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글 하나를 올려놓고선 열심히 관련 글을 검색한다. 내 글과 애틋한 관계(?)를 형성할 만한 글을 만나게 되면 이들 사이에 ‘트랙백’과 ‘댓글’이라는 징검다리를 놓는다. 블로그를 읽고 쓰는 가운데 새로운 사람과 그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에 흠뻑 빠져 버렸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을 훌쩍 넘기고서야 나의 독일 생활은 종착역에 다다랐다. 이 기간 동안 개인적으로 겪었던 흥미로운 변화 중 하나는 ‘뉴스를 소비하고 생산하는 방식’의 변화이다. 유학 초기 전공을 바꾸어 시작한 경제학 공부로 인해 언어의 장벽과 더불어 수학, 통계 등의 새로운 도전에 맞닥뜨려야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졸업장이 아주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는지 새로이 시작된 학부생활은 별다른 선행학습 없이도 그럭저럭 쫓아갈 만한 것이기도 했다. 고로 나는 적지 않은 시간적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인터넷이 잘 보급되지 않았던 그 시절, 손재주 없고 운동도 즐겨 하지 않는 20대 후반 외국인 학생이 남는 시간을 유용하게 쓸 만한 취미 거리를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시작된 나의 취미가 바로 ‘신문 읽기’였다.

유학초기 친구가 되어준 신문

먼저 독일어가 가장 쉬운 지역신문을 정기구독했다. 이 신문을 통해 산책길에 종종 인사를 건네곤 하던 작은 연못의 백조 한 쌍 중 암컷이 유난히 혹독했던 그해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는 비통한 소식을 접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쇄도하는 성금들로 타 도시에서 암컷 백조를 구입, 외로운 홀아비 백조에게 짝을 찾아 주었다는 훈훈한 소식도 알게 되었다. 이 신문의 벼룩시장란을 통해 튼튼한 중고 옷장을 저렴하게 구입하기도 했고, 주말이면 신문이 추천하는 숲이나 호숫가로 긴 산책길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가격대비 최고의 양과 맛을 자랑하는 나의 단골 식당들도 신문을 통해 맺어진 인연들이다. 이 시절 신문은 독일어가 서툴고 친구도 많지 않던 나에게 세상 소식을 전해 주는 정보의 보따리였고, 이국땅에서 점차 삶의 뿌리를 내려 가도록 도와주는 친절한 생활 도우미였다.
지금까지 3개의 지역신문과 4종류의 전국신문 그리고 2개의 경제신문과 3~4개의 주간지가 나의 정기구독 리스트를 거쳐 갔으니, ‘신문 읽기’는 충분히 내 최고의 취미로 기록될 만하다. 그 후 ‘한겨레 21 베를린 통신원/전문위원’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일방적으로 읽어대기만 하던 신문과 나의 관계에 변화가 찾아왔다. 인터뷰를 핑계 삼아 제법 고가의 녹음기와 카메라를 마련하고선 마냥 기뻐했고, ‘재소자 신문’을 취재하기 위해 높은 담벼락에 둘러싸인 독일 감옥을 방문해 마음 졸이며 한나절을 보낸 기억도 있다. 독일 정당들의 전당대회장을 놀이동산을 찾는 어린 아이처럼 설레며 찾아다녔고, 시위 현장에선 물대포를 피해 가며 시위대와 함께 목청 높여 구호를 외쳤었다. ‘노숙자 신문’을 취재한 이후로는 가끔씩 그 신문을 파는 노숙자를 만나면 기꺼이 신문을 구입기도 했다. 이처럼 나의 ‘신문 읽기’ 취미는 시간이 지나며 ‘기사 쓰기’로 이어졌다.

신문에서 블로그로

학업이 진행되고 이런저런 일들이 생겨나며 여가시간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언제부터인지 ‘신문 읽기’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러던 차에 알게 된 ‘구글 뉴스’의 ‘기자이름 등록’ 서비스는 선별적이고 효율적인 ‘읽을거리’ 선택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2007년 가을 알게 된 ‘RSS 리더’는 나의 취미생활에 조그마한 혁신(?)을 가져왔다. ‘리더’는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다듬어지면서 나만의 보물창고가 되었다.
독일 대안언론 ‘타츠(TAZ)’에서 하루 평균 7개 정도의 칼럼을 RSS로 구독한다. ‘타츠’는 굵직굵직한 정치?사회 문제를 날이 선 제목과 정제된 내용 그리고 간단명료한 글쓰기로 알차게 분석해 낸다. 초록은 동색이라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의 과도한 자유주의가 맘에 들지 않아 ‘파이낸셜타임스(FT)’에서 주로 ‘미디어 산업’ 관련 기사를 받아 본다. 스위스의 팀블로그 medienlese.com(media-reading이란 뜻)으로부터 매일 아침 9시 제공되는 ‘6 before 9’(아침 9시에 추천하는 6개 글이라는 뜻)를 받아보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여기에는 전일 영어권 및 독일어권 블로그에 올라온, 놓치면 아쉬울 주옥같은 미디어 관련 글들이 선별돼 있기 때문이다.
‘RSS 리더’ 덕분에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짧아지는 기억력을 그리 아쉬워하지 않을 수 있다. ‘리더’ 안에 있는 검색창은 지금까지 내가 받아 본 RSS에서 순도 100%의 검색결과를 선사한다. 글쓰기도 덩달아 쉬워졌는지, 나는 2008년 1월 막차를 타고 마침내 ‘개인 블로그 세계’에 들어서게 되었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신문들과 작별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으로 제한돼 있고, 나에게는 더 이상 신문에 할애할 시간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글 하나를 올려놓고선 열심히 관련 글을 검색한다. 내 글과 애틋한 관계(?)를 형성할 만한 글을 만나게 되면 이들 사이에 ‘트랙백’과 ‘댓글’이라는 징검다리를 놓는다. 이 다리들은 다른 블로거들과의 즐거운 만남에 이르게도 한다. 뜨거운 열정의 소유자 ‘민노씨’를 알게 되었고, 그의 글들이 징검다리가 되어 또 다른 블로거들과 만나게 되었다. 자유분방한 필치가 돋보이는 ‘펄’을 통해 불가사의한 필력을 자랑하는 ‘foog’를 만났다. 새로운 미디어 질서를 위해 질주하는 ‘몽양부활’ 덕분에 나태한 나를 되돌아보게 되고, 블로터 ‘우공이산’이 뚜벅뚜벅 걸어가는 길 뒤로 밀려들 미래의 젊은 언론인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상상해 본다. 이렇게 블로그를 읽고 쓰는 가운데 새로운 사람과 그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에 흠뻑 빠져 버렸다.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2008년 1월부터 시작한 ‘베를린 로그’(http://npool.ktpage.net)의 첫걸음은 베를린 맛집 소개 글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미식가도 아닐뿐더러 식당을 방문할 시간과 예산도 제한돼 있고 또 ‘연결’할 글도 찾을 길이 없어 이내 재미를 잃고 말았다. ‘잘할 수 있는 것을 하자’라는 생각에서 시도한 것이 독일 신문시장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었다. 먼저 몇 개의 글을 통해 지역신문 중심의 독일 신문시장을 소개했다. 또한 2000년대 초반 1차 신문위기를 겪으며 지역신문들이 합종연횡을 통해 ‘미디어 기업’으로 발전하면서 동유럽 신문시장으로 진출하게 된 이야기도 블로그에 담아냈다.
일시적인 세계 경기침체와 이에 따른 광고시장 축소가 1차 신문위기의 배경이 되었다면, 2008년부터 본격화된 영미 신문시장과 유럽 신문시장의 2차 신문위기는 마침내 신문의 존폐여부를 묻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긴장감 넘치는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위기에 대한 다양한 분석들, 이 위기를 극복하려는 크고 작은 수많은 시도들 그리고 극복방안을 둘러싸고 끝없이 이어지는 논쟁들, 이 모든 것들은 ‘베를린 로그’의 풍부한 소재들이 됐다. 다만 넉넉하고 다양했던 글의 소재만큼 각각의 글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중구난방의 모습을 띠기도 했다. 그러나 다소 산만했던 글쓰기 과정을 겪으며 생각들이 하나둘 정리돼 갔다.
이와 때를 맞추어 ‘온라인 뉴스시장’을 주제로 한 학위논문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고, 2009년 봄부터 ‘온라인 뉴스시장’은 내 글쓰기의 주요대상이 되었다. 미세한 변화지만 반응도 좋아졌다. 아니 없었던 반응이 다소 생겨났다. 댓글이 늘어나고 트랙백이 걸리기 시작했다. 하루 100여 명을 겨우 넘기던 평균 방문자 수도 150여 명을 웃도는 수준으로 성장(?)하였고, 피드 구독자도 꾸준히 늘어나 160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통계치로 보면 이른바 ‘파워 블로거’들과 여전히 비교도 불가능한 수준이다. 그렇다고 섭섭한 것은 아니다. 파워 블로거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그럴 필요는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내 블로그가 웹의 촘촘한 연결망에서 작은 점 하나가 된 것만으로도 만족하기 때문이다. 이미 멋진 블로거들과 생각을 나누고, 함께 웃고, 함께 분노하며 웹의 진화를 온몸으로 겪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웹과 함께 진화하자: 우리 블로깅하자!

약 20년 전 ‘팀 버너스리’의 주도 아래 탄생한 ‘월드 와이드 웹(WWW)’의 기본 원리는 지극히 단순한 것이었다. 웹의 개발 동기는 연구소 각 부서 간의 연구결과물 등을 인터넷으로 ‘서로 연결’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과 생각을 나누며, 마음과 뜻이 통하여 사람이 서로 연결되는 것, 이것이 웹의 성격이고 신문 또는 방송과 비교했을 때 웹만이 가질 수 있는 거대한 힘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보다 쉽고 효과적인 ‘연결’이 웹의 진화 방향일 것이다.
블로그 또는 블로거는 바로 이 연결망 한가운데 자신을 위치시켰다. 이로 인해 연결망이 더욱 촘촘해졌고, 그 소통의 속도가 보다 빨라졌다. 외톨이로 남고 싶지 않다면 전통적인 언론도 블로거들처럼 웹의 한가운데에 서둘러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야 할 것이다. 웹은 원활한 흐름에 장애가 되는 요소를 만나면 언제나 우회도로를 만들기 때문이다.
신문을 읽는 취미가 기사를 쓰는 일로 이어졌다. 나는 이제 ‘RSS 리더’라는 그물망을 통해 정보의 망망대해에서 나만의 알찬 읽을거리를 건져내며 열정을 가지고 블로깅을 하고 있다. 웹의 진화가 나를 또 다른 어떤 세계로 연결시켜 줄지 사뭇 궁금해진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9월호 미디어포럼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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