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같은뉴스 다른생각 20 <마지막회>
‘이미지 딱지’의 굴레를 넘어서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스스로 글의 품질이 떨어지는 게 느껴져 마무리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다가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그런 부담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마지막 글인 만큼 감히 사적인 얘기를 해 보려고 한다. 물론 공적 의미가 있는 사적 얘기다.
나는 요즘 들어 한 번 들러붙은 ‘이미지 딱지’가 무섭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내가 했던 주장을 오해 없이 제대로 이해해 주는 이를 만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세 가지만 예를 들어 말씀드려 보겠다.
사람들은 내가 매우 당파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김대중·노무현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책들을 썼으니 그렇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상대적 약자’였던 시절에 그들의 대의를 지지하는 책들을 썼을 뿐 집권 이후엔 그들을 비판하는 쪽에 섰다. 나는 특히 노무현 지지자들이 보여 온 ‘정치의 종교화’ 현상을 비판해 왔으며 지금도 개탄을 금치 못하고 있는데, 그들은 내가 다른 당파성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어느 편이건 편을 갈라 자기 편 우두머리를 숭배하는 현상 자체를 혐오할 뿐이다. 지도자는 우리의 도구일 뿐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는 게 나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앞선 두 대통령이 자식 문제로 개망신을 당하고 개혁·진보주의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 걸 지켜본 사람이 또 그런 과오를 범했으면 호된 비난을 퍼부어야지, 이명박이 밉다는 이유로 영웅시하는 건 패거리주의에 중독된 광기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다수결의 원리에 밀려 욕만 먹고 있지만, 그런 생각이 나의 존재 근거인 걸 어이하랴.
사람들은 내가 ‘서울대 폐교론’을 주장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서울대 폐교’에 단호히 반대한다. 나는 서울대가 구현하는 엘리트주의를 불가피하다고 보며, 오히려 제대로 된 엘리트주의, 즉 소수 정예 엘리트주의를 실현해 보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 서울대는 물론 연고대가 지금과 같은 인해전술(人海戰術) 수법을 쓰지 말고 정원을 대폭 줄여 최상층 엘리트 대학의 위상을 누리되, 그 다음 단계에선 수많은 대학들이 순위가 오르내리는 진정한 경쟁을 해 보자는 게 내가 쓴 ‘서울대의 나라’라는 책의 메시지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과 같은 입시경쟁의 병목현상을 타개하는 동시에 10대 후반에 한 번 치르는 경쟁으로 쟁취한 간판을 평생 우려먹는 반(反)경쟁 문화를 깨자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서울대 폐교론자로만 여겨질 뿐이다.

사실과 거리 먼 딱지가 오해 불러

사람들은 내가 반(反)조중동(조선-중앙-동아)주의자이며, 조중동을 증오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요즘 “조중동 없는 나라에 살고 싶다”라는 구호로 대변되는 반(反)조중동 운동을 볼 때마다 개탄을 금치 못한다. 그건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내가 주장했던 건 조중동의 ‘제몫 찾아주기’였다. 심지어 김대중·노무현의 열성 지지자들까지 조중동을 구독하는 건 매우 이상하지 않으냐는 문제 제기였다. 그렇지만 그들이 개인적인 실속을 내세워 그런 관행을 바꿀 뜻이 없다는 게 확인된 이상(아직 확인이 안 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이제 나아가야 할 길은 조중동과는 다른 신문들을 지지해서 키우는 ‘포지티브 운동’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논조와 내용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조중동의 주장과 그들의 말할 권리는 존중 받을 가치가 있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나는 내 주장을 왜곡시키는 나의 ‘이미지 딱지’가 한때 나의 거친 스타일에서 비롯된 것임을 잘 알기에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모든 게 내 탓이다. 자, 그런데 이런 문제가 나에게만 일어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정도의 차이일 뿐 누구나 ‘이미지 딱지’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조중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세상엔 논쟁으로 해결해야 할 일도 있지만, 논쟁이 아닌 구체적인 대안 제시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많다. 특히 가장 중요한 민생을 돌보는 일만큼은 후자의 방식이 훨씬 더 생산적이다. 나는 조중동이 후자의 방향으로 선회하기를 바란다. 전자의 방향이 신문 장사에 더 도움이 된다면 이런 제안은 하나 마나 한 것이겠지만, 그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이젠 조중동도 인정하리라 믿는다.
 ‘조중동’이라는 용어부터 깨자. 나는 개인적으론 이 용어를 처음 쓴 분(당시 한겨레신문 정연주)에 대해 유감이 있다. 지난 이야기지만, 웃어 보자는 기분으로 말씀드린다면, 조중동을 상호 이간질시켜도 시원찮은 판에 그들을 하나로 묶어 결속시켜준 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최대의 실책이었다. 이것 때문에 당시 언론개혁 진영에선 큰 내분이 있었지만, 이젠 다 옛날이야기다. ‘조중동’이라는 표현이 어불성설이 되게끔 똑같이 보수를 지향하더라도 각자 독특한 색깔을 내보는 방향으로 가 보자. 그게 곧 벼랑 끝에 선 신문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조중동이 부디 ‘이미지 딱지’의 가공할 힘에 주목하기 바란다.

<연재끝>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11월호 사람과생각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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