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외국어에서 쉼표, 따옴표 등 문장부호의 사용법은 분명히 다르다. 우리가 영어권 표기를 따라갈 필요는 없다. 다만 제목에서 진실성이 왜곡되거나 과장되는 위험을 줄여가는 형식의 개발은 필요하다고 본다. 한글의 주체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제목 달기 관행을 개선시킬 수 있는 방안은 마련될 수 있다고 본다. 


기사 제목의 “ ”는
진실을 말하고 있나?

기고_ 한국과 외국의 인용 부호 사용 비교 

박성호 YTN 워싱턴 특파원


 
워싱턴에 나와 기자생활을 하면서 현지 언론 매체를 매일 접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우리말 언론과의 차이점에 시선이 갔다. 진실을 전하려는 저널리즘의 기본정신에는 다를 것이 없겠지만 이를 구현하는 형식에서는 상이한 점이 있다고 느꼈다. 그 중 하나가 남의 말이나 발표자료를 인용할 때 쓰는 큰따옴표 (“ ”) 사용이었다.
직접인용부호(double quotation marks)야 말로 취재원의 의도를 어떤 매개 없이 가장 정확히 전달하려는 방식이다. 기자의 눈에 사실로 비쳐지는 내용을 기술하면서 활용되는 큰따옴표는 기사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사 본문에서는 큰따옴표 사용 방식에 별다른 차이점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발언이나 자료가 외국어인 경우에는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큰따옴표 안에 들어가는 단어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은 번역이 갖는 불가피성이다. 그러나 기사의 제목에서는 한글과 영어 매체에서 직접인용부호 사용에서 큰 차이점이 나타났다.

같은 발언도 인용 내용 달라

지난 9월 24일~25일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이 인포메이션 센터 홈페이지에 기고문을 올렸다. 이 대통령은 각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시중에 푼 유동성을 회수하는 시점이 지금은 아니며 그렇게 되면 세계경제가 다시 하락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기고문 원문이다. 
   
(전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현재로서는 실질적인 출구전략으로 나아가기에는 세계경제에 상당한 하방위험이 존재한다고 확신한다…(후략)
  -G20 Information Center  (2009.9 20)

이런 내용을 전하는 기사의 제목을 보면 언론사별로 다르게 나타났다. 대통령이 강조하고자 하는 내용에는 차이가 거의 없으나 큰따옴표에 들어간 단어들은 똑같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 "현재 출구전략 쓰기엔 위험 존재"
명박 대통령은 G20에 보낸 기고문을 통해 금융위기를 해소하기위한 경기 부양책으로 시중에 풀린 유동성을 회수하는 이른바 '출구전략'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현재로서는 실질적인 출구전략으로 나아가기에는 세계 경제가 다시 하락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과 함께였습니다.
 - YTN (2009. 9. 21)

“현재 출구전략 쓰기엔 위험 존재”라는 제목은 기고문의 본뜻을 왜곡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출구전략으로 나아가기에는…”이라고 했지 “…쓰기엔…”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또 "현재 출구전략 쓰기엔 위험 존재"라는 말을 마치 한 문장에서 연속적으로 한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은 "현재 출구전략 쓰기엔 위험 존재"라는 제목은 본문의 단어들을 조합한 것이다. 내용 전달에는 무리가 없지만 큰따옴표를 사용한 직접인용의 원칙에는 어긋난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의 사례들도 마찬가지다.

李대통령 방미 일정 시작 "출구전략 지금 쓰기엔 세계경제 위험"
  -한국일보 (2009. 9. 21)
MB "현재 출구전략 쓰기엔 하방위험 존재"
  -연합뉴스 (2009. 9. 21)
 
원문에 있는 내용을 언론이 해석해서 나아가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며 큰 따옴표 안에 들어가는 단어 하나 하나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필자는 큰따옴표 안에는 취재원이 직접 말한 것이나 발표한 자료에 명시된 단어 또는 문장만을 사용해야 되지 않느냐고 언론계 선후배들에게 자주 얘기했다. 모두 취지에는 공감했다. 그러면서도 기사 내용을 축약하면서 눈에 쏙 들어오게 전달하려면 언론이 해석한 내용을 직접인용부호 안에 넣을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현실론을 많이 얘기했다. 필자도 이런 관행적인 한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특히 외신기사를 쓸 때 여러 문장에 걸쳐 나온 단어들을 조합해 마치 한 문장처럼 발언한 것으로 위장한 경우가 많았다. 
위에 든 사례들은 어떻게 보면 큰 위험성이 없는 제목이다. 허위사실 유포나 명예훼손 소송 등에 휘말릴 만한 여지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다음 사례의 경우는 어떨까. 

본문에 없는 말이 제목으로
 
 "관광公 해외직원 절반이 억대 연봉"
한국관광공사 해외지사 직원의 절반이 억대 연봉을 받고, 일부 지사장은 운전기사가 딸린 외제차를 운행하는 등 호화근무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송훈석(무소속) 의원이 21일 한국관광공사로부터 제출받은 27개 해외지사 운영현황에 따르면 해외지사 전체 직원 78명의 평균 연봉이 9천583만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7%(37명)의 연봉이 1억1천500만원으로 억대 연봉을 기록했다.
 
"관광公 해외직원 절반이 억대 연봉"이라는 제목 내용의 진위 여부는 논외로 하자. 다만 송훈석 의원이 자신의 입으로 이런 말을 직접 했는지는 불분명하다. 본문 어디에도 이를 뒷받침할 만한 언급이 없다. 관광공사가 제출한 자료를 보면 내용이 자명하다고 해도 송 의원이 "관광公 해외직원 절반이 억대 연봉"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제목은 눈길을 끌 수도 있겠지만 하지 않은 말을 직접인용부호에 포함시키는 것은 곤란하다고 본다. 
국내 한 언론에서는 사진설명에 큰따옴표를 써서 파키스탄 귀향객들의 마음을 읽어내기까지 했다.  
 
“열차 지붕도 좋아” 무슬림의 귀향
파키스탄의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이 올해 라마단(단식성월)이 끝난 19일 ‘이드 알피트르’ 축제 연휴를 즐기기 위해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가고 있다. 열차 지붕 위에 올라타거나 난간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도 표정만큼은 밝다. 이 축제는 무슬림의 5대 의무 중 하나인 단식을 무사히 마친 것을 감사하며 축하하는 명절이다. [라호르 AFP=연합뉴스]
 
사진 설명 본문에 “열차 지붕도 좋아”라는 말을 누가 했는지 전혀 언급이 없다. 사진을 본 편집자가 귀향객들의 표정을 보고 “고향에 간다면 열차 지붕이라도 좋다고 생각할 것 같다”는 추측을 한 것으로 보인다. 기분이 좋은 내용을 전달하는 기사라고 해도 편집자가 굳이 남의 마음 속을 꿰뚫어 봐야 하는 점쟁이까지 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외국 언론은 큰따옴표 안써

이번엔 같은 내용을 한국 언론과 외국 언론이 어떻게 다루는지 비교해보자. 우열을 가릴 수는 없지만 기술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크게 나타난다.
지난 9월 17일 (미국 동부시각 기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체코와 폴란드에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려던 부시 행정부의 계획 대신 새로운 구상을 발표했다. 언론은 미국정부가 주장한 새로운 구상 쪽에도 관심을 기울였지만 그보다는 부시 정부 시절의 정책을 백지화 했다는 쪽에 무게를 더 두었다.  기사는 오바마의 아래 발언에 근거해 작성됐다.

I ordered a comprehensive assessment of our missile defense program in Europe. …This new approach will provide capabilities sooner, build on proven systems and offer greater defenses - against the threat of missile attack - than the 2007 European missile defense program. (유럽에서 미사일 방어 프로그램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명령했다.…새로운 방안은 검증된 시스템을 활용함으로써 2007년 프로그램보다 더 빨리 미사일 공격 대비 능력을 갖출 것이다.)

- 한국 언론 보도 사례: 
  오바마, "동유럽 미사일 방어체계 계획 백지화"
  美 “동유럽 MD체제 무기 연기”
  오바마 "동유럽 MD 수정…이지스함 요격기로 방어"
 
오바마가 “동유럽 미사일 방어체계 계획 백지화”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백악관이 발표한 전문을 봐도 대통령 스스로 “백지화”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더구나 오바마의 입에서 “MD”라는 단어는 결코 나오지 않았다. 미사일 방어계획(Missile Defense)이란 단어를 한국식 어법으로 MD로 약칭한 것이다. 현지에서는 MD로 줄여서 부르지 않는다. 스타일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치 오바마가 직접 말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큰 따옴표 안의 말에 MD라고 쓰는 것은 좋은 관행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바마, 동유럽 미사일 방어계획 철회 
  오바마, 부시 동유럽 미사일방어 백지화
 
오바마의 발언을 토대로 언론이 합당하다고 판단하는 범위 안에서 재해석(paraphrase)해서 쓴 제목이다. 이 정도는 언론의 권한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사실에 근거하면서 의도적인 왜곡을 하지 않는다면 직접인용은 아니라도 재해석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 외국 언론 보도 사례: 
White House Scraps Bush’s Approach to Missile Shield
(백악관, 부시의 미사일 방어 정책 폐기)
   -The New York Times (2009. 9. 17)
Obama scraps missile defense plan
(오바마, 미사일 방어 계획 폐기)
   -BBC News (2009. 9. 17)

폐기 또는 백지화를 뜻하는 scrap이라는 단어를 썼다. 하지만 큰따옴표 안에 넣지는 않았다. 오바마의 실제 발언에 scrap이란 단어는 보이지 않지만 해석해 보면 그런 뜻이라는 것이다.

콜론(:), 'Say' 등 다양한 간접인용
 
취재원이 언론 입맛에 맞게 말을 해주거나 성명을 발표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대부분 외교적으로 돌려서 이야기 한다. 이럴 때 국내 언론은 언론이 판단한 내용을 직접인용부호 안에 삽입하는 관행이 있다. 외신에서는 큰따옴표를 사용하지 않는 다양한 방법을 쓴다.
 
 Pelosi Says Anti-Obama Rhetoric Sounds Familiar
(펠로시가 말하기를 반 오바마 발언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다)
   -The Washington Post (2009. 9. 18)

오바마의 건강보험 개혁에 반대하는 것을 보니 마치 70년대 샌프란시스코에서 동성애 반대론자들이 연상된다며 펠로시 하원의장이 비판하는 내용이다. 제목에 나온 단어처럼 펠로시가 말을 해주면 좋겠으나 그렇지 않을 경우 언론이 그 뜻을 간명하게 전하고자 할 때, 또 독자나 시청자의 눈길을 끌고자 할 때 “Pelosi says…”라는 형식을 쓴다.
또 누가 무슨 말을 했다는 뜻으로 쌍점 (:)이 사용되기도 한다. 영어의 콜론이다.
 
Obama: healthcare won't hike middle class taxes
(오바마가 말하기를 건강보험이 중산층 세금을 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The Washington Post (2009. 9. 20)

영어권 언론 제목에서 작은 따옴표(single quotation marks)는 큰따옴표와 같은 용법이다. 활자를 직접 주조해서 신문을 만들던 예전에는 제목에 들어가는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큰따옴표 (“”)를 작은따옴표 (‘’)로 대체했다. 이 관행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경우도 보인다.

 Obama Calls for 'Civil' Tone on Health Care
(오바마 예의 지키는 건강보험 논의 촉구)
  -The Washington Post (2009. 9. 21)
 
'Civil'이라는 단어 양쪽에 작은따옴표가 쳐져 있다. 오바마 발언의 취지를 제목으로 표현하는 가운데 직접 한 말의 일부를 인용부호 안에 넣은 형식이다. 

제목에 쓴 “ ”는 진실과 멀다
 
영어권 언론은 제목 전체를 큰따옴표 안에 넣는 경우가 드문 반면 우리는 아주 흔하다. 인용이라고 하기 보다는 편집자가 강조하고 싶은 내용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중요한 점은 형식의 차이가 아니라 이런 형식이 내용의 진실성을 변형시킬 소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국내와 해외언론의 기사 품질을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필자는 제목의 경우 직접인용부호를 많이 사용할수록 진실과 거리가 멀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본다. 우리 언론이 양식과 선의를 갖고 제목을 쓴다고 해도 제목 전체를 큰따옴표 안에 처리하는 방식은 자칫하면 사실을 왜곡할 위험성마저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말과 외국어에서 쉼표, 따옴표 등 문장부호의 사용법은 분명히 다르다. 소설 본문 등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쌍점이나 반쌍점(;)은 어딘가 거북스러운 느낌이 든다. 우리가 영어권 표기를 따라갈 필요는 없다. 다만 제목에서 진실성이 왜곡되거나 과장되는 위험을 줄여가는 형식의 개발은 필요하다고 본다. 위 두 제목을 참고해 우리말에 좀 더 자연스럽게 쓰는 시도를 한다면 아래와 같은 양식이 나올 수도 있겠다.
 
1) 오바마, 건강보험 논의 “예의” 촉구
2) 오바마: 건강보험 논의 “예의 바르게 해야”
3) 오바마: 건강보험 논의에 예의 지켜야
 
2번과 3번은 우리 어법으로 보면 생경한 면이 있다. 필자는 우리말 어법에 전문가가 아닌 만큼 함부로 어떤 양식을 주장하고 싶지 않다. 다만 한글의 주체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제목 달기 관행을 개선시킬 수 있는 방안은 마련될 수 있다고 본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10월호 미디어포럼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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