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부엉이’ 제작진은 1부의 문제 된 사냥 장면의 편집과정에서 분명히 재연이란 자막을 넣을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때 2부에 두루뭉술하게 넣자는 의견이 나왔을 것이고 이러한 결정이 결국 이번의 화를 불렀다는 생각이 든다. 시청률을 생각하는 마음이 윤리성을 이긴 결과이다.


‘조작’이란 표현이 억울하더라도
‘재연’ 표기안한 것은 문제있어

KBS 환경스페셜, ‘밤의 제왕 수리부엉이’ 조작 파문

 유현석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지난 3월 KBS 환경스페셜에서는 ‘밤의 제왕 수리부엉이’란 다큐멘터리를 2주에 걸쳐 방송했다. 1부에서는 수리부엉이의 사냥기술, 종족번식 방법 등을 보여 주고, 2부에서는 이 다큐멘터리의 제작과정을 보여 주었다. 과거 호랑이와 함께 밤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수리부엉이는 한때 무분별한 포획과 1960, 70년대 쥐잡이 운동의 여파로 그 수가 급감해 멸종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야생동물 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리부엉이는 개체 수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 작품은 이러한 수리부엉이의 생활상을 보여 주며 야생동물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자 한 다큐멘터리다.
  방송될 당시에는 별다른 이의가 제기되지 않았으나, 지난 7월 23일 조선일보가 수리부엉이의 토끼 사냥 장면 등이 조작됐다는 점을 보도하면서 논쟁이 시작됐다. 이에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BBC에서 방송되고 있는 자연 다큐멘터리 시리즈인 ‘플래닛 어스(Planet Earth)’의 경우도 이러한 촬영기법이 종종 등장한다며, 남아공에서 백상어가 물개를 잡아먹는 장면 역시 물개를 묶어 놓고 찍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며칠 후 BBC는 촬영을 위해 생명을 미끼로 쓰는 행위는 전면 금지하고 있다며, KBS 제작진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에 KBS는 자체적으로 제작진에 징계를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진에 의해 물속으로 내몰려진 북극쥐

우리 방송에서 동물을 촬영하는 다큐멘터리에서의 조작 논란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98년 KBS 일요스페셜에서는 사육된 수달을 야생 수달이라고 방송해 물의를 빚은 적이 있었고, 2002년 MBC ‘느낌표: 이경규의 다큐멘터리 보고서’에서는 이미 잡힌 너구리를 양재천에 풀어준 후 야생인 것처럼 다시 그물로 잡아 조작 논란을 일으켰다.
  자연 다큐멘터리의 조작 논란은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유명한 사례로는 1958년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인 ‘화이트 와일드니스(White Wilderness)’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북극 쥐의 집단자살을 보여 주는 장면은 실제로는 캘거리의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쥐들 역시 촬영진에 의해 물속으로 내몰려진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사례로는 1996년 미국 PBS의 ‘와일드 아메리카(Wild America)’에서 길들여진 동물을 세트에서 촬영한 것을 마치 야생동물인 양 방송한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2001년 BBC의 ‘블루 플래닛(Blue Planet)’에서 방송된 로브스터(lobster)의 산란 장면 역시 수족관에서 촬영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 밖에도 자연 다큐멘터리의 조작 사례는 수없이 많다.
  자연 다큐멘터리의 제작 윤리와 관련된 쟁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조작에 관한 문제이고, 두 번째는 동물의 생명과 관련된 촬영 윤리에 관한 문제이다. 먼저 조작에 관한 문제는 촬영장소가 어디인가, 촬영을 위해 인위적인 행위를 했는가가 중요한 이슈이다.
  사람을 촬영대상으로 하는 휴먼 다큐멘터리와 달리 동물을 대상으로 한 자연 다큐멘터리는 촬영하고자 하는 동물의 모습을 제대로 찍을 수 있냐에 의해 작품의 성패가 좌우된다. ‘수리부엉이’의 경우도 문제가 된 것은 사냥 장면이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토끼, 쥐, 꿩 등 다양한 동물을 사냥하는 수리부엉이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이러한 동물들이 수리부엉이가 다니는 길목에 먹잇감으로 묶여진 상태로 있었다는 점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작진의 입장에서는 이들을 향한 비판에 조금 억울한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왜냐하면 제작진은 다큐멘터리의 제작과정을 담은 2부에서 수리부엉이의 사냥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야외의 수리부엉이가 다니는 길목에 여러 대의 고속 카메라를 설치해 며칠간의 기다리는 과정을 설명하였기 때문이다. 제작진의 입장은 이를 통해 2부에서 문제의 장면이 설정된 것이란 점을 알려 주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재연’이라는 한 줄의 문구만 있었더라도

그러나 문제는 2부의 사냥 장면에서 먹잇감으로 사육된 동물을 사용하고, 이런 동물들을 묶어 놓은 과정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빠져 있었다는 점이다. 즉 수리부엉이가 다니는 길목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기다리면서 사냥 장면을 찍고자 한다는 것은 당연히 먹잇감을 미리 세팅해 놓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프로그램 안에서 명확하게 설명해 주지 않으면 이러한 장면이 내포한 의미를 그대로 지나치기 쉽다. 더욱이 이 다큐멘터리의 메이킹 과정을 다룬 2부에서 수리부엉이가 좋아하는 먹잇감의 종류, 먹잇감 세팅 방법 등 제작 과정에서 당연히 논의되었을 과정이 포함되지 않은 점 역시 석연치 않다. 즉 제작진은 문제가 된 먹잇감 세팅에 대해 그 사실을 완전히 숨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명확하게 알려준 것도 아닌 좀 애매한 입장을 보였다. 즉 알려지면 변명할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 놓고, 만약 그냥 모르고 지나가면 좋은 거라는 입장이었던 것 같다. 만약 1부 방송 중에 사냥 장면에서 ‘재연’이라는 자막을 넣었다면 적어도 조작 논란과 관련한 비판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큐멘터리의 사실성에 대한 논란은 생각보다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사실성은 다큐멘터리를 다큐멘터리답게 ‘보이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다큐멘터리 장르가 픽션계열의 영상물과 차별화되는 부분은 기록된 내용이 현실(reality)을 그대로 보여 주거나, 적어도 현실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가정에서다. 그러나 실제로 ‘현실을 그대로 보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1930년대 초창기의 다큐멘터리 제작자 겸 비평가인 그리어슨은 다큐멘터리와 픽션 영화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다큐멘터리를 자연발생적인 재료를 다루는 것으로 한정했다. 그러나 다양한 그래픽과 실험 다큐멘터리가 만연한 오늘날 이러한 구분은 무의미하다. 더욱이 사실(reality)과 진실(truth)은 반드시 동일하지는 않다는 점은 이번 사태에서 제작진의 ‘잘못의 무게’를 판단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한다. 다만 재연이란 점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의 소지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외국은 ‘생명을 미끼로 쓰는 행위’도 금지

이번 사태와 관련된 논쟁의 초점은 주로 조작 여부에 맞추어져 있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짚고 넘어가야 할 또 다른 측면은 동물학대와 관련된 사항이다. 외국의 경우 자체 가이드라인을 통해 동물 살상 및 학대를 조장하는 촬영을 금지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도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26조 3항에 ‘방송은 내용전개상 필요한 경우라 하더라도 동물을 학대하거나 살상하는 장면을 다룰 때에는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할 때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라는 문구는 다소 모호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이를 전면적으로 금지할 경우 이제껏 방송에서 관행적으로 보여 주었던 많은 장면들이 금지될 수 있다는 측면도 있다. 예를 들어 방송을 위해 쥐를 이용한 실험을 한다거나, 개를 방송에 출연시켜서 묘기를 부리게 하는 등 다양한 장면이 금지 대상으로 분류될 수 있어 이 역시 명확한 문구로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제작진을 옹호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적어도 제작진이 새장 안에 수리부엉이와 먹잇감을 집어넣어 야생인 것처럼 촬영한 것은 아니란 점이다. 이번 경우는 제작진이 사냥 장면을 완전히 조작했다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구석이 있다. 만약 재연이란 단 한 줄의 문구만 집어넣었다면, 오히려 이처럼 ‘반쯤 재연된 장면’을 야생에서 실제 촬영한 제작진의 노고를 치하하는 비평이 나올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 경우에도 동물을 묶어서 먹잇감으로 제공한 동물학대와 살상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제작방식과 표기에 공감대가 있어야

결국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하는 것은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 방식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다. 전술했듯 제작 가이드라인을 법규로 지정하는 것은 다른 한편으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기에 한계가 있다. 공감대 형성이란 막연하고 어려운 말로 들리지만 한편으로 구현하기 쉬울 수도 있다. ‘수리부엉이’ 제작진은 1부의 문제 된 사냥 장면의 편집과정에서 분명히 재연이란 자막을 넣을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때 2부에 두루뭉술하게 넣자는 의견이 나왔을 것이고 이러한 결정이 결국 이번의 화를 불렀다는 생각이 든다. 시청률을 생각하는 마음이 윤리성을 이긴 결과이다. 만약 항상 윤리성의 가치를 시청률에 우선하는 가치로 결정한다면, 적어도 ‘조작’과 관련된 파문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어떤 것이 윤리적인가를 진정 모르겠다면 그냥 길을 막고 어떤 사람에게 물어 봐도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9월호 저널리즘리뷰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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