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휴가 성사됐다고 확신했다. abc를 나서는 순간 미디어전략팀 이석기 선배와 얼싸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이것은 해외제휴를 모르는 이들의 착각이었다. abc는 작품성을 인정하고 본격적인 제휴협상에 들어가자는 사인을 준 것이다. 반면 우리는 제휴가 성사됐으니 콘텐츠 비용을 받고 편성을 확정해야 한다고 우겼다.


제작이 30이면 제휴가 70

이학준  조선일보 경영기획실 미디어전략팀 기자



<편집자주> 이번에는 크로스미디어다. 동영상을 중심으로 한 멀티미디어 콘텐츠가 급부상하고 있다. 앞으로 ‘펜 기자’라는 단어는 의미를 점점 잃어갈 것이다. 기자가 곧 PD이자 미디어 기획자인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3회에 걸쳐 크로스미디어 시대 멀티미디어 기자로 거듭나는 방법을 싣는다. 크로스미디어의 기획은 물론, 제작 실무와 활용방법까지 지면을 통해 알아보자.



제휴는 어렵다. 해외제휴는 더 어렵다. 언어도 다르고, 관습도 다른 해외 수용자에게 대한민국의 보도물을 내놓는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제휴는 매력적이다. 해외제휴는 더욱 매력적이다. 언어도, 관습도, 생각도 다른 세계인에게 우리의 시각을 전파하는 일이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크로스미디어(Cross-media) 보도물에서 제휴는 숙명이다. 같은 미디어그룹 내에 신문, 방송, 인터넷 매체를 소유할 수 없는 국내 언론 상황에선 더욱 절실하다. 신문, 방송, 인터넷에 걸맞은 보도물을 각기 기획하는 일도 매력적이다.
제휴 업무는 이처럼 어렵고 매력적이다. 더구나 한국 언론이 글로벌 언론사와 손잡고 보도를 한 경험이 적기에 더더욱 어렵고 매력적이다. 필자에게도 제휴 업무는 현재진행형이다. 정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제휴의 요령을 적기보다 함께 고민할 것을 늘어놓고자 한다.

장기적 안목 vs 단기적 안목

2008년 1월 미국 뉴욕 abc 본사. 조선일보 크로스미디어팀은 abc의 탐사 보도 프로그램인 ‘20/20’의 브라이언 로스 프로듀서와 DVD 플레이어 앞에서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9개국을 돌면서 10개월 동안 취재한 탈북자 인권 보도물인 ‘천국의 국경을 넘다’의 주요 장면을 시사하는 중이다. 우리는 이 기회를 얻기 위해 일주일 전, 무작정 뉴욕행 비행기를 탔다. abc 본사 정문에서 가장 유명한 탐사 보도 프로듀서를 찾았다. 당연히 거절당했다. 사흘을 연달아 찾아갔다. 그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의 탈북 인권활동가인 천기원 목사와 수잰 숄티의 도움도 받았다. 일주일 만에 찾아온 기회! 절대 놓칠 수 없었다. 1시간 가까이 추가 질문을 하던 로스 프로듀서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최고다. 에미상을 받을 만한 작품이다.”
제휴가 성사됐다고 확신했다. abc를 나서는 순간 미디어전략팀 이석기 선배와 얼싸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이것은 해외제휴를 모르는 이들의 착각이었다. abc는 작품성을 인정하고 본격적인 제휴협상에 들어가자는 사인을 준 것이다. 반면 우리는 제휴가 성사됐으니 콘텐츠 비용을 받고 편성을 확정해야 한다고 우겼다. 한편은 협상을 시작하려 하고, 다른 한편은 협상을 마쳤으니 결과물을 내놓으라고 우겼다.
결국 abc와의 제휴는 결렬됐다. 그 경험 덕분에 BBC와의 협상은 여유를 가지고 임했다. ‘천국의 국경을 넘다’가 BBC를 비롯한 해외 주요 방송사와 제휴를 하는 데는 abc와의 협상 경험이 귀한 자산이 됐다. 이처럼 해외제휴는 빠른 시간 내에 결과를 내겠다는 결심보다 긴 호흡을 가지고 협상을 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해외 영화제 vs 글로벌 방송사

해외 다큐멘터리 시장의 순환구조를 보면 장기적 안목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공을 들인 작품일수록 해외 다큐멘터리 영화제에 출품하는 게 좋다. 상품가치를 높이려는 목적이다. 미국 선댄스(Sundance) 영화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다큐멘터리 영화제(IDFA) 등 국제무대 데뷔를 위한 다큐멘터리 영화제는 즐비하다. 국내 주요 다큐멘터리 영화제에 먼저 출품하는 것도 방법이다. EBS 다큐멘터리 영화제(EIDF), 부산국제영화제(PIFF) 등은 세계로 가는 관문으로 유명하다. ‘워낭소리’도 EIDF를 거쳐 선댄스 경쟁작으로 오른 작품이다.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거나 경쟁작에 오르면 국내외 영화관에서 상영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미국 등 다큐멘터리 시장이 큰 나라에서 개봉하는 경우 꽤 많은 수익도 기대할 만하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경우엔 아이맥스(IMAX)와 손잡고 북미 상영관을 공략하는 것도 방법이다.
영화 개봉을 마치면 글로벌 방송사와 편성을 협상한다. 개봉관 실적이 좋으면 많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언론사에서는 영화제나 개봉관 상영을 뒤늦게 고민한다. 글로벌 방송사에 편성하는 데 열중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시장을 놓치는 셈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방송을 마치면 DVD 시장을 노려야 한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판매를 해서 3년쯤 시간을 두고 수익을 거둔다. 영화제 성적도 좋고 글로벌 방송사 편성도 됐다면 DVD 판매를 통해 수익을 얻는 걸 기대할 만하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는 공익적 프로그램을 전국 도서관이 구매하므로 집중 공략할 필요가 있다.


선(先)제휴 후(後)제작 vs 선(先)제작 후(後)제휴

공동 제작사를 선정해 함께 취재를 하고 수익을 나눌 것인가, 단독으로 제작을 하고 완성작을 해외에 내보낼 것인가. 풀리지 않은 질문이다. 하지만 여러 제작자의 경험을 종합해 보면 ‘선제휴 후제작’이 유리하다. 더구나 빠른 결과물을 원하는 한국 언론 풍토에도 유리하다.
거듭 강조하지만 좋은 크로스미디어 작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힘 있는 영화 배급사 혹은 글로벌 방송사를 찾는 일도 중요하다. 직접 방송국을 경영하지 않는 데다 해외 배급망이 없는 상태에서 많은 수용자에게 콘텐츠를 제공하는 길은 제휴뿐이다. 더구나 글로벌 방송사의 경우 수많은 콘텐츠 제휴 제의가 들어온다. 그 가운데 유독 눈이 띄는 작품을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는 단지 한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모나코에서 만난 한 프랑스 프로듀서는 “다큐멘터리는 제작하는 일이 30%, 제휴하는 일이 70%”라고 정의했다.
혹자는 공동 제작을 하는 경우 우리가 완성작을 내놓지 못하고 편집권을 내놓는 이른바 ‘푸티지(footage) 판매’에 그치지 않느냐고 비판한다. 하지만 해외공동 제작 계약에 공을 들이면 포스트 작업에서도 동등한 권한을 가질 수 있다. 또 푸티지 제휴 단계를 거쳐 완성작 제휴에 이른다는 점도 명심하자. 자존심 하나만으로 글로벌 시장을 뚫기는 불가능하다.

글로벌(Global) 소재 vs 한국적(Local) 소재

크로스미디어 보도물을 진행하면서 떠나지 않는 고민이 있다. ‘어떤 소재를 선택할 것인가.’ 당연히 글로벌하면서도 로컬한 소재를 찾아야 한다. 이는 지난 회에서도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세계인을 열광시키면서도 한국인도 즐겁게 하는 소재를 찾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예를 들어 보자. 한국은 IT 강국으로 알려져 있다. 핸드폰 하나만으로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핸드폰으로 알람을 맞춰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교통비도 핸드폰으로 해결한다. 각종 쇼핑도 한다. 학교 도서관 출입과 수강 확인도 핸드폰으로 할 수 있다. 각종 뉴스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문자로 실시간으로 의사소통도 가능하다. 이 같은 내용은 최근 미국의 어느 유력 신문이 보도한 대한민국의 핸드폰 문화다. 미국인에게는 미래의 SF 소설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하고 재미없는 내용에 불과하다.
탈북자 인권 문제도 마찬가지다. 유럽인에게 난민 보도는 언제나 관심의 대상이다. 미국인에게도 마찬가지다. 피랍자 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일본인에게도 훌륭한 소재다. 하지만 정작 국내 수용자들에게는 그다지 각광 받는 소재가 아니다. 이와 같이 한국인과 세계인이 공통으로 관심을 갖는 소재를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두 수용자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글로벌 크로스미디어 작품은 탄생할 수 없으니 난감한 일이다.
해외 공동 제작의 중요함을 말한 바 있으니 조금씩 다른 세계인의 기호도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미국인은 기본적으로 자국과 관련된 소재가 아니라면 잘 쳐다보지 않는다. 또 자막을 읽는 일을 무척 싫어한다. 반면 유럽인은 아시아, 아프리카 등 유럽과 동떨어진 이슈에도 민감하다. 자막 처리에는 오히려 반감이 있다. 생동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엔 구성이 치밀하지 않은 다큐멘터리엔 관심이 적다. 이런 특성을 알았다고 해서 그에 맞는 소재만 발굴해 보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억지로 탈북자 인권 문제를 미국 이슈와 연결하거나, 치밀한 구성을 위해 보도내용을 사전에 조작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최근 막걸리를 비롯해 한식(韓食)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유럽인들이 한옥(韓屋)에 많은 호기심을 가진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렇다고 이 소재만으로 글로벌한 보도가 가능하리라 여긴다면 오판이다. 결국 우리가 가장 잘 보도할 수 있는 로컬한 소재를 찾은 뒤 글로벌하게 보도할 수 있도록 제대로 가공해야 한다는 말이다. 국내 및 세계 시청자 취향에 대한 치밀한 사전 조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크로스미디어에 대한 글을 3회나 연재했다. 지름길 대신 물음표만 남겼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다행이다. 그만큼 크로스미디어는 발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글이 연재되는 동안 현장에 있는 여러 지인들에게 전화를 받았다. “나도 크로스미디어 보도에 도전하고 싶은데 방법을 알려 달라.” 명쾌한 답을 주지 못했다. 다만 “용기를 내서 시작해 보라.”는 말만 했다. 노하우(Know-how)를 숨기고 싶은 욕심 때문은 아니었다. 필자 역시 많은 숙제 속에 이 일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같은 길을 걷는 기자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그래서 남겨 놓은 과제들이 그들의 열정을 통해 풀리길 기대한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11월호 미래형 기자되기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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