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적으로는 지상파 방송이 케이블SO에 대해 디지털 콘텐츠의 저작권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불거졌지만, 그 이면에는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SO의 자존심뿐 아니라 향후 미디어 시장의 구도까지 결정할 수 있는 핵심 요소가 자리 잡고 있다. 그만큼 사안을 바라보는 서로의 시각 차이가 너무 크다.


저작권 문제 이상의 헤게모니 게임
지상파TV와 SO와 저작권 갈등

이주상 SBS 문화부 차장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대학가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곳이 ‘복사집’이었다. 구하기 어려운 외국 원서뿐 아니라 값비싼 국내 서적도 '제본' 형태로 만들어 주곤 했는데, 심지어 강의의 정식 교재를 학교 앞 ‘복사집’에서 단체로 구입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 시기 광범위하게 보급되기 시작한 개인용 컴퓨터(PC)의 경우도 워드프로세서를 비롯한 주요 프로그램 대부분이 불법 복제 형태로 유통되곤 했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시기의 단면이다.

SO, 재전송은 국민의 수신권 보장

이후 경제규모가 커지고 해외교류가 늘어나면서 저작권 보호에 대한 요구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특히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에는 국내의 저작권 이슈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대학가 주변의 ‘복사집’이 줄어들고 컴퓨터 소프트웨어는 당연히 구매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서는 ‘소리바다’를 비롯한 음악파일 공유 사이트가 저작권 파동을 겪으면서 음반 시장 역시 디지털 저작권이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방송 콘텐츠의 저작권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 받아 왔는데, 최근 방송사들이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면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인터넷 기술의 발달을 계기로 방송 프로그램들이 마구 유통되자 지상파 방송사들이 법적 대응을 경고하며 저작권 보호에 나선 것이다. 방송 콘텐츠 유통이 불법인 줄 알면서도 방조해 왔던 소프트라인(토토디스크 운영)과 판도라TV, 나우콤(PD박스 운영) 등 인터넷 업체들은 결국 지상파 3사와 협약을 맺고 방송 콘텐츠의 저작권 보호에 동의하게 됐다.
이렇게 저작권 관련 갈등은 대부분 저작권을 보호해 주는 방향으로 정리돼 가고 있는데, 지상파 방송사와 케이블SO의 저작권 분쟁은 대화와 협상으로 해결되지 못한 채 시간만 끌고 있다. 양측의 갈등이 쉽게 봉합되지 못하는 것은 이 갈등이 단순한 저작권 이슈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지상파 방송이 케이블SO에 대해 디지털 콘텐츠의 저작권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불거졌지만, 그 이면에는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SO의 자존심뿐 아니라 향후 미디어 시장의 구도까지 결정할 수 있는 핵심 요소가 자리 잡고 있다. 그만큼 사안을 바라보는 서로의 시각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배경부터 꼼꼼히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지상파의 저작권 요구에 대한 케이블 측 반론의 핵심은 지상파 방송에 대한 케이블의 역할을 먼저 인정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1995년 종합유선방송이 출범한 뒤 케이블SO들은 전국을 케이블망으로 연결해 지상파 방송의 난시청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지상파 방송사들은 케이블망이 있었기에 송·수신 설비 개선 등 난시청 해소를 위한 투자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케이블SO의 지상파 재송신은 케이블과 지상파 방송의 윈-윈 모델이었는데, 뒤늦게 저작권 이슈를 제기하며 갈등을 불러 일으킨 것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케이블 측의 입장이다. 특히 보편적 서비스의 성격이 강한 지상파 방송은 당연히 가입자들에게 무료로 제공돼야 하기 때문에 ‘수신권 보장’을 위해서도 저작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상파, 콘텐츠에 대한 대가 요구

이런 반론에 대해 지상파 방송 측의 시각은 다르다. 지상파의 난시청 해소에 기여를 해온 케이블SO의 역할은 인정하지만, 역으로 지상파 콘텐츠가 없었으면 케이블이 지금과 같은 입지를 확보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스카이라이프의 경우 2001년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2년 이상 지상파 재송신이 이뤄지지 못하면서 케이블SO의 경쟁자로 자리매김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케이블SO가 지상파 방송사의 혜택을 입은 셈이라는 것이다. 케이블SO의 기본적인 역할을 인정하고 지금까지의 관행에 따라 아날로그 가입자에 대해서는 무료 서비스를 지속한다고 하더라도, 신규로 시장을 넓혀 가고 있는 디지털 서비스에 대해서는 지상파 방송의 저작권을 인정해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구나 케이블SO들이 지상파 방송의 HD 콘텐츠를 활용해 디지털 가입자를 유치하면서, 아날로그 가입자에 비해 30~40% 이상 비싼 요금을 부과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연히 지상파 방송사의 몫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위성방송인 스카이라이프의 경우 디지털 재전송에 대해 지난해부터 사용료를 내고 있고, KT와 SK브로드밴드, LG데이콤 등 IPTV 업체들 역시 유료 재송신에 합의를 한 상태이기 때문에 형평성에 맞게 케이블SO도 디지털 콘텐츠의 경우 사용료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지상파 방송과 IPTV 3사 역시 지난해 심각한 갈등을 빚다가 유료 재송신이라는 원칙에는 기본적으로 합의한 상태이다. 재송신 대가는 CPS(Cost per Subscriber) 기준으로 월 280원이 대략적인 절충점으로 인정되고 있다. IPTV의 사례를 케이블SO에 그대로 적용할 경우 디지털 케이블 가입자를 전체 가입자 1,500만 명의 15%인 230만 명으로 본다면, 케이블SO들은 지상파 방송사에 대해 해마다 77억 원 정도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다. 디지털 가입자가 늘어날수록 규모도 비례해서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케이블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SO가 빚고 있는 갈등이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면에 저작권이라는 경제적 이유 말고도 서로 쉽게 양보할 수 없는 자존심 대결이 있기 때문이다. 1995년 종합유선방송 도입 당시 정부는 케이블 사업자의 생존 기반을 마련해 준다는 차원에서 전국을 77개 권역으로 나눠 권역마다 독점사업권을 인정해 줬다. 서비스 초기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케이블SO 사업자들은 각 지역에서의 독점사업자라는 지위를 활용해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다. 그 결과 케이블SO는 전체 가구의 83%에 이르는 1,500만 가입자를 배경으로 유료방송 시장을 지배하게 됐다. 당연히 콘텐츠 업계의 강자인 지상파 방송사와 주도권 다툼이 빚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상파 방송은 전통적으로 주파수라는 독자적인 플랫폼 위에서 시청자들이 안테나를 통해 전파를 수신하는 형태의 서비스를 해 왔는데, 케이블SO가 케이블망을 통해 각 가정으로 파고들면서 케이블SO의 플랫폼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PP(Program Provider)의 지위로 ‘격하’되었다는 피해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또 채널 편성권을 가진 케이블SO들이 지상파 계열 PP들의 채널 번호를 수시로 바꾸는가 하면, 지상파 채널들 사이사이에 홈쇼핑 채널을 끼워 넣는 형태의 채널 배치를 고착화시키고 있어서, 케이블SO의 독점적인 지위에 대한 지상파 방송사들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될 조짐

2001년 위성방송인 스카이라이프가 도입되면서 플랫폼 사업자의 경쟁체제가 마련되긴 했지만, 위성방송은 케이블의 경쟁자로 성장하지 못한 채 2008년 IPTV의 출범을 맞게 됐다. 위성방송과 달리 IPTV는 디지털 케이블과 동일한 형태의 서비스를 제공할 뿐 아니라 이론적으로 거의 무한대의 채널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케이블SO의 강력한 경쟁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플랫폼 사업자로서의 지위가 퇴색하고 콘텐츠 사업자의 지위로 자리잡고 있는 지상파 방송의 입장에서는 케이블SO와의 역관계를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핵심이 재송신의 유료화이다.
통상 플랫폼 사업자와 PP가 갈등을 빚을 경우 등장할 수 있는 극단적인 해결책이 ‘송출 중단’이다. 케이블SO 같은 플랫폼 사업자가 특정 PP를 길들이기 위해 채널 편성에서 해당 PP를 제외하는 형태로 송출을 중단할 수도 있고, 역으로 영향력 있는 PP의 경우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케이블SO에 대한 콘텐츠 송출을 중단할 수도 있다. 실제로 IPTV 사업자인 KT가 방송 콘텐츠의 VOD(Video On Demand)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자 지상파 방송 사업자들이 지난 6월 KT에 대한 VOD 업데이트를 며칠 동안 중단하기도 했다. 다행히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SO의 갈등 과정에서는 송출 중단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양측 모두 시청자를 볼모로 싸움을 벌인다는 비난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양측의 갈등은 법정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상파 방송 측이 지난해 8월 케이블SO 측과 협상을 벌이기 시작한 지 1년 만에 더 이상의 협상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민·형사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법정 공방과 별개로 양측의 원만한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 또한 없지는 않다. 케이블SO의 입장에서는 썩 내키지 않겠지만 지상파 방송의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 케이블SO들의 경우 적절한 수준에서 지상파 방송사의 저작권을 인정해 주는 대신 난시청 해소에 따른 투자비를 지상파 방송 측으로부터 보전 받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상파 방송의 경우도 케이블SO의 난시청 해소 역할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협상을 통해 적절한 수준의 타협이 이뤄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결국 1년 이상 관심을 끌고 있는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SO의 갈등은 ‘저작권’이라는 통상적인 이슈가 아니라, 케이블SO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지상파와 케이블의 역학 관계와 향후 미디어 시장 변화에 대한 양측의 전략 속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제공될 수 있을 것이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9월호 경영정책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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