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된 조명기기와 카메라로 빠르게 찍어 내는 것이 세트 녹화의 장점이지만 녹화 스태프들의 열성적인 도움으로 카메라 위치와 조명 위치를 매 컷 옮겨 다니고 장비를 깔아가며 ENG 촬영과 유사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또한 스태프들의 노동조건을 생각해 이틀 찍으면 꼭 하루를 쉬고 밤 12시를 넘기지 않으려 신경을 썼다.


주말 밤 시간대에 
행복한 드라마가 통한 비결은?
제작기_SBS 드라마 ‘찬란한 유산’  (하)

진혁 SBS PD




--------------------------------------  (上)편에서 이어집니다.


한효주는 자연스런 선한 인상이 주인공 은성의 이미지와 일치한다고 생각해 처음부터 고려하던 배우였다. 조용한 배역을 주로 맡아 와 크게 부각된 적은 없지만 그동안 나왔던 드라마와 영화들을 구해 쭉 보다 보니 잠재력이 있는 배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승기는 드라마에 출연한 모습을 보진 못했으나 가수로 노래를 부를 때 그 눈빛과 스타일리시한 옷매무새가 마음에 들었다. 주변에 알아보니 성실하고 머리가 좋다는 평들이었다. 본인이 열의를 가지고 덤빈다면 눈빛으로 큰일 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효주의 첫마디는 연기를 너무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눈빛 속에 열정이 느껴졌다. 키가 크고 시원시원하며 웃는 모습은 밝고 눈물을 흘릴 때도 미워지지 않는 그런 얼굴이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승기는 실제 보니 스타일이 있고 비율이 좋아 촬영하면서 좋은 비주얼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목소리도 좋아 작게 말해도 크게 울릴 정도였고 연기에 대한 의욕이 굉장히 강했다. 이 두 사람이라면 전형적인 미남 미녀형이 아닌 대중이 바라는 새로운 모습의 스타로 탄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신인 PD의 연출, 믿어주는 사람은 작가뿐

캐스팅은 쉽게 끝났지만 “캐스팅이 드라마 성공의 반을 좌우한다”라는 속설이 있는 만큼 회사의 허락을 얻고 제작사의 동의를 얻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SBS에서 사활을 거는 시간대를 맡기엔 약해 보이는 주인공들, 지금까지 맡았던 배역과는 상반된 배역을 맡은 중견배우들, 심지어 작고 귀여운 아역이 아니라 키가 170㎝가 넘는 자폐아 은우 역까지 도마에 올랐다. 은우 배역을 맡은 연준석 군은 오디션을 통해 뽑혔다. 드라마를 위해 작가와 함께 자폐아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내가 만난 자폐아들은 덩치가 산만 하지만 어린아이의 얼굴을 가진 그런 친구들이었다. 협조해 주신 그 부모님들께 자폐라는 현상에 대해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작가와 내가 본 것을 왜곡하고 싶지 않았다. 비록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장애를 이용하는 것일지라도 은우는 우리가 본 그 아이여야 했다. 숱한 선배들의 작품을 지켜보며 주위의 의견에 휘둘려 캐스팅을 바꾸어 실패를 했을 때 결국 화살은 다시 연출에게 돌아가고 연출 스스로 후회하게 되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설득하고 또 설득해 원 캐스팅안을 고수했다. 신인 연출이라 불안했을 텐데도 끝까지 연출의 편에 서준 소현경 작가의 지지가 큰 도움이 되었다. 
  소현경 작가는 대본이 나오기 전 이미 24부까지의 전체 흐름과 각 회의 엔딩에 대해 큰 틀을 마련했고 그 틀과 캐릭터들에 대해 함께 대화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 내 머릿속에도 전체의 윤곽이 들어설 수 있었다. 연출과정이 작가가 그려준 밑그림에 색을 입히는 과정이라면 덕분에 색을 입히는 데 미리 고민할 수 있었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방송에 맞춰 급조되는 드라마도 많은 현실에 이처럼 치열한 작가와 일할 수 있는 건 정말 복이었다. 초고도 워낙 좋아 큰 수정 없이 부분적인 수정 후 대본연습에 들어갔다. 캐릭터 하나하나가 모두 살아 있는 대본이라 연기가 너무 중요했다. 특히 젊은 배우들이 어설픈 연기로 비난을 듣게 하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상당히 많은 대본 연습을 했고 할 때마다 연습의 분위기는 열정적이었다. 특히 한효주, 이승기 등 젊은 배우들이 대본 리딩을 너무 열심히 하자 어른 배우들까지 실제처럼 감정을 잡아 대본 리딩을 하는 진지한 연습이 이어졌다. 대본 리딩 후엔 젊은 배우들만 따로 불러 대사를 외워 직접 연기를 하는 연습도 계속했다. 6㎜ 카메라로 찍어 표정과 연기를 함께 체크하기도 했다.

호흡 척척 맞는 스태프, 밤샘 촬영은 최소화

카메라, 조명, 오디오 등 ENG 촬영 스태프들과 편집감독, 음악감독 등 후반작업 스태프들은 여러 번 나와 작업을 해 보았던 스태프들이라 쉽게 호흡을 맞출 수 있었다. 제작비는 연속극 제작비인데 촬영 형태는 야외와 ENG 세트가 많은 미니 시리즈 스타일이라 간극을 메우는 데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모든 장면이 중요했지만 경제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다. 힘을 주어야 하는 장면과 빨리 찍어야 하는 장면을 구분해야 했고 스태프들과의 빠른 호흡이 하루에 상당히 많은 양을 찍어야 하는 우리 드라마에 큰 도움이 되었다. 8부 이후에는 세트 녹화도 병행해야 했다. 조명기기들을 고정해 놓고, 움직이지 않는 세 대의 카메라로 빠르게 찍어 내는 것이 세트 녹화의 장점이지만 녹화 스태프들의 열성적인 도움으로 한번에 편집까지 완성되는 스피드의 미덕을 버리고 카메라 위치와 조명 위치를 매 컷 옮겨 다니고 장비를 깔아가며 ENG 촬영과 유사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또한 3월 말 첫 촬영을 나가 방송까지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었지만 스태프들의 노동조건을 생각해 이틀 찍으면 꼭 하루를 쉬고 밤 12시를 넘기지 않으려 신경을 썼다. 다행히 스태프들의 노력으로 짧은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촬영이 이루어져 4월 25일 첫 방송 전에 5부 분량정도를 미리 찍어 놓을 수 있었다.
  콘티는 감성을 깊게 하는 디테일을 잡아내는 방향으로, 화면의 색은 캐릭터를 반영하는 과감한 시도로 콘셉트를 잡았는데 최종 방송 믹싱 전 색보정을 맡겼더니 원래 의도했던 색들이 변질돼 다시 원본으로 믹싱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편집은 다소 호흡을 빨리 자르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과감히 커트해 드라마의 속도감을 살리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내가 원래 드라마보다 음악을 더 좋아해 음악감독과 드라마 음악을 선곡하는 작업은 난산에 난산을 거듭했다. 수십 곡이 제외되는 과정에서 멜로디가 강한 곡들 위주로 최종 삽입곡들이 선정됐다.
 

  4월 25일 첫 방송은 15%라는 나 스스로는 만족할 만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드라마 마지막 즈음에 25%를 기록하면 대성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매주 4~5%씩 시청률이 껑충껑충 뛰었던 것이다. 한번도 보지 못한 현상이었다. 결국 ‘찬란한 유산’은 인상녀, 착한 드라마 등의 유행어를 낳으며 사회적인 현상으로까지 자리 잡았고 아무도 예상치 못한 기록적인 시청률로 드라마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더욱이 대다수 드라마 제작사들이 손해를 보고 드라마를 제작해야 하는 여건에서 ‘찬란한 유산’은 제작사가 해외 판권이나 OST 등의 부가사업 수익이 생기기 이전 이미 이익을 보는 구조가 만들어진 드문 드라마가 돼 더욱 의미가 있었다.

게시판, 드라마 관련 뉴스는 거의 안봐

드라마가 방송되는 동안 우리가 정해 놓은 길을 흔들리지 않고 가기 위해 작가와 나는 인터넷 게시판이나 드라마 관련 뉴스를 거의 보지 않았다. 하지만 촬영장에서 느끼는 체감으로도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주인공들을 데리고 처음 촬영을 할 때는 아무 방해도 없이 쉽게 야외촬영을 할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몰려드는 인파로 인해 야외 촬영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었다. 지나가던 어떤 분은 우리 드라마를 보고 자녀에게 용돈을 줄 때 어떻게 줘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또 어떤 분은 조금 거창하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셨고 또 다른 분은 첫사랑의 추억으로 많이 울었다고 하셨다. 큰 욕심으로 시작한 드라마는 아니었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 보시는 분들이 한번쯤은 목이 메고 한번쯤은 미소 지을 수 있는 그런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 그 목멤이 큰 울음이 되고 미소가 큰 웃음이 되길 원했다. 매일같이 생활에 짓눌리며 바쁘게 화내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눈물과 웃음이라는 감정의 정화가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다고 믿었다. 드라마에 큰 사회적 의미나 교훈을 갖다 붙이려 할 필요는 없다. 만든 사람이 그런 의도를 살짝 양념처럼 얹어 놓았다 하더라도 그 모두를 무시하고 즐기면서 보기만 해도 그만인 것이 드라마다. ‘찬란한 유산’이 황량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적셔 주는 소나기 같은 드라마였다면 난 정말 행복한 연출자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9월호 제작기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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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은영 2009.09.24 08: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찬란한유산끝이났지만아십네요.
    다음에또했으면좋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