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위원회의 시작은 기형적이었다. 여야 정치인들이 풀지 못한 숙제들을 전문가들에게 갑자기 떠맡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위원회 구성단계에서부터 위원회의 역할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위원들은 어떤 사람들로 채울 것인지, 과연 이 위원회가 내린 결론을 국회에서 얼마나 무게 있게 받아들일지 등이 사사건건 충돌했다.


신문, 방송 겸영 허용 최종보고서
민주당 측은 별도 보고서 제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100일

양홍주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6월 25일 100여 일의 활동을 마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이하 미디어위원회)는 ‘분열’로 종지부를 찍었다. 그토록 많은 기대를 품었던 위원회의 마지막 보고서는 결국 각 당의 이해관계를 그럴듯하게 포장한 반쪽짜리 결과물에 그쳤고, 20명의 위원들은 제대로 된 ‘해단식’도 생략한 채 얼굴만 붉히며 헤어졌다.

미디어위원회의 시작은 기형적이었다. 여야 정치인들이 풀지 못한 숙제들을 전문가들에게 갑자기 떠맡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3월 초 여야는 미디어관련법 개정을 놓고 극단의 충돌로 치닫고 있었다. 급기야 3월 2일 오후 김형오 국회의장은 더 이상 여야 간 싸움을 두고 볼 수 없다며 한나라당의 미디어관련법 개정안을 직권 상정하겠다고 밝혔다. 수세에 몰린 민주당은 6월 국회 중 표결처리를 약속하면서, 대신 여론을 수렴할 위원회를 만들어 비정치인들이 이 안에서 100일 동안 미디어관련법의 논쟁거리들을 풀어 보자는 합의를 이끌어 낸다. 6월 국회 내 표결처리라는 ‘시한’을 얻어낸 한나라당은 이 같은 사회적 논의기구의 구성을 받아들였고 아슬아슬하게 여야는 3월의 대충돌을 피했다.

3월: “별 기대 없다” 시작부터 비관론 우세

하지만 잠시 묻어 둔 여야의 갈등은 위원회 구성단계부터 다시 불거졌다. 위원회의 역할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위원들은 어떤 사람들로 채울 것인지, 과연 이 위원회가 내린 결론을 국회에서 얼마나 무게 있게 받아들일지 등이 사사건건 충돌했다. 여당은 위원회의 논의 결과를 단순히 참고하는 정도로만 제한하자고 했고, 민주당은 이들의 최종보고서를 반드시 법 개정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설전을 벌였다.

한국일보가 위원회 구성에 앞서 3월 5일자에서 위원회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은 인사들을 대상으로 미디어위원회의 전망과 과제에 대해 물은 결과는 매우 비관적이었다. 이후 여당 측 위원장이 된 김우룡 한양대 석좌교수는 “사회적 논의기구에 주어진 100일은 짧으며 성과를 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논의기구의 쟁점은 결국 신문의 방송 진출 하나이며 토론을 거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여당 측 대변인 역할을 맡았던 황근 선문대 교수 또한 “기대를 안 한다. 여당이 이 기구를 받아 줬는데 합의를 이룰 가능성이 없으며 다양한 단체들이 들어오면 의제설정조차 할 수 없을 것이고 서로 자기주장만 하다 갈등만 쌓이고 그렇게 끝을 맺을 것”이라며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아쉽게도 이들의 전망과 예측은 미디어위원회의 초반부터 맞아 들어갔다. 어렵게 한나라당 추천 인사 10명과 민주당 추천 인사 8명, 그리고 선진과 창조모임이 추천한 인사 2명 등 총 20명으로 3월 15일 첫 회의를 갖고 출범한 미디어위원회는 3월 20일 2차 회의에서 회의의 공개 여부를 놓고 위원들 간에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같은 달 27일 3차 회의에선 야당 측 추천위원장인 강상현 연세대 교수가 일간지 칼럼에서 여당 측 위원들을 비판한 것이 문제가 되어 한나라당 추천위원들이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 법적인 대응까지 주장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아까운 100일 중 한 달의 시간을 별 논의의 진전 없이 날려 버린 셈이다.

4월: 지역 공청회 계획 등 의외의 순항

그나마 위원회는 다행히도 4월 중순을 넘기면서 5월 이후 지역공청회와 미디어법 개정과 연관된 기업, 방송사 인사들이 참여하는 모임을 갖는 스케줄에 합의하면서 조금씩 성과가 감지되기도 했다. 이 같은 진행에 대해 위원들은 구성 단계부터 제기됐던 ‘미디어위원회 무용론’이 기우였을 수도 있다는 전망을 조금씩 내기 시작했다.

황근 교수는 “역할 확정도 없이 오로지 구성하는 데 급급하며 시작된 위원회지만 2주 만에 역할 논의가 끝났고, 약간의 잡음이 있었지만 한 달이 지나 분과 논의에 들어가는 등 진전을 보이는 중”이라며 “완전 합의안까지는 아니더라도 국회 논의에 앞서 어느 정도 문제점을 잡고 방향을 제시하는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민주당 측 추천위원인 이창현 국민대 교수도 “실제 얘기를 나눠 보니 여당 측 위원들도 사이버모욕죄의 문제점을 인정하는 등 얘기가 통하는 면이 많았다”며 “이전엔 대기업이 참여하면 미디어산업이 일자리 창출을 할 것이란 말만 되풀이하던 위원들도 미디어법안의 예상되는 문제들을 공유하는 모습을 보여 실마리가 잡혀가는 분위기”라고 긍정적인 전망을 했다.

5월: 부산·광주 공청회 줄줄이 파행

하지만 5월 뚜껑이 열린 지역공청회들은 국민의 실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여야 측 위원들이 본격적으로 갈등양상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각 추천 당의 목소리 높이기에 밀려 위원회는 정체양상이 뚜렷해졌다. 고작 한 달여의 시간만 남겨둔 5월 중순 미디어위원회는 안팎으로 ‘파국’이 점쳐진다는 따가운 눈총이 많아졌다.

5월8일 부산 공청회에서 여당 추천위원들과 일부 공술인들은 회의시간 초과를 이유로 일방적인 공청회 종료를 선언한 채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일이 벌어졌다. 이날 공청회는 오후 2시에 시작해 방청객 질의 응답시간을 포함, 오후 5시에 종료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공술인의 공술시간이 길어져 방청석 질문이 4시 30분에 시작됐고, 5시 20분에 여당 측 김우룡 위원장이 폐회를 선언하고 회의장을 나선 것이다. 결국 방청객들의 거센 항의 아래 야당 측 의원들로만 공청회가 이어지는 파행이 빚어졌다. 주변에선 “일부 위원들이 서울로 올라가는 교통편 예약 때문에 더 이상 회의를 기다리지 못하고 나갔다”는 주장이 나왔다. 첫 공청회의 이 같은 비뚤어진 양상은 이후 예정된 공청회의 부실을 예고했다.

5월20일 광주 공청회도 부실한 운영으로 방청객들의 반발을 샀다. 공청회에 참석한 여당 측 공술인들이 논란의 핵심인 미디어관련법 개정안과 관계없는 말로 시간을 채웠기 때문이다. 부산과 춘천에 이어 세 번째 열린 이 공청회엔 여야가 추천한 공술인 8명이 참석했다. 한 여당 측 공술인이 포털의 게시 글 관리에 대한 모두 진술을 하자 방청객들은 “발표 내용이 공청회의 성격과 맞지 않는다”며 항의를 했고, 이후 다른 공술인이 자신의 발표에 문제를 삼는다며 방청객과 목소리를 함께 높이는 촌극도 벌어졌다. 

공청회의 모습에서 진정성이 나타나지 않자, 결국 한 달여 남겨둔 미디어위원회의 ‘무용론’이 다시 거세게 일었다. 일찌감치 장외의 진보와 보수 세력들은 미디어위원회의 두 달을 비판하며 “결국 위원회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는 체념이 이어졌다. 5월 중순 출범한 보수 성향의 방송개혁시민연대는 “여야간 이룬 합의의 틀이 깨지고 있는 만큼 미디어법과 관련, 시민단체 차원의 이슈 만들기를 할 것”이라며 미디어위원회를 더 이상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미디어위원회를 통한 한나라당의 미디어관련법 개정안 저지는 이미 물 건너갔다고 판단한 진보 성향 시민단체들은 5월 중순부터 본격적인 미디어법 반대투쟁을 위한 세 규합에 들어갔다. 미디어행동을 주축으로 한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들은 1박 2일의 공동수련회를 갖고 대응책을 모색했다. 이들은 5월19일 결의문에서 “미디어발전위원회의 여론조사가 끝내 불발될 경우 위원회의 자진해체 선언을 촉구할 것”이라며 강경하게 맞섰다.

6월: 여론조사 놓고 갈등 최고조

5월23일 갑작스러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미디어법 논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미디어위원회는 일단 국민장 기간에 모든 논의를 멈췄다. 이와 함께 6월 임시국회 개원도 늦어지면서 미디어법을 둘러싼 암운은 더 짙어졌다. 6월 4일 여당 측 위원을 주축으로 민주당 측 위원들이 빠진 전체회의를 확정해 5일 회의를 열었다. 즉각 야당 측 위원들은 반쪽 위원회에 격분했고, 이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국회에서 열었다. 이어 9일에 열리려던 운영소위에 여당 측 위원들이 역시 참여하지 않아 미디어위원회는 삐걱대며 종말로 치달았다.

겨우겨우 미디어위원회의 종료시점이 여야 합의에 따라 6월 25일로 연장됐지만, 야당 측 위원들이 주장해온 ‘여론수렴을 위한 필수적인 여론조사’에 여당 측 위원들이 ‘보고서 작성을 위한 최소한의 시간 부족’을 내세우며 한 치의 양보 없이 맞대응, 의미 없는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민주당 측 추천위원) 6월 중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디어위원회를 ‘봉숭아 학당’이라고 비유하며 “더 이상 미디어위원회에 기대할 게 없다. 여당 측 위원들은 15일부터 보고서 작성을 위해 다 사라질 것이고, 야당 측 위원들은 계속 여론조사를 요구하면서 결국 25일이 오기도 전에 파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 반쪽씩의 위원회, 두 개의 보고서

결과적으로 최 위원장의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미디어위원회는 여론조사의 이견차를 좁히지 못한 채 6월 12, 15, 17일 연달아 전체회의를 진행했지만 접점은 가시권에서 멀어졌고 급기야 한나라당 측 공동위원장인 김우룡 교수가 주축이 된 최종보고서가 25일 문방위에 제출됐고, 26일엔 민주당 측 위원들의 대국민 보고서가 따로 제출되기에 이르렀다. 100일 전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그대로 위원들을 추천해준 각 당의 의견을 증폭해준 역할에 그친 것은 물론이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8월호 특별기획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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