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개 주요 방송의 모든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대통령 발언과 관련해서는 초 단위로 측정한다. 일단 모든 정치인들의 발언 시간이 측정되면 특별히 고안된 컴퓨터 프로그램이 계산을 시작한다. 이 프로그램은 인물별, 정 별로 시간을 묶은 후 가장 시청각 미디어 노출이 잦은 정치인들의 순위를 매긴다.


프랑스 TV, 정치 형평성 위한
새로운 방송 규정 발표

송영주 한국언론재단 프랑스통신원, 파리3대학 박사과정



프랑스 방송위원회 CSA가 7월 28일 TV와 라디오에서 정치인들의 발언 시간 형평성을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규정을 발표했다. ‘다원성(Pluralisme)’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규정은 9월 1일을 기해 효력을 발휘하는데, 지난 40년간 TV와 라디오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해 오던 ‘3분의 3(trois tiers)’ 원칙을 대신하게 된다. 기존의 ‘3분의 3’ 원칙은 정치적 공정성 확보를 위해 생긴 것으로 정부, 여당과 야당 정치인들이 TV와 라디오의 전파를 타는 시간은 비율이 동등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3분의 3’ 원칙은 1969년 11월 12일 프랑스 첫 TV 방송이 시작되면서부터 생겨났다. 따라서 당시 두 개 채널에서 정치인들의 방송시간은 CSA의 책임 하에 분단위로 측정되고 통제돼 왔다.

미디어에 너무 자주 등장한 대통령

2000년에는 방송위원회가 ‘국회에 참석하지 않는 소수정당’에도 균형 있는 방송시간을 할애하도록 하는 방침을 덧붙였다(약 10%). 하지만 이 중에서 대통령의 발언 방송시간에 대해서는 사실상 계산이 되었어도 서류상으로만 기록되었을 뿐, ‘3분의 3’ 원칙 중 정부의 방송 시간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새로운 ‘다원성’ 규칙에는 기존의 법칙에서 세 가지 사안이 추가된다. 첫째, 공화국 대통령의 발언은 그 ‘내용’과 ‘맥락’에서 국내 정치와 관련된 부분으로 분류되는 방송시간만을 계산해서 포함한다. 다시 말해 국제외교와 관련된 대통령의 발언 부분은 앞서 설명한 시간 규제 원칙에서 제외된다. 따라서 외교 관련 연설 중 어디까지가 대통령으로서 ‘국제정치’와 관한 연설이고 어디까지가 여당의 수장으로서 ‘프랑스 내 정치’에 관한 연설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두 번째는 정부 각료, 국회 다수당 정치인들, 대통령 측근 등 야당 정치인들은 발언시간을 모두 하나로 묶어서 계산을 단순화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회 야당(사회당, 중도정당, 공산당과 녹색당)의 방송시간은 여당과 대통령의 발언 시간을 합한 시간의 절반 이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까지는 여당과 정부의 발언 시간 절반에 해당하던 시간 분배에서 대통령과 측근들의 발언 시간이 더해지면서 대통령 발언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에 비례해 야당의 발언 시간도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 외 소수정당의 방송 시간은 선거 결과 당선자 수 등 다양한 기준에 따라서 방송 분량을 배정받게 된다. 규정에 따라서 각 채널이 CSA에 제출한 시간 계산 자료는 매월 국회와 각 당 대표들에게 통지되며 이는 CSA 인터넷 사이트에서 열람할 수 있다.
40년 동안 대통령의 발언 시간을 제외하고 지켜지던 ‘3분의 3’ 원칙이 사르코지 정부에서 새롭게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2007년 가을 사회당 의원 프랑수아 올랑드와 디디에 마튜스는 정부에 할당된 방송 시간에 ‘대통령 및 정부 각료들의 방송시간을 포함해줄 것’을 CSA에 요구했다. 사회당의 이 같은 요구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과다한 미디어 노출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지난 2007년 7월에서 2008년 6월 사이 시청각 미디어상 사르코지 대통령의 발언 시간은 전체 정치인들의 발언 시간 중 약 20%를 차지한다. 2008년 하반기에는 12%로 줄었지만 1985년에서 2005년 사이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과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의 발언 시간이 7%가량이었던 것에 비하면 사르코지 대통령의 발언 시간은 방송시간에서 막대한 비율을 차지한다. 

정치인 발언 초단위로 측정

당시 CSA는 사회당의 요구를 거절했고 두 의원은 2008년 초 프랑스 정부의 행정, 입법의 자문기관과 최고행정재판소의 역할을 겸하는 콩세이데타(Conseil d'Etat)에 CSA의 결정을 제소했다. 결국 올해 4월 8일 콩세이데타는 대통령의 발언이 형평성의 규칙에 ‘원천적으로’ 제외될 수 없다는 사회당 의원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콩세이데타는 CSA의 거절을 취소하고 시청각 미디어를 통한 대통령의 발언시간을 제한하도록 주문했다. 물론 방송시간 통제에 관한 원칙을 공포하는 것은 제도상으로 방송위원회의 몫이다. 하지만 콩세이데타의 결정은 다원성 보장이라는 헌법적 특징에 입각한 것이었다. 결국 CSA는 콩세이데타의 명령에 따라 ‘3분의 3’ 원칙에 대통령 발언 시간을 포함하여 지난 6월 유럽선거에 실험적으로 규정을 적용해본 이후 지난달 ‘다원성’ 규칙을 공포한 것이다.
‘다원성’ 규칙이 제대로 지켜지는지를 감시하는 작업은 CSA에서 이루어진다. 작업을 맡은 조직은 정보 윤리와 다원성을 담당하는 CSA 측 관리자들의 감시 하에 다섯 명에서 열 명 정도의 아르바이트생들로 구성돼 있다. 아르바이트생들은 주로 정치학과 법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다. 이들은 여섯 개 주요 방송의 모든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대통령 발언과 관련해서는 초 단위로 측정한다. 일단 모든 정치인들의 발언 시간이 측정되면 특별히 고안된 컴퓨터 프로그램이 계산을 시작한다. 이 프로그램은 인물별, 정 별로 시간을 묶은 후 가장 시청각 미디어 노출이 잦은 정치인들의 순위를 매긴다. 라디오 방송의 경우 각 주파수를 24시간 감시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방송사가 신고한 수치를 토대로 CSA가 무작위로 감사하는 형식으로 감시가 이루어진다. 2010년부터는 TV 방송 역시 신고제 방식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CSA의 새로운 규정 발표에 여당과 야당 모두 만족감을 표했다. 사회당의 장마크 아이호 의원과 디디에 마튜스 의원은 “CSA의 결정이 우리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한다”며 승리를 자축했다. 사회당은 새로운 규칙이 확정된 것에 대해 자축하는 분위기이지만 규칙 적용에 대해서는 경계를 늦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당(UMP) 대변인 프레데리크 르페브르 의원은 대통령이 원했던 모범적인 공화국에 적합하고 현명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CSA의 기준으로 소수 정당으로 분류된 극우민족주의 정당 국민전선(FN)의 경우 야당으로 분류되지 않은 것에 반발해 ‘용납할 수 없는 배척’이라고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정계는 환영, 방송계는 난색 표명

전반적으로 만족하는 정치권과는 달리 처음 CSA가 대통령 발언 시간 관련 규정에 대해 잠정적인 시도를 발표했을 때에 방송계에서는 이를 반기는 입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공영 라디오 프랑스 그룹의 뉴스 담당 국장인 미셸 폴라코는 ‘직무를 편하게 해줄’ 새로운 규정에 대해 매우 ‘만족’한다고 비꼬았다. 한 연설에서 여러 가지 사안을 언급하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특성상 발언을 일일이 검토하는 작업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엘리제궁의 관련 자문위원인 앙리 게노 역시 콩세이데타의 결정이 발표된 4월 10일 “대통령의 연설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발언을 분류한다는 것은 매우 까다롭다”고 평가한 바 있다.
규정의 변화가 사르코지 대통령의 빈번한 미디어 노출로 인한 것이라는 의견에 많은 지식인들은 이미 40년이 된 ‘3분의 3’ 법칙이 변화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미 40년 전과 현재의 정치적 상황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파리 10대학 기 카르카손 법학교수는 르몽드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사르코지의 출현으로 콩세이데타의 결정이 더 정당화되는 것”이라며 “몇 해 전(사르코지의 당선 이전)이었다 하더라도 콩세이데타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정치 토론이 인터넷 미디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오늘날 이 같은 통제 조치가 시대에 뒤처진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미디어가 정치권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정치 분야에 대한 미디어의 통제는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9월호 미디어월드와이드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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