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놀라게 한 치유와 화합의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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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는 반가운 소식에 당시 프로그램 관계자들이 모여 이번 등재의 의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안국정 당시 책임프로듀서, 이원군 당시 제작PD, 당시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이지연 아나운서, 좌담 사회를 맡은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김기만 당시 동아일보 기자(프로그램 취재).


2015년 10월 10일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대상으로 선정됐다.

한국 방송사상 최초이며 세계적으로는 독일의 베를린-브란덴부르크 방송사에 이은 두 번째 세계기록유산으로서 방송사적 의미가 큰 기념비적 사건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안국정 당시 이산가족 찾기 방송 책임프로듀서, 이원군 당시 제작PD, 이지연 당시 진행 아나운서, 김기만 당시 동아일보 취재기자를 초청해 방송 제작 과정과 뒷이야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방송사적 의미와 향후 과제 등을 논하는 특별 좌담을 가졌다. 사회는 광운대 김현주 교수가 맡았다.


한 진행자가 19시간 20분 연속 생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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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 좌담의 사회를 맡은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김현주: 83년(방송 당시)에는 소싯적 젊은이에 불과했는데 그때 이미 역사를 만드는 일을 하신 분들을 뵈니 반갑다.
 
일단 유네스코 등재 경위를 풀어가는게 좋겠다. 등재를 신청해보자는 아이디어가 어떻게 나왔고 언제 등재됐는지 등을 자유롭게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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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직접 연출했던 이원군 당시 제작PD. 그후 KBS에서 부사장을 역임했다.


이원군: 몇 분들에게 상의를 해봤더니 자료 수집을 하면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 등재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해서 연초에 업무수첩과 자료를 넘겨주고 KBS가 가지고 있는 테이프와 사진뿐만 아니라 관련자들의 개인 소장 기록물도 수집했다.

운 좋게도 아직까지 보관하고 계신 분들이 많았다.

김현주: 이원군 당시 제작PD가 그때 작성한 업무일지가 결정적으로 도움이 됐다고 들었다.

이원군: (방송) 첫날은 대본이 있었으나 다음날부터는 대본이 없었다. 진행을 위해 (일일이) 기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첫 방송) 일주일 전에 부랴부랴 팀을 꾸려 목요일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한 회 방송하고 끝나는 걸로 계획했었다.

당시에는 방송 시간이 새벽 1시가 넘어가면 벌점을 부과했다.

12시쯤 이원홍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신청한 사람들 모두 소환해서 밤을 새서라도 방송하자고 했다.

아침 7시 뉴스가 시작되면 끝날 줄 알았는데 방송은 계속 됐다. 따로 회의를 소집해 프로그램을 전사적으로 확대했다.

경찰 컴퓨터 조회, 적십자사 조회뿐 아니라 ‘만남의 광장’을 만들어 방송을 진행했다. 철야로 끝나는 줄 알았던 방송이 계속 이어져 결국에는 일주일, 한 달이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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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진행했던 이지연 아나운서. 이 프로그램으로 대통령 표창, 국민훈장 등을 수상했다.


이지연: 그 수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끊이지 않고 가장 길게 한 방송 진행 시간을 16시간 35분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수첩을 보니 19시간 20분이더라. 분 단위까지 쓰여 있었다.
 
잠도 못자고 방송을 하면서도 그 틈에 이런 기록을 했다는 게 놀라웠다. (수첩을 보니) 32년 전이 오늘처럼 생생했다.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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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산가족 방송을 취재했던 당시 동아일보의 김기만 기자. 후에 청와대 춘추관장을 역임했고, 현재 우석대 초빙교수이다.


김기만: 동아일보에서도 당시 김상 KBS 출입기자가 안국정 당시 부장, 이원군 수석PD와 이지연 아나운서 인터뷰 기사 등을 열심히 썼다.

지난 10월 4일부터 6일까지 아부다비에서 열린 기록물에 관한 위원회에서 신청 통과된 것은 47건에 불과하다.

방송 기록문화유산으로는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가) 유일하다.
 
한국 방송사상 처음으로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에 등재가 된 것이다. 한편 방송이 끝난 지 32년 만의 등재이기에 ‘만시지탄’이라고 할 수 있다.


전 국민 울린 아타까운 사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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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국정 당시 책임프로듀서. KBS 퇴직 후 SBS 사장, 부회장을 역임했다.


안국정: 당시에는 88 올림픽을 앞두고 기술적인 훈련을 위해 여러 특집 프로그램을 많이 했다. KBS가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전국 규모의 분할 방송을 처음 시도하던 때이기도 했다. 덕분에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이 급증했다.

이원군: 이산가족 방송은 전에도 있었다. 효과가 미미했을 뿐이다. KBS 라디오 ‘오후의 교차로’나 한국일보의 이산가족 지면광고 등이 그 예다. 적십자사에는 이산가족을 찾아주는 심인과(尋人科)도 있었다.

안국정: 사람 찾는 일을 하려면 경제적 안정이 돼야한다. (당시에는) 경제 성장으로 먹고살 만해지니까 가족을 찾는 데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처음에 사장이 하자고 했을 때 ‘포맷이 단순해서 될까’ 했다. 찾는 사람 소개, 찾을 사람에게 연락을 하는 단순한 구조다.

만나는 사람이 없으면 지루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상봉이 많이 성사되며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김현주: 진행하며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 달라. 여성 시청자의 98%가 울었다고 한다.

이지연: 벽보 보다가 만나고, 신청서 쓰다가 만나는 등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신기하게 서로 얼굴을 알아보고 찾는 경우도 있었지만 못 만나는 가족들이 더 많았다.

때로는 분명히 가족이 맞는 것 같은데 가족이 아니라며 그냥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진짜 가족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 ‘길소뜸’에 잘 나와있다.

김기만: 일부러 (가족이) 아니라고 하는 경우가 더러있었다. 실제로 어떤 한 남자는 한국전쟁이 터져 부인과 뱃속에 석 달 된 애를 두고 바로 징집됐다.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집에 돌아갔지만 가족을 만날 수 없어서 전국을 다 찾아다녔다고 했다.

그래서 이산가족 방송에 신청을 했고 결국엔 두 사람이 만날 수 있었다. 부인은 딸 하나를 시집보내고 본인도 남편을 찾다가 못 찾아서 결혼을 했다.

분명히 두 사람이 (서로가 찾는 사람이) 맞는데 아니라며 돌아서더라. 지금 만나봐야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 눈물로 확인만 하는 경우다.

이원군: 못 만난 사람 가운데 서울에 사는 이소자 할머니가 생각난다.

첫날이 아닌 이튿날 잃어버린 남매를 찾는다며 신청을 하곤 집에를 안 가시더라. 다행히 여름이라 춥지는 않았지만 보름을 연속 방송하며 나이 드신 분들 큰일 나겠다 싶었다.

이분들은 집에 가서 기다리시지 않고 방송국에서 살다시피했다. 이런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이지연: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전쟁고아였다. 신청자 10만여 명이 모두 사연 피켓을 하나씩 들었는데 그들은 부모님 이름 ‘모름’, 본인 이름 ‘모름’, 생년월일 ‘모름’으로 적었더라.

부부가 서로를 찾는 경우와 부모가 자녀를 찾는 경우도 감동적이면서 가슴이 아팠다.

어떤 할머니는 결혼도 안 하고 아이를 어렵게 키웠는데 할아버지는 재혼을 했다.

생방송에서 만나자 할머니는 눈물도 안 흘리고 가만히 있는데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등에 업고 작은 목소리로 “여보, 미안해요. 고마워요”를 반복하시더라.


이산가족 방송은 쌍방향 프로그램

김현주: 재력이 되고 형편이 되면 미리 만나더라. 그러니 (방송에 이산가족 신청을 한) 이 사람들은 그야말로 민초 중에 민초인 것이다. 한결같이 세월에 찌든 모습들이 기억난다.
 
이 프로그램은 1986년 유명한 미국 커뮤니케이션 학술지 ‘저널 오브 커뮤니케이션(Journal of Communication)’에 소개됐다.
 
영어제목은 ‘Family Reunion’으로 ‘An Interactive Media Event’로 분류됐다. 여기에는 주로 대관식, 취임식 등이 속해 있다.

모두 일방향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만, 이산가족 방송은 쌍방향 방송이었다.

이지연: 이번 등재 이후 특집 방송을 마련할 때 방송 당시 취재기자들을 인터뷰했었다. 여기서 당시 이산가족 방송이 SNS의 시초였다는 얘기가 나왔다.

서로를 드러내고 연계하면서 자기 얘기를 주고받았기 때문에 SNS의 시초로 분석한 것이다.

김현주: 사회적 갈등과 분열이 심했던 시기에 국민을 한데 묶었다는 점에서 방송의 힘이 대단함을 새삼 느낀다. 오늘날에도 필요한 방송의 힘이기도 하다. 해외 언론사들의 취재 열기 또한 뜨거웠다고 들었다.

김기만: 주요 4대 통신사를 비롯해 각국에서 취재를 왔다. 미국 ABC는 ‘나이트라인’ 생방송을 통해 당시 현장을 생중계했다.

여러 국가들 가운데 독일이 당시 분단국이었기 때문에 가장 관심 있게 보도했다. 외신들의 큰 관심은 당연한 거였다. 당시 (한국을 제외한) 분단국은 독일과 예멘뿐이었다.

독일은 아데나워의 동방정책이 추진 중이었기에 서신 교환과 방문이 가능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도 이런 비극이 지속된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눈물바다 속에서 모두가 인간적인 감동을 받았다. 종전 이후 가장 큰 휴먼 드라마일 것이다.

이지연: 해외 사람들은 30년이 지난 이 시간까지 (가족을) 못 찾은 것을 이해 못한다.

나 자신도 이산가족으로, 2000년도에 북한에 있는 오빠와 상봉했을 당시 외국 언론사들이 집중 취재했다. 그때 어떻게 50년 만에 만났냐, 생사도 몰랐냐, 그동안 나라는 뭘했냐 등 이해가 안 된다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원군: 한국전쟁의 특성을 잘 몰라서 그렇다. 압축성장 과정에서는 먹고살기 바빠 가족을 찾을 여유가 없었다. 이산가족 수도 너무 많아서 정부가 손대는 것 또한 힘들었다.

당시에는 텔레비전이 막강한 위력을 과시하고 중계방송만 해도 큰 관심을 받을때다.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 프로그램이 성공했다.

안국정: 한국 현대사에서 역사적인 사건이다.

이원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훼손되지 않게 보존하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야 한다.
 
이번에 등재된 KBS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그 외 한국의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기록유산들 또한 학생들과 국민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관리를 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정부가 할 일

안국정: 기록유산을 보관, 관리, 보존, 공개, 활용할 수 있게끔 관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보존과 공개를 잘 해야 한다. 박물관을 짓는 것도 좋을 듯하다.

등재과정까지는 KBS가 했지만 적십자사, 서울시, 경찰 등이 방송자료와 이산가족 실태를 통합관리했으면 한다.

김현주: 벌써 마무리를 할 때가 됐다. 마지막으로 한말씀씩 부탁드린다.

김기만: 남북 이산가족 방송은 KBS가 국영방송으로 실추됐던 이미지를 극복하는 계기가 됐다. 가장 공영방송다운 역할을 했으니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이다.

당시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국민들의 씻김굿이었다. 정파적인 문제를 떠나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이대로 끝내서는 안 된다.

젊은이들에게 다시 한 번 국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진보, 보수를 떠나 정부 차원에서 누구든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다.

안국정: 이제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이산가족 문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보관, 보존, 공개 의무를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방법 또한 연구해야 한다.

후세들에게 전쟁의 아픔, 전쟁의 기억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기에 민족의 자산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다.
 
나아가 학계에는 이산가족 문제를 학술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줘야 한다. 기록유산 등재를 계기로 이것이 하나의 민족적 유산이 될 수 있도록 활용 가치를 높일 필요가 있다.

이원군: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을 생각할 때마다 공영방송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며 그들의 눈물은 어떻게 닦아줄지, 그들의 간절한 소망을 어떻게 들어줘야 하는지 방송이 들여다봐야 한다.

함께 울고 웃으며 해결할 수 있는 방안들을 고민해야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지 않고 칭찬받는 방송이 될 수 있다.

이지연: 나는 실제로 이산가족이다. 2000년도 상봉 당시 오빠를 50년 만에 만났을 때 오빠의 나이가 68세였다. 지금은 평양에 계시는데 살아 계신다면 83세가 되셨을 것이다. 68세 때 만나고 바로 칠순이셨는데, 식사라도 하셨는지 전화나 편지로나마 물어봤으면 좋겠다.

최근 있었던 이산가족 상봉 때에 90세가 넘으신 분들이 상당수 가족들과 해우했다. 그분들이 가시지 않더라도 북한이 가족의 생사만이라도 확인할 수 있는 채널을 잡아줬으면 한다.

수많은 이산가족분들이 가족의 생사만이라도 확인하고 편히 눈 감으실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대단히 밝은 이 세상에 마음속 그늘을 안고 사시는 그분들이 마음의 숙제를 하루빨리 해결할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노력을 해줬으면 한다.

김현주: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와 관련해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역사, 가족, 민족, 전쟁, 인류 보편적가치인 사랑과 휴머니즘까지 걸리지 않는 항목이 없다.

그런 이야기까지 속속 담아 주셔서 의미 있는 좌담이 됐다. 귀한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하다.

이유미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분석팀


Posted by 미디어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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