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룰루랄라’일 듯한 영화기자들도 똑같이 각박한 일상을 산다는 것, 치열한 취재경쟁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 그래서 연예인 구경이나 하면 될 것 같은 간담회에서도 늘 신경을 곤두세운 채 취재구상을 하거나 기사를 쓸 수밖에 없다는 걸 말하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짜게’ 반응하는 것이 결코 훌륭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영화, 기자, 영화기자











강아연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




 “욱신욱신 몸이 아파도 온몸 가득 멍이 들어도 / 한바가지 욕을 먹어도 모두 다 잊어버려”
 얼마 전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개막 8월13일) 기자회견장에선 때 아닌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음악영화제답게 주최 측이 준비한 인디밴드 ‘좋아서 하는 밴드’의 오프닝 공연이었다. 아프리카 타악기 젬베에 실린 보컬의 음성이 무척이나 경쾌했다.
 “달콤한 것들은 모두 다 녹아내려 / 사랑도, 사탕도, 가식적인 너의 미소도”
 정말 ‘가식적인 미소까지 녹아내릴’ 법한 흥겨운 리듬이었지만, 딱 한 가지 녹아내리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기자들의 굳은 표정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안 웃으시네요. 하하하.”
 보컬이 쑥스러운 듯 한마디 했지만, 기자들은 잠시 머쓱한 기색을 보이더니 다시 부동자세로 돌아갔다. 자초지종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밴드 오디션장이라고 착각이라도 할 만한 분위기였다. 아, 물론 후보 한 팀에 심사위원이 수십 명이나 되는 오디션장은 어디에도 없을 테지만 말이다.
 지금 무슨 얘기를 하려느냐고? 그러니까 난, 난, 그래, 영화담당 기자의 고충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참이다. 뭐, 무슨 복에 겨운 소리냐고? 허구한 날 근무시간에 ‘영화나’ 보러 다니면서 그렇게 엄살을 부려도 되는 거냐고? 아, 안다 안다 잘 안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하지만 일단 내 말도 한번 들어보길 부탁한다. 당신들 말대로 난 지금 영화를 맡고 있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부디 이것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영화기자가 그렇다고 해서 위로조차 필요 없는 ‘생날라리’ 인생도 아니라는 점 말이다.
 사실 알다시피,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기자회견은 전혀 특별한 경우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기자회견은 분위기가 썰렁하다. 영화시사회 후 열리는 간담회도 예외가 아니다. 대중들의 환호에 익숙해진 연예인들도 기자간담회에만 오면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영화가 웃겨도 웃는 둥 마는 둥, 무대인사를 해도 박수를 치는 둥 마는 둥 하니 얼어붙는 건 어쩌면 당연지사.
 그런데 대체 기자들은 왜 이렇게 호응에 인색한 걸까. 물론 이는 비단 영화기자에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다른 부서, 다른 분야담당 기자들도 같은 얘기를 하는 걸 보면 말이다. 답은 바로 여기에 있다. 늘 ‘룰루랄라’일 듯한 영화기자들도 똑같이 각박한 일상을 산다는 것, 치열한 취재경쟁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 그래서 연예인 구경이나 하면 될 것 같은 간담회에서도 늘 신경을 곤두세운 채 취재구상을 하거나 기사를 쓸 수밖에 없다는 걸 말하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짜게’ 반응하는 것이 결코 훌륭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꼭 이렇게까지 살아야하나, 무슨 영화를 누리자고 이 고생을 하나.’ 이런 생각, 영화기자도 한다. 정말이다. 최근에는 공포영화를 볼 때 영화 시작에 앞서 저런 생각을 진지하게 하곤 한다(설상가상으로 요즘은 공포영화 시즌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했던 때는 샘 레이미 감독의 공포물 ‘드래그 미 투 헬’을 보러갔을 때였다. 다른 기사 마감 때문에 낮에 하는 언론시사회를 놓친 나는 밤 시간대에 하는 일반시사회를 혼자 가기로 했다.
 때는 6월 중순. 본격적인 장마 초입을 알리듯, 하늘에선 굵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퇴근 후 길을 나선 나는 ‘별 거 있겠어?’라는 생각으로 광화문에서 시사회장인 종로 서울아트시네마까지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갔을까. 컴컴한 하늘에는 이내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보도 위 찰랑거리는 빗물은 바지를 무릎께까지 축축하게 적셔놓았다. 낙원상가로 접어드는 골목은 또 어떤가. 평소에도 스산한 분위기에 왠지 머리끝이 주뼛주뼛 서곤 하는데, 이날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딱 공포영화 속 음침한 세트장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충분히 공포스러운데 굳이 영화까지 볼 필요가 있을까.’ 머리는 혼란스러웠지만, 발은 이미 꾸역꾸역 극장 안으로 향했다. 다행히 영화는 무서운 만큼 유머 코드 역시 많이 담고 있었다. 적어도 ‘비명즉사’는 피할 수 있었으니, 이제 당시의 기억도 즐거운 추억으로 변환해서 저장해야 맞는 걸까.
 이쯤에서 난 무슨 표정을 지어야할지 난감하다. 많이들 부러워하는 영화 담당도 알고 보면 고충이 있노라 푸념을 늘어놓았지만, 머쓱하다. 잠시 또 잠시. 그러니까 이건 우리네 삶이 너무나 각박하니 조금만 더 여유를 갖자고 건네는 권언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그나저나 나도 다음 번 간담회 때는 좀 더 힘껏 오래 박수를 쳐주리라.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8월호 에세이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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