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신문 취재도 잘하고 방송 연출도 잘하고 온라인 기획도 잘하는 일은 불가능하리라. 하지만 각 매체에서 콘텐츠가 완성되는 과정 정도는 머릿속에 꿰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서로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여러 스태프를 설득하고 통솔할 수 없다.


성공의 열쇠는 팀워크와 리더십

이학준  조선일보 경영기획실 미디어전략팀 기자


<편집자주> 이번에는 크로스미디어다. 동영상을 중심으로 한 멀티미디어 콘텐츠가 급부상하고 있다. 앞으로 ‘펜 기자’
라는 단어는 의미를 점점 잃어갈 것이다. 기자가 곧 PD이자 미디어 기획자인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3회에 걸쳐 크로스미디어 시대 멀티미디어 기자로 거듭나는 방법을 싣는다. 크로스미디어의 기획은 물론,
제작 실무와 활용방법까지 지면을 통해 알아보자.



2007년 8월 중국과 북한의 접경도시 단둥(丹東). 압록강을 바라보는 20대 후반의 여성은 탈북자다. 그녀는 두 번이나 고향을 등졌다. 조국의 국경을 넘은 대가는 북송과 낙태였다. 여자는 말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잠시 말을 멈췄다. 여자는 보위부 수용소에서 겪은 강제 낙태수술을 떠올리고 있었다. 눈가에 물기가 고였다. 기자는 보위부에서 벌어졌다는 비인권적 상황이 궁금했다. 이제 팩트(fact)를 정확히 챙길 순서다.

예산 관념부터 가져라

갑자기 카메라를 들고 있던 PD가 끼어들었다. “엄마로서 느낌이 어땠나요?” 여자의 눈에 고였던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PD는 카메라 렌즈를 당겼고, 기자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아니, 이런 몰상식한 질문으로 인터뷰를 엉망으로 만들다니.’ 그날 저녁 기자와 PD는 목청을 높이며 싸움을 벌였다. 팩트를 더 많이 챙기려는 기자와 극적인 이미지를 담으려는 PD의 욕심이 부딪친 탓이다. 서로 다른 매체를 붙여 놓은 크로스미디어 기획물 제작의 어려움을 보여 주는 사례다.
활자가 이성적인 매체라면, 영상은 감성적인 매체다. 올드미디어가 일방적인 매체라면, 뉴미디어는 쌍방적인 매체다. 이처럼 서로 다른 매체를 이해하고 팀워크를 완성하는 것이 크로스미디어 제작의 첫걸음이다. 결국 큰 싸움을 벌인 기자와 PD는 다음과 같이 약속을 하고 화해했다. ‘이미지부터 먼저 담고, 빠진 팩트는 보충 촬영을 하며 추가로 챙길 것.’ 조선일보 ‘천국의 국경을 넘다’ 제작팀이 실제 겪은 일이다.
신문기자의 입장에서 크로스미디어를 설명하는 글이라는 것을 먼저 밝혀야겠다. 일부 설명은 방송 PD의 입장에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돈 계산에 약하고 혼자 일하는 데 익숙한 직업이 신문기자다. 이들이 신문기사를 취재하면서 방송 다큐멘터리를 프로듀싱하려면 아래 4개 포인트에 익숙해져야 한다.
무엇보다 예산관념을 가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기자들은 돈 문제에 관여하는 것을 싫어한다. 나아가 자랑스러워(?)하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혼자 취재해서 기사를 전송하는 신문 취재와 달리 방송 다큐멘터리 제작에는 많은 예산이 든다. 몇천만 원에서 수억 원이 드는 영상물 제작에 회사를 참여시키려면 결국 수익에 대한 비전을 보여 줘야 한다. 방송 플랫폼이 없는 신문사가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선 방송 콘텐츠를 판매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신문 기사를 단행본으로 엮어 수익을 올리고 인터넷 사이트 방문자를 늘려 온라인 광고를 유치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겠다.
투자와 수익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레 기획으로 이어진다. 보도할 가치가 있으면서 투자 대비 효과도 큰 작품을 생산할 것. 그것도 광고가 아닌 콘텐츠 하나만으로 투자금을 회수해야 한다면? 글로벌 시장에 눈을 돌리는 수밖에 없다. 로컬(local)하면서도 글로벌(global)한 소재를 담은 기획. 외신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 기획이라면 보도 가치에서나 손익계산에서나 손해를 볼 가능성은 적다. 크로스미디어 진행에서 기획이 중요한 이유다.

다른 매체 작업과정 꿰고 있어야

크로스미디어는 다양한 매체를 동시에 묶는 작업이다. 결국 서로 다른 매체에 대한 이해가 절실하다. 신문이 어떻게 제작되는지, 방송은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네티즌 구미에 맞는 인터넷 사이트는 어떤 것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한 사람이 신문 취재도 잘하고 방송 연출도 잘하고 온라인 기획도 잘하는 일은 불가능하리라. 하지만 각 매체에서 콘텐츠가 완성되는 과정 정도는 머릿속에 꿰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서로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여러 스태프를 설득하고 통솔할 수 없다.
함께하는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 특종을 강조하는 신문사 문화에서 성장하다 보면 팀워크를 중시하기보다 혼자 일하는 데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신문, 방송, 인터넷 등 여러 매체에 공급할 보도 콘텐츠를 제작하려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쟁이’라 불리는 집단은 실력 있는 리더가 아니면 쉽사리 복종하지 않는 특징을 가진다. 크로스미디어 기획을 진행하는 신문기자가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분이 이 지점이다. 신문뿐 아니라 방송, 인터넷에 정통한 언론인이 여럿이겠는가? 결국 함께 일하는 각 매체 전문가들이 즐겁게 작업하면서도 각자의 성과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모든 분야에 정통하지 못한 리더를 믿고 따르게 하려면 솔선수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필자의 경우 두 가지 원칙을 지키려 노력한다. 하나는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취재 혹은 제작에는 반드시 직접 참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요한 취재 방향은 스태프들과 함께 회의한 결과에 무조건 승복하는 것이다.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신뢰를 얻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이제부터 실제 크로스미디어 기획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살펴보려 한다. ‘천국의 국경을 넘다’는 처음부터 해외시장에 눈을 돌리고 제작된 사례다. 외신들을 만나 보면 한국에 대한 관심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북한, 분단, IT가 그것이다. 엔터테인먼트, 음식, 전통문화 등에서 한류(韓流)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확산 중이지만 아직은 초기 단계다.
탈북자 인권문제의 경우 북한과 분단이라는 두 가지 핵심 소재에 해당된다. ‘천국의 국경을 넘다’가 해외시장 진출에 상대적으로 쉬웠던 비밀은 기획 단계에 숨어 있다. 좋은 소재이지만 아직 밀착취재가 적었다는 것. ‘인신매매, 군인의 마약밀매, 생명을 건 중국 탈출 등 말로만 전해지는 이야기를 직접 체험해 보자.’ 조선일보 취재팀은 그 부분에 집중했고 향후 판매를 통한 수익 극대화에 큰 도움이 됐다.

각종 지원과 해외공동제작 눈여겨보자

물론 아쉬움도 많다. 좋은 기획을 시작하는 경우 국내외 기금과 해외 방송사에 사전 피칭(pitching)을 하는 방법을 미처 몰랐던 탓이다. 이 경우 제작금과 해외 방송 플랫폼을 사전에 확보한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킬러 콘텐츠 제작금, 국제공동제작기금과 영화진흥위원회의 다큐멘터리 지원 사업은 물론 미국 itvs, 네덜란드 IDFA 기금은 눈여겨 볼 만하다. 적게는 8,000만원에서 많게는 2억 5,000만 원까지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유럽, 일본의 대형 방송사와 공동 취재 및 제작을 하면서 제작기금을 보조받고 글로벌 시장 판매수익을 나눠 가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향후 조선일보의 대형 크로스미디어 기획은 이 같은 방법을 동원해 진행될 예정이다.
기획이 완성된 후 회사에 예산을 신청하고 판매 예상처와 금액을 보고했다. 신문사가 시도하는 다큐멘터리의 경우 탐사보도에 강점이 있다고 자부한다. 보도 다큐멘터리는 일반 다큐멘터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인원과 예산으로 제작이 가능하다. KBS ‘차마고도’, MBC ‘북극의 눈물’, EBS ‘한반도의 공룡’ 등 한국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의 경우 영상미 구현과 CG 제작에 많은 비용이 소요됐다. 반면 보도 다큐멘터리는 좋은 소재를 고른다면 이 같은 대작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높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최근 KBS의 ‘인간의 땅’을 좋게 본 이유이기도 하다.
투자와 수익에 대한 보고를 경영진에 마쳤으면 본격적으로 사전 취재를 하면서 스태프를 구성해야 한다. 다양한 매체를 동원한 기획이니만큼 스태프는 실력을 갖춘 동시에 유연한 사고를 하는 이가 좋다. 또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이를 구해 불필요한 인원 증가를 막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연출과 작가 능력을 동시에 갖춘 PD, 연출 경험이 있는 카메라 감독 등이 좋은 파트너다. 물론 이에 앞서 기획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고 생사고락을 함께할 수 있는 이들을 구해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겠다.
이제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가야 한다. ‘천국의 국경을 넘다’는 단 3명의 스태프가 9개 국가를 다니면서 제작한 작품이다. 제작비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동선을 짧게 끊으면서 이동했다. 제작비 사용에도 원칙이 있었다. 위험한 지역에선 안전을 위해 많은 비용을 썼다. 안전한 지역에서 장기 취재하는 경우엔 호텔을 이용하기보다 현지인들이 사는 곳에 들어가 월세를 내면서 생활했다. 덕분에 취재와 생활이 하나로 엮였는데 덕분에 더 많은 소재 발굴과 제작비 절감에 도움이 됐다.
스태프들은 모두 일기를 써야 했다. 일기는 팩트 위주로 쓰게 했다. 개인적인 감정은 간간이 넣었는데 장기 취재 이후 기사를 작성하고 다큐멘터리를 편집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별도 영문 사이트 해외판매에 도움

취재를 하면서 짬이 나면 인터넷 사이트 기획을 해서 디지틀조선일보와 사전에 논의했다. 영상과 글을 동시에 보여 주는 페이지는 야후닷컴의 핫존이 유명했다. 이를 참고해 제작한 크로스미디어 사이트를 통해 한글 및 영문 기사와 짧은 다큐멘터리 영상을 내보낼 수 있었다. 국문과 영문으로 동시 전파된 온라인 보도 덕분에 향후 해외방송사로부터 조선일보 취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감사의 말을 수차례 들었다. NGC매거진은 본사 사이트에 크로스미디어 인터넷 페이지를 링크하기도 했다. 아시아출판언론인협회(SOPA)상도 영문 페이지 덕분에 수상한 것이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와 할 일은 많았다. 무엇보다 기사를 작성하고 다큐멘터리 편집에 들어갔다. 동시에 국내외 방송사 편성과 콘텐츠 판매를 알아봐야 했다. 전술한 바와 같이 기획 단계에서 이미 마무리됐어야 옳았을 과정이었다. 영국 BBC 편성이 확정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그동안 기사는 마무리됐고 다큐멘터리 편집도 마쳤다.
매체 특성상 기사 작성보다 편집 등 영상 후반작업에 시간과 공을 들이게 된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 기사 작성에 맞춰 무리하게 영상 작업을 서두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해외 방송사의 경우 편성의사가 확인됐다면 기사를 내보내고 시간이 흐른 뒤 다큐멘터리를 내보내도 큰 무리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하여간 영상작품의 경우 후반작업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다큐멘터리 판매는 서두르지 않아도 좋다. 주요 방송사의 편성이 확정되면 배급사와 손잡고 몇 년에 걸쳐 판매가 이뤄진다. 긴 호흡으로 투자금 회수와 수익 창출을 한다는 각오를 가져야겠다. 이 부분에 대해선 다음 회에 길게 설명할 예정이다.
매번 대형 기획을 진행할 수 없다. ‘스타를 넘어서다’는 ‘천국의 국경을 넘다’ 보도 이후 지친 심신을 달래 보고 싶다는 욕심에서 시작된 기획이다. 온라인 보도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예산은 기획하기 나름이다

크로스미디어 제작물을 별도로 제작할 별도 예산이 없었다. 신문이 아닌 온라인 뉴스에 주목한 이유다. 회사에서 지원을 받을 명목을 찾는 동시에 저렴하게 제작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신문사 온라인 뉴스는 토요일에 가장 부족하다. 편집국의 뉴스 생산이 쉬는 날 독특한 주말뉴스를 생산하겠다는 기획을 냈다. 특별한 제작기법 없이 자료 사진과 취재 현장 영상만으로 제작 가능한 소재를 찾았다. 그렇게 찾아낸 코너가 ‘스타를 넘어서다’이다. 정상에 섰다가 이제 내리막으로 돌아선 정치, 사회, 문화계 스타를 찾아 인생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스타이기에 회사 사진 DB엔 자료 사진이 넘쳤다.
인터넷뉴스부에 보고를 하고 디지틀조선일보 본부장을 설득해 촬영 스태프 1명을 구했다. 그와 함께 섭외를 하고 사진을 찍고 영상을 촬영해 편집을 했다. 기사와 영상은 금요일에 마감을 하고 토요일 오전에 조선닷컴을 통해 내보냈다. 생각해 보니 디지틀조선일보 촬영 스태프의 일이 늘어난 것 이외엔 특별한 예산이 들어가진 않았다. 아쉬운 것은 이처럼 매번 10분씩 생산되는 영상물을 케이블TV의 연예 프로그램 꼭지로 내보내거나 DMB에 편성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적게나마 영상 제작물 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스타를 넘어서다’는 온라인 뉴스 책임자를 설득할 능력과 인터뷰 대상자를 섭외할 능력만 있다면 신문기자 누구라도 크로스미디어 보도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한다.
구구절절 설명이 길었다. 하지만 크로스미디어 제작 기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예산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좋은 기획을 찾아서 실행을 하면 그만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뉴미디어 보도, 크로스미디어 보도를 하는 일은 이처럼 간단하니 일단 시도를 해볼 일이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10월호 미래형 기자되기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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