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의 아픔은 컸고 남북의 거리는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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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년 만에 만난 이산가족들은 서로 볼을 비비고 껴안으며 피붙이의 정을 확인했다. 조순전 할머니(맨 오른쪽)와 북측 여동생들. / 사진출처: 연합뉴스


10월 20일부터 북측 지역인 금강산에서 제20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렸다. 1, 2차 방북단에는 각각 30여 명의 신문, 방송, 카메라 기자들이 포함돼 있었다.
 
이산가족 상봉 취재는 ‘분단’이라는 한국적 비극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는 취재 및 보도 기회다.
 
이산 상봉 보도는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취재기자가 기사 작성의 일부 혹은 전부를 맡는 일반 보도와는 달리 이산 상봉 보도는 취재기자와 기사 작성 기자가 분리돼 있는게 특징이다.
 
금강산 현지에 있는 기자가 팩스 통신선을 통해 취재 내용을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 마련된 임시기자실로 보내고, 회담본부에 있는 다른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다.

금강산 상봉 현장에서 촬영한 영상이 담긴 메모리는 인편으로 고성 남북출입사무소에 보내진다. 통신선이 연결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남북 간 기 싸움 ‘노트북 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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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체상봉 시에는 항상 북측 여성 접대원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이산가족들의 식사준비를 도왔다. / 사진출처: 연합뉴스


금강산에 파견된 각 사 기자들은 평소처럼 경쟁 취재를 하지 않고 ‘방북기자단’의 일원으로 함께 활동한다.

북한이라는 특수 지역에서 당국 승인 아래 이뤄지는 취재인데다, 개별 언론사가 현장에서 100여 가족 전부를 커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각 기자들은 사전에 약속한 대로 몇 가족씩을 맡아 스케치를 하고 대화를 받아쓴다. 이 내용이 기사 소스가 된다. 이번 상봉 행사에서 취재 취합본은 A4용지 280여장 분량에 달했다.

기자단은 순서에 따라 북한 취재라는 기회를 얻는 대신 엄격한 ‘룰’도 따라야 한다. 방북한 기자가 개별적 소회를 담은 ‘취재후기’를 마음껏 쓸 수 없다는 점도 규칙 중 하나다.

순번제인 풀 취재에서 특정 언론사가 후기를 독점 보도하는 것을 막고, 각 기자들이 현장 취재 내용을 모두 공유하게 하려는 의도다.

이산 상봉 취재 뒷얘기를 주제로 하는 이 글도 지난 10월 24일부터 2박 3일간 방북한 2차 이산 상봉 취재단의 취재 내용에 근거함을 미리 밝힌다. 이미 많이 보도된 이산가족들의 ‘사연 소개’는 배제하겠다는 점도 아울러 일러둔다.

이산 상봉 취재는 2007년 박왕자 씨 피격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막힌 이후 남측에서 금강산을 방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통로다.

방북은 버스편, 고성과 금강산을 잇는 동부 해안길로 이뤄졌다. 이산가족과 기자단은 고성 이북 동해안의 절경을 볼 수 있었다.

버스는 남측출입사무소(CIQ), 남방한계선, 비무장지대(DMZ), 북방한계선, 북측CIQ를 지나는 경로로 금강산을 향했다.

DMZ 가운데의 군사분계선을 통과하는 순간부터 북측 차량이 20여 대의 방북단 버스를 이끌었다. 도로는 대부분 포장돼 있었다. 드문드문 북한 군인들도 눈에 띄었다.

북측CIQ에선 북측 세관원이 짐 검사를 했다. 북측 세관원은 “선생 뭘 보느냐?”라며 두리번거리는 방북단 기자단에게 예민하게 굴었다.

북측 대남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 기자가 입경 장면을 영상으로 촬영하는 장면도 보였다.

북측 기자들은 남측 기자에게 “남북관계가 잘 돼야 한다. 언론의 책임이 크다. 이번 상봉행사가 잘 돼서 남북관계가 좋게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을 건넸다.

10월 20일 1차 방북한 기자들은 북측 관계자에게서 노트북 검열을 당했다. 북측은 컴퓨터 파일을 일일이 살펴보며 북한과 관련된 파일의 삭제를 요구했다.

북측은 암호가 걸린 노트북은 주인을 불러 ‘암호를 풀라’고 요구했다.

노트북을 다 보는 데 2시간 30분이 걸렸다. 결국 기자단 노트북 몇 대를 압수했다가 하루 뒤 금강산 현장에서 돌려줬다.

기자들의 항의에 북측 직원들은 “법과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답할 뿐이었다.

10월 24일 2차 공동취재단의 방북 때도 북측은 취재진의 이동식 저장장치(USB)를 가져갔다가 이틀 뒤 북한을 나설 때 돌려줬다.
 
북측의 노트북 검열은 취재진에 대한 ‘기싸움’으로 볼 수 있다. 평소 북측에 불리한 내용도 보도하는 기자들의 행동에 제약을 주려는 의도로 추정된다.

북측은 이산가족들이 가져가는 카메라, 태블릿PC는 검열하지 않았다. 통일부 기자단은 이산 상봉 행사 직후 “북한은 남한 언론에 대한 부당한 간섭을 즉각 중단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북한이 남쪽에서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컴퓨터를 일일이 검열하고 문제 삼은 것은 취재 및 보도활동을 간섭하는 행위라는 내용이다.

CIQ를 통과하고 나니 북한에 왔음을 비로소 실감할 수 있는 여러 풍경이 나타났다. 기자단은 지난 8월 15일부터 도입한 ‘평양시’에 맞춰 시계를 30분 뒤로 조정했다.

전력 사정이 좋지 못한 북한 현실을 보여주듯 산 중턱과, 가정집 지붕에 태양열 패널이 설치된 모습도 보였다.

밭에선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냇가에서 물장구를 쳤다. 기차역사 등 건물 윗부분에 ‘위대한 지도자 김정은 동지 만세’라고 쓰여 있었다.

상봉단을 태운 버스는 ‘금강산 국제 관광특구 방문’이라는 문구의 표지판을 지나 금강산 관광지구로 들어섰다.


금강산 도착, 65년 만의 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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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측이 상봉 행사에 준비한 음식들. / 사진출처: 연합뉴스


첫날 단체상봉은 금강산호텔에서 이뤄졌다. 이산가족들이 65년 만에 만나 가족이었음을 재확인하는 자리다. 가족들은 볼을 비비고 껴안았다.
 
어릴 적 흉터가 그대로 있는지 살펴보기도 했다. 남성 가족들은 대체로 서먹해했지만, 여성 가족들은 훨씬 표현에 적극적이었다.

상봉시간 내내 봄타령, 밀양아리랑, 고향의 봄, 훌라리 등 민요가 흘러나왔지만 곧 여기저기서 나오는 흐느낌 소리에 묻혔다.

이산가족들을 이어주는 매개는 ‘옛 사진’이었다.

“아버지가 젊었을 때야”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찍은 사진이야”라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 이내 먹먹해졌다. 이미 세상을 뜬 가족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남북 사진기자는 순간을 담기위해 셔터를 눌렀고 대한적십자사 봉사자는 가족들에게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 건넸다.
 
북측 가족들은 남측 관계자들의 촬영 제의에는 잘 응하지 않으면서, 북측 기자가 카메라를 가져오면 열심히 남측 가족을 잡아 이끌며 촬영에 임하기도 했다.

북측 가족들은 대화를 나누던 도중 이따금 “수령님 덕, 당 은혜로 이렇게 만났다”는 투의 선전문구와 ‘당’ ‘공짜’ ‘무상’ ‘미제(미 제국주의)’ ‘미국 놈들’과 같은 단어를 썼다.

북측 여성 이산가족들은 검은색 벨벳 재질의 한복과 흰색 저고리, 녹색 치마 등 화려한 옷을 입었다.
 
저고리는 큐빅과 금색문양으로 화려했다. 북측 남성 이산가족들은 주로 회색 정장에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모습으로 각양각색의 옷을 입은 남측 가족들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가족들은 사흘간 총 6차례, 12시간을 만났다. 첫날 단체상봉과 남측 주최 환영 만찬, 둘째 날 오전 개별상봉과 공동 중식상봉, 저녁 단체상봉과 마지막 날 작별상봉 순서였다.

이들 곁에는 북측 여성 접대원이 항시 대기하고 있었다. 각양각색의 한복을 차려입은 젊은 여성인 이들은 남측 행사관계자들과 취재진의 눈길을 끌었다.

이들의 주 임무는 각 테이블을 맡아 이산가족 곁에서 음료를 따라주거나 음식을 내오고 테이블을 정리하는 것이다. 모두 검은색 하이힐을 신었고 이마를 드러낸 올림머리를 하고 있었다.

북측이 상봉 행사에 준비한 식사 메뉴는 떡합성(모듬 떡)/남새합성(모듬 채소)/닭고기랭묵(냉묵)/고급마요네즈무침(샐러드)/오리고기락하생(땅콩)찜튀기(튀김)/생선깨튀기/고기다진구이즙 등이었다. 남북 간의 어휘차가 드러나는 음식 이름이다.

고기다진구이즙이 무엇인지 북측 안내원에게 묻자 그는 “고기를 다져서 양념해 다시 구운 음식”이라고 했다.
 
‘고기완자구이’나 ‘떡갈비’와 비슷했다. 음료로는 대동강 맥주와 랭천사이다, 인풍술(포도주의 일종) 등이 놓여 있었다. 테이블에서는 대화를 나누며 대체로 맛있게 음식을 비웠고, 건배도 했다.


남측 선물에 예민한 반응

이산상봉 행사가 치러진 금강산호텔 로비에 있는 ‘특산품 매대’도 남측 이산가족들의 인기를 끌었다.

가격은 미화로 표기돼 있었다. 100달러짜리인 말린 송이버섯이 가장 비싼 축에 속했다.

판매원은 “말린 고사리는 약효가 크고, 말린 고비(나물)는 식용으로 더 좋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금강산호텔 로비는 대리석과 화려한 샹들리에로 장식돼 있었다.

정면에는 해뜰 무렵의 금강산 모습을 그린 대형 그림이 있고 2층 상봉장은 외금강 지역의 구룡폭포와 총석정 그림이 둘러쌌다.
 
북측 보장성원은 “밑에서 (2층을) 올라다보면 땅에서 계단을 통해 하늘로 가는 형상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취재 도중 북측 보장성원들은 곳곳에서 기자들의 촬영을 막고, 가족들에게 접근하는 것을 방해했다. 종종 승강이가 벌어졌다.

때로는 북측 가족들이 직접 남측 기자에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좀 가시라”고 하거나, “기자선생님들, 70년 만에 만나 이야기하는데 다른 데 취재해 주십시오”라고 정중하게 요청하기도 했다.

보장성원들은 남측 기자들이 어떤 매체에 근무하고 있는지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특정 매체를 언급하면서 “요즘 그 매체가 북남관계에 대해 많이 쓰던데”라고 말했다.

한복을 차려입은 중년의 여성 보장성원이 접대원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옷과 머리매무새를 만져주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에게 접대원들이 학생인지, 전문 접대원인지 정체를 물었지만 자세한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보장성원들은 남측 가족이 갖고 온 ‘선물’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 보장성원은 “내가 남한 적십자에게 말했던 건데, 선물을 받고 나면 우리(북측) 가족들이 기분이 나쁘단 말이오. 선물이 아니라 오물이라고 그러오. 오랜만에 만났으니 내의까진 알겠단 말이오”라고 선물꾸러미의 내용물을 문제 삼았다. 라면, 치약 등 선물이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는 얘기였다.

북측 가족들이 남측 가족에게 전한 선물꾸러미에는 백두산들쭉술, 평양주 등이 들어 있었다.
 
몇몇 남측 가족들은 이튿날 호텔방에서 이뤄진 개별상봉 시간 동안 북측 가족들의 반응을 묻는 질문에 “주소를 꼬치꼬치 캐묻더라”거나, “갖고 올라온 선물은 열어보지도 않더라”고 귀띔했다.

공동 중식행사에서 북측 가족들은 남측 가족을 무대로 이끌어 노래를 불렀다.

주로 고향의 봄, 아리랑, 우리의 소원은 통일, 북측 노래인 반갑습니다 등 남북 가족 모두 아는 노래가 주를 이뤘다.

북측 보장성원이 어떤 노래를 하라고 지정해주는 모습도 목격됐다.

‘우리민족끼리’의 한 기자는 남한 당국이 재입북을 희망하는 탈북자 김연희 씨를 왜 돌려보내지 않냐며 역정을 내기도 했다.
 
“북측은 왜 억류 중인 김정욱 선교사 등을 보내지 않는가”라고 항의하자, 그는 “(김 선교사는) 간첩죄로 처벌받은 죄인이라 다르다”고 반박했다. 그는 “우리민족끼리 등이 남에 대한 비난이 너무나 과하다”는 지적에는 웃으며 대답을 피했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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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산가족들이 작별상봉을 마치고 버스에서 마지막으로 오열하며 인사하고 있다. / 사진출처: 연합뉴스


호텔에서 일하는 한 북측 판매원은 “이산 상봉 행사를 여러 번 치렀는데 (이산가족들의) 점점 연세가 많아지는 게 느껴진다.

돌아가시기 전에 어서 이런 행사가 많이 열려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이산 상봉 신청자의 절반가량이 이미 숨졌고, 생존자 6만여 명중 절반 이상이 80대 이상의 고령이다.

시간이 없는 것이다. 한 할아버지는 형이 이미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슬퍼했지만 사망 순간에 큰 고통은 없었다는 소식에는 기뻐했다.

다른 할아버지는 70년 만에 결혼식 사진을 찾았고, 돌아가신 어머님의 제삿날을 알게 됐다.

치매 걸린 노모를 65년 만에 만난 북측 아들의 마음은 아기처럼 무너져 내렸다. 어릴 적 헤어진 동기간은 같은 질환을 갖고 있다는 것에서도 서로 이어져 있음을 느꼈다.

사흘째 작별상봉의 마지막 10분은 이산가족들이 평생 동안 느껴왔던 슬픔과 기쁨, 고독과 회한을 압축적으로 다시 경험하는 순간이다. 남측 가족들은 “울지 마라”라고, 북측 가족은 “일없다(괜찮다)”며 서로를 위로했다.
 
“통일되어 꼭 다시 만나요”라는 약속도 많이 들렸다. 하지만 그 약속이 지켜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금강산 상봉장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산가족들이 가족이라는 끈끈한 인연을 재확인할 수 있는 시간은 2박 3일간 총 12시간에 불과했다. 65년 만의 아픔을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가족 간의 만남이라는 가장 사적인 순간은 분단이라는 현실 앞에서 철저히 통제됐다.

금강산에서 기자들이 지켜봤던 장면은 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희비극이었다. 한 번 이산가족 상봉을 한 사람은 사실상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산가족들은 첫 만남의 순간부터 영원한 이별을 예감하고 있었다.

김대훈
한국경제신문 정치부 기자


Posted by 미디어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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