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디어(방송)는 보수적, 노동은 다소 진보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보다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공익'이기 때문이다. ‘PD 수첩’에서 보듯 방송이 갖는 영향력, '쌍용차 파업'에서 보듯 노동이 근로자에게 갖는 의미(삶과 생존의 문제)를 생각한다. 그러니 보수와 진보를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다.


어느 쪽입니까?









이대현  한국일보 논설위원

leedh@hk.co.kr


 

전 중도(中道)입니다. 기자는 당연히 그래야 하고요.
에이, 아닌 것 같은데. 칼럼 쓰신 것 보면.
무슨 칼럼요?
MBC에 대해 두어 번 쓴 것 있잖아요. 보니까 세게 조졌던데.
틀린 얘기가 아니잖아요. 공영방송이 그래서야뀛
잠깐. 위원님, 고향이 경상도시죠? 말투를 보니 그 쪽 같은데.
예, 경북 예천입니다.
거 봐요, 보수네.

이 무슨 해괴한 논리이고, 판단인가. 그가 나를'보수'로 판단한 근거는 두 가지다. 하나는 MBC를 비판했다는 것, 또 하나는 고향이 경상도라는 것이다. 즉, MBC를 비판한 경상도 출신의 기자이기 때문에 당신은 보수라는 얘기다.'골통'이란 말까지 하고 싶었지만, 상대가 기자여서 차마 하지 못했으리라. 지금 우리 사회에 보수와 진보를 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이 또 하나 있다. 조중동을 좋아하면 보수, 한겨레와 경향의 논조에 동의하면 보수다.
한심한 것은 이 어처구니없는 분류법이 이제는 신문사와 기자들 사이에서까지 횡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MBC 관련기사나 사설, 칼럼을 놓고도 그랬다. ‘PD수첩’ 수사와 관련해 파업을 하고, 검찰의 영장집행을 가로막은 MBC노조의 행위를 비판한 것을 두고 몇몇 후배들이 비판했다.
그들의 주장은 대충 이렇다. 유독 비판적인 MBC에 집중압박을 가하는 것을 보면 정부는 언론장악 의도를 가지고 있다. 왜 법의 ‘정의’만 이야기하고, 이것은 무시하나. 언론의 '자유'를 위해서라도 정부를 견제해야 하지 않는가. 더구나 넓게 보면 같은 동료(언론)가 아닌가. MBC 노조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쪽의 입장만을 ‘옹호’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비판과 주장이 한국일보 사시(社是)인 신문의, 신문기자의 ‘불편부당한 자세’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들의 언어와 태도에서 그것이 아닌, 당신이 그렇게 정부 쪽 논리만 지지하는 이유는 보수이기 때문이 아니냐는 불온한 뉘앙스를 느끼는 순간, 나 역시 맞아. 저 친구, 저 쪽이지라고 '단정'하고는 배경과 의도를 의심한다. 내남없이 이 얼마나 한심한 모습인가.
그 뿐인가. 이제는 기자들까지 '잘못 된 보수적 시각과 주장'의 근거로 '조중동 같은'이란 말을 주저 없이 쓴다. 도대체 '조중동의 논리'란 것이 무엇인가. 나 역시도 조중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신문들의 기사가, 시각과 의견이 모두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론 같은 신문쟁이로서 부러울 만큼 때론 날카롭고 정확하다. 단언 컨데, 22년 기자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조중동을 의식한 적도, 그들이 '모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적어도 그 정도의 자부심은 가지고 있기에 '조중동의 논리를 따른다'고 말은 모욕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여 우연히 시각이 같았다면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그것이'보편타당'이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일보의 '중도'란 그런 것이다.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양시(兩是), 양비(兩非)는 아닐 것이다. 올바른 선을 선택하는 것이'중도'이다.
불행하게도 문화예술, 미디어, 노동을 맡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큰 쟁점들을 가지고 있는 분야여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아직도 이념논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문화예술은 차치하자. 미디어산업 구조개편을 놓고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노동은 또 어떤가. 비정규직과 실업문제, 이제야 겨우 마무리가 된 쌍용차 사태. 그야말로 '사설(社說)의 장날'을 보내고 있다.
담당 논설위원으로서 나는 미디어(방송)는 보수적, 노동은 다소 진보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보다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공익'이기 때문이다. ‘PD 수첩’에서 보듯 방송이 갖는 영향력, '쌍용차 파업'에서 보듯 노동이 근로자에게 갖는 의미(삶과 생존의 문제)를 생각한다. 그러니 보수와 진보를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다. 기자가 돼 한국일보 문화부에 갔을 때 당시 나의 1진이자 지금은 소설가인 김훈 선배는 세설(世說)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생각의나무 펴냄)에서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물으면 우습고 꼴 같지 않아서 대답하지 못한다며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이 나의 지성이다. 제발 이러지들 말라고 했다. 기자들만이라도 제발 그러지 말자.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9월호 에세이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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