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너머’는 디렉터의 사고를 가지고 진행하고 있다. 조사, 취재, 섭외, 필자 관리, 잡무, 경영 등이 한 덩어리로 뭉쳐져 하나의 결과를 이뤄냈다. 지식이나 정보는 자판만 치면 쏟아지는 세상이다. 독자들은 그러한 단편적 사실을 신문에서 찾고자 하지 않는다. 큰 흐름을 하나로 꿰뚫는 통합능력을 갖춘 취재와 글을 바라고 있다. 


화가, 외부 필자 투입
전면기사 1년간 연재
제225회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
국민일보 「그림과 함께하는 문화지리학 ‘공간+너머’」

전정희  국민일보 문화부장



“공간+너머는 문화지리학 시각으로 본 공간문화사이다. 선비 정신이 살아 있는 ‘북촌’, 근대문화의 태동지였던 명동 중심의 ‘남촌’, 우리의 힘으로 탈근대하며 척박한 땅에 문화를 일궈 나가는 ‘신(新)남촌’ 강남을 들여다본다. 권력과 자본의 이동경로이기도 한 이 축은 한국사의 민얼굴이기도 하다.”

 그림과 함께하는 문화지리학 ‘공간+너머’의 전문 격 문장이다. 국민일보가 2008년 11월 11일 첫 회를 내 보낸 이 기획은 2009년 7월 20일 현재도 연재 중이다. 앞으로도 4부 3회와 5부 10여 회가 남았다. 대략 1년간 이어지는 기획물인 셈이다. 
 
일상적인 서울을 특별한 ‘공간’으로

이 기획은 앞서 언급한 서울의 북촌, 남촌, 신남촌에 무게를 두고 시작했다. 세 곳이 조선-일제강점기-현대를 잇는 중요한 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기획의 장기연재가 가능했던 첫째 요인을 꼽으라면 필자의 개인사가 북·남촌에 중심을 두고 이뤄진 점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서울 명륜동에서 어릴 때부터 살아 왔고 지금도 부모님 댁과 이웃하여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따라서 내가 다닌 혜화초등학교 정문 앞의 장면 총리가(家), 혜화동로터리 여운형 피격 장소, 유림 본산 성균관, 쓰러져 가던 서울 성곽, 근대교육의 산실 보성·경신학교, 서울시장 공관 등이 우리 집 주변을 이뤘다.
 그리고 악동들의 담치기 대상이었던 창경원(창경궁)과 비원(창덕궁)은 우리들에겐 놀이터였고, 감사원을 끼고 있는 삼청공원은 ‘체력은 국력이다’고 외치던 70년대 ‘체력장 세대’들에겐 단련장이었다. 명문 경기고 자리에 들어선 화동 정독도서관은 새벽같이 일어나 줄서기를 해야 들어갈 수 있는 대형 ‘독서실’이었다. 그 도서관 아랫마을 소위 북촌은 당시 일상적인 주택에 불과했는데 그토록 가치 있는 생활문화공간이라는 걸 수십 년이 흐른 뒤에야 알았다.
 더 나아가 지금의 낙산공원에 있던 연탄 피우던 서민아파트 동숭아파트, 종로5가의 기독교방송(CBS)과 정신여고, 묵정동에 있던 야외수영장을 가기 위해 가로질렀던 광장시장 등을 비롯한 서울 상권의 중심지 시장들, 지금도 한눈에 들어오는 남산어린이회관(현 서울과학교육원), 리틀 야구가 펼쳐지던 장충단과 그 앞의 제과점 태극당 등 4대문 안의 공간은 생활 권역이었다.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입력된 서울의 변화는 서울 전역을 꿰게 만들었고, 그것에 오랜 문화부 기자 생활이 더해지면서 ‘공간+너머’와 같은 기사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다.

좋은 기획, ‘매트릭스’가 있어야 한다

신문 기획 기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탐사성이거나 캠페인성이다. 사회적 이슈를 축으로 5회 전후로 이뤄지는 일반 기획은 엄밀히 말해 기획이라기보다 스트레이트 보도의 분석기사라고 봐야 한다.
 한데 대개의 탐사·캠페인성 기획은 각기 호흡이 짧거나 재미가 없어 독자의 가독성을 떨어뜨린다. 또 문화나 생활·과학과 같은 간지부서 기획은 탐사 장르에 집어넣기에는 뭔가 전선(戰線)이 없다. 따라서 긴장감이 떨어진다.
 ‘공간+너머’는 이 점을 극복해 보려고 노력했다. 전선을 만들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문화기획이 갖는 힘을 찾아 그것을 지면에 표현해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촌’ ‘남촌’. 여기까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다. 두 곳이 한국사의 중심이었으니 어떻게 캐도 동맥(銅脈) 정도는 된다. 호흡을 불어 넣은 것은 ‘신남촌-강남’이다. 자본과 권력이 제3한강교(현 한남대교)를 건너 강남으로 흘렀다는 ‘단순한 사실’을 깨달으면서 기획의 중심이 선 것이다. 중심만 정해졌다면 더하고 빼고, 스케치하고 덧칠하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1부 ‘북촌, 조선의 풍류’, 2부 ‘남촌, 근대의 엘레지’, 3부 ‘新남촌-강남, 성장의 속도’. 이렇게 문패를 달아 놓고 들여다보면 윤곽이 희미하게 잡히다가 점점 뚜렷해진다. 조선의 선비, 일제강점기의 지식인, 60년대 이후의 기업인을 고리로 각 회마다 제목을 잡았다. 문화지리학, 넓게는 인문지리학이니 ‘공간’을 당연히 앞세워야 했다.
 머릿속이 매트릭스였고 그것을 기획안으로 잡아 활자화하니 실체가 되었다. 

 나쁜 여건,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기획안은 섰으나 추진할 동력 찾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부원이 6명밖에 되지 않아 일상적인 기사 처리에도 과부하가 걸려 기획에 매달릴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그래서 외부 필자가 이끌도록 방향을 정했다. 필자가 문화부장 직책의 데스크라는 점이 방향을 정하는 데 나름 동력이 됐다. 빼어난 외부 필자 김유경(언론인·전 경향신문 문화부장) 선배를 소개 받은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북촌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글쓰기를 해온 김 선배는 동양미술사학자 존 카터 코벨과 사학자이자 헌법학자인 고 최태영(1900∼2005) 선생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의 해박한 지식과 열정이 지면에 관철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다음은 비주얼이었다. 이런 기획이라면 일반적 기획자는 사진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신선하지 못하다. ‘신문에 사진’은 당연한 등식이다. 독자들이 핫이슈를 다루지 않는 문화기획에 당연한 등식을 접목한다면 그들의 눈길을 붙잡아 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인문 요소가 담긴 글 아닌가. 화가 투입은 이래서 이뤄졌다.
 세 번째는 액세서리다. 뭉텅한 글과 사진 각 하나로 한 면을 장식한다면 볼륨이 없다. 편집자와 상의 끝에 내가 내 줄 수 있는 액세서리를 모두 내놨다. 박스 기사, 전문, 옛 사진과 신문, 고(古)지도, 필자·화가의 사진 및 약력 등 재료를 모두 내놓고 디자인 중심으로 해 달라고 편집자에게 맡겼다.
 이러다 보니 일반적인 기획보다 공정이 5배쯤 많다는 느낌이 들었다. 매주 필자·작가 섭외와 이들에 대한 기획 방향 제시, 직접 취재와 취재 보조, 바탕 공부, 자료 확보, 편집자와의 밀고 당기기, 관련 박스 및 일부 원고 직접 작성 등 할 일이 태산이었다. 기자이자 동시에 데스크까지 해야 했으니 한때 ‘내가 왜 이걸 시작했지’ 하고 후회하기도 했다. 


 
독자가 힘이다

시리즈 연재가 시작되자 반응이 좋았다. 사내에서는 신선하고 탄탄한 기획이라는 평이 돌았다. 독자들의 반응도 바로 들어왔다. ‘삼청동 맹현, 늦가을의 정취’ ‘북악산 성곽에서’ 등의 글이 그림과 맞물려 시선을 사로잡는 읽을거리가 됐다. 그러자 편집국장은 시리즈 2부에 광고국장의 협조를 얻어 하단 5단 광고를 빼고 전면 기사를 내보내도록 배려했다.
 독자들의 반응이 좋자 나는 접어 두었던 4부 카드를 빼들었다. 서울의 북촌, 남촌, 신남촌 등 3부만 기획했던 것은 사실 비용 때문이었다. 지방까지 포함할 경우 내·외부 필자 투입과 관계없이 회당 비용 발생이 적지 않았다. 솔직히 긴축경영 기조가 전 신문사를 짓누르고 있고 우리 신문 또한 그러했으므로 그 점도 작용했다. 독자들의 “왜 지방(공간)은 안 하느냐”는 항의도 힘이 됐다.
 지방편 ‘小邑, 절멸과 자생’은 그래서 이어지게 됐다. 권력과 자본의 블랙홀 서울에 모든 걸 빼앗긴 지방 소도시들. 그들의 인문은 피폐라고 판단했다. 김승옥 소설 ‘무진기행’처럼 우리 모두 소읍에서 삶을 살찌웠으면서 정작 소읍을 투기와 같은 욕망의 대상으로나 보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절멸 속 현실에서 자생을 추구하는 공간들은 그렇게 조명됐다.
 
기자, 디렉터의 개념을 갖춰야

미디어 환경이 너무나 변했다. 학보사 시절 식자 활판인쇄를 경험했던 나에게는 더욱 그렇다. 후배들도 예외가 아니다. 어느 순간 디지털 미디어 환경으로 변했으니 같은 심정이라고 본다.
 속보를 생명으로 계몽적 글쓰기에 익숙한 언론인들에게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곤혹스러울 것이다. 우리 신문도 ‘디자이너에게 권력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텍스트에 대한 집착을 버리자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공간+너머’는 디렉터의 사고를 가지고 진행하고 있다. 조사, 취재, 섭외, 필자 관리, 잡무, 경영 등이 한 덩어리로 뭉쳐져 하나의 결과를 이뤄냈다. 지식이나 정보는 자판만 치면 쏟아지는 세상이다. 독자들은 그러한 단편적 사실을 신문에서 찾고자 하지 않는다. 큰 흐름을 하나로 꿰뚫는 통합능력을 갖춘 취재와 글을 바라고 있다.
 취재와 기사 작성은 되레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디렉터를 겸한다면 ‘감정노동’까지 감수하는 수고를 피하지 말아야 한다.
 8월 중순쯤이면 ‘파독, 간호사와 광부 주거지’ ‘파월 장병 주둔지’ ‘중동 건설붐-테헤란’ 등과 같은 해외 편이 한국언론재단 기획취재 공모에 따른 후원으로 이어지게 된다. ‘공간+너머’에 연재된 그림으로는 ‘다문화 가정 돕기’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거기서 팔린 그림 값으로 다문화 가정 아이들과 작가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 또 책 출간도 추진하고 있다.
 ‘공간+너머’가 신문 기사의 ‘원 소스 멀티 유스’가 됐으면 한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8월호 저널리즘리뷰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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