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 무더위’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복날은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초복인 오늘 올해 여름도 건강하게 보내자는 의미로 삼삼오오 모여 보양식집을 향하는 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입니다. 하지만 복날이면 아주 오랫동안 끊이지 않는 논쟁이 하나 있죠. 바로 ‘보신탕’입니다. 


이는 우리나라 내에서만이 아니라 동서양 문화적 갈등으로까지 번지는 원인이기도 하죠. 양측 논쟁의 주장은 보통 ‘인간의 오랜 친구로 살게 된 개(犬)까지 굳이 먹어야 하느냐’와 ‘소와 돼지를 먹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입니다. 이쪽의 말을 들어보면 맞는 것 같고, 또 저쪽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의 의견도 맞는 것 같고, 누구 하나 확실한 답을 내릴 수도 없었던 개고기에 대한 논쟁은 언제부터 어떻게 이어져왔을까요? 




보신탕 논쟁은 어떻게 보면 무의미한 다툼이지만, 단순히 개고기에만 한정 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먹거리를 떠나 그곳의 문화와 시대정신이 담겨 있는 일이기 때문이죠. 우리나라가 예로부터 복날 개를 먹어온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고유의 음식문화이니 남들이 뭐라고 할 건 아니다라는 입장도 수긍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란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먹을 게 지금처럼 풍족하지 않던 시절의 문화이니 바꿀 수 있으면 바꾸는 게 좋다는 입장도 일리 있는 의견이죠. 문제는 양측의 똑같은 의견이 아주 오랫동안 대립하면서 한치의 양보도 없어 자칫 사회분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개고기 논쟁을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입으로 옮겨 온 것은 서양의 문화가 활발하게 국내에 들어오던 70년대부터 시작됐습니다. 서양인들의 눈에 개를 잡아먹는 동양의 음식문화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입장에서도 그런 서양인들의 음식문화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많았죠. 거기다 작은 집에서 개를 키우며 사람처럼 미용도 하고 향수도 뿌리는 등의 행동은 개에게 진정한 자유를 앗아가는 오히려 더 야만적인 행위라고 보기도 했습니다.






‘홍콩’에서 일어난 일이다. 휴가여행 중이던 어느 부부가 저녁을 먹으려고 음식점에 들어갔다. 그들은 웨이터에게 자기집 개를 가리키면서 그 귀여운 푸들에게도 식사를 갖다주라고 부탁했다… 음식을 기다리던 부부에게 차례차례 요리접시가 들어왔는데 놀랍게도 모두 개고기였다. 불쌍하게도 그들의 애견 ‘로자’가 중국 요리사의 식칼세례를 받게 된 것이다.


1974년 경향신문 기사 중 일부, 동서양의 관점 차이로 일어난 이 사건은 동양과 서양에서 생각하는 개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는 기사이다.


출처_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경향신문, 1974. 01. 22



서양의 입장에서는 인간 친화적으로 길들여지며 진화해 온 개가 개답게 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것 또한 먹거리라는 시각으로 보자면 사람에게 이로운 음식으로 맞이하는 죽음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해석할 수 있죠. 보신탕을 둘러싼 이런 논쟁은 어떤 것이 과연 진정 ‘개답다’라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로 남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의 격동기였던 1980년대 전두환 대통령의 신군부는 외국으로부터 한국 군부정권 인정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국제회의 서울 유치와 외빈 초대 등의 외교행보는 이를 반영하는 전략이었는데요. 이 과정에서 발목을 붙잡은 것은 예상치 못한 ‘개고기’였습니다. 이미 국제적으로 개고기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여전히 개고기를 쉽게 접하는 우리의 모습이 자칫 서양에서 말하는 ‘야만인’으로 비춰질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나왔던 거죠.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상황이기에 그런 이미지로는 분명 문제가 터질 것임이 분명한 상황이었습니다. 



출처_경향신문


이런 가운데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 동물보호단체에서는 “한국이 보신탕문화를 없애지 않으면 올림픽 등을 보이콧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서울시는 큰 결단을 하게 됐습니다. 82년 3월 15일 보신탕집을 뒷골목으로 이전하게 하거나 폐쇄한다는 정부지침을 발표한 것입니다. 이후 6월에는 도로변에서 영업을 하지 못하게 했고 이후에는 읍 이상의 도시에서는 개고기를 팔지 못하게 규제를 했습니다. 


물론 이런 규제에 대해 “왜 서양의 눈에 맞춰 우리의 문화를 바꿔야 하는가”라는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규제 속에서도 보신탕을 즐기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았는데요. 올림픽이 끝나자 규제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면서 오히려 보신탕집의 양성화 여론이 높아졌습니다. 이런 국민들의 여론을 반영해 법원에서도 ‘개고기는 혐오식품이 아니다’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영양탕, 오리탕, 사철탕, 보양탕… 이름도 많다. 아무리 막고 이름을 바꾸어도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용케 찾아간다. 당국에선 6월 1일부터 올림픽에 대비하여 보신탕 영업을 못하게 단속을 강화했다고 한다.


한겨레 1988. 06. 03 기사 내용, 이처럼 88올림픽 당시 강력한 ‘개고기 근절’ 속에서 이름만 바꿔 개고기를 판매하는 업소가 늘어났다.




 출처_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한겨레, 1988. 06. 03 




규제에 의해 드러난 국내에서의 양분된 보신탕 찬반론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차츰 동물과의 공존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굳이 개고기까지 먹을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이전과 다르게 힘이 실리기도 했는데요. 반려동물 문화의 정착과 경제수준 발전으로 우리의 식탁이 풍성해지면서 현재는 동물보호협회 등을 중심으로 개고기 반대 캠페인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보신탕 문화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거세진 이유 중 하나는 고기로 팔리기까지 온갖 학대에 노출돼 있고 끔찍한 도축을 자행하고 있는 모습들이 언론에 의해 속속 공개가 됐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눈앞에서 죽임을 당하는 어미를 새끼들이 바라봐야 했고 산채로 털이 뽑히거나 하는 등 눈으로 보기 힘든 모습으로 도축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거죠. 또한 좁은 철창에 수많은 개들을 구겨 넣어 짐처럼 싣고 다니는 모습도 일반 시민들의 눈에 좋게 보일리는 없었습니다. 


지난 81년에는 필리핀에서 보신탕용 개들이 쇠줄에 묶여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이 영국의 ‘데일리 미러’지 1면에 실린 일이 있는데요. 영국인들은 필리핀과의 교역중지, 외교적 압박을 요구했고 영국의 대처 수상 역시도 혐오감을 표시했습니다. 이런 영국에 대해 필리핀 의회는 우리 고유문화 문제이니 상관하지 말라는 식의 성명을 발표하면서 영국과 필리핀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기도 했습니다. 영국과 필리핀의 갈등이 커지면서 다른 나라에서도 다양한 반응을 쏟아냈습니다. 음식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함께 문제의 본질은 ‘먹는 것’이 아닌 그 과정에서 펼쳐지는 비도덕적인 잔인한 사육과 도축에 있다는 의견도 그에 못지 않게 많았습니다. 


최근에는 개고기를 비롯한 보신음식이 오히려 몸에 좋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자주 보게 됩니다.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길러지고, 도축 과정에서 극도의 공포를 느끼게 되면서 생긴 스트레스로 인해 고기가 사람의 몸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도 하는데요.


또한 보양식이란 우리 몸에서 부족한 영양을 채워주는 음식을 말하는데, 요즘은 몸에 영양분이 부족하기 보다는 오히려 넘쳐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모든 논란을 떠나 우리 고유의 삼복문화를 여러 사람들과 함께 먹거리로 즐기자는 취지의 문화는 지킬 필요도 있습니다. 다만, 무분별하게 몸에 좋다는 것을 찾아 먹기보다 바르게 알고, 건강하게 먹는 성숙한 소비자들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출처_한국일보 




SNS의 발달로 온라인을 통한 논쟁이 이전보다 많아지면서 나와 다른 생각을 포용하지 않고 무조건 비판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토론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우리 사회의 단면이라고도 말을 하는데요. 보신탕과 같이 뚜렷한 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 현상이 더욱 심각하게 나타납니다. 


끊이지 않는 보신탕 논쟁,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개고기를 먹는다고 무조건 ‘야만인’으로 몰고 가고 있지는 않나요? 혹은 개고기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소와 돼지도 먹지 말고 풀이나 뜯어 먹으라는 공격적인 조롱을 하지는 않나요? 모두의 의견과 생각은 마땅히 존중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습니다. 올해에도 뜨거운 논란의 장이 될지도 모를 ‘개고기 논쟁’ 속에서 ‘내가 옳고 네가 틀리다’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듯 각자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올바른 토론문화를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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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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