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시작이 두 달이나 당겨지고 지난해에 비해 제작비가 많이 깎였지만 위기는 곧 기회가 되었다. 시놉시스도 인쇄하지 않고 바로 대본작업으로 들어가는 어려움도 있었지만,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편성회의를 생략하고 바로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고, 적은 예산을 핑계로 출연료가 저렴한 새로운 얼굴들을 캐스팅할 수 있었다.


주말 밤 시간대에 
행복한 드라마가 통한 비결은?
제작기_SBS 드라마 ‘찬란한 유산’  (상)

진혁 SBS PD



  “착한 사람이 복을 받았으면…”이라는 단순한 명제. 28부작 드라마가 되기엔 너무 간단해 보이는 한마디. 요즘같이 복잡한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 한마디가 47.1%(TNS 전국 기준)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7월 26일 막을 내린 SBS 특별기획 ‘찬란한 유산’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찬란한 유산’의 제작발표회에 참여했던 한 기자가, 당시 이 드라마가 조기종영될 것이라는 말들이 떠돌았다고 내게 전할 만큼 출발점에 섰을 땐 불안해 보이는 드라마였다. 외관상으로는 새로워 보이지 않는 줄거리, 검증되지 않은 배우들…. 동시간대에 KBS의 ‘천추태후’가 자리를 잡고 MBC도 인기 예능프로인 ‘세바퀴’와 ‘2009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는 드라마를 새로 편성하면서 경쟁도 치열해졌다. 게다가 소위 막장 코드라는 것이 유행하던 시점이라 우리 드라마의 스토리가 평이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개연성 있는 탄탄한 대본과 비록 스타는 없지만 신선한 캐스팅이 오히려 이 시점에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바라고 믿고 있었다.
  ‘찬란한 유산’은 돈이 있었으면 행복한 척 계속 유지될 수 있었지만 돈이 없어 금이 간 여주인공 고은성의 가족과 돈이 너무 많아서 행복할 수 없었던 남주인공 선우환의 가족을 중심으로, 우리가 사는 이유인 가족 간의 사랑, 정처 없는 청춘들의 성장기, 그리고 새로운 기업인의 제시라는 세 가지 기획의도 아래 출발한 드라마다.
  드라마 제작과정을 프리프로덕션(기획/대본작업/캐스팅 등)-프로덕션(촬영)-포스트프로덕션(편집/음악/CG/믹싱 등)으로 나눌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마도 프리프로덕션일 것이다. ‘찬란한 유산’의 프리 프로덕션은 2008년 11월에 시작해 첫 촬영을 나간 2009년 3월 말까지 이루어졌다.
  ‘바람의 화원’이라는 드라마의 공동연출로 막바지 촬영이 한창이던 11월과 12월 초 소현경 작가와 함께 2009년 6월로 편성된 특별기획 드라마 기획회의를 하게 되었다. 공이 많이 드는 미술 사극인 ‘바람의 화원’ 촬영을 하던 중이라 소현경 작가와는 새벽밖에 만날 시간이 없었고, 작가가 촬영장인 지방으로 직접 와야 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하지만 9월로 예정되었던 방송이 6월로 당겨졌기 때문에 무리해서라도 아이템을 잡아야 했다.

큰 줄기는 “가족 간의 사랑”

  작가와 내가 처음 만난 때는 2008년 6월 ‘온에어’의 공동연출을 끝낸 직후였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소현경 작가의 감성 코드가 나와 잘 맞아 함께 월화 24부작 드라마를 준비했으나, 처음엔 ‘카인과 아벨’, 후에는 ‘떼루아’라는 규모 있는 드라마에 밀려 편성이 좌절됐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두 번째 준비는 더욱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입봉’(조연출을 마치고 드라마 연출로 데뷔하는 것) 이후 선배들과 함께하는 공동연출 작품만 해 왔던 나로서는 홀로 서는 첫 작품이라는 의미가 담겼기에 더욱 소중했다.
  서로에게 던진 첫 질문은 “우리 어떤 드라마를 할까요”였다.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비슷하면 좋은 출발을 의미할 수 있지만 너무나 다를 경우엔 막막하게 되는 질문이었다. 다행히 소 작가와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작년 겨울은 경제위기설이 닥치고 생활의 어려움을 사람들이 몸으로 느끼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소현경 작가는 올바르고 착하게 산 사람이 어려움을 겪는 과정에서 뜻밖의 행운을 만나는 판타지를 통해 마음이 팍팍해진 시청자들이 대리만족과 행복을 느끼기를 원했고 그것을 유산으로 구체화시켰다. 나는 돈으로 대표되는 물질이 가족애라는 정신적으로 끈끈한 가치와 충돌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가족 간 대화의 대부분이 돈과 관련된 이야기로 채워지고 돈을 위해서라면 가족이 해체될 수도 있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다행히 유산이라는 장치는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 매우 적합했다.
  드라마는 재미가 먼저 보장돼야 하는 장르다. 교훈을 얻기 위해 드라마를 보는 사람은 드물뿐더러 방송사의 수익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장르라 시청률을 배제하고 드라마를 기획하는 PD, 작가는 없다. 우리가 편성된 토, 일 밤 10시 특별기획 시간대는 주부들을 위한 시간대로 인식돼 있었다. 안정적인 시청률을 위해서는 부부관계에 근거한 어른들의 이야기, 또는 자극적이고 강한 이야기를 50회 이상 장기물로 풀어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반대의 길을 택했다. 주인공은 사회에 막 진출하는 20대 젊은이들로 설정했고 길이도 24부작으로 짧고 스피디하게 가기로 결정했다. 소위 말이 되게 쓰는 탄탄한 구성력을 가진 소현경 작가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고, 주부뿐만 아니라 세대와 성별을 초월해 온 가족이 함께 재미를 느끼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젊은이들이 주인공이지만 모든 사람이 그 나이를 거치기 때문에 그들의 모습이 누구에게는 추억으로, 누구에게는 현재로 또 누구에게는 미래로 보여 충분히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드라마 보는 재미는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장치를 통해서가 아니라 감성적인 카타르시스를 통해 만들어 보고자 했다. 회사를 설득해 24부작으로 길이를 조절하는 동안 소현경 작가는 멜로, 미스터리, 코믹이 정밀하게 결합된 좋은 시놉시스를 만들었다.

12월 30일쯤 시놉시스 초고가 나왔다. 가족의 위기에 대한 내용을 담고 싶어 하는 나의 바람을 반영하기 위해 주인공 은성의 동생으로 은우라는 캐릭터를 새로 만들고 준세와 박 변호사라는 캐릭터를 부자지간으로 엮는 등의 수정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몇 가지 위기가 찾아왔다. 첫째는 우리 앞에 편성되어 있던 ‘내조의 여왕’이 제작사 사정상 MBC로 넘어가게 되면서 방송을 4월 25일로 두 달이나 당긴 것이고 두 번째는 경제위기의 여파로 제작비가 많이 깎여 지난해보다 적은 예산으로 드라마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가 되었다. 시놉시스도 인쇄하지 않고 바로 대본작업으로 들어가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방송에 임박하다 보니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편성회의를 생략하고 바로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고, 적은 예산을 핑계로 출연료가 저렴한 새로운 얼굴들을 캐스팅할 수 있는 공감대를 얻을 수 있었다.

아는 배우들 위주로, 욕심 버리고 화합 중시

  욕심을 버린 덕분에 캐스팅은 다행히 수월하게 진행됐다. 캐스팅의 제일 원칙은 내가 연기력과 가능성을 잘 알고 있는 연기자들을 캐스팅하는 것이었고 제이 원칙은 화합이었다. 특히 젊은 연기자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그들이 촬영장에 오는 것을 즐겁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야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두 원칙을 지키려다 보니 조연출, 공동연출 시절을 거치며 함께 일했던 배우들을 먼저 찾게 되었다. 서브 주인공인 준세, 승미 역으로 ‘바람의 화원’에서 함께 일했던 배수빈, 문채원을 시놉도 나오기 전인 ‘바람의 화원’ 종방연에서 캐스팅했다. 악역인 백성희는 전형적인 악역의 모습에서 벗어나 새롭게 재창조하고 싶은 마음에 그동안 악역을 한번도 맡지 않았던 김미숙 선배에게 부탁했다. 다행히 조연출 시절 함께 일한 인연으로 시놉시스도 보지 않고 만나자마자 흔쾌히 캐스팅을 받아주었다. 역시 조연출 시절 반효정 선생님과 함께 일하며 그분의 깊은 연기력과 훌륭한 성품을 경험했기에 카리스마와 부드러움을 동시에 갖추어야 하는 장숙자 할머니라는 어려운 배역을 부탁드렸다. 코믹한 영란-표집사 커플로 사랑받은 유지인ㆍ이승형 선배를 비롯해 전인택(아버지), 최정우(박 변호사), 한예원(선우정), 백승현(점장), 민영원(혜리), 김재승(형진) 등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나와 작품을 함께 해 연기력과 성품을 잘 알고 있던 배우들이었다.

  드라마를 끌고 나갈 남녀 주인공을 캐스팅하는 일은 끊임없는 고민의 연속이었다. 드라마가 성공하려면 스타가 중요하다. 시작할 땐 스타가 아니더라도 끝날 때는 스타가 될 수 있는 배우를 선택해야 한다. 20대 초중반 배우들 중 확신을 주는 배우가 많지 않았다. 그동안 기존 스타들에 기대느라 드라마나 영화에서 신인발굴에 소홀했기 때문인지 30대 배우들과 20대 초중반 배우들 사이엔 큰 공백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존 스타들이 나왔던 드라마, 영화들이 계속 실패하는 것을 보면서 분명 대중이 새로운 스타를 원하고 있다고 느꼈고 그런 스타성을 가진 젊은 연기자를 찾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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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9월호 제작기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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