 명백하다. 공표되는 경우는 비평의 기준은 알려지지만 비평의 대상이 제한되는 경향이 있다. 내부 고지용은 비평의 기준이 외부에 공표되지 않기 때문에 ‘기능주의 비판’이나 내부자 이해관계에 함몰될 소지가 크다. 이런 한계 때문에 자체비평이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지만 그 효과는 크지 않다. 외부비평은 언론계 외부의 평자가 언론 활동에 대해 비평을 하는 경우로 학자들의 저널리즘 비평, 시민단체의 모니터링, 인터넷 공간의 개인적 비평 등이 포함된다. 외부비평은 비평에 필요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구체성과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외부비평과 내부비평의 중간 형태로, 언론 전문지의 비평이 있다. 미디어오늘, 미디어스 등과 같은 언론 전문지의 비평이다. 이 유형은 전문적인 매체비평의 이점이 있지만, 현재로선 정파성이 강해서 비판대상 매체의 수긍을 얻어내기 힘든 한계가 있다.

상호비평 아닌 상호비방 도구로 약용 우려
미디어 상호비평은 흔히 이 모든 비평 유형의 한계를 보완한 방법으로 제안된다. 상호비평은 개별 매체가 자사를 포함한 언론계 전체의 언론 활동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고 그 결과를 매체에 공표하는 비평 형태이다. 상호비평의 이점은 일단 자체비평보다 ‘자기관련성’(self-reference:자신을 비평의 대상으로 해야 하는 속성)에 대한 부담이 적기 때문에 비평의 심도를 담보할 수 있다. 또 상호비평이 공개적인 미디어 공간에서 수행되기 때문에 시민에 대한 고지 효과가 커서 언론 활동에 대한 공론장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상호비평은 자사보다는 주로 타사를 비평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비평이 아닌 비방의 도구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실제로 참여정부 때 활성화됐던 방송과 신문 간의 상호비평은 저널리즘의 기준에 따른 비평이라기보다는 정파성에 매몰된 상호비방에 가까웠다. 필자가 2005년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겨레신문 등 4개 신문과  KBS 및 MBC의 미디어 비평 기사 및 프로그램을 분석한 결과 상호비평은 ‘자사 선전의 도구적 성격’과 ‘정치담론의 하위 담론적 성격’이 매우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촛불집회 보도에서 나타나는 매체 간의 상호비평은 매우 강한 공격 저널리즘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사실 이렇게 정파성이 강하고 언론윤리의 확립 정도가 미약한 현실에서 상호비평을 언론실천의 준거를 구축하는 방법으로 제안하는 것은 매우 관념적인 발상일 수도 있다. 상호비평이 제대로 작동하면 얻게 되는 효과가 큰 만큼 상호비평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비평 방식이다. 외국에서도 상호비평이 활성화되는 경우는 흔치 않으며,  KBS의 ‘미디어포커스’처럼 언론 비평 프로가 장수하는 경우도 드물다. 상호비평을 통해 얻게 되는 나중의 결실보다 지금 당장의 상처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인지상정일지도 모른다. 현재의 상호비평이 산업적·정파적 이해관계의 도구적 속성을 보이고 있는 것도 한국 언론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상호비평에 관한 논의는 이상적인 상호비평의 조건을 규명하고 이를 현장에 요구하는 당위론 수준을 넘어 현재 정파성의 지형 위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 언론의 상호비평을 논의하는 데 중요한 두 가지의 논점을 상정해 봤다. 첫째 논점은 상호비평이 정파성에 매몰돼 정치담론의 하부담론적 성격을 유지하는 상황에서도 과연 언론 실천의 준거를 구축하는 방법론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나는 그렇다고 본다. 이유는 이렇다. 상호비평의 의도가 정파성에 있다고 하더라도, 논쟁의 과정에서 논리적 근거로 저널리즘의 가치를 인용함에 따라 저널리즘의 가치를 환기하는 효과가 있다. 또 논쟁의 과정에서 대상이 된 사안에 대한 전체상이 시민들에게 고지되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시민들은 상호비평을 지켜보면서 사안에 대한 정보를 얻고 나름의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시민참여로 상호비평 활성화 해야
두 번째 논점은 상호비평이 정파성 속에서라도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방식이라면, 어떻게 상호비평의 활성화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시민사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상호비평은 ‘자기관련성’ 때문에 언론의 자발성에 맡겨져서는 실효를 기대하기 어렵다. 시민사회가 언론에 대해 언론 활동에 대한 공론장 제공을 요구하고 나서야 한다.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발언권은 시민사회가 위임한 것이다. 그래서 언론은 시민사회에 대해 언론 활동에 대한 고지의 의무가 있다. 달리 말하면 시민들은 언론 활동에 대한 공론장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한마디로 상호비평을 언론 내부의 관계로 좁게 해석하지 말고, 언론과 시민의 관계로 넓게 해석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전제 하에 시민들이 참여해서 상호비평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방법 중의 하나가 사기업인 신문보다 공영성이 강한 방송에 언론비평 프로를 편성하도록 요구해서 상호비평의 한 축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이렇게 방송에서 언론비평 프로가 활성화되면 신문은 방어 차원에서라도 미디어 비평을 하게 될 것이고, 이런 과정을 통해 상호비평의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로선 유일한 상호비평 프로그램인 KBS ‘미디어포커스’를 지키는 일은 그 어떤 관념적인 상호비평 당위론보다 중요한 일처럼 보인다.

8월 8일 KBS 이사회가 정연주 사장의 퇴임을 의결했다. ‘미디어포커스’는 ‘정연주의 작품’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는 참여정부 인사인 정연주가 보수 신문을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함의가 포함돼 있다.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프로그램이 정치적 동기에서 만들어졌다고 그 내용이 정치적 내용만을 담는 건 아니다. 즉 동기의 정치성은 프로그램의 존재를 부정하는 충분한 논거가 되지 못한다. 새 사장이 오면 ‘미디어포커스’는 어떤 형태든 변화를 겪을 것이다. 얼마 전 ‘미디어포커스’가 주최한 상호비평 관련 세미나에서 담당자들은 변화의 양상을 ‘당장 폐지하지는 않고 인사권을 이용해서 고사시킬 것’으로 예상했다. 나는 ‘미디어포커스’가 변질돼 진보논조의 매체를 공격하는 한이 있더라도 프로그램 자체가 유지되는 것이 낫다고 본다. 최소한 언론 활동에 대한 공론의 장은 남게 되는 것이니까. 그것이 시민들이 공론의 장에 참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창구가 될 수 있으니까.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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