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다큐’는 사회적으로 큰 이슈를 발굴해 내지는 않는다. 왜 정치인은 연설할 때 손을 흔드는지, 지구상에서 고래를 구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소문난 맛집은 왜 생각보다 맛이 없는지 등 소소한 궁금증들에 대한 해답을 찾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다. 쉽게 말하자면 가볍게 즐겨 볼 수 있는 ‘어깨에 힘을 뺀’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



PD가 출연도 하는
경쾌함이 있는 다큐멘터리

KBS 다큐멘터리 ‘30분 다큐’

염지선 KBS 기획제작국 PD



SA급 시간대인 저녁 8시30분, 타 채널의 일일 드라마 방송 시간, 그것도 비싼 광고를 팔 수 있는 2TV에 지난 4월 20일 이래 KBS는 매일 다큐멘터리를 방송하고 있다. 공영방송에서만 시도해 볼 수 있는, 수익보다 다양성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매일 정규 편성된 것이다. 이른바 일일 다큐멘터리 시대를 연 ‘30분 다큐’의 탄생이다.

키워드는 ‘관찰, 체험, 실증’

‘30분 다큐’는 사회적으로 큰 이슈를 발굴해 내지는 않는다. 왜 정치인은 연설할 때 손을 흔드는지, 지구상에서 고래를 구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소문난 맛집은 왜 생각보다 맛이 없는지 등 소소한 궁금증들에 대한 해답을 찾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다. 모두 일반인들이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치게 되는 것들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하는 소재들이다. 쉽게 말하자면 가볍게 즐겨 볼 수 있는 ‘어깨에 힘을 뺀’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 12명의 KBS PD와 외주 제작사 2곳이 이렇게 다큐멘터리를 주 5회, 한 달에 20개씩 만들어 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첫 기획은 지난 4월 초 시작되었다. 이강주 EP, 조연동 CP, 오진산 PD를 비롯한 12명의 PD가 모인 첫 회의는 ‘어떻게 다른 다큐멘터리를 만들까’에 대한 논의로 시작되었다. 기존의 딱딱하고 엄숙한 다큐멘터리에 대한 반성이었다. 지나치게 계몽주의적이고 남성주의적인 다큐멘터리에 지친 시청자들이 이제는 예능프로나 드라마처럼 흥미를 가지고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했다.
 가장 먼저 정해진 것은 이름 그대로 30분의 방영 시간이었다. ‘30분’이라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아 무언가를 부담 없이 들여다볼 수 있는 동시에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라서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좀 더 깊이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3개의 키워드를 정했다. 바로 관찰, 체험, 실증. 각기 개성이 다른 PD들이 연출하는 다큐멘터리에 통일성을 주는 동시에 ‘30분 다큐’만의 개성을 불어넣어준 키워드들이다. 바로 프로그램 제작 PD들이 직접 관찰, 체험, 실증을 하면서 다큐멘터리의 진행자가 되는 것이다.

PD가 직접 108배

첫 회 ‘배PD가 108배를 하게 된 까닭은?’ 편에서는 배용하 PD가 108배가 몸에 좋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직접 도전, 108배가 알코올 분해 등에 어떻게 도움이 되나 몸소 확인시켜 준다. 기존 다큐멘터리라면 사례자의 경험이나 병원 취재 등으로 증명했을 것이다. 하지만 ‘30분 다큐’에서는 묵묵히 108배를 실제로 수없이 반복하는 배 PD의 모습을 관찰하기만 한다. 제작진의 직접적인 노고는 희화화된 모습이기도 하지만, 진정성이 녹아 있어 시청자들로 하여금 더욱 믿음을 주게 된다.
 ‘시내버스로 떠나는 전국 여행기’ 편은 하루 만에 시내버스만 이용해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올 수 있다는 제보를 직접 확인해 보는 내용이다. 정택수 PD는 직접 배낭을 메고 버스를 갈아타면서 티셔츠에 버스 기사들의 ‘인증’ 사인을 받으며 서울까지 올라왔다. 어눌한 정 PD의 귀경길 여정을 통해 시청자는 각 지역의 풍취와 사람 냄새를 함께 느끼게 된다. KBS 게시판에서보다도 원래 제보가 올라왔던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에서 더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이제는 광주에서 서울까지 하루 만에 시내버스로 올라오기를 시도해 보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평양냉면의 진실’ 편에서 필자는 미식가들만 안다는 평양냉면의 진정한 맛을 찾아 원조 집들을 찾아가고, 실향민 및 탈북자들이 기억하는 평양냉면의 맛을 물어 봤다. 원래 평양냉면의 맛은 하나였을 텐데 왜 미식가들의 맛에 대한 기억은 모두 상반될까? 그리고 그들이 믿어 의심치 않는 원조의 맛이 과연 진짜였을까? 이러한 궁금증에서 프로그램은 시작된다. 취재 중 일제 강점기의 평양냉면에는 아지노모토라는 일본의 화학조미료가 상당히 가미되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워하는 평양냉면의 맛은 혹시 왜곡된 맛이 아니었을까? 필자는 자기만의 진정한 원조 평양냉면을 직접 만들어 보면서 이야기를 끝마친다. 이 과정 속에서 자신의 미각만을 진짜라고 믿었던 사람들의 도그마를 깨는 즐거움을 시청자들도 같이 느꼈을 것이다.
 이처럼 ‘30분 다큐’는 그동안 텔레비전 다큐멘터리가 다루던 딱딱하고 어려운 주제, 그리고 천편일률적인 접근 방법에서 벗어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를 PD의 체험, 관찰, 실증을 통해 흥미롭게 전달한다. 제작진인 PD의 직접적인 개입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감정이입을 쉽게 해 주는 동시에 그들의 좌충우돌에서 가벼운 위트도 즐길 수 있게 한다. 기존 다큐멘터리들이 타이슨의 핵주먹만큼 큰 거 한 방을 노리는 것이었다면, ‘30분 다큐’는 무하마드 알리의 잽처럼 나비처럼 날다가 벌처럼 쏘는 경쾌함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레이션은 관조적인 뉘앙스로

사실 이러한 소재들은 ‘VJ특공대’류의 연성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흔히 다루어 온 소재들이다. 우리 제작진이 우려했던 점도 가벼운 소재인 만큼 차별성을 가지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VJ특공대’가 이 사회의 다양한 모습이 나타나는 ‘현상’을 취재하는 프로그램이라면, ‘30분 다큐’는 다양한 이면에 숨겨져 있는 원인과 현상의 ‘인과관계’를 취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새로운 시각으로 현상들을 바라보고, 관찰과 체험은 물론 실증 단계까지 거쳐 우리 사회의 진솔한 모습을 보는 것이다.
 윤동률 PD의 ‘대갈장군과 얼큰이 공주로 살아간다는 것’ 편은 우리 사회에서 배척받는 머리 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기존 연성 다큐멘터리였다면 단순히 큰 머리를 작게 만들기 위한 온갖 해결책들(수술, 마사지 등)을 소개하는 데 멈췄을 것이다. 하지만 ‘대갈장군…’ 편에서는 이들이 느끼는 차별과 아픔, 여러 가지 해결책들이 제공해 주는 위안, 큰 머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들의 삶까지 보여 준다. 재미있는 것은 윤동률 PD 또한 큰 머리의 소유자로, 취재하던 중 사례자들의 대두클럽 고문으로 추대되었다는 것이다. 연출자와 취재원들이 같은 고민을 공유함으로써 그들의 이야기가 보다 진솔하게 소개될 수 있었다.
 양홍선 PD가 연출한 ‘김부장의 투잡 도전기’는 모든 직장인들이 한번쯤은 생각했음 직한 고민을 다룬 이야기였다. 하지만 단순히 여러 종류의 투잡을 소개하는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다. 실제로 투잡을 꿈꾸는 한 직장인을 섭외해 그의 좌충우돌 노력들을 보여 주고, 이를 통해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어려운 우리 사회의 서글픈 현실을 반추해 주었다. PD의 페르소나로 등장한 김 부장은 투잡이 단순 돈벌이를 위한 것인지(대리운전), 일종의 취미활동인지(색소폰 연주가), 자기 사업을 가지기 위한 징검다리인지(인터넷 쇼핑몰, 식당)를 모두 경험한다. 이를 통해 김 부장은 물론 시청자들에게도 투잡을 하려는 근본적인 이유가 뭔지 다 같이 고민해 보자고 프로그램은 이야기한다.
 이렇게 ‘30분 다큐’는 열린 주제를 가지고 만드는 차별적인 다큐멘터리이다. 이 사회의 미시적인 이슈들을 다루면서, 일상에도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이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애견을 잃는 슬픔이 가족을 잃는 슬픔 못지않다는 것, 택시의 발달사를 통해 택시 기사들도 이 사회를 위한 헌신이 있었다는 것, 안산의 외국인 노동자들도 어느덧 우리 사회의 한 부분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 서울의 옛 모습을 아직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등등. 이 사회의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들의 소중함에 대해 간접적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은근슬쩍 이 사회에는 한 가지 정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이러한 숨겨진 주제 의식은 내레이션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내레이션은 최소화하고, 톤은 기본적으로 모든 것을 조망하는 듯한 관조적인 뉘앙스로 설정했다. 이러한 효과를 위해 성우도 미드 ‘위기의 주부들’의 전지적 관찰자 시점의 목소리를 담당했던 유남희 씨를 기용했다. 유남희 씨의 약간 차갑고 메마른 듯 하면서도 섹시한 목소리는 ‘30분 다큐’ 특유의 톤을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익숙한 소재를 다른 시각으로

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매번 익숙한 소재에 다른 시각을 가미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PD와 작가의 인문학적인 상상력이 총동원되어야 한다. 장성주 PD의 ‘당신 오늘도 맛집에 낚이셨습니까?’는 자주 봐왔던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생각을 뒤틀어 맛집을 우리가 왜 찾아가는지, 그리고 그 맛집 음식이 왜 맛있다고 생각하게 되는지를 살펴본다. 이렇게 새로운 접근 방식을 찾기 위해 아이템 선정하는 것에만 제작기간의 절반이 훌쩍 지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보다 어려운 점은 PD가 연출은 물론 출연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템에 따라 출연을 안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세 가지 키워드(관찰, 체험, 실증)가 말해 주듯이 ‘30분 다큐’는 PD가 궁금증을 풀기 위해 떠나는 일종의 오디세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오디세이에는 체험을 하는 오디세이우스가 있었고, 이야기를 해 주는 호메로스가 따로 있었다. 하지만 ‘30분 다큐’에는 PD가 오디세이우스이자 호메로스다. 카메라 뒤에만 서 있던 PD가 앞에도 나서야 하는 만큼 준비하고 계산해야 할 점들도 늘어났고, 출연 자체가 민망하기도 하다. 그래도 PD의 출연이 프로그램에 진정성을 부여해 주는 만큼 발음이나 동선 맞추기 등에 더 많은 신경을 쓸 필요성을 느낀다. 이를 통해 보다 자연스러운 진행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다.
 ‘30분 다큐’는 새로운 형식의 다큐멘터리다.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현장이나 이슈를 PD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새롭게 조명해 보는, 가볍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다큐멘터리다. 게다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회 방송하는 일일 다큐멘터리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를 통해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못지않게 재미있는, 다큐멘터리의 시대가 올 것이다.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이야기하고 창출해 내는 것이 바로 공영방송의 몫인 만큼 앞으로도 우리의 실험은 계속될 것이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8월호 제작기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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