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3사는 대부분의 보도를 비정규직 법안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정치권의 정쟁’에 초점을 기울이고 있다. 이 같은 보도경향으로 인해 정작 ‘비정규직 법안’ 자체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이들이 벌이는 대립, 투쟁 및 충돌들만이 부각되게 된다. 이른바 ‘사회적 정쟁’은 있으나 ‘정쟁의 근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싸움은 있는데
싸우는 이유는 없다

비정규직 법안 관련 TV 보도 비평

백선기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2009년 6월 한 달 우리 사회를 들끓게 했던 사안이 발생하였다. 가뜩이나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가운데 일반 서민들, 그 가운데서도 임시직이나 기간제로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치명적인 사안이 발생한 것이다. 이른바 ‘비정규직 법안 개정안’을 둘러싸고 발생한 갈등이었다. ‘비정규직법’ 또는 ‘비정규직보호법’으로 알려진 이 법안은 실제로는 특정 법안이 아니라, ‘기간제 및 단시간제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노동위원회법’ 등을 총칭하는 것이다.

본질보다 정치권 대립 비중있게 다뤄  

이 법안의 핵심은 근로기간을 정해 놓고 채용하는 근로자에 대해서 기간을 2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초과할 경우는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근간으로 한다. 이 법안은 2007년 7월 1일부터 시행되었으니, 실제 사회적 문제가 된 것은 2년이 지난 2009년 6월30일 이후에 발생할 상황들에 대한 것이었다. 따라서 현재의 쟁점은 이 시점을 전후하여 발생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해고를 막기 위해 ‘현재의 2년 기간을 4년까지 연장하고 법의 시행을 1년 6개월 유예하자고 하는’ 정부와 여당의 개정안과 ‘기간 연장이나 법 시행의 연장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2년 이후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전환시킨 사업장에 금전적인 지원을 하자고 하는’ 야당의 거부 논리가 부닥치고 있는 것이다.
이 법안 자체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법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쟁점들에 대해 일반인들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였다. 실제로 정부와 여당은 ‘해고대란’이 발생한다고 우려하면서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자 하였고, 야당은 ‘해고대란은 과장’이라면서 개정안 자체를 상정도 하지 못하게 거부하였다. 이는 그동안의 정당 간 대결 관행을 볼 때 서로 뒤바뀐 것이 아닌지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여당과 야당의 주장이 서로 뒤바뀐 것이다. 나아가 정부, 여당, 야당, 공기업, 중소기업, 시민단체, 전문가 등등 각자 자신의 주장만 할 뿐 올바른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우리 방송 보도 역시 이에 대한 보도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따라서 본 논의에서는 이번 비정규직 법안을 둘러싸고 벌어진 현상과 쟁점들을 우리 TV 방송이 어떻게 보도했으며, 그에 따른 문제점들이 무엇인가를 논하고자 한다. 분석 대상으로는 2009년 6월 5일부터 7월 8일까지 수집한 지상파 TV 방송 보도들을 근간으로 하였다. KBS1 TV 방송보도 30건, MBC TV 방송보도 26건, SBS TV 방송보도 27건을 중점적으로 분석하였다. 일반 기호학 분석방법인 ‘계열적 분석방법’을 활용하였고, 최근에 본 연구자가 창안한 ‘기호네트워크 분석방법(Semiotic Network Research Method:SNRM)’과 ‘담론구조 분석방법(Discourse Structural Analysis)’을 적용하였다.  

검증 없는 ‘위기’ ‘공포’ 전파


이러한 분석 결과 첫째, 우리 방송이 이번 비정규직 법안과 관련하여 보도한 주요 범주들(categories)을 살펴보면 ‘정부와 정당 간의 주장 및 입장 변화’ ‘대량해고 및 실업대란’ ‘비정규직 법안의 문제점 및 개선’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안한 상황’ ‘정치권의 대립 및 갈등’ 등 다섯 가지로 범주화되어 있음이 드러났다.
‘정부와 정당 간의 주장 및 입장 변화’의 범주에서는 주로 정부 측과 여당의 주장에 편중하고 있고, ‘대량해고 및 실업대란’ 범주에서는 이 사안에 대한 정부와 여당의 상황 인식 및 규정(정의·definition)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비정규직 법안의 문제 및 개선’ 범주에 대해서는 법안 자체에 대한 여당과 야당의 문제 인식은 다루고 있으나 법안 자체에 대한 해결 방안은 제시하지 않고 있으며,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안한 상황’ 범주에 대해서는 그들의 불안한 상황들에 대해 ‘감성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러면서 가장 두드러진 범주인 ‘정치권의 대립 및 갈등’에 보도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비정규직 법안 및 법안으로 인한 경제 및 사회적 영향 등에 주목하기보다는 이 법안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끊임없는 정당 간의 다툼이나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힐난 등에 보도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둘째, 이들 다섯 가지 법주를 통해 비정규직 법안을 다루면서 우리 TV 방송 보도에서 드러났던 중심 기호는 ‘대란’ ‘위기’ ‘공포’였다. 이 기호들을 통해 형성되었던 담론은 ‘위기 담론’과 ‘공포 담론’이었다. 우리 TV 방송들은 정부와 여당 측의 상황 인식인 ‘실업대란’과 ‘해고대란’을 객관적인 상황 파악이나 비판적인 검증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결과적으로 정부와 여당의 상황 인식 및 규정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여당은 이러한 ‘위기와 공포 의식’을 생성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관찰시키려 하였다. 야당이 이러한 ‘위기와 공포 의식’이 과장되었음을 반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TV 방송들은 여당의 ‘위기 및 공포의식’으로 상황을 인식하고, 나아가 사회적인 ‘위기 담론’과 ‘공포 담론’을 생성하고 있다. 
이는 우리 방송의 경제 사안에 대한 전형적인 보도관행으로 거의 대부분의 경제 사안들에 대해 ‘위기 및 공포 담론’을 생성해 왔던 것과 연계되어 있다. 이번 사안도 전반적으로는 이러한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나, 방송 3사들 사이에 다소간 미묘한 차이는 있다. <표1>에서 제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KBS는 ‘잇따른 해고’ ‘대량 해고’ ‘도미노 해고’ 등의 기호들로 ‘비정규직 법안으로 인한 해고’에 대한 상황 및 현실 인식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나, MBC는 ‘실업대란 공방’ ‘한나라 해고사태 불가피/민주당 해고사태 없을 것’ ‘중소기업 혼선’ ‘산업현장 혼란 확산’ 등의 기호들로 ‘실업대란’이나 ‘해고대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에 대한 여당과 야당의 공방 및 현장에서의 혼선에 보다 주목하고 있다. SBS는 ‘대량해고 현실화 가능성’ ‘해고공포 확산’ ‘대량해고 위험’ ‘해고대란 시작’ 등의 기호들로 KBS와 같은 상황인식을 하고 있으나, 동시에 MBC에서 제기한 ‘해고자 숫자에 대한 공방’ 역시 다루고 있다.            

지나치게 감정적인 표현 난무

셋째, 이러한 ‘위기 담론’ 및 ‘공포 담론’은 해고의 위협에 불안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다루면서 더욱더 심화되고 있다. 우리 TV 방송은 이들 노동자의 해고에 대한 불안감을 지나칠 정도로 다수의 기호들로 표출하고 있다. 이른바 ‘기호의 과어휘화(over-lexicalization)’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표2>에서 제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불안감’ ‘긴장감’ ‘거리로 나선’ ‘절박한 호소’ ‘보호막이 없다’ ‘눈물의 해고’ ‘하루하루 가시방석’ ‘고용불안’ 등의 기호들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느끼는 불안감들을 적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사회 전체를 ‘불안감’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3사 어느 TV 방송도 이들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동안 사회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해결방안들을 외국의 사례들에서 찾는 시도들을 해 왔는데, 이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찾아보려는 노력은 별반 기울이지 않았다.

넷째,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우리 방송 3사는 대부분의 보도를 비정규직 법안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정치권의 정쟁’에 초점을 기울이고 있다. ‘공방만 되풀이’ ‘협상은 외면’ ‘전면투쟁’ ‘최후통첩’ ‘초강경 대응’ ‘결사항전’ ‘결사저지’ ‘강행처리’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끝없는 평행선’ ‘기싸움만 팽팽’ ‘팽팽한 대립’ ‘양보 없는 힘겨루기’ ‘힘으로 막을 태세’ ‘극한 대치’ ‘꽉 막힌 대치’ ‘물리적 대치’ ‘전운 고조’ 등의 대립과 투쟁의 기호들로 정부와 여당의 주장과 이에 대한 야당의 반박은 물론이고, 국회에서의 여당과 야당 의원들 사이의 충돌, 국회의 파행적 운영 과정 등을 표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같은 보도경향으로 인해 정작 ‘비정규직 법안’ 자체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이들이 벌이는 대립, 투쟁 및 충돌들만이 부각되게 된다. 이른바 ‘사회적 정쟁’은 있으나 ‘정쟁의 근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상과 같이 우리 사회에 혼란을 가져오고 있는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보도에서 비정규직 법안 자체에 대한 주목보다는 이들 둘러싸고 전개되는 정치권의 정쟁에만 주목하여 비정규직 법안으로 야기된 경제 및 사회적 영향들에 대해 정확하게 다루지 못하고 있다. 그 대신 ‘비과학적’ 추론에 근거한 ‘위기 담론’과 ‘공포 담론’이 확대재생산되어 사회 전체가 ‘불안의 기류’에 휩싸이게 만들고 있다. 실제로 7월 중순 현재 그토록 불안스럽게 예고했던  ‘실업대란’과 ‘해고대란’이 아직까지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8월호 방송비평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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