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 전에는 피의사실 보도를 최대한 삼가야 하며, 기소가 된 이후에도 기소내용을 중심으로 한 사실 전달에 충실해야 한다. 언론이 수사기관을 대신하고 있는 듯한 보도, 추측이나 일방적인 주장에 근거한 보도는 하루빨리 버려야 할 잘못된 관행이다.



기소 전 보도 최대한 삼가고
추측이나 일방적 주장 말아야

이재진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jjlee@hanyang.ac.kr



저널리즘 영역에서 피의사실 보도는 분명한 기준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왜냐하면 언론의 피의사실 보도는 한 축에 언론자유라는 명제와 다른 한 축에 인격권이라는 명제가 첨예하게 대립되기 때문이다. 언론에 의한 피의사실 보도는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한 언론의 필수적인 사회적 역할이자 취재보도 자유의 일부로 인식되는 반면, 법원에 의해 재판이 끝나서 형이 확정되기 이전에 피의사실 보도로 인하여 당사자가 받게 되는 인격적인 피해는 추후 구제로는 원상복구될 수 없는 심대한 피해를 낳을 수 있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피의사실 보도에서도 이러한 점이 지적되었다.
법적인 측면에서 피의사실 보도는 이처럼 개인의 인격권 침해에 따른 피해에 대해 잘잘못을 가리도록 되어 있으며, 동시에 수사기관이 피해사실을 형이 확정되기 이전에 언론에 공표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물론 법원의 판례에 따르면 사안의 중대성이나 국민의 알 권리 측면에서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있으나 -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 행위는 공표된 내용의 공공성, 공표 목적의 공익성과 필요성, 피의사실의 객관성 및 정확성, 공표의 절차와 형식, 그리고 내용의 표현 방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허용여부를 판단 한다 - 이는 법 원칙적 측면에서 예외적인 것이다. 그런데 보도 이후의 법적인 문제점을 따지기 이전에 저널리즘의 원칙적 측면에 근거해 피의사실 보도의 문제점을 따져 보는 것이 필요하다. 피의사실 보도란 무엇보다 언론이 어떤 방식으로 보도하는가에 따라 이를 읽는 독자들의 인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라 독자 인식 달라져

우리 법원은 저널리즘 영역으로서의 피의사실에 대한 보도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법원은 피의사실 보도가 범죄 형태를 비판적으로 조망하고 사회적 규범이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위반하는 경우 그에 대한 법적 제재가 어떻게, 어떠한 내용으로 실현되는가를 알리고 나아가 범죄의 사회·문화적 여건을 밝히고 그에 대한 사회적 대책을 강구하는 등 여론 형성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서 대단히 공공성이 강한 활동으로 인식하고 있다(대법 1998.7.14 선고 96다17257 판결). 물론 이러한 판단은 언론에 의한 피의사실 보도가 객관적이고 진실해야 한다는 언론보도의 일반적 요구에 기초하고 있다.
그렇다면 법적인 논의 이전에 저널리즘 측면에서 언론의 피의사실 보도가 문제가 되는 원인과 대안적 해결책은 무엇인가? 피의사실 보도의 문제는 무엇보다 범죄보도가 증가하고, 이러한 보도가 선정적으로 전달되는 것과 관련이 깊다. 2001년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 신문의 범죄 보도는 전체 보도 기사량의 20%가 넘는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범죄보도가 증가한 데에는 1830년대부터 대중지가 광범위하게 보급되고, 19세기 후반에 소위 옐로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이 성행하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산업발전과 대중교통 발전 및 기본 교육제도의 확립으로 신문의 보급이 점차 늘어나게 되면서, 언론의 보도도 이전과 같이 정치, 경제, 철학 등의 어려운 주제를 벗어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재미있게 읽히는 이야깃거리가 신문 기사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신문은 독자 주변 사람들의 신변에 어떤 일이 발생하였는가를 알려 줌으로써 독자들의 더 많은 많은 관심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전달된 소식 중 많은 부분이 범죄 관련 뉴스였다. 이와 함께 뉴스를 전달하는 방식이나 기법에도 상당한 변화가 동반되었다.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는 건조한 형태의 글쓰기가 아니라 드라마적인 요소를 가미하는 소설 형식과 유사한 기사 작성법이 저널리즘의 기본적인 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옐로 저널리즘 시대에는 흥미 위주의 뉴스 전달 방식에다 신문업자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이 가미돼 신문의 인격권 침해는 극에 달하였다. 특히 범죄 관련 기사를 다루면서 단순한 혐의자를 범죄자로 몰거나 잘못된 여론의 형성을 유도해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자주 발생하였다. 미국 법원은 이러한 언론보도에 대해 비록 언론보도의 공익성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공익적 목적과 거리가 먼 보도의 경우에는 언론자유의 우산 아래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피력했다.

상업적 가치 위한 시의성이 경쟁 원인

우리나라의 경우 잘못된 피의사실 보도가 발생하는 원인은 몇 가지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언론의 시의성에 대한 인식의 문제와 관련된다. 범죄보도의 경우 언론은 사실 확인을 하고 신중을 기하며 동시에 재판이 열릴 때까지 보도를 하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언론의 특수성으로 인해 이러한 것은 실제로 기대하기 어렵다. 언론의 경우 시의성은 때로 언론의 생명과도 유사하게 취급되는데, 언론이 시의성을 놓치게 되면 정보의 상업적 가치가 급속히 감소하며 언론들 사이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둘째, 언론의 매체적 특성과 수사기관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언론은 최대한 빨리 중요한 정보를 알리고자 하는 반면 수사기관은 때로 홍보 목적으로 이를 중간 과정에 공표하거나 흘리기도 한다. 이를 통해 수사기관은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존재와 권한을 인식시킬 수도 있으며, 국민들은 보도를 통해 수사기관이 제대로 주어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특히 사회적 쟁점이 되는 공익성이 강한 사건의 경우에는 이러한 이해관계가 강하게 작용할 수 있다.
셋째, 언론 보도를 통해 사회적 압력을 높임으로써 수사기관이 사법부에 대해 효과적으로 견제를 가하고, 언론과의 협조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작용한다. 즉 수사기관은 피의사실에 대한 정보를 흘리면서, 법원에 부담을 주면서도 언론에는 정보 제공자로서의 위치를 확인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은 여전히 수사기관에 출입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출입처 제도를 통하여 언론과 수사기관은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할 수도 있다.
넷째, 언론의 탐사보도적인 노력이 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탐사보도의 경우 사건 및 사고에 대한 심층 보도가 대부분으로 범죄 사건은 탐사보도의 주요 대상이 된다. 탐사보도의 경우 때로 언론이 마치 자신들이 수사기관의 역할을 대신하는 듯한 인상을 주게 된다. 저널리즘적 측면에서 이는 과잉보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로 인하여 개인의 인격권 침해가 발생하게 된다. 탐사보도 과정에서 때로 불법적이거나 비윤리적인 취재 활동을 벌이기도 하는데 이로 인해 취재 당사자에 대한 공중의 오인을 불러오기도 한다.
이러한 네 가지 측면에서의 원인 이외에도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피의사실 보도에 의한 인격권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 인격권 침해뿐만 아니라 진실을 가리는 재판의 진정한 의미가 변질돼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도 있다. 인과응보의 사회적 가치가 잘못된 피의사실 보도로 인해 생산되지 못하고, 아울러 무분별한 보도가 언론의 권력화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처럼 잘못된 피의사실 보도는 다양한 개인적·사회적 문제를 초래하게 할 수 있다.

자율성 강화하되 무분별한 보도 자제

이러한 점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방편의 마련도 중요하지만 저널리즘적 측면에서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피의사실 보도와 관련된 논의들 중 어떻게 예방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최근 일각에서 제시된 견해는 피의사실 보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범죄보도의 경우에는 보도 시점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법을 통해 언론이 범죄 보도를 못하게 막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보도가 해당 인물의 인격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별도의 절차를 거쳐 대처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국민의 알 권리 범위에 예정된 재판의 판사들보다 국민들이 한 발 앞서 사건을 알아야 하는 것이 포함되는 것은 아니므로, 성격을 따져 공표의 요건을 다소 엄격하게는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언론의 시의성이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보도를 위해서는 언론사들이 수사가 이루어지고, 공소 제기 여부를 소추자가 판단하고, 공소가 실제로 제기되고, 재판 기일이 잡히고 재판이 열릴 때까지 보도를 하지 않고 기다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의 역할과 특수성을 감안할 때 이는 실제적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언론이 자발적으로 피의사실 보도에 대한 자율성을 강화하고 무분별한 보도를 자제하는 것이다. 신문윤리실천요강 제7조에서 알 수 있듯이, 언론은 유죄가 확정되기 이전에는 피의자의 인권과 신원의 공표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러나 사안의 중대성과 공익성을 따져서 그렇지 못하고 시의성 있는 보도를 해야 할 때가 있는데, 이 경우 사안을 공표하는 것이 가져올 수 이익과 보도시점을 조정하고 자제하는 것이 가져올 수 있는 이익을 자율적으로 형량해야 한다. 이때 언론을 통한 공적 토론의 정당성은 인정되지만 보도가 개인의 인격권 침해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훼손시킬 가능성이 있는 만큼 철저히 정당성이 인정되는 정도의 보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소내용 중심 사실 전달에 충실해야
  
궁극적으로 언론의 경우 피의사실의 보도에서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재 언론사들도 수사기관이 제공하는 피의사실을 보도할 때 지켜야 할 규정들을 마련해 두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선언적 규정에 불과하다. 최근 한겨레신문이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포함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수사기관의 홍보성 보도 요청에 응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적어도 기소 전에는 피의사실 보도를 최대한 삼가야 하며, 기소가 된 이후에도 기소내용을 중심으로 한 사실 전달에 충실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법무부 준칙상 피의자 또는 증인의 진술이나 신빙성 여부, 아울러 피의자 또는 피고인의 유죄 여부에 대한 견해 등은 공표할 수 없다. 우리의 경우에도 공표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 수사기관의 발표에 대해 언론은 최소한의 내용, 즉 발표의 내용이 누가 어떤 혐의로 언제 체포되거나 얼마 동안 조사받았으며 어떠한 죄목으로 기소되었는가 정도에 그쳐야 한다. 언론이 수사기관을 대신하고 있는 듯한 보도, 추측이나 일방적인 주장에 근거한 보도는 하루빨리 버려야 할 잘못된 관행이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8월호 특집 - 피의사실 공표와 언론보도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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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deira plastica 2012.02.24 2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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