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쓸 테니 읽고 싶은 대로 읽어라?

사람의 착각이라는 게 얼마나 허무맹랑하면서도 완고한 것인지를 인지심리학은 ‘상관(相關)의 착각 오류(fallacy of illusory correlation)’라는 말로 설명한다.

‘소풍만 가면 비가 온다’거나 ‘내가 중계방송을 보면 꼭 내가 응원하는 팀이 진다’든지와 같은 징크스가 여기에 해당한다.

소풍과 비, 중계방송과 승패는 아무런 관계가 없건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우연과도 같은 몇 가지 경험을 근거로 이런 ‘신념
적 착각’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 자신을 가둔다.

‘첫째 아이는 성실한 반면 둘째나 셋째는 자유분방하다’는 식의 통념도 이런 상관착각의 예다.

첫째가 나이가 많아 둘째나 셋째보다 먼저 책임과 성실을 익히게 되는 것이건만 섣부른 판단(착각)은 이런 시간차를 감안하지 않는다.
 
여러 연구 끝에 나온 결론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옛말이 가리키는 우연을 ‘까마귀가 날면 배가 떨어진다’거나 ‘배가 떨어진 건 까마귀가 날았기 때문’이라는 필연적 인과관계로 인식한다면 이는 누구도 못 말릴 상관착각이 되는 것이다.

지난 10월 8일 용인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캣맘(길고양이를 보살피는 자원봉사자)’ 사건 관련 보도는 이런 상관착각, 그것도 집단적인 상관착각의 한 예로 꼽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듯하다.

먼저 상관착각의 관점에서-이건 상대적으로 선의의 해석이다-본다면 길고양이 증가에 맞춰 ‘캣맘’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사회 분위기에 따른 우리 언론의 집단적 상관착각이 낳은 웃지 못할 촌극이라고 할 것이다.


사회 갈등 부추긴 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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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캣맘’ 사건 일주일 동안 네이버에 올라온 관련 언론보도가 1,600건이 넘을 정도로 언론은 이 사건 보도에 열을 올렸다. 사건과 관련한 언론보도를 비판한 KBS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미디어인사이드’의 관련 보도화면(2015.11.1.).


‘길고양이 집을 만들던 50대 중년 여성이 아파트 고층에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벽돌에 맞고 사망했다’는 팩트 하나뿐인 상황에서 각 언론은 별다른 고민 없이 ‘캣맘 혐오 범죄’라는 예단을 갖고 사건을 기사화하기 시작했다.

대표적 매체가 조선일보다. 9일 12면(사회)에 “길고양이 다툼? 고양이집 만들던 여성, 아파트서 떨어진 벽돌 맞아 숨져”라는 제목의 3단짜리 기사로 사건을 전했다.

동아일보가 12면 2단 기사로 “아파트 위층서 떨어진 벽돌맞아 50대女 숨져”라는 제목으로 별다른 예단 없이 사건을 전하기는 했으나 보도의 흐름은 조선일보가 설정한 ‘캣맘 혐오 범죄’ 쪽으로 급속히 쏠렸다.

위에서 떨어진 벽돌에 맞아 숨졌으니 경찰이 타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하는 것이야 마땅한 일이고, 타살의 배경으로 길고양이를 둘러싼 아파트 주민들의 갈등을 짚어보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으나 언론은 경찰의 이런 상상력을 앞서가기 시작했다.

전날 보도를 빠뜨린 경향신문이 이튿날인 10일 “벽돌 맞아 숨진 용인 캣맘 타살 가능성”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캣맘’ 갈등을 본격적으로 조망하기 시작했고, 매일신문은 한발 더 나아가 “길고양이 먹이 준 캣맘 이웃과 잇단 갈등”이란 제목의 기사
를 통해 사실상 이 사건이 길고양이를 둘러싼 주민간 갈등에서 비롯됐을 것이라는 추론으로 독자들을 몰아갔다.

이후 각 언론의 보도는 사실상 이 사건을 ‘캣맘 살인 사건’으로 기정사실화하는 양상으로 치달았다.

“캣맘 사망 일주일…‘보호론 vs 민폐론’ 사회 갈등 키워드 된 길고양이”(한국일보 10월 14일자)와 같이 길고양이를 둘러싼 사회 갈등 실태를 집중조명하는 기사들이 신문과 방송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건 이후 8일간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뜬 관련기사만 1,600여 건이라지만, 인터넷 카페나 SNS 등에는 기사 건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논란과 공방이 펼쳐졌다.

그중에는 ‘캣맘 엿먹이는 방법’이라든지 ‘캣맘충’ 같은 노골적 혐오감을 담은 막말들도 부지기수를 이뤘다. 그리고 많은 언론들은 이런 것들조차 친절하게 찾아내 소개하며 눈길을 낚아댔다.
 
심지어 마치 피해자가 살해 동기를 제공한 것 같은 인상을 주는 보도도 나왔다.

사건이 캣맘과 전혀 관계없는 어린 아이들의 무심한 행동이 빚어낸 비극인 것으로 드러날 때까지 언론의 무책임한 추측 보도와 이로 인해 빚어진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사회 갈등, 그리고 이런 갈등에 담긴 자극적 표현들을 여과 없이 전달하며 2차 갈등을 부채질하는 언론보도의 악순환 구조가 되풀이된 것이다.

이런 언론보도 행태를 두고 길고양이 문제를 새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는 긍정적 평가도 물론 제기된다.

그러나 이보다는 마땅한 해법은 찾지 못한채 섣부른 예단으로 사회 갈등을 부채질하고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또 다른 피해를 안겨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는 평가가 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아니 그 여파를 따지기 전에 ‘사실’을 생명처럼 여겨야 하는 저널리즘의 기본 가치가 철저히 무시되고 훼손됐다는 점에서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지금의 언론 현실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언론이 장기 밀매 가능성을 집중 부각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지난해 12월 수원 팔달산 시신유기 사건의 예처럼 무수히 많은 추측 보도, 왜곡 보도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이다.


언론 하향평준화의 원인

언론학자나 미디어비평가들은 이를 두고 “주목받을 만한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포장이 필요한데 그 과정에서 캣맘으로 몰고 간 것”이라거나 “어떤 사건에서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요소가 발견되면 언론은 그 부분만 지나치게 집중하고 다른 가능성이나 정황은 쉽게 무시한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런 지적은 우리 언론의 표피적 문제점을 그저 한 번 더 짚는 차원의 언급일 뿐이다. 왜 우리 언론이 이렇듯 쉽게 예단하고, 추정 보도를 일삼고, 그 결과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지까지를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우리 언론의 집단적 하향평준화는 이런 표피적 문제점 이면으로 보다 심각하고 복잡하며 근원적인 원인을 안고 있다. 앞서 말한 상관착각의 문제라면 차라리 다행이라 할 만한 정도의 문제들이다.

그 하나로 일선 현장기자와 데스크들의 역량 저하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계량화하기 어려운 기자 역량을 놓고 높고 낮음을 따진다는 게 얼마나 타당성을 지니는지는 물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인터넷 언론과 종합편성채널의 등장과 함께 폭발적으로 언론 매체가 증가하면서 기자들의 역량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떨어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언론계 인사들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본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포털 서비스 매체가 장악하고 있는 언론 시장 환경이다.

인터넷 매체는 말할 것도 없고, 방송과 신문 등 거의 모든 언론 매체가 네이버와 다음 같은 포털의 뉴스 유통에 목을 매고 있는 상황이 무책임한 추측 보도, 선정 보도를 부추기고 있다.

뉴스 독자의 대다수가 포털 등을 통해 뉴스를 접하고, 이를 통해 각 언론 매체의 뉴스 접속 클릭 수가 좌우되는 현실이다 보니 각 언론 매체들은 사실 확인은 뒷전으로 미뤄둔 채 저마다 자극적 추측 보도와 기사 베끼기에 열을 올리며 ‘독자 낚기’에 앞을 다투는 일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특히 인터넷 매체가 5,000개를 넘는 지금의 매체 과잉은 이런 완성도 낮은 기사 양산의 직접적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좋은 언론’이 필요한 때

지금의 한국 언론은 풍요 속 빈곤으로 정리된다. 매체 수로 따지면 한국의 언론은 유례가 없을 만큼 만개해 있으나 많은 매체가 심각한 경영난과 이에 따른 존립 위기에 놓여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11개 전국종합일간지의 매출 총액은 1조 4,154억 원으로, 3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군소 인터넷 매체의 열악한 경영 환경은 저널리즘의 기본 가치마저 위협하고 있다.
 
세상은 뉴미디어 시대로 접어들었건만 정작 그 당사자인 우리 언론은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 언론의 보도 행태에 담긴 문제를 지적하며 언론의 각성을 촉구하는 것은 마땅하고 당연하지만 한가한 태도다.
 
딱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중이 제머리 못 깎듯 우리 언론은 지금 자기 혁신의 능력을 상실한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사 차원이나 언론인 개개의 의지와 별개로 그런 집단적 혁신을 추진할 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언론의 현실이다.

개별 매체의 반성과 각성만으로 국민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줄 만큼의 질 높은 뉴스를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 것이다.

‘가난한 언론’의 폐해가 지금 우리 사회를 얼마나 멍들게 하고 있는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심각하게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언론이 우리 사회를 조망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가 언론을 들여다보고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따져볼 때인 것이다.

왜 언론매체들이 좌우로 갈려 정파적 주장을 앞세우는 편향 보도에 매달리고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은채 선정 보도에 열을 올리는지, 그 구조적 원인을 면밀하게 살피고 해법을 찾는데 우리 사회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기레기’ 운운하며 언론에 채찍을 가하는 것만으로 우리 언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수준 높은 콘텐츠로 시대 요구에 부응할 언론을 만들기 위해 언론을 넘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뭘 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앞선 ICT 기술을 바탕으로 한국 언론이 지구촌 뉴저널리즘을 선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찾는데 정부와 정치권, 기업, 학계, 언론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를 통해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언론 매체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사회 각계가 참여하는 공적 기금을 만들어 ‘좋은 언론’을 육성해 나가는 것도 적극 검토할 만한 대안이라고 본다. 이는 종합편성채널 구축에 투입된 수조 원의 자본보다 훨씬 적은 규모로도 가능한 일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와 올 여름 메르스 사태 등을 거치면서, 그리고 일상이 되다시피 한 정파적 갈등과 이념·계층 대립에 따른 사회 갈등 앞에서 그 어떤 변변한 해법 하나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서 국민 다중의 언론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언론으로서는 더 할 나위 없는 위기이겠으나, 사회 전체로 보면 또 다른 기회일 수도 있다.
 
좋은 언론을 갖는 것만큼 대한민국 공동체의 사회적 자본을 확충하는 데 있어서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은 없다. 이제라도 이를 위한 공론의 장이 펼쳐져야 한다.

진경호
서울신문 편집국 부국장


Posted by 미디어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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