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오카방고’는 세계 최대의 내륙습지에서 펼쳐지는 야생동물들의 생존에 관한 HD 다큐멘터리다. 오카방고는 동물의 숫자에서는 세렝게티에 못 미치지만 아프리카 최대의 동물 다양성을 지닌 곳이다. 오카방고만의 독특한 매력은 수많은 다큐멘터리 제작자를 이곳으로 불러 모은다.


아프리카의 야생, HD화면에 생생히 담다
KBS 창립 특집 자연 다큐멘터리 ‘야생의 오카방고’

박복용 KBS 기획제작국 PD



모든 강은 바다로 향한다. 그러나 아프리카 남부의 오카방고강은 바다로 흐르지 못한다. 칼라하리 사막의 더운 모래바람이 강물을 모두 증발시키기 때문이다. 강물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기 전 거대한 습지를 남긴다. 이것이 세계 최대의 내륙습지인 오카방고 삼각주다.
앙골라 고원에서 시작된 오카방고강은 한강의 약 3배로 비교적 짧은 강이다. 그러나 이 강의 위력은 지구상의 어느 긴 강 못지않다. 아프리카 사바나 기후는 우기와 건기가 뚜렷하다. 아프리카 대륙이 메말라 가기 시작하는 6월 오카방고에는 오히려 물이 넘쳐난다. 우기 때 상류에 내린 비가 이때쯤 삼각주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상류인 앙골라고원에 내린 비가 1,600㎞ 떨어진 이곳에 도착하는 데는 대략 5개월이 걸린다. 건기가 시작되면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물을 찾아 오카방고 습지로 모여든다. 수천 마리의 버펄로와 코끼리 무리가 오직 물을 향한 절박한 일념으로 흙먼지 나는 초원을 가로질러 대이동을 시작한다.
‘야생의 오카방고’는 세계 최대의 내륙습지에서 펼쳐지는 야생동물들의 생존에 관한 HD 다큐멘터리다. 제작진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물과 생명의 위대함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세계 최대의 내륙습지, 오카방고 삼각주

오카방고는 탄자니아의 세렝게티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야생동물에 관한 자연 다큐멘터리가 가장 많이 제작되는 곳이다. 세렝게티에서는 매년 수십만 마리의 누와 얼룩말이 신선한 풀을 찾아 대이동을 하는 장관이 펼쳐진다. 오카방고는 동물의 숫자에서는 세렝게티에 못 미치지만 아프리카 최대의 동물 다양성을 지닌 곳이다. 특히 ‘습지에서 펼쳐지는 동물들의 생존게임’이라는 오카방고만의 독특한 매력은 수많은 다큐멘터리 제작자를 이곳으로 불러 모은다.
필자와 오카방고의 인연은 2007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필자는 다른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보츠와나에 보름간 체류했는데 우연히 보츠와나 관광청 해외홍보 담당관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내가 그를 만난 이유는 국립공원 입장료와 촬영 허가료 면제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그 건과 관련해서는 별 소득이 없었다. 다만 그는 다음에 다시 보츠와나를 방문하면 정부에서 적극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귀국 후 나는 오카방고에 관한 기획안은 작성하여 메일을 보냈다. 그후 오랫동안 나는 오카방고를 가슴속에 품고 살았다. 1년 후인 지난해 초 보츠와나 정부로부터 이메일 하나가 도착했다. 보츠와나에 있는 모든 국립공원의 1년간 입장료와 촬영료를 면제해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돈으로 따지면 약 1억 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는 것이었다.
나는 회사에 기획안을 제출하고 4월 말 최종 제작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제작비는 상당히 야박하여 국제적인 수준의 5분의 1이 채 되지 않았다. 낮은 제작비는 곧 제작기간에 대한 압박이다. 국제적인 기준으로 볼 때 자연 다큐멘터리의 제작에는 보통 2년의 제작기간에 200일의 촬영일수, 편당 제작비는 최소 20만에서 80만 달러를 투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에 비교적 많은 제작비가 투입되는 이유는 다른 장르에 비해 국제 콘텐츠 시장의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대략 어린이 장르 다음으로 세계 시장에서 많이 유통되는 콘텐츠가 동물 다큐멘터리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해외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에 보통 6,000만 원의 제작비에 한 달간의 촬영이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에 필자는 제작비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을 처지가 못 되었다. 결국 필자는 협찬금 1억 원을 포함하여 총 2억 9,000만 원으로 2편의 본편과 1편의 제작기를 만들기로 했다.
나는 기획안이 통과되자마자 현지답사를 위해 보츠와나로 향했다. 먼저 보츠와나의 수도 가보로네에 들러 관광청 국장과 공동제작협정서에 서명했다. 또한 야생동물보호국(Wildlife Department)에 촬영허가서를 신청했다. 나는 촬영허가서에 다음 세 가지 조건을 명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첫째, 촬영용 차량의 오프로드(Off-Road) 운행 권리. 둘째, 차량에서 내려 지상에서 촬영할 수 있는 권리. 셋째, 조명을 이용한 야간 촬영 권리. 두 가지 조건에 대해서는 쉽게 타협이 이루어졌으나 조명을 이용한 야간 촬영은 야생동물들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기 때문에 허용하기 힘들다는 것이 야생동물보호국의 입장이었다. 결국 부국장이 주재한 구수회의(鳩首會議) 끝에 밤 10시까지 야간 촬영을 허락받았다. 부국장은 우리에게 내준 촬영허가서가 매우 예외적인 사례라고 이야기했다. 마침내 오카방고로 향하는 티켓이 마련된 셈이다. 


BBC ‘살아있는 지구’의 가이드를 만나

가보로네에서 일이 마무리되자 980㎞ 떨어진 오카방고의 관문도시 마운(Maun)으로 향했다. 나는 경비행기로 오카방고 일대를 답사한 후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제작 관계자들을 만났다. 그 중에서도 아프리스크린(AfriScreen)의 대표 겸 프로듀서인 T. J. 잰킨스가 촬영에 관해 많은 조언을 해 주었다. 그녀는 영국 BBC의 유명한 자연다큐, ‘살아있는 지구(Planet Earth)’의 로케이션 매니저로 일한 바 있는데, 당시는 BBC의 지원으로 코끼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었다. 그녀는 내게 유능한 야생동물 가이드들을 소개해 주었고 촬영에 도움이 될 만한 여러 가지 팁(Tip)을 제공해 줬다. 그녀의 소개로 헬기 기장인 피터 펄스타인을 만났다. 경력 20년의 베테랑 조종사인 피터 역시 ‘살아있는 지구(Planet Earth)’의 항공촬영에 참여했었다. 우리는 항공촬영에서 포착할 이미지와 촬영기간, 비용 등에 대해 협의했다.    
제작진은 지난해 6월 8일 본격적인 촬영을 위해 보츠와나로 향했다. 촬영기간은 건기와 우기를 모두 다룰 수 있도록 하고 동물들의 생태일지 등을 고려하여 세 차례로 나눠 총 129일로 확정했다. 사실 프로듀서 입장에서 촬영기간을 결정하는 것은 매우 큰 골칫거리였다. 예컨대 리카온(Lycaon?아프리카 들개) 촬영은 새끼들이 굴 밖으로 나오는 7월 말이 가장 좋은 시기인데, 이때 촬영을 하면 건기가 절정에 달해 동물들이 습지로 가장 많이 모이는 10월을 촬영기간에 포함시킬 수 없었다. 왜냐하면 촬영기간은 제작비와 함수관계에 있는데 예산 제약 때문에 제작기간을 무한정 늘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촬영팀은 PD 1명, 촬영감독 2명, 사진작가 1명에 현지 가이드와 캠프 키퍼(Camp Keeper)를 포함하여 모두 6명으로 단출하게 꾸렸다. 촬영 스태프가 늘어나면 그만큼 캠핑 장비와 부식이 더 필요해 차량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제작진은 오카방고 안에 있는 모레미 국립공원의 부시에 캠프를 마련했다. 밤새 자신의 영토를 알리는 수사자들의 포효소리가 캠프를 휘감았다.
제작진은 이른 새벽 사자를 찾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촬영 첫날 우리는 온종일 부시를 헤맨 끝에 해질 녘이 되어서야 사자를 발견했다. 수사자 2마리에 암사자 6마리, 새끼 12마리로 이루어진 카카니카 집단(Pride)이었다. 녀석들은 큰 버펄로 한 마리를 사냥하여 배를 불린 후 물웅덩이 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가이드는 차를 천천히 몰아 사자 3m 바로 옆에 세웠다. 제작진은 그렇게 가까이서 사자를 본 적이 없어 모두들 소름이 끼쳤다. 더구나 제작진은 차량 바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사자가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달려들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동물들에게는 인간이 접근하면 위협을 느껴 달아나는 도주범위(Flight Zone)와 달려드는 공격범위(Fighting Zone)가 있다. 사자의 경우 공격범위는 약 20~30m인데, 우리는 항상 사자의 공격범위 안에 있었다. 제작진은 사자를 자극하지 않도록 촬영 중에 항상 조심해서 몸을 움직여야 했다.


불과 1.5m앞, 표범을 찍다

제작진은 오카방고로 향하기 전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에서 핵심적 요소인 근접촬영 문제를 고민했는데 막상 현지에 도착해 보니 이것은 기우였다. 노련한 가이드들은 동물들이 허용하는 가장 가까운 거리로 우리를 안내했다. 제작진은 망원렌즈를 기본 렌즈로 사용했는데 때로는 동물들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카메라의 초점거리가 잘 안 나오는 경우가 생길 정도였다. 우리는 근접촬영을 통해 사자와 같은 포식자의 눈과 입, 다리 등의 미세한 표정과 동작을 포착할 수 있었다. 표범이 나무 위에서 임팔라를 포식하는 장면은 불과 1.5m 밑에서 촬영했는데 제작진은 표범이 우리 머리 위를 덮칠 것 같은 스릴을 맛보았다.
오카방고의 웅대한 규모를 보여 주기에는 지상에서 촬영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오카방고의 지형은 고저가 없는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서 촬영된 영상은 늘 입체감이 부족했다. 우리는 수천 마리의 버펄로 떼가 이동하는 장관을 수없이 촬영했는데 촬영화면을 모니터링해 보면 스케일과 입체감이 눈으로 본 것과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었다. 결국 항공촬영만이 평면적 이미지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제작진은 헬기 촬영을 위해 KBS가 보유한 항공촬영 장비인 헬리김블(Heligimble)을 떼어다 현장에 투입하기로 했다. 헬리김블은 헬기의 진동 때문에 생기는 카메라의 흔들림을 줄여줘 고품위 항공촬영을 가능하게 한다. 국내의 헬리김블 장비를 해외 다큐멘터리 제작에 투입한 것은 한국 방송 사상 최초의 일이다. 헬리김블 운용을 위해 ‘살아있는 지구(Planet Earth)’의 제작에 참여했던 항공촬영 전문가 데이비드 매캐이가 영국에서 날아왔다.

입체감을 위해 한국에서 공수한 헬기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 촬영에 주로 이용돼 온 헬리김블은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에 혁명적인 진보를 가져온 장비다. 일반적인 항공촬영의 경우 헬기의 진동 때문에 안정적인 영상을 얻기 힘들다. 또한 헬기의 소음으로 인해 동물들이 도망을 가기 때문에 동물들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포착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러나 제작진은 헬리김블을 이용해 1㎞ 떨어진 먼 거리에서도 동물들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화면의 흔들림 없이 포착할 수 있었다. 헬리김블은 마치 바로 곁에서 동물들의 행동을 훔쳐보듯 생생하게 화면에 담아냈다. 제작진은 항공촬영에 4일간 25시간을 투자했다. 이를 통해 수천 마리의 버펄로 떼가 오카방고강을 건너는 장면, 리추에가 습지의 물을 튀기며 뛰는 장면, 사자가 짝짓기하는 장면 등을 하늘에서 포착할 수 있었다. 촬영을 담당한 데이비드는 1,000마리의 코끼리가 이동하는 장면과 사냥에 나선 표범을 포착한 것은 자연 다큐멘터리 항공촬영 역사상 획기적인 일이라고 했다.
항공촬영을 하는 4일 동안은 17년의 프로듀서 경력 중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이었지만 가장 힘든 기간이기도 했다. 헬기가 기름을 삼키듯 많은 제작비가 한꺼번에 공중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헬기 급유 때문에 낭비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트럭으로 미리 예정된 지점에 연료를 운반하고 부시에서 급유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HD콘텐츠 시장, 자연다큐 분야를 보자

제작진은 약 4개월을 야생의 오카방고에서 보냈다. 밤에는 하이에나가 캠프장을 습격했고 낮에는 코끼리 떼가 출몰하기도 했다. 촬영용 차량은 악어가 우글거리는 늪에 빠져 종종 멈춰 버리곤 했다. 많은 난관을 만났지만 몸소 부딪치며 해결해 나가려고 노력했다.
아쉬운 점도 있다. 무엇보다 국제적인 기준으로 보았을 때 촬영기간이 너무 짧아 몇 가지 중요한 장면을 촬영하지 못해 편집과정에서 스토리 구성에 애를 먹었다.
아직 국내 방송계에는 고품위 해외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은 BBC나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BBC는 자연 다큐멘터리 분야의 HD 콘텐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살아있는 지구(Planet Earth)’를 제작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는 ‘살아있는 지구(Planet Earth)’의 명장면 중 많은 부분은 BBC가 아닌 무명의 독립 제작자들이 촬영한 것이다. 다만 BBC는 큰돈을 주고 그것을 BBC의 소유물로 만들었다.
흔히 HD 시대의 도래로 기존의 아날로그 콘텐츠가 무용지물이 되었고 모든 방송사들이 같은 출발선에 서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자연 다큐멘터리 분야에서 아직 우리의 사고는 아날로그에 머물러 있지는 않을까?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4월호 제작기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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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주환 2009.07.29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의 일련의 과정을 대략적으로나마 살펴 볼 수 있어서 상당히 감명깊었습니다. 촬영을 위해 애쓰신 모습이 잘 담겨있는 글이었습니다. 전 자연다큐멘터리 제작자를 목표로 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자연 다큐 PD가 되기 위해선 어떤 준비를 해야하는지에 대해 많이 고민 중입니다.. 혹시 여건이 되신다면 메일로 좀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은데 어떠신지요? 귀한 말씀 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제 메일주소는 ikart00@nate.com 입니다.
    기사에 PD님의 메일주소가 나와있지 않아 이렇게 밖에 댓글을 남길 수 밖에 없네요..

  2. 어린뿔1 2009.07.30 09: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희 <신문과방송>을 통해서 좋은 정보를 얻으셨다는 말씀 감사합니다. 필자분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시길 바랍니다(조치했습니다.^^) 아울러 <신문과방송>은 매월 방송 프로그램 제작기를 싣고 있습니다. 프로그램 이면에 담겨있는 제작과정과 제작자의 어려움, 그리고 보람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좋은 자연 다큐 PD가 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