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측 참가자들은 미국 정치의 중심지(워싱턴), 금융경제의 중심지(뉴욕), 실물경제의 중심지(디트로이트)를 순차적으로 방문했다. 워싱턴에서 연수팀이 가장 관심을 가진 이슈는 역시 북한 핵 문제였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과연 대북 정책에서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에 대한 수많은 논의가 이어졌다.



금융위기와 대선 직후,
미국의 심장부를 가다

한·미 언론인 교류 프로그램 참가기

양성욱 문화일보 국제부 기자



만으로 딱 10년을 맞은 기자생활. 인풋(input) 없이 아웃풋(output)만을 쏟아내야 하는 소모적인 나날이 이어지면서 새로운 지식에 대한 목마름은 나날이 심해지고 있었다. 숨 가쁘게 이어져온 생활에 한번쯤은 신선한 변곡점을 주고 싶다는 혼자만의 바람을 꾹꾹 참으며 자판을 두들기던 어느 날 데스크가 한 장의 응모서류를 건넸다. 한국언론재단이 매년 실시하는 ‘한·미 언론인 교류 프로그램’ 응모 서류였다.
몇 년 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데스크가 내게도 참여를 권유한 것이다. 데스크가 다른 부원들을 제쳐 두고 필자에게 응모를 권유한 것은 지난해 7월 이후 필자가 미국지역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금융위기와 대선을 치르면서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미국의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체험해 보라는 데스크의 배려였다. 이때가 2008년 12월이었고 한 달 후인 2009년 1월 연수 참가자들이 선발됐다. 필자를 포함해 이상렬 중앙일보 경제부 차장, 인교준 연합뉴스 국제뉴스부 차장, 권태훈 SBS 정치부 기자, 김정환 KBS 정치외교팀 차장, 최원석 MBC 보도제작국 차장, 황대진 조선일보 기자 등 총 7명이었다.
실제 프로그램 시작은 4월이었지만 재단 측은 사전에 참가자들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다. 외교안보 전문가와 경제 전문가를 초빙해 일종의 ‘약식 세미나’를 한 것인데, 두 차례에 걸친 이 세미나 자체도 한·미 관계 전반에 걸친 외교안보 현황과 글로벌 금융위기의 전모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

7인의 기자, 워싱턴·뉴욕·디트로이트로

우리가 이번에 참가했던 프로그램을 간략하게 소개해 본다. 한국언론재단과 미국 하와이 소재 동서문화센터(EWC)는 각각 자국의 기자들을 7명씩 선발했다. 한국 기자들은 미국에서, 미국 기자들은 한국에서 연수를 진행한 뒤 프로그램 말미 하와이에서 양측 참가자들이 모여 각자의 의견, 소감을 교환하는 방식이었다.
한국 측 참가자들은 워싱턴과 뉴욕, 디트로이트를 순차적으로 방문했다. 각각 미국 정치의 중심지(워싱턴), 금융경제의 중심지(뉴욕), 실물경제의 중심지(디트로이트)라는 의미가 담긴 도시들이다.
언론재단은 사전에 참가자들에게 ‘연수 기간 중 만나고픈 인물들을 적어 달라’는 요청을 해 왔고, 그에 맞춰 참가자들은 평소 직접 만나고 싶었던 인물들을 적어 냈다.
마침내 4월 19일 연수팀은 워싱턴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연수팀이 가장 관심을 가진 이슈는 역시 북한 핵 문제였다. 면담 대상자들도 주로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국무부 관계자나 의회 관계자, 싱크탱크 연구원들로 채워졌다.
강경일변도에서 정권 후반부 사실상 유화정책으로 돌아섰던 조지 W 부시 정부와 달리 버락 오바마 정부가 과연 대북 정책에서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에 대한 수많은 논의가 이어졌다. 특히 인교준 연합뉴스 차장이나 김정환 KBS 차장 같은 경우 외교안보 분야에서 오래 취재를 해온 베테랑들인지라 ‘인터뷰이’와 ‘인터뷰어’간 심도 있는 대화가 이뤄질 수 있었다.
워싱턴 일정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당초 EWC에서 짜놓은 일정들이 불발된 경우가 몇 차례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의 방미 기간이 신정부 출범기간과 겹친 탓에 워싱턴의 주요 인물들이 언론 접촉을 꺼렸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웬디 커틀러 USTR대표보 등 거물 줄줄이

그럼에도 성과는 적지 않았다. 웬디 커틀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를 만나 오바마 정부의 무역정책에 대한 기조를 파악할 수 있었다.
기업연구소(AEI) 빈센트 라인하트 상근 연구원을 만나서는 오바마 정부의 경기부양책 기대효과와 문제점 등에 대해 분석을 들을 수 있었고, 실라 스미스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을 만나서는 오바마 독트린이 북핵을 만나 어떤 모습을 띨 것인지에 대한 모형도를 그릴 수 있었다.
면담한 인물들 한 명 한 명이 거물들인 터라 알찬 내용이 이어졌지만 워싱턴 일정 내내 시차로 인한 피로감이 느껴진 것도 사실이었다. 한 가지 특이 한 것은 낮에는 눈꺼풀에 내려앉은 시차의 무게가 수천 톤처럼 느껴지다가도 저녁 술자리만 되면 어느덧 참가자들의 눈이 반짝반짝 살아난다는 점이었다. 특히 낮에 있었던 면담 내용에 대한 진지한 ‘자체 토론’이 술자리까지 이어지기 일쑤였다.
처음 서먹서먹하던 참가자들 간 분위기도 ‘소주폭탄’이라는 대량살상무기를 ‘마빡주’라는 탄두에 실어 보내는 전투를 몇 차례 치르면서 어느덧 단체여행객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급반전됐다. 이 과정에서 ‘인간 지식검색’ 권태훈 SBS 차장과 ‘스타 PD’인 최원석 차장의 역할이 지대했다.       
워싱턴 일정을 마치고 뉴욕으로 건너갔다. 뉴욕은 이번 금융위기의 시발지였다. 전 세계로부터 ‘탐욕의 거리’라는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월스트리트를 직접 방문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뛸 수밖에 없었다. 연수팀은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는 금융업체 관계자(씨티그룹 부회장)와 비난을 주도하고 있는 언론 관계자(월스트리트 저널 기자들)를 순차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우리가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이번 경제위기를 발원지에서 다각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점은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들과 면담을 갖던 중 이상렬 중앙일보 차장이 90년대 말 한국 외환위기 당시의 교훈을 들려주자 미국 기자들이 이를 진지하게 받아 적으며 오히려 질문을 던지던 모습이었다. 한국이 겪으며 절감했던 위기 탈출의 교훈을 딱 10년 뒤 미국 기자가 자사 지면에 소개하기 위해 열심히 받아 적은 셈이었다. 한국의 외환위기를 호되게 꾸짖으며 가혹한 ‘서구식’ 체질 개선을 주문했던 미국이 이제는 오히려 한국으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왠지 모를 뿌듯함마저 들었다.

GM재무책임자 인터뷰, 한국으로 즉시 송고

미국 본토 중 마지막 방문지였던 디트로이트는 ‘슬픔의 도시’였다. 자동차 산업의 본거지, 그리고 그 산업이 부도가 나면서 함께 망해 버린 도시. 우리가 묶었던 호텔 건너편에도 고층 건물이 있었는데, 그 건물 역시 주인을 잃은 채 흉물스럽게 방치된 모습이었다. 사람도, 주택도, 건물도, 심지어 거리에 부는 바람조차도 황량하게만 느껴지는 도시였다.
도시는 황량했지만 연수를 받는 우리들 입장에서는 최고의 일정들이 이어졌다. 우선 GM 본사를 방문해 레이 영 최고재무책임자와 면담을 했다. 레이 영은 미국 현지 기자들도 만나기 힘든 GM의 핵심 인사다.
레이 영은 “한국 정부가 GM대우를 먼저 지원치 않으면 GM도 추가 지원책을 마련할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쏟아냈고, 우리는 그의 발언을 즉시 본국에 송고해 크게 기사화됐다. 이번 연수가 단순히 ‘먼 훗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휴식 같은 연수가 아니라 ‘당장 기사 작성에도 도움이 되는’ 실용적 연수라는 평가를 받을 만한 이유는 이처럼 현안과 관련된 인물들이 대거 면담 대상자에 포함됐기 때문일 것이다.
연수팀은 메이저리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뉴욕 양키스의 야간 경기도 단체관람했다. 결과는 디트로이트의 대패였다. 어느 정도 경기회복세를 보이고 있던 뉴욕, 아직도 분초의 위급을 다투는 디트로이트. 양 도시가 처한 경제상황이 야구 경기 결과에 정확히 오버랩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연수팀은 전미자동차노조(UAW) 론 게텔핑거 의장과도 1시간가량 면담을 가졌다. 현재 국제부에서 일하고 있는 필자에게 미국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게텔핑거 의장을 직접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디트로이트에서는 평범한 미국 가정을 방문해 바비큐 파티도 가졌는데, 이 또한 이번 연수 프로그램 동안 잊혀지지 않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가장 일반적인 미국 시민들의 생각과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은 북한의 핵이 무섭지 않으냐’, ‘정말 전쟁이 나지 않겠느냐’는 질문들이 쏟아졌는데, 외부에서 바라보는 한반도의 위기상황이 얼마만큼이나 심각한 것인지 새삼 깨달을 수 있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용어가 만들어진 이유를 체득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미국 본토를 모두 순방한 뒤 하와이로 건너가 한국을 돌고 온 미국 기자들과 해후했다. 기존에는 몰랐던, 상대국의 깊숙한 이면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는 공통의 찬사가 나왔다. 또한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언론 환경에 대해 한국 기자나 미국 기자나 똑같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2주간의 연수는 하와이에서의 일정을 마치면서 막을 내렸다. 미국 기자들과도 친해져 ‘훗날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지만, 그 약속이 지켜지기 힘들다는 것을 서로 알기에 이별의 순간이 더욱 아쉽게 느껴졌다.
이번 연수는 필자에게 참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큰 도움이 됐다. 당장 연수 도중에도 스트레이트 기사를 뽑아낼 수 있을 만큼 ‘현안’과 관련된 일정이 이어졌고, 외신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던 미국 경제위기의 일단을 현장에서 직접 취재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한국에 돌아와 뒤풀이를 가진 참가자들 대부분이 필자와 비슷한 소감을 밝힌 것을 보면, 이번 연수가 참가자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됐을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앞으로도 이런 유의 연수 프로그램을 언론재단이 더욱 많이 만들어 더 많은 기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단기 연수 프로그램이지만 해당 기자들에게는 견문을 넓히고 취재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들에게 ‘쉼표’와 ‘인풋’을 동시에 줄 수 있는 알찬 프로그램이었다는 총평으로 서툰 후기를 갈무리하고자 한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10월호 미디어포럼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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