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_ flickr by bfishadow



우리는 가끔 새벽에 감상에 젖어, 자신의 SNS에 오글거리는 ‘감성 글’을 올리거나 특정 대상을 염두에 둔 채 감정적인 ‘저격 글’을 남길 때가 있습니다. 그러곤 아침이 되어 이성적인 상태로 되돌아오면, 이내 후회를 하곤 하죠. 지난밤 내가 왜 그랬을까 부끄러워하며 부랴부랴 글을 지우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약 자신이 올린 그러한 글이나 사진이 인터넷상에서 지워지지 않고 모두 기록되어 영원히 남게 된다면 어떨까요? 나는 지웠는데 이미 웹 크롤러(Web crawler)가 긁어가서 영영 나의 손을 떠났다면 말입니다.


지난 5월, 유럽사법재판소(ECJ)는 사용자가 구글(Google) 같은 인터넷 검색 기업에 자신의 정보를 검색결과에서 삭제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리, 즉 ‘잊힐 권리(the right to be forgotten)’를 인정한다는 내용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판결에 따라 몇 주 뒤 구글은 사용자가 자신의 개인정보 검색결과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온라인 창구를 마련했고, 민원 접수 첫날에만 1만 2천여 건의 삭제요청이 쇄도하는 등, 최근 인터넷상에서의 ‘잊힐 권리’에 대한 공론화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잊힐 권리’에 대한 논쟁이 격렬합니다. 지난달 방송통신위원회가 개최한 2014 온라인 개인정보보호 콘퍼런스에서는 개인정보처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자 ‘잊힐 권리’의 국내 적용방식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충분한 합의 과정을 거쳐 국내에서도 잊힐 권리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찬성 측과, ‘잊힐 권리는 알 권리와 배치되며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보장되고 있다’는 반대 측이 팽팽히 맞섰습니다. 이처럼, ‘잊힐 권리’는 이제야 그 도입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인터넷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정보통신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근래에 등장한 새로운 개념입니다.


 

출처_ google




‘잊힐 권리’란 인터넷 공간에서 자신과 관련된 기록을 삭제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를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자신의 흔적(자신이 올린 글이나 사진, 또는 자신과 관련된 ‘정보’ 등)을 지울 수 있어, 인터넷상에서 ‘잊힐 수 있는’ 권리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내가 내 흔적을 지우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의아할 수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올렸던 글이니 다시 내리는 것은 일도 아닐 테니까요. 하지만 이는 생각보다 쉽지가 않습니다. 인터넷 검색 엔진의 기반이 되는 웹 크롤러(Web Crawler) 때문이죠. 


보통 검색 엔진과 같은 여러 사이트에서는 데이터의 최신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웹 크롤러를 이용합니다. 웹 크롤러는 월드와이드웹(www)을 탐색해 정보를 수집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입니다. 이 웹 크롤러는 대체로 방문한 사이트 내에 존재하는 모든 페이지의 복사본을 만들게 되고, 이렇게 생성된 페이지를 업데이트해 검색 엔진에 인덱싱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개인의 ‘흔적’, 즉 정보는 수없이 복사되고, 업데이트되며, 인터넷상에 ‘영원히’ 남게 됩니다. 유사 이래로 인류에게 ’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기억‘하는 것이 예외였던 세상에서 ’기억이 원칙이고 망각이 예외‘가 된 세상이 도래한 것이죠.


 

출처_ flickr by Noah Sussman




‘잊힐 권리’와 관련된 유명한 해외 사례로 스테이시 스나이더 사건이 있습니다. 2006년 봄, 25살 스나이더는 대학 과정을 마치고 교사가 되기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교사 자격에 필요한 모든 학점을 이수했고, 시험도 통과했으며, 교생 실습도 마친 상태였지요. 그러나 그녀는 어느 날 대학 당국으로부터 ‘교사가 되기에는 행실이 부적절하므로 교사가 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자신이 미니홈피 마이스페이스(Myspace.com)에 ‘술 취한 해적’이라는 제목의 사진을 올린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친구들과 개인적으로 공유한 사진을, 누군가가 대학 당국에 신고했고, 그녀는 뒤늦게 사진을 인터넷에서 내려 보려고 했지만, 사진은 이미 웹 크롤러가 긁어가 보관 중이었습니다. 한번 복사된 이상, 그녀의 사진은 그녀의 손에서 벗어나 인터넷에 ‘새겨지게’ 되었습니다. 스나이더가 잊고 싶은 일을, 인터넷은 영원히 기억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2년 전에 있었던 인기 가수 아이유(IU)의 트위터 사태나 5년 전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한 한 여대생의 발언으로 기인한 ‘루저’ 파문 등은, 지금까지도 인터넷 검색 엔진에 간단한 키워드만 입력하면 당시의 상황, 사진이나 영상, 기사, 당사자의 신상정보, 최근 근황까지도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건의 당사자에겐 사실상 평생 ‘꼬리표’가 따라다니게 되는 것이죠. 인터넷상에서 ‘망각’이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예외적인 경우니까요. 


   

출처_ 한겨레 2012. 4. 23.




이렇듯 인터넷상에서의 ‘잊히지 않고 영원히 기록되는’ 특성은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잊힐 권리’의 현행 도입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사람들은 ‘개인의 자기 정보통제권 상실’과 ‘디지털 판옵티콘’ 측면에서 우려를 나타냅니다. 우선 우리는 앞서 살펴본 두 사례를 통해 현재의 인터넷 구조상 각각의 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자신의 의지대로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의 정보 또는 흔적은 내가 마음대로 지울 수 없고 인터넷 공간에 지속해서 남아있게 됩니다. 언제든지, 누군가가, 언젠가는 나의 정보를 악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게 되고, 인터넷상에서는 항상 ‘감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는 나아가 사람들로 하여금 기한이 없는, 지속적인 ‘자기검열’을 하게 만들고, 사회 전체적으로 ‘자기검열 문화’를 조장한다는 것이 ‘잊힐 권리’의 도입을 찬성하는 측의 주요 골자입니다.


한편 ‘잊힐 권리’의 도입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잊힐 권리는 기존의 ‘알 권리(right to know)’와 충돌할 수 있는데, 특히 잊힐 권리가 ‘권력’을 지닌 집단이나 공인에게 적용될 때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잊힐 권리가 그들 자신에게 ‘불리한 흔적’만을 지워주는 수단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도입을 하더라도 정보 권력을 지닌 집단 및 공인과 일반인 사이에 차이를 두어 달리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제기되고 있습니다. 


 

출처_ flickr by Tension




월드와이드웹 인터넷(WWW)이 탄생한 지 올해로 45년째입니다. ‘잊힐 권리’를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와 논쟁은 최근에서야 뜨겁게 대두하였지만, 이미 1998년에 라시카(J.D. Lasica)는 온라인 잡지 <살롱(Salon)>에 “인터넷은 절대 망각하지 않는다(The Net Never Forgets)”는 주목할 만한 글을 실었습니다. 그는 그 글에서 “우리의 과거는 우리 디지털 피부에 문신처럼 아로새겨지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선견지명으로 10년 정도의 미래를 앞서 내다본 셈이죠.


‘잊힐 권리’는 양날의 검입니다. 따라서 도입 여부를 논할 때 현실적으로 세심하게 검토해 따질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의 양면을 두루 인지하고 있는 우리의 관심과 의지일 것입니다. 16년 전 라시카가 쓴 글이 20년 후에도 여전히 유효한 글이 될지, 한때 과도기에 나타난 문제 인식으로 기억될지는 현재의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 다독다독



Posted by 미디어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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